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7)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7화(7/354)
#007화. 입학시험(3)
엘런은 조금씩 길을 헤매면서 별별 상점이 즐비한 거리로 들어섰다.
바깥과는 거의 단절된 삶을 살다 오다 보니 드넓은 수도의 초행길은 퍽 복잡했다.
“드디어 찾았네.”
엘런은 그새 통만 남은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돈은 이제 실버가 아닌 골드 단위로 늘어났으나 또 무턱대고 디저트를 사 먹을 순 없었다.
마도구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물건도 비싸기에 쓸데없는 지출은 막는 게 좋았다.
엘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괜찮은 마도구 상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할 건 충동구매뿐만이 아니다.
입학시험같이 수도로 외부인들이 대거 몰리는 시즌은 장사치의 성수기.
그들은 합심해서 평소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가격으로 물건을 팔아치운다.
헌데 본래도 비싸던 마도구는 값이 얼마나 더 늘었겠는가.
하지만 다행히도 그건 자신과 상관없는 남들 얘기였다.
왜냐하면 본인은 피 같은 자기 돈으로 물건을 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엘런은 씨익 웃으며 한 마도구 상점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다.”
[아리네스 마도구 공작소]여긴 수도에서 가장 커다란 마도구 상점으로 여러 귀족 가문과 황가까지 정기 계약을 맺은 곳이다.
또한 그 귀족 가문 중에는 ‘크레센티아’도 있었다.
황가와 비견될 만큼 초거대 고객인 크레센티아를 이곳은 거의 신처럼 숭배한다.
이사벨이 가끔 우스갯소리로 말하길 무릎을 꿇고 큰 절을 몇 번이나 받아봤다고 했다.
그래서 온 것이다.
지금 자신은 크레센티아가 아니지만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크레센티아의 막내아들이었으니까.
“간단한 사칭쯤이야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거지.”
사실 사칭이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장본인을 연기하는 장본인?
그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엘런은 그 준비를 위해 마도구 상점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옷가게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얼마 안 있어 그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과 점원의 배웅과 함께 걸어나왔다.
1골드를 투자해서 폼나는 옷과 괜찮은 향수를 구매했다.
거울에 자신을 비춰본 엘런은 적당히 머리를 만지고 향수를 칙칙 뿌렸다.
옷 때문에 피부로 베여 있던 꼬질꼬질한 냄새가 말끔히 사라진다.
“이 정도면 충분해. 다음으로 필요한 건…….”
엘런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초승달이 멋들어지게 조각된 메달.
이건 크레센티아 백작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인장이다.
보통 가문을 대표하는 사절이나 대변인이 들고 나가는 물건이지만 혹시 몰라서 하나 슬쩍해놨다.
아버지도 5일밖에 안 남은 입학시험에 자신을 밀어 넣었으니 인장 정도야 훔쳐도 괜찮을 거다.
“아마도.”
엘런은 그렇게 고개를 주억이며 당당하고 기품 있는 걸음걸이로 가게에 들어갔다.
“어서오…… 흐어어억……!!”
그를 보자마자 근처의 점원들이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숨을 거칠게 집어삼킨다.
딸랑- 딸랑-
입구 위에 걸린 작은 종이 딸랑거리듯 엘런의 가슴팍에서 흔들리는 ‘그것’을 목도한 탓이다.
문 위의 종은 손님이 왔다는 걸 알려준다면, 이 메달의 딸랑거림은 신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엘런은 목소리를 두껍게 깔며 용건을 말했다.
“크레센티아 백작가에서 온 이사벨 아가씨의 하인입니다. 아가씨께서 급히 구매하고 싶다는 물건이 있어 연락도 없이 급하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자, 자, 잠시만요……! 사장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점원들은 누가 쫓기라도 하듯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위에서 우당탕탕거리며 무언가 쏟아지고 엎어지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테러라도 받은 듯한 소음이었다.
곧이어 아까 점원들이 올라갔던 계단으로 엘런의 키에 반절 조금 넘을 법한 꼬마가 내려왔다.
“어, 어서오세요! 저는 아리…… 으아아악!”
아리……으아아악은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1층까지 구르듯 내려왔다.
그래도 얼마 안 있어 벌떡 일어난 꼬마.
구불거리는 주홍색 머리칼을 허리까지 기르고 그 옆으로 뾰족귀가 살짝 튀어나왔다.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리네스 사장님 맞으십니까?”
“네, 네. 맞습니다. 제가 이곳의 사장입니다.”
이 마도구 상점의 사장은 엘프와 인간의 피가 절반씩 섞인 하프엘프다.
겉보기엔 꼬마 같고 목소리도 꼬마 같지만, 나이는 수십 살을 먹었을 거다.
