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son Billiette RAW novel - Chapter (90)
메종 빌리에트-90화(90/90)
제90화
제9장. 메종 빌리에트
나는 네게 결핍이 있는 게 좋았다.
뜯겨나간 상처를 어루만지며 영영 여기에 딱지가 앉지 않길 바랐어.
* * *
“황후가 그리 말하더구나.”
“네……?”
반짝 매장의 마지막 날까지 끝나고, 비로소 푹 쉴 수 있는 날.
나는 아주 오랜만에 아빠가 만들어 주신 양갈비 스테이크를 먹다가 체할 뻔했다.
뭐, 어디에 보낸다고?
나랑 기예르모를?
“섬에 가면 둘이서 아주 진한 우정이나 다지고 올 것 같은데요…….”
“네 의사에 반하는 일은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걱정 말거라.”
“그거야 그런데…… 황당하네요.”
권력으로 뇌가 절여지면 저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걸까?
너무 일반적이지 않아서 할 말이 없다.
저런 어머니를 견디고 있는 기예르모도 좀 대단하고.
아니, 그렇잖아.
적당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들어주지.
이건 나만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기예르모의 의견도 들어 봐야 한다.
‘헬리오스한텐 굳이 말하지 말아야지. 어휴.’
말 같지 않은 소리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싹 지워 낸 나는 손거울을 보며 화장을 확인했다.
옷이야 마법의 문이 입혀 주지만 화장은 내가 해야 한다.
평소에는 립스틱조차 바르지 않았는데 오늘은 괜히 아침부터 바르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헬리오스가 올 거거든.
양치하고 나면 어차피 다시 바를 건데 뭐 하러 아침 식사부터 발랐느냐고 묻는다면…… 설레서?
반짝 매장 이후로 헬리오스에 대한 감정이 확실히 더 진전되었다.
예전엔 안 보면 ‘잘 지내나?’ 싶었다면 지금은 ‘보고 싶네’가 됐으니까.
“그런 것, 바르지 않아도 충분히 어여쁘다.”
아빠가 짧게 헛기침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아빠에게 다가가 뒤에서 꼭 껴안았다.
“백화점을 열 자리, 잘 보고 올게요.”
“……그래.”
반짝 매장의 인기를 통해 나는 확신했다.
향수는 잘 팔린다.
이대로 향수 전문 매장을 내도 분명 크게 성공할 테지.
여기저기 분점을 내기만 해도 매출은 상당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수많은 상점이 한 건물 안에 위치하면 어떨까.’
거리에 늘어서 있는 것 말고.
그러면 날씨와 상관없이, 몸이 불편한 사람도,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도, 멀리서 올라와서 피곤한 사람도 다 즐겁게 쇼핑할 수 있잖아?
‘사실 한 매장을 갈 때마다 마차를 타고, 내리고 하는 거 굉장히 번거롭거든.’
드레스를 입어 본 사람은 알 거다.
그게 얼마나 귀찮은지.
공용 화장실에 가는 건 또 어떻고?
“보고 싶었어, 빌리.”
“고작 하루 만에?”
“하루가 열흘 같아서.”
양치를 하고 잠시 기다리자 헬리오스가 왔다.
마법을 쓸 줄 아는 걸 이제 더는 감추지 않는 그는 마차도 없이 현관 앞에 나타나곤 했다.
‘물론 다 아빠가 허락을 한 거니까 그것도 가능한 거지.’
헬리오스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허락을 해 주신다니까.
“괜찮은 땅이 있어야 할 텐데.”
“몇 층 정도 되는 건물을 생각 중이야?”
“음…… 4층 정도면 좋겠어.”
“높네.”
“응.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리까지 보였으면 싶거든. 그리고 어디서 봐도 내 백화점이 우뚝 서서 보였으면 싶어.”
그 건물을 짓는 건 남부의 건축가가 맡을 것이다. 인부 또한 남부인들로 쓸 것이고.
그렇게 일자리를 만들어야지.
