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68)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68화(68/354)
#068화. 불과 얼음(1)
엘런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었다.
편안한 자세가 갖춰지고 조용한 주변이 마련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더 뚜렷하게 보였다.
그러나 지금 보아야 할 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니었다.
여태껏 바깥을 돌보았다면, 완전한 밤이 찾아올 때까진 내면에서 토대를 쌓기로 했다.
스아아아아아아-
코어에서부터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엘런은 그 시작점부터 면밀히 살펴보았다.
빙속성의 마력이 한계점까지 응축되어있는 곳이자 엘런이 펼치는 모든 마법의 근원, 코어는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많이 성장해 있었다.
역시 쓰면 쓸수록 성장한다는 말이 정답인지, 학교생활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커져 있었다.
그러나 아직 이 코어에 맺힌 응어리들이 느껴진다.
젤리처럼 물렁한 느낌을 가진 이것들은 코어 안에서 부유물처럼 떠다녔다.
엘런은 그 응어리들을 살살 매만지며 이게 무엇인지 금방 눈치챘다.
‘용혈.’
이 응어리는 용혈의 잔재들이다.
용혈을 단숨에 들이켜고 코어를 만들면서 마력의 성장을 대폭 이뤄냈으나, 아직까지 흡수 못 한 부스러기들이 코어 속에 남아있었다.
저런 것이 마법을 쓸 때 방해를 하진 않지만, 마력의 정순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부스러기라고 해도 용혈은 용혈이다.
인위적으로 코어에 녹여내는 건 불가능했고, 그저 꾸준하게 마법을 쓰다 보면 어느새 녹아서 사라져 있을 거다.
‘그럼 다음은 마력 회로다.’
엘런은 코어에서부터 마력을 출발시켰다.
마력이 성난 야생마처럼 달리며 회로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엘런은 그 회로의 길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굵은 크기의 회로는 물론이거니와, 모세 혈관 같은 미세한 회로도 전부 기억했다.
그러니 남들의 마법을 볼 때도 저게 어느 회로로 가서 어느 회로로 빠져나오는지 전부 파악 가능한 것이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몸 안에서 계속 마력을 회전시키던 엘런은 이만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미숙하네.”
미숙하다기보단 연습의 부재일 것이다.
용혈로 잔뜩 몸집을 늘리고 비대해진 마력은 체내에서 회전시킬 때도 주변까지 영향을 주었다.
어떤 강력한 물살을 따라 휘몰아치는 급류가, 주변으로 물방울을 튀기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엘런은 눈을 반쯤 떴다.
쩌저저저저저적-
엘런의 주변은 이미 한겨울의 얼음 동산으로 변한 지 오래다.
잔디는 바람에 흩날리던 그대로 얼어붙으며 간혹 피어있던 들꽃은 생생한 얼음꽃이 되었다.
지금 몸 안에서 움직이는 마력에 비하면 물방울에 불과한 양인데도 세상은 한껏 얼어붙었다.
엘런은 코어로 마력을 끌어모으며 생각했다.
‘내가 이 파티 레이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뭘까.’
다른 조원들에겐 그 최선을 전부 알려주고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은 그 최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귀찮아서였다.
그냥 과자 좀 먹고 아이스크림 먹다가 평소처럼 지내다 보면 어련히 떠오를 듯했다.
하지만 오늘 조원들을 가르쳐보니 이건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식으론 어림없었다.
조원들의 개성은 서로마다 다른 방식으로 강했고, 그걸 전투에 써먹는 건 온전한 조장의 역할이다.
‘늑대인간의 본능, 한쪽에 치중된 방어력, 특이 마력.’
하나만 이용하려 해도 온갖 변수가 머릿속에서 불쑥불쑥 떠오른다.
개중에는 막을 수 있는 것도 있었고 막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엘런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할 수 없는 건 과감히 버려. 가능한 것만 생각하는 거야.’
최대한 치밀해져야 한다.
변수마저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그 수밖에 없다.
최대한 머리를 굴려라.
예측 불가능한 미래조차 짜여진 대본으로 완성해야 할 것이다.
엘런은 자신과 세 명의 조원이 하나의 괴물을 두고 싸우는 장면을 계속해서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어렵다.
“어떤 몬스터가 상대인지만 알아도 일이 몇 배는 쉬워질 텐데.”
