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72)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72화(72/354)
#072화. 후유증
엘런은 프로스트 골렘을 해제하고 타다만 조끼를 벗어 던졌다.
어찌나 꽉 쥐었는지 손자국이 다 남은 그림 리퍼는 이만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엘런은 아직까지 바닥에 쓰러져서 거센 숨결만 내뱉는 라제나에게 말했다.
“이제 곧 한 달이 끝나가. 첫 번째 체납금은 기대하고 있을게.”
“…….”
“그리고 궁금한 게 있어. 사실 이 질문을 하고 싶어서 그때, 네 요구를 받아들인 거야.”
라제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 눈동자만 틀어 올려 그와 마주 보았다.
엘런은 살짝 무릎을 굽혀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나랑 죽을 만큼 싸우고 끝에서 네가 얻는 게 뭐야. 명예? 돈? 인망? 네가 원하는 게 뭐냐고.”
엘런은 태어나 라제나 같은 종류의 인간을 처음 보았다.
뭐, 가끔 남에게 호의를 베풀고 거기서 보람을 찾는 인간은 종종 마주한 적이 있다.
물론 동화책에서.
현실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자비의 미소를 입가에 꿰매고 사는 종교인들조차, 신의 구원과 전파의 목적으로 헌금을 받는데 뭣도 아닌 평민 하나가 그럴 순 없었다.
아버지, 게르슐도 전쟁에서 생겨나는 난민들이 찢어지게 불쌍하더라도 쉽사리 손을 내주진 않았다.
한 가문의 가주로서, 제국의 이인자로서, 어떻게든 손익을 따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런은 궁금했다.
뭐가 이 남자의 장작일까.
어떤 장작을 집어넣었기에 그렇게나 활활 타올랐을까.
비록 지금은 타고 남은 재와 같아졌음에도, 라제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했을……. 텐데요……. 저는 사람들의 미소가 좋다고…….”
“지랄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여긴 나와 너밖에 없어. 들을 사람은 없고 내가 어디 가서 떠벌릴 일은 더더욱 없을 거야.”
피식-
작은 웃음소리가 엘런의 귓가에 맺혀왔다.
새벽 풀잎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슬처럼 맑은 웃음이었다.
라제나는 그 웃음 속에서 흘리듯 말했다.
“희귀하다고나 할까요…….”
“희귀?”
“제게 타인의 미소는…… 그런 의미입니다……. 내게도 아직……. 감정이 남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것…….”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궁금증은 풀렸다.
이 남자를 타오르게 했던 장작이 무엇인지.
엘런은 굽혔던 무릎을 폈다.
그리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도 보고 있으시겠죠. 간호실까지 얘를 데려다주세요.”
슈우우욱-!!
라제나의 육신은 푸른 광채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니 근처에 있던 시에나와 카르디아가 이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뭐, 뭐야! 그놈이 사라졌어!”
“관리진이 간호실로 이송한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그, 그렇구나.”
“엘런도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난 딱히.”
어깨가 조금 뻐근하고 살갗이 살짝 익은 것만 빼면 괜찮다.
“그, 그보다 아까 마지막에 나왔던 프로스트 골렘은 뭐였어? 이 마지막 한 수를 위해서 숨겨둔 거야?”
“완성 직전 단계에서 멈춰둔 거지. 내가 쭉 서 있던 바닥은 아직 냉기가 충만해서 마법의 조건이 간신히 충족됐거든.”
“직전 단계에서 멈춘 이유는 멀린 수식을 마지막에 짜 넣기 위해서인가?”
“그래.”
당시에 엘런은 생각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깨달았다.
한 시간 동안 라제나 히로와 프로스트 골렘 한 기체, 총 한 자루를 가지고 싸우면서 엘런은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소모전에 불과하며 그 끝에는 저 불꽃에 산 채로 태워질 자신만이 남겠다고.
물론 기본적인 마력량으로 따지자면, 자 남자보다 우위에 설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실전에선 마력만큼 몸을 떠받치는 체력도 중요하다.
비단 체력은 병기를 다루는 이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라제나에 비하면 엘런의 체력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크레센티아의 축복받은 육체로 어떻게든 버텨왔고 여태까지 싸워왔다.
하지만 그것도 한 시간을 넘어가자 한계에 부딪쳤다.
그래서 엘런은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자신의 둘째 누나인 엘리스가 95%의 성공률을 보유했는데, 자신도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는 마음에서 굴려버린 주사위였다.
“근데도 엄청나게 실패했지.”
“나도 그거 배우고 집에서 열나게 연습했는데 의외로 너무 어렵던데?”
“나 또한 애를 먹긴 했으나 그래도 기뻤느니라. 처음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할 만한 마법이 나온 것 같아서.”
