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son Billiette RAW novel - Chapter (88)
메종 빌리에트-88화(88/90)
제88화
미치겠네.
유치한 말에 어이가 없고 곤혹스러운데 심장은 또 빨리 뛴다.
하도 시끄럽고 요란하게 쿵쾅거려서 눈길을 둘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서…… 어서 문 열어, 미하일.”
“아, 왜요. 좀 더 들어 봅시다. 저 절절한 사랑 고백. 재미있는데요.”
“미하일!”
제발.
내 호소에 미하일이 히죽거리며 문을 열었다.
손님들이 들어오자마자 나는 헬리오스를 피해 몇 걸음 앞서 나갔다.
‘아, 어쩌지.’
그는 그런 나를 잡지 않았지만 뒤통수에 웃음기 어린 시선이 진하게 느껴졌다.
‘아득해지게 하네.’
여태까지는 다가가는 것도 아니었다는 듯, 헬리오스는 끝없이 내게 닿으려 했다.
나는 그런 그를 밀어내지 않았고.
부끄러워서 피하게 되긴 하지만 그만하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똑같은 감정을 돌려주진 못하더라도, 그래도.
이렇게 있다 보면 어느새 그에게 스며 들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들었다.
* * *
반짝 매장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운영된다.
정말 ‘반짝’이란 의미에 딱 알맞도록.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작열하는 시간을 지나 어느덧 오후 3시.
마무리까지 딱 한 시간 남았을 즈음, 한 무리의 손님들 사이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황태자 전하의 마차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가 반짝 매장이로군.”
“기예르모, 어서 와!”
황태자가 등장했단 소리에 꽃 아치에 기대어 서 있던 아빠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헬리오스는 내 곁에 다가와 섰는데, 은근히 기예르모를 견제하려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덕분에 장사가 굉장히 잘돼. 홍보도 잘되고 있는 것 같고.”
“다행이네.”
황태자의 등장은 기다리다 지친 손님들에게 커다란 활력을 주었다.
다시금 흥분해서 떠드는 손님들을 흘긋 보던 기예르모가 아빠를 향해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그렇군.”
“어머니께서 뵙고자 하시는데…… 혹 지금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다면.”
아빠는 정말이지 무심한 표정이었다.
귀찮아 죽겠는데 왜 자꾸 말을 거냐는 듯한 태도였으나 기예르모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중했다.
“예상하시는 그 일로 인해 급히 논의하고 싶은 게 있다 하셨습니다.”
“아아.”
아빠의 눈썹이 크게 꿈틀했다.
저건 아주, 아주 거슬리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 나오는 건데.
“아빠, 가 보셔야 하면 다녀오세요. 한 시간 정도만 남았잖아요.”
물론 아빠가 ‘가 봐야 만하는’ 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황후의 초청을 무시하는 건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황후가 지금 기예르모를 보내서 말을 전달한 거겠지.’
억지로 오게 하려고.
아빠는 가기 싫어 보였지만 이미 기예르모의 말을 모두가 들었다.
“전 괜찮아요. 헬리오스도 있잖아요.”
“……그래.”
대답을 하시기 전의 침묵에 탐탁지 않다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아빠는 결국 걸음을 뗐다.
그러고는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사라져 버리셨는데, 그러자마자 기예르모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렇게 가실 거면 저도 좀 데려가 주시지…….”
아빠가 감쪽같이 사라지자 손님들 사이에서 아쉬움의 탄성과 놀라움의 감탄이 동시에 터졌다.
내일 다시 오자며 줄을 이탈하려는 모습도 보였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싶었다.
어차피 향수도 거의 다 팔렸고 말이야.
“그럼 나도 이만 가 봐야겠네.”
“다음에 다시 봐.”
기예르모는 어딘가 바빠 보였다.
뭔가 급해 보이기도 하고, 생각이 많은 듯도 보이고.
황후가 무슨 일로 아빠를 찾는지는 몰라도 딱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이긴 했다.
“빌리, 오늘 다 끝나면 근처에서 술이라도 한잔할래? 괜찮은 곳이 있다고 들었어.”
“음, 좋긴 한데…… 좀 걷고 싶어서.”
“그럼 강변을 걷자. 맥주 한 잔씩 들고.”
그것도 나쁘지 않지.
모든 삶의 나를 오래 봐 와서 그런가, 헬리오스는 내가 뭘 좋아할지를 잘 알았다.
