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89)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89화(89/354)
#089화. 2차 각성(3)
생활 구역에 찾아온 계절은 여름이었다.
며칠 정돈 가을을 넘볼 수 있을 만큼 쌀쌀한 바람이 불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여름에 베이스를 두었다.
하지만 엘런은 생활 구역의 계절, 적어도 이 마당의 계절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스아아아아아아-
오두막의 지붕 위로 매섭게 맺힌 고드름.
그것들은 동굴에서 천고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종유석처럼 커다랗고 날카로웠다.
잔디가 드문드문 깔려 있던 마당은 마법진이 그려진 자리를 제외하고, 모조리 빙판으로 변해버렸다.
어찌나 투명한 얼음인지 깨끗한 호수의 수면처럼 얼굴마저 비쳐 보였다.
그 시린 겨울과 함께 찾아온 추위가 이곳을 감싸 안는다.
“……추워.”
집 안에서 창문 너머로 엘런과 알렉산드라를 지켜보고 있던 델은, 문틈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한기에 발가락을 오므렸다.
“하아아…….”
그 추위의 한복판, 한겨울의 중앙에서 가부좌를 튼 엘런은 두터운 입김을 쏟아냈다.
코어에서 터질 것처럼 부글거리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던 음기의 방출을 마쳤다.
체내에 한계까지 쌓여있던 음기를 어느 정도 비워내자, 성에의 침식도 잦아든다.
“크으으, 이거 생각보다 빡세네.”
엘런의 뒤에서 보조를 자처한 알렉산드라는 송곳니가 보일 만큼 짙게 웃어 보였다.
과도한 음기를 덜어내서 급한 불을 껐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코어는 위험한 상태였다.
만약 알렉산드라의 가공할 만한 마력이 아니었다면, 코어는 팽창을 거듭하다 풍선처럼 터져버렸을 것이다.
엘런도 그걸 알고 있기에 음기 방출에 더욱 힘을 쏟았다.
쩌저저저저저저적-
마당 주위를 둘러싼 외벽의 겉면으로 빙하 같은 얼음이 둘러진다.
삽시간에 극지대로 변모한 이곳에서, 엘런은 점차 성에의 침식에 빼앗겼던 몸의 통제권을 되찾아나갔다.
‘좋아. 터져 나온 음기 대부분을 걷어냈더니 나름 살 만해졌어.’
몸의 외부를 넘어 체내까지 침략했던 성에는 점차 모습을 감췄다.
‘그럼 이제 2단계로 넘어가자.’
1단계는 폭발 직전인 음기를 풀어줘서 힘을 빼놓는 것이었다.
2단계는 힘 빠진 음기를 완전히 발아래로 둬서 통제하기 위해 바닥부터 새로 다져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밑 작업이 필수적인데…….
형제들의 2차 각성 참관 때 아버지는 말하셨다.
-크레센티아의 2차 각성은 요컨대 붕괴와 재건축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써왔던 낡고 오래된 것들을 부수고, 새로운 힘을 취하는 것이지.
엘런은 그때 게르슐이 했던 말을 전부 기억했다.
그중에서 집중해야 할 단어가 무엇인지도 기억한다.
‘붕괴와 재건축의 반복.’
음기를 빼면서 약해진 지반과 흔들리는 체내의 기관.
그것들을 싸그리 붕괴시키고 파괴시킨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말이다.
쿠쿠쿵-!!!
망치로 귀를 때리는 듯한 격음이 뇌를 강타했다.
엘런은 이가 다 갈릴 만큼 꽈악 깨물었다.
조금이라도 입을 벌리면 속에서부터 고통의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다.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에서 피가 나더라도 입을 다문 엘런은 파괴, 아니 자해를 계속해나갔다.
‘호오, 이 새끼 봐라?’
그의 등 뒤에서 코어의 파괴를 막고 있던 알렉산드라는 제법이라는 듯 입술을 모았다.
마력 회로를 깨부수고 마법에 필요한 기타 기관을 파괴한다는 건 그 고통이 정말 말이 아닐 텐데, 이 꼬마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심지어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묵묵히 해내고 있다.
아무리 고통에 달관했다 하더라도 신음 한 번은 흘릴 법한데, 이 독종은 그것마저 불허했다.
‘심지어 어딜 어떻게 부숴야 가장 잘 부서지는 지도 체계적으로 알고 있어.’
누가 가르친 건진 몰라도 아주 잘 가르쳤다.