그 무시 못할 세월의 연륜은 어수룩하게 계단에서 구르던 모습을 금세 치워버리고, 그녀를 장사치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직원에게 들었습니다. 이사벨 아가씨께서 마도구를 찾으신다고.”
“맞습니다.”
“어떤 마도구인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말씀해주신다면 곧바로 최고 등급의 상품을 준비해오겠습니다.”
“혹시 종이와 펜을 빌릴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아리네스는 직원에게 시켜 엘런에게 종이와 펜을 가져다주었다.
엘런은 그곳에다 몇 가지 물건들을 슥슥 적어나갔다.
“이대로 준비해주시면 됩니다.”
아리네스는 종이에 적힌 물건들을 힐긋 확인했다.
그리고 이어진 침묵.
“…….”
“무슨 문제라도.”
“정말 여기 적힌 물건들을 이사벨 아가씨께서 주문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아리네스는 침음을 삼키며 다시 한번 목록을 읽어내려갔다.
1. 에드리앙 자동필기 만년필
2. 1등급 아공간 망토형 로브(적재량: 10t)
3. 영약 상자
4. 수면 걷기 부츠
5. 마도공학 리볼버와 탄약 한 상자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아가씨께서 왜 이 물건들을 구매하시려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야 말해도 상관없겠지만 아가씨께선 불편하실 듯하군요.”
엘런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리네스는 의심이 짙어진 눈으로 그와 메달, 차림새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엘런은 아리네스의 시선을 피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결국 그녀는 품에서 주먹만 한 수정 구슬을 꺼내서 조작했다.
“크레센티아 백작가에게 정말 무례하고 죄송스러운 일이란 걸 알지만, 이사벨 아가씨께 확인 전화를 해봐야겠습니다.”
“……편한 대로 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리네스의 수정 구슬이 몇 번 진동하고 얼마 안 있어 달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구슬 너머로 들려오는 하이톤 보이스.
-아리네스! 웬일로 전화를 다 했어?
“네, 아가씨. 다름이 아니라 오늘 하인을 보내 구매하시기로 한 물건 말입니다. 정말 아가씨께서 시키신 물건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리 전화드렸습니다.”
-응? 그게 무슨…….
엘런은 한달음에 아리네스가 든 구슬 가까이 입을 붙였다.
“아가씨. 어제저녁 제게 구매하라고 지시하신 물건들 말입니다. 제가 직접 물건을 가져오려고 하는데 작은 소란이 생겨버렸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수정구슬을 통해 이사벨에게로 전해진다.
이후 작은 적막이 흐르니.
“아가씨?”
-으, 응! 나 여기 있어!
“정말 아가씨께서 주문하신 게 맞습니까?
이사벨은 ‘하하핫’하고 커다랗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당연하지! 내가 쓸 물건들은 아니고 선물용이야! 그러니까 포장도 예쁘게 해줘!
“당연히 그러하겠습니다.”
-응응! 그리고 잠깐 내 하인 좀 불러줄래?
“저 여깄습니다. 아가씨.”
구슬 너머에 이사벨은 아주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가문의 인장은 가게에 두고 가! 이런 편법은 아버지도 용납치 않고 나도 반대야! 그러니 이제부턴 그 좋은 머리를 200% 활용해! 이번에는 눈 감아 줄 테니까! 알겠지?
“……알겠습니다.”
-좋아, 좋아! 그럼 끊어용~!
달칵-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이사벨과의 통화는 끊어졌다.
아리네스는 구슬을 집어넣으며 엘런에게 깊이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괜한 의심 때문에 이사벨 아가씨께까지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닙니다. 아가씨께선 전부 용서해주실 겁니다.”
“그래도 저희가 마음이 불편합니다. 저희 가게에서 먼저 신뢰를 저버렸으니 응당 그 값을 치러야겠지요.
아리네스는 직원에게 손가락을 딱하고 부딪쳤다.
그 신호에 맞춰 직원 하나가 어떤 고급진 벨벳 재질의 상자를 들고 온다.
“아가씨께서 마도공학 리볼버를 구매하고 싶다 하셨죠. 하지만 그 리볼버는 탄약을 교체해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습니다.”
덜컥-
아리네스가 조막만 한 손으로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동시에 어지러운 룬어들이 깔끔하게 조각되어 있고 총신이 길쭉한 흑색 리볼버 한 자루가 드러났다.
“이건 마탑의 기술이 집대성된 최신식 마도공학 리볼버, ‘그림 리퍼’입니다. 탄약을 채울 필요 없이 사용자의 마력을 총알로 만들어 더욱 강하고 더욱 빠르면서 은밀한 공격이 가능합니다. 물론 진짜 총알도 넣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기능까지 갖췄습니다.”
“오오…….”
엘런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총을 살폈다.
마도공학에는 커다란 지식이 없는 자신이 봐도 명품이라는 게 느껴진다.