그러니 마음이 안 갈 수가 없지.
“꺄아아악!!!”
“저기 봐!!! 어떡해!!!”
“브, 블레스터 경이야!”
슬슬 마무리를 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드높은 비명이 들려와 나는 순간적으로 귀를 막아야만 했다.
대체 누구기에 저렇게 난리인가 싶었는데,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훤칠한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블레인?”
현재는 에드윈 블레스터.
과거에는 블레인 사쉐.
잊고 싶은 기억 속의 형제가 나타났다.
정말이지 느닷없는 불청객이었다.
“빌리에트.”
그런데 이 불청객이 심지어 나를 향해 애틋한 눈을 하지 않은가.
너무 싫어서 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과거의 귀찮은 편린이 여전히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구나.
‘여긴 대체 왜 찾아온 건지.’
이 나라의 사교계에 가명으로 어떻게 스며들어 있었던 건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아니, 아무것도 안 궁금하니까 이대로 돌아서서 꺼져 줬으면.
“도와주러 왔어.”
“뭘?”
그러나…… 아까 아빠 때도 그랬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다.
블레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치미는 짜증을 꾹 누른 나는 화사하게 웃었다.
모두를 홀릴 수 있을 만큼 밝게.
만개한 장미처럼 화려하게.
내가 방금 인상을 쓴 것 따위는 장미의 가시라 생각할 수 있도록.
“향수 팔 거라며. 내가 이래 봬도 인지도가 높거든. 남성용 향수, 내가 팔아 줄게.”
“…….”
“뭐, 고마워하진 않아도 돼. 그래도 반가워는 해 줘야지.”
블레인은 참 어릴 때 얼굴 그대로 자라났다.
우유가 묻어날 것처럼 말간 얼굴.
여우 같은 인상과 적갈색 머리칼까지.
조금 달라진 거라면 최신 유행을 따르는 것을 넘어서 아예 패션을 주도하는 듯한 차림 정도일까.
헬리오스는 정석적으로 깔끔하게 입는 편이고, 기예르모는 황태자이니 제복이나 예복을 주로 입는다.
아몬은…… 저번에 보니 여전히 검은 옷이더라.
한데 블레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현란했다.
근데 그게 또 잘 어울려서 어이가 없고.
“난 너무 보고 싶었는데. 너도 나 보고 싶었잖아.”
“구질구질한 전 남친 같은 대사 하지 마.”
웃으며 이를 악문 나는 블레인에게 척척 걸어가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게 웬 행패니?”
“보고 싶었어. 왜 넌 내가 보고 싶지 않았단 것처럼 말해?”
“실제로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너도 아몬도 지긋지긋하단다.”
갑자기 나타나고 제멋대로 휘젓지.
나를 여전히 인형으로 보고 있기에 가능한 태도다.
지금도 보라.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지 않나.
“너 귀찮아. 내 소중한 업장에서 꺼져.”
“……빌리에트.”
“이름도 부르지 말렴. 모르는 사이 하고 싶으니까. 네 정체가 다 까발려지기 싫거든 모른 척하자, 우리.”
누구도 듣지 못하게 조용히 말한 나는 이내 생긋 웃으며 블레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이 정도면 내가 거부하고 있다는 건 알아들을 것 같은데.
똑똑하긴 하니까.
“나는…… 나는 네가……!”
하지만 블레인은 도무지 나가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줄도 서지 않고 막무가내로 들어와서는 사연 있는 남자처럼 행동하니 사람들의 눈빛에 흥미가 어리는 건 너무 당연한 수순이다.
나라도 재미있게 봤을 것 같으니까.
“나는 네가! 나를 그리워할 거라 여겼어. 우리 그때 좋았었잖아…….”
아니, 이 새끼가?
이건 사연도 그냥 사연이 아니라 나를 쓰레기로 만드는 발언이잖아!
굉장히 무궁무진한 상상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말투에 나는 뒤 목을 잡았다.
한데 블레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눈물마저 뚝뚝 흘렸다.
하나도 예쁘지가 않았다.
“옛날로 돌아가자, 빌리에트.”
“어린 시절로, 돌아가자는 거겠지. 네 말은.”
굉장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더 두면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또렷하게 정정했다.
‘블레인의 전 애인으로 소문나는 거, 절대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