하루 종일 이것만 붙잡고 머리에 박은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알렉산드라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던 순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잔가지 회로들을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지?’
이 부분만큼은 몇백 년을 산 알렉산드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에 비하면 반의반의 반도 안 산 병아리가, 어떻게 마력 회로의 커다란 줄기를 제외한 미세 회로마저 통달했단 말인가.
마력 회로는 사람의 혈관처럼 굵은 회로를 제외하더라도, 나무의 잔가지처럼 미세 회로가 사방으로 뻗쳐있다.
그런데 이 미친놈은 그 미세 회로마저 모조리 찾아내 파괴를 일삼았다.
그 모습은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웠으며, 가학적임과 동시에 미학적이었다.
즉, 파괴의 예술이었다.
하지만 이 안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눈치챈 알렉산드라는 팔뚝에 굵은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회로의 모든 위치를 외운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회로를 찾아다닌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내가 맞는 걸 보고 있는 건가?’
비현실적인 게 너무나 현실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모순은 이젠 자신의 눈마저 의심케 했다.
하아-
알렉산드라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주변의 추위로 입김 섞인 한숨은 길게 뻗어 나갔고 이내 사라졌다.
그러나 알렉산드라의 머리로 찾아온 지끈거리는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엘리스 폰 크레센티아만으로도 빡세 죽겠는데, 왜 얘까지 이러냐.’
하여튼 옛날부터 크레센티아는 이게 문제였다.
자기들이야 가문 특유의 천재성으로 재미나게 살면 그만이지만,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박감을 느끼게 하고 자괴감과 열등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스무 살도 안 된 놈에게 이 나이 먹고 느낄 감정은 아니지만, 이 남자의 동기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선례로 엘리스가 있었다.
‘자퇴 사유서가 학생회장인 경우는 난생처음이었다니까.’
천재성의 차이로 너무 커다란 격차에서 벽을 느껴버린 학생들이 줄줄이 자퇴서를 올린 바람에 그걸 막느라 진땀을 뺐다.
이런 건 자퇴 사유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마 이번 년에도……?’
알렉산드라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다시금 엘런의 체내를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이런 극악의 고통에도 익숙해진 걸까.
그는 처음보다 안정적이게 된 심장 박동수만큼, 수월하게 체내를 붕괴해나갔다.
그가 손을 쓰고 지나간 자리는 먼지 한 톨 남아 있지 않을 만큼 깨끗했고, 동시에 황량했다.
재개발이 이뤄지기 전 단계인 무(無)의 평원을 보는 듯하다.
“후우…….”
끝내 엘런의 입에서 여태까지의 모든 노고, 고통, 감내와 인내가 담긴 숨이 흘러나왔다.
인생에서 제일 맛있는 한숨을 내쉰 뒤, 엘런은 세 번째 단계로 돌입했다.
‘세 번째는 재건축이지.’
모든 걸 붕괴한 상태의 몸은 옛적 태아로 돌아간 듯 깨끗하고 순결했다.
그 부서진 것의 잔해마저 부수고 또 부쉈기에 엘런은 체내에서 공허함마저 느꼈다.
이제 그 공허 위로 새것을 쌓아 올린다.
엘런은 코어 안으로 꾹꾹 담아 눌렀던 음기를 조금씩 짜냈다.
이 음기는 마력보다 더 엘런에게 친숙한 것으로, 최근에서야 그 쓸모를 발견했다.
‘알렉산드라 총장님이 그랬지. 크레센티아는 마력 없이 이 음기를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그 말이 이제서야 완전히 이해가 간다.
엘런은 코어에서 짜낸 음기를 방금까지 대차게 부쉈던 회로가 있던 자리들로 천천히 옮겼다.
“야, 야! 너 지금 뭔 짓을……!!”
그러자 뒤에 있던 알렉산드라가 되려 대경실색하며 양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파충류 같은 동공이 한계까지 축소될 정도로 엘런이 하는 짓은 상식을 한참 넘어섰다.
알렉산드라는 다시금 정신을 붙잡고, 엘런의 미친 짓을 면밀히 관찰했다.
“음기로……. 마력 회로를 만들고 있어.”
그녀의 말대로였다.
엘런은 본래 마력 회로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음기를 대체하며 생각했다.
‘크레센티아가 음기로 재주 좋게 뭔가를 만들 수 있다면 마력 회로도 가능해.’
물론 본래라면 아예 말도 안 되는 짓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엘런에겐 가능의 범주에 선 행동이다.