천재 모범생은 순수하게 좋아했지만, 엘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프로스트 골렘의 제어를 멈추고 칼날을 피하면서 계속 시도했던 멀린 수식은 그냥 더럽게 어려웠다.
마치 엄청나게 어려운 수학 문제를 왼손으로 풀면서, 오른손으로는 외국어 독해를 해야 하는 기분이다.
엘런도 몇 번이나 타 죽을 뻔한 위기 끝에야 수식을 완성시켰다.
“몇 번이나 실패했느냐?”
“153번.”
“……?”
“그래도 이거 아니면 못 이겼을 거야. 어려운 만큼 밥값은 확실히 했으니까.”
정말 숙련만 되고 자신의 누나처럼 높은 성공률을 가진다면, 이것만으로도 전투력이 몇 배는 증가할 것이다.
엘런은 오늘 멀린 수식을 성공시켰던 손맛을 ‘정확하게’ 기억하며 생활 구역으로 돌아왔다.
***
새하얀 천장.
익숙지 않은 약초 냄새.
새까만 잿가루가 묻은 듯이 거뭇거뭇해진 피부.
눈을 뜬 라제나는 앞에 보이는 것들을 나열하며 이곳이 어딘지 금방 떠올렸다.
“간호실……인가.”
라제나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머리를 들어 올렸지만, 곧장 실패했다.
……아직도 몸이 쑤시다 못해 칼로 절단당하는 기분이다.
이 금지 마법을 이렇게 오랫동안 쓴 건 처음일뿐더러 이렇게 격하게 쓴 것도 오랜만이었다.
보통은 몇 분 만에 결판이 나기 마련인데.
그 남자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강하고 빈틈 하나 없는 철옹성이었다.
벌컥-
곧이어 간호실의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어머어머어머……!! 라제나 학생! 이게 무슨 일이에요오!!”
고막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하이톤 보이스.
라제나는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그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조막만 한 다리로 우다다다 뛰어온 여자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라제나의 병상 이곳저곳을 산만하게 돌아보았다.
“몸은 좀 어때요? 많이 아픈가요?”
“아니요. 이제 조금 나아졌습니다.”
교수인 키아가 라제나의 병상까지 온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라제나의 담당 교수이기도 했지만, 병상에 누운 학생이 라제나여서가 더 옳은 이유였다.
“휴우우! 정말 다행이네요! 제가 마력 회로에 좋은 약초로 돌로레스 교수님께 필히 부탁드렸거든요! 돌로레스 교수님만큼 손재주가 좋은 분은 학교에 없으니까 금방 회복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보다 엘런 학생과 싸우셨다고요?”
“……예.”
키아는 그의 대답에 천장을 뚫을 것처럼 팡팡 뛰며 양팔을 흔들었다.
“어떠셨어요? 저 너무 궁금해요! 1학년 생활 구역 통제실에선 관리진들이 손에 땀을 쥐고 구경했다는데? 전 김 다 샐까 봐 승패도 안 듣고 바로 달려왔다고요!”
그녀의 기대감이 눈빛에서부터 레이저처럼 뿜어져 나온다.
라제나는 숨을 고르고, 말을 고르다가…… 끝내 대답했다.
“제가 졌습니다. 완벽하게.”
“한 시간을 걸쳐서 싸웠다고 들었는데요……? 뒤집을 가능성조차 없었던 패배였나요?”
“네. 그랬습니다.”
라제나는 살짝 기억을 돌려서 그에게 칼날을 들이대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와의 전투는 뭔가 묘했다.
엘런이란 사람이 기본적인 전투의 틀이나 재능이 있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 묘한 기분의 정체는 공방에 있었다.
공방이란 공격과 방어, 즉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는다는 말인데 여기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가장 강력하게 들었다.
“제가 만약 엘런 학우를 열 번 공격했다면 6번에서 7번 정도는 아주 정확하게 막혔습니다.”
“정확하게요?”
“네. 예지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리란 생각이 들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흐응……. 라제나 학생이 기술 몇 개를 유난히 자주 쓴 게 아닐까요? 센스가 좋은 마법사라면 상대의 동작을 보고 기술을 그 자리에서 예측하기도 하거든요!”
라제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걸 대비해서 제 기술을 섞고 분해하길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도 그의 눈을 피할 순 없더군요.”
“정말 엘런 학생이 그런 실전 전투 센스를 가지고 있다고욧?”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걸 알고 있지만…….”
라제나는 그와 싸우면서 계속해서 느꼈던 단 하나의 생각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제 모든 움직임을 통째로 기억하고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으음……. 굉장히 추상적인 감상이네요?”
“나름 직관적으로 말한 것 같습니다만.”
“뭐, 상관없어요! 으으읏! 엘런 학생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키아는 혼자 들뜨기 시작하다가도 중지와 엄지를 말았다.
그리곤 허공에 딱밤을 때렸다.