“세상에서 다섯 자루밖에 없고 저희 가게에도 하나밖에 없는 총이지만 오늘 크레센티아와 신뢰를 회복하는 대가로 무료에 내놓겠습니다. 가져가 주십시오.”
엘런은 씰룩이는 입꼬리를 죽을 힘으로 끌어내렸다.
“흠흠. 아가씨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언제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이대로 포장해주시길.”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직원들은 목록에 적힌 물품과 ‘그림 리퍼’를 깔끔히 포장했다.
이사벨이 선물용이라고 한 덕에 화려하고 형형 색깔의 포장지가 겉면을 감쌌다.
“물건은 백작가로 보내드릴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많지 않으니 제가 들고 가죠.”
“그래도 무거우실 텐데.”
“몸이 힘들어야 일하는 기분이 듭니다. 가문에는 이 인장만 보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엘런은 훔친 인장을 반납하고 양손에 한 아름씩 물건을 들며 상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곧장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찌지지직-!!
푸화아악-! 찌익-!
포장지가 거칠게 뜯기며 몽땅 쓰레기통으로 처박혔다.
물건을 덮은 상자도 뜯어서 버린 그는 아공간 망토형 로브를 겉에 덮고 그 안에 만년필, 영약 상자를 담았다.
“잘 들어가네.”
이 로브는 마법 방어 능력과 함께 방수, 방열, 방한 기능을 갖춘 1등급 상품이다.
게다가 아공간까지 있어 10톤까지 적재가 가능했다.
또 이 갈색 가죽 부츠는 밑창에 마법 처리가 되어 있어 사용자의 마력만 충분하다면 수면 위를 뛰어다니게 해준다.
하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이것.
촤라라락-
엘런은 홀스터를 허리춤에 메고 그림 리퍼를 꽂았다.
그 질감과 촉감, 손맛은 낚시꾼이 대어를 낚았을 때의 그 쾌감과 비견할 만했다.
“크으으…….”
술이라도 한잔 거하게 마신 듯한 추임새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본래 리볼버는 마법사의 부무장으로 캐스팅조차 할 상황이 없는 급박한 상황의 대비품이다.
그런데 이 정도 상등품이면 실전에 이용해도 손색이 없겠다.
엘런은 오늘의 쇼핑을 대만족하며 여관으로 향했다.
태양도 다 질려 하고 합격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묵을 숙소가 필요하다.
“합격 발표는 광장에서 공표되니까 거기와 가까운 여관에서 자야겠다.”
그런데 다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엘런이 가게에서 쇼핑에 박차를 가할 때 다른 지원자들은 명당 선점에 열을 올렸다.
광장 주변은 물론이요, 꽤나 걸어야 하는 거리의 여관까지 깡그리 매진 당했다.
“쯧. 어디 눈먼 방 하나쯤은 있겠지.”
만약 없다면 쫓아내겠다는 생각으로 엘런은 근처 여관들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대답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방 없어요.”
“없습니다.”
“다 나갔어요.”
“방금 다 없어졌어요.”
“다 나갔네요.”
엘런은 똥 씹은 표정으로 광장 근처이지만 무척이나 조용한 여관을 발견했다.
보통 사람들이 꽉 찼다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엘런은 희망을 품으며 그 여관의 입구를 찾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기다란 칼을 찬 덩치 두 명이 입구를 태산처럼 둔중하게 막고 있는 게 아닌가.
“뭐야, 저건. 풍채가 기사는 아닌 것 같은데.”
엘런은 입구 앞으로 다가갔다.
“멈춰라.”
“용건을 밝히시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들은 동시에 말을 뱉었다.
그 말에 엘런은 간단히 대답했다.
“잠자러 왔는데요.”
“잠?”
“네. 잠자러 왔어요. 그것 말고 여기 올 이유가 어딨겠어요.”
두 남자는 쑥덕쑥덕 지들끼리 어떤 얘기를 나눴다.
“204호다.”
그렇게 불쑥 말한 남자는 엘런의 등을 떠밀어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은 거칠게 닫혔다.
그것보다 엘런은 방금 남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204호? 남는 방이 그것밖에 없단 건가?”
그렇다기엔 여관 안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주문을 받는 직원도 없고 창칼 같은 무기들만이 이따금 책상 위에 늘여져 있을 뿐이었다.
엘런은 괜히 다른 방으로 갔다가 문제에 휘말릴까, 204호로 올라갔다.
방 앞에 도착한 엘런은 급격한 피곤을 느꼈다.
“오늘 너무 많이 돌아다녔어.”
방구석 폐인에겐 치명적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양의 햇빛을 받았더니 자신의 아기 피부가 고통스러워한다.
엘런은 거의 반쯤 감은 눈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어어……?”
“……?”
그러면서 눈이 마주쳤다.
수건 한 장만 어깨에 걸친 전라의 여자와.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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