왜냐면 그는 다른 크레센티아보다 훨씬 강력하고 방대한 음기를 타고났을 뿐 아니라, 마력마저 빙속성과 동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음기로 만든 회로를 지나다닐 마력마저 얼어붙어 있기에 이보다 더 상성이 좋을 순 없다.
‘할 수 있어.’
엘런은 먼저 굵은 회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치 아주 차가운 찰흙을 손에 쥐고 마음껏 모양을 만들어 가는 느낌이다.
그의 의지대로 자신을 늘리고 줄이고 넓히던 음기는 순조롭게 회로로 변신해나갔다.
하지만 너무 차가운 것은 그것대로 뻣뻣한 법.
엘런은 음기를 최대한 몸에 맞게 구부려 보려 했지만, 이것들은 철근처럼 단단했다.
‘젠장.’
엘런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음기의 컨트롤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음기에게 유연함이 생기진 않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마력을 조금 흘려보냈다.
저 음기 문제를 자신이 도와줄 수는 없다.
다만 가지고 있으면서 쓰지 않는 보물의 존재를 상기시켜 줄 순 있었다.
갑자기 체내로 들어온 이질적인 마력에 엘런은 퍼뜩 놀랐지만, 그것이 코어의 어느 한 부분을 간질이는 걸 톡톡히 느꼈다.
알렉산드라가 자신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
엘런은 그 부분을 가만히 보다가,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래……! 용혈의 잔재가 있었지!’
용혈의 잔재.
엘런이 미처 흡수하지 못한 용혈의 찌꺼기로, 지금까지 엘런의 코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존재였다.
‘용혈은 기본적으로 양의 성질을 품고 있어. 이것만 잘 이용한다면 음기로 유형화시킨 회로를 구부릴 수 있을지도 몰라.’
본래 철은 자연적으로 구부러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장장이들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눈이 부실 만큼 뜨거운 화염을 사용한다.
철은 한계치까지 열을 받으면 유연해져서 보다 모양을 바꾸기 쉬워진다.
음기로 만든 마력 회로도 분명 그럴 것이다.
‘해보자.’
엘런은 당장 코어 속에 꼭꼭 숨어 있는 용혈의 잔재를 모두 찾아내 한 자리로 집중시켰다.
과연 음기 속에서도 본인의 열을 잃지 않고 펄펄 끓어오르고 있다.
이런 차가움 속에서 이 정도의 뜨거움은 이질적이었지만, 애초에 엘런의 몸부터가 용혈의 양기와 태생적 음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엘런은 용혈의 잔재를 음기 회로까지 가져갔다.
사아아아아아앗-
잔재가 내뿜는 열이 햇빛처럼 음기 회로에 닿기 시작한다.
엘런은 회로가 조금 흐물흐물해지는 느낌이 들 때, 얼른 형태 변환을 이어나갔다.
‘되, 된다!’
엘런은 할 수만 있다면 환호라도 하고 싶은 심정 속에서, 회로를 조작했다.
‘여기는 이렇게 뽑고, 여기는 조금 꼬자.’
본래라면 마력 회로가 재건축되는 과정에서 마력은 일전에 모습을 기억하고, 자동으로 부서지기 이전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렇게 더 깨끗한 회로로 재탄생하는 것인데, 엘런은 마력이 아닌 음기를 움직이고 있기에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순전히 자신의 기억력에 의존해서 굵은 회로부터 미세 회로까지 전부 구현해낸다.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은 지금 알렉산드라의 감각 아래에서 벌어졌다.
‘허허헛, 이거 완전 미친놈이잖아?’
괴물의 아들은 그 역시 괴물이라는 건가.
‘게르슐. 대체 이 세상에 뭘 출연시킨 거냐.’
알렉산드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코앞에 있는 천재의 두뇌에 일련 두려움까지 느꼈다.
천재란 족속들이 세상의 규칙과 법칙, 상식과 이론을 부수는 건 많이 보았지만, 이놈만큼은 규격 외다.
눈앞에 천재는 이론을 부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새것으로 재정립하며 그것을 힘으로 삼았다.
본래 마력이 주된 성질로 있던 회로가 크레센티아의 음기로 대체되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지……?’
그건 알렉산드라도 알 수 없었다.
이건 마법이 생겨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엘런은 보여주려 했다.
이왕 회로까지 음기로 바꾼 거, 얼마나 더 막 나갈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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