엘런은 당장 6급의 위험도를 지닌 몬스터 중 뭐가 있는지 기억나는 것들로만 훑어보았다.
“포 핸드 오크도 있고 키메라도 있었지.”
사실 이 정도만 되어도 웬만한 용병 수준으로는 쳐다도 못 볼 만큼 흉포했다.
산 한두 개 정돈 위압만으로도 주인을 먹을 만한 존재들인데 오죽할까.
그래서 아주 고급 인력에 해당하는 마법사들이 파티급으로 달려와야 편안한 사냥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떤 종류의 괴물인지 알고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한 얘기다.
이렇게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면 제자리걸음인 건 똑같았다.
“하아…….”
엘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키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떤 몬스터가 상대로 나올지는 알려 드릴 수 없지만, 1급에선 드래곤이 나온다는 게 힌트예용~
지금 생각해도 영 알 수 없는 말이다.
1급에선 드래곤이 나온다는 게 뭐 어쨌단 말인가.
엘런은 그 말을 계속 곱씹어보다가…… 퍼뜩 뭔가가 떠올랐다.
“설마.”
그는 당장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어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대괴물전 전투법 자습서]이것에는 각 등급마다 나누어진 괴물들의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엘런은 등급 칸에서 6급까지 페이지를 촤라락 하고 넘겼다.
“찾았다.”
한동안 페이지를 팔랑거리던 엘런은 어느 부분에서 딱 멈춰 섰다.
페이지의 상단에 떡하고 적힌 괴물의 이름.
엘런은 그 이름을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드레이크…….”
드래곤의 최하위호환 아류라 불리며 사실 용보단 도마뱀에 가까운 존재다.
허나 진짜 드래곤처럼 단단한 비늘, 신체 능력으로 드래곤의 아류란 평가까지 받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진짜 드래곤이나 다른 아류들같이 마법은 일절 사용하지 못하기에 6급으로 등수가 매겨졌다.
6급에서 드래곤과 묶여 부를 만한 괴물은 이놈뿐이다.
엘런은 책을 탁하고 덮으며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이제 됐어.”
거목의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던 변수들에게 거대한 가지치기가 들어갔다.
그 끝에 남은 건 명확한 계획과 일목요연한 사실 뿐.
엘런은 그것들을 토대로 마치 퍼즐처럼 자신의 조원들을 끼워 넣었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되겠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얼어붙은 잔디가 파사삭 하고 부서진다.
엘런은 이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을 뻗으려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계셨네요.”
“…….”
델은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을 한 채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기다란 손가락의 끝은 엘런이 서 있는 마당을 가리켰다.
본래 자연의 녹색을 간직했어야 할 이곳은 남들보다 겨울의 첫눈이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솥은 잘 썼어요.”
엘런은 마당에 있는 솥을 오두막의 입구 근처까지 가져다 두었다.
“내일은 디저트들을 드리러만 올게요. 또 훈련을 할 것 같진 않거든요.”
끄덕- 끄덕-
어쩐지 델의 표정이 갑작스레 밝아진 것처럼 보인 건 아마도 착각이리라.
엘런은 고개를 한 차례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그럼 내일 뵐게요.”
그는 마당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엘런이 서 있던 자리에선 여전히 시릴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델은 얼어붙은 땅으로 살며시 걸어갔다.
그리곤 동상처럼 굳은 잔디 위로 한 다리를 걸쳤다.
“…….”
누군가 계절을 양단해놓은 듯한 오묘한 감각이 다리에 맴돈다.
한쪽은 한겨울에 알몸으로 나간 듯이 살마저 아려왔고, 다른 한쪽은 나비가 팔랑이는 봄이다.
그녀는 곧이어 완전히 얼어붙은 땅으로 입성했다.
“하아아.”
숨 쉴 때마다 자꾸만 새어 나오는 입김.
그 새하얀 입김은 어떤 선을 넘어가자마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델은 그 얼마 안 되는 한기 속에서 조금씩 거닐었다.
이 안은 너무나 춥고 너무나 시렸음에도 나가기 싫었다.
왜일까…….
그 이유를 자신에게 물어보았으나 심장은 이상한 대답만 보내왔다.
“익숙해…….”
이 한기가 익숙하다.