따악-!
“으으윽…….”
난데없이 이마에서 느껴진 찰진 타격.
머리가 다 흔들거리는 충격에 라제나는 고개가 떨리는 걸 느꼈다.
“제 몸도 돌보지 않고 금지 마법을 멋대로 써댄 벌이에요!”
“……알고 계셨습니까.”
“네! 전투의 승패는 안 듣고 넘겼어도 라제나 학생이 금지 마법을 쓴 건 똑똑히 보았거든요!”
“죄송합니다.”
키아는 흐흥 하고 웃으며 라제나 쪽으로 몸을 숙였다.
“제게 미안할 건 없어요! 그걸 앞으로도 계속 쓰다간 골로 가게 될 건 라제나 학생이니까요! 저보단 본인의 몸에게 미안해야 하지 않을까요?”
“…….”
“그래도 아직까진 몸이 버텨주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보아하니 그런 금지 마법을 꽤나 오랫동안 써온 것 같은데, 이렇게나 코어가 짱짱한 거 보면! 라제나 학생의 명줄이 무척 긴 것 같으니까요!”
“……감사합니다.”
키아는 ‘헤헷’하고 웃으며 그에게 한 발자국 멀어졌다.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에 무궁무진해요! 우리 아카데미는 그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안전하면서 위력 있는 걸 가르치고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그 금지 마법은 금지!”
그녀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하실 거죠?”
“약속하겠습니다.”
둘은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손의 크기 차이 때문에 거의 주먹을 맞대는 걸로 보이긴 했지만, 이 의미는 깊었다.
“좋아요! 좋아!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라제나 학생은 좋은 주말 보내세용!”
“교수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저는 이미 날아갈 듯이 좋은 주말을 보내고 있는걸요? 사실 다른 교수님들 몰래 두 학생의 전투 영상 녹화본을 입수했거든요! 다른 교수님들에겐 비밀! 아시겠죠?”
키아는 입술 위로 조막만 한 검지를 바짝 붙였다.
“네. 그러겠습니다.”
“그러면 안녕히!”
그녀는 교수실에서 녹화본을 돌려볼 생각에 기대감으로 방방 뛰며 간호실에서 사라졌다.
***
엘런은 디저트로 양손을 무겁게 한 채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젠 몇 번이나 와서 길도 다 외운 이곳은 그를 오두막이 있는 마당으로 인도해주었다.
“오늘은 차 한 잔만 얻어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까 너무 격한 전투를 치르고 왔더니 속을 편안하게 해줄 것이 필요했다.
끼이익-
여전히 잠겨 있지 않고 편안하게 열리는 문.
엘런은 그 너머로 익숙하게 들어갔다.
“여기 약속했던 디저트를…….”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오두막 안에 두 명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엘런을 포함하면 세 명이 되었다.
“……누구신지.”
엘런의 말에 종잡을 수 없는 머리 색의 여자는 피식하고 웃었다.
“꼬마야. 남의 이름을 묻기 전에는 본인의 이름을 먼저 밝히는 게 예의란다?”
“저는 엘런 이안느라고 합니다.”
“그러냐? 잡스러운 이름이네.”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엘런은 극존칭을 써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델의 집에 아무렇게나 있는 것도 그렇고 위압도 그렇고 무엇하나 쉬이 볼 수 없는 여자다.
“글쎄다. 네가 내 이름을 알아서 뭐 하겠냐? 그보다 여긴 왜 왔지?”
“어떻게 왔냐곤 안 물으시네요.”
“얘한테 들었거든. 최근에 골목길의 미로를 뚫어내고 여기까지 온 미친놈이 하나 있다고.”
“그게 접니다.”
“크흐흣.”
정체 모를 여자는 쇠를 가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엘런이 들고 온 디저트에 눈짓했다.
“것보다 그건 뭐냐?”
“델에게 드릴 디저트예요.”
“델?”
“네. 델이요.”
엘런은 본인을 델이라 소개한 엘프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델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정체 모를 여자는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프하하하하핫!! 델이라고? 와아! 너 안 쪽팔리냐?”
“……조용히 해.”
뭔지 이 반응은?
델이란 이름이 뭐길래.
엘런은 그게 어찌 됐든 가져온 디저트를 그녀의 앞에 내려두었다.
“오늘은 약속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차 한 잔만 줄 수 있으실까요?”
“…….”
델은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봉지를 손에 들고, 찻잎이 들어찬 벽면으로 걸어갔다.
그러니 책상에는 정체 모를 여인과 엘런만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엘런을 빤히 바라보다가, 공기 중에 냄새를 맡기도 하고 살짝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여 앉아라.”
“감사합니다.”
엘런은 여자의 앞에 앉게 되었다.
그녀는 씨익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어째 네 애비랑 하나도 안 닮았냐.”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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