자신도 그렇게 느꼈고 심장도 그렇게 느꼈으며 머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 한기를 어디선가 맛본 적 있다.
대체 어디서였을까.
수백 년 동안 이 마당 안에서 지냈더니 잊어버린 게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잊지 않은 게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 자신의 몸을 한 꺼풀 덮은 추위다.
이 추위는 분명 너무나 친숙한데도 이걸 어디서 느껴봤는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새부턴가 태양이 사라지고 진한 달빛만이 무성해진 초저녁의 밤.
델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 같이 잘 휘어진 초승달만이 눈에 띄는 밤이다.
그 옆에 반딧불이처럼 날아다니는 별들은 값싼 들러리일 뿐.
밤의 진정한 강자는 광채를 내뿜는 달이다.
이 한기 속에서 하늘에 뜬 초승달을 보아하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
엘런은 중앙 광장까지 도착했다.
그만큼 중앙성이 코앞에 있었으나 엘런은 살짝 걸음을 멈췄다.
달도 떴고 오늘 하루 종일 몸을 썼더니 전신이 땀범벅이다.
한기 실린 바람을 후웅 하고 맞으니 다리가 다 떨렸다.
“목욕이나 하고 들어갈까.”
엘런은 여기서 가까운 곳에 꽤나 규모 있는 목욕탕을 발견했다.
귀족 사회에선 목욕 또한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혀있기에 그런 귀족들을 배려한 건진 모르겠다.
그러나 목욕탕은 평민 학생들도 많이 찾는 핫 플레이스다.
바깥에서 그렇게 몸을 청결히 할 일이 없었기에 이곳에서라도 깨끗이 지내려는 것이다.
“지금 시간대면 사람들이 많진 않겠지.”
엘런은 중앙 광장에서 몸을 돌려 목욕탕으로 향했다.
따뜻한 목욕은 자신이 군것질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
이렇게 몸을 쓴 날에는 목욕만큼 기분 좋은 게 없다.
엘런은 목욕탕 앞까지 도착했다.
좌우로 남탕과 여탕의 입구가 나뉜 것이 보인다.
엘런은 당연하게도 남탕을 향해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남탕의 입구로 몇 명이 더 다가왔다.
“여기 들어간 거야?”
“그, 그런 것 같은데.”
빌레드에게 명령을 받은 이들은 알게 모르게 엘런의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도 들어가자.”
“아아, 나 목욕 아까 했는데.”
“지금 그게 문제냐. 닥치고 따라 들어와.”
둘은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목욕탕 안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드넓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역시 옷을 넣어두는 라커룸이다.
라커룸은 도둑이 성행할 걸 대비해 마력으로 잠기고 여는 자물쇠를 라커마다 하나씩 달아두었다.
엘런은 비어있는 라커의 문을 열고 옷을 하나씩 벗어 그 안에 넣어두었다.
이 라커는 그 자체가 마도구라 안에 넣어둔 옷을 뽀송하게 말려주고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땀으로 축축해진 교복도 목욕하고 나오면 깨끗하게 변해 있을 거다.
“생각보다 좋네.”
목욕탕을 남들과 같이 쓴다는 건 불편한 사실이지만 이런 물건들은 집보다 좋은 것 같다.
곧이어 속옷까지 완전히 탈의한 그는 허리에 수건을 두른 후, 자물쇠를 잠갔다.
이제 욕탕으로 들어갈 차례다.
엘런이 그쪽으로 몸을 돌리니, 입구에서 유난히 딱딱한 표정의 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엘런과 마주하자 몸이 바짝 굳으며 ‘허흡’하고 숨을 들이켜기도 했다.
“…….”
엘런은 구태여 신경 쓰지 않고 욕탕으로 들어갔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두 귀족 학생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후우……. 긴장돼서 죽는 줄 알았네.”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아까 장학생이 허리에 덮은 수건 아래로 삐져나온 건 뭐였지?”
“응? 그런 게 있었어?”
“응. 살짝이긴 했는데 넌 안 보였어?”
“나, 난 허벅지인 줄 알았는데?”
둘은 일단 그게 뭔지에 대한 토론은 접어두고 탈의했다.
그리곤 엘런이 있는 욕탕에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또 다른 이가 욕탕에 들어왔다.
적발의 남자였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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