이미 미하일이 입점할 가게에 대해 남부 귀족계에 공문을 돌려 두었다.
낮은 수수료로 선입점할 수 있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은 받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직 최고만을 넣어야 하니까.
“네 개의 층이 물건으로 가득 찬다니. 신기한 발상이야.”
“그치?”
내 백화점의 예상 구조는 이러했다.
1층의 외부에는 넓은 테라스를 내고, 카페를 들여야지.
수도에서 유명한 카페의 분점을 요청해 볼 계획이었다.
그리고 건물 1층엔 향수를 비롯해 향기가 나는 여러 제품들.
즉, <메종 빌리에트> 브랜드가 단독으로 사용한다.
스무 가지 정도의 향수 라인업을 상시 판매할뿐더러 내 향수와 같은 향기를 띠는 핸드크림도 팔아 볼 요량이었다.
가격을 향수보다 훨씬 낮추면 홍보에도 도움이 되고, 향수 값이 부담스러운 소비층까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층에는 여러 부티크가 작게 입점될 텐데 신발이든 드레스든 외투든 그 종류가 다양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3층은…… 한 가게마다 공간을 넉넉히 줘서 장인의 예술품을 팔 것이다.
한 점에 어마어마한 가격인 도자기라거나 그림 같은 거 말이야.
그래서 3층에서는 경매나 파티도 열 생각이었다.
“4층엔 그럼 뭐가 들어가?”
“호텔로 운영할 거야.”
“호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어느새 깍지를 끼고 있는 손을 흘끔 보다가 안 본 척 앞을 응시했다.
“외국에서 온 손님이 편안하게 쇼핑을 즐기고 숙박까지 함께 처리했으면 좋겠거든. 그럼 아무래도 돈을 더 많이 쓸 테니까.”
즉, 따지자면 대부분의 평민은 2층까지만 가게 되는 것이긴 했다.
3, 4층은 귀족의 전유물이겠지.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좀 생겨. 입구가 같아서…….”
“응.”
“잘못하다가 귀족과 평민 사이에 싸움이라도 일어날까 봐.”
“그럼 입구가 다른 게 낫겠네.”
헬리오스의 말에 곰곰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대놓고 다르면 안 돼.”
“그럼 3층인 장인의 갤러리로 직행하는 길이 따로 하나 더 있으면 좋겠네.”
“응. 도난 방지 차원에서도 그러면 좋긴 해.”
하지만 계단을 어떻게 설치해야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거기다가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있지, 장인들을 설득하는 게 좀 골치일 것 같기는 해.”
“장인이라…… 원하는 사람이 있어?”
“응, 몇 명 정도. 근데 귀족들이 찾아가서 엎드려 빌어야 겨우 작품을 팔아 주는 사람들이어서…… 과연 될까 모르겠어.”
이건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될지 안 될지야 부딪혀 봐야 아는 거니까, 하나하나 차근차근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헬리오스가 슬그머니 손가락을 어루만져 왔다.
“혼자 고민하지 마, 빌리. 같이 고민하자.”
“아.”
“같이 고민할 수 있게 해 줘. 응?”
저렇게 예쁘게 말하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할까.
사르르 녹아서 뭐든 된다고 해 버리지.
“그런데 방금 4층이라고 했잖아, 빌리.”
“으응.”
“그걸 다 걸어 다니려면 손님들이 많이 지치지 않을까?”
“그것도 그래.”
특히 꼭대기에 호텔을 올린다면 짐을 이동하는 게 아주 고될 것이다.
손님이 직접 하는 게 아니라 하인들이 할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칠 수도 있고. 그렇겠지.
“문득 생각이 났는데, 각 층을 이동하는 계단이 스스로 움직이면 어떨까. 마도 공학으로 가능할 것 같아.”
“스스로 움직이는 계단?”
“응.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층과 층을 이동시켜 주는 거야.”
그건 너무나 획기적인 발상이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건물 자체가 아주 특별해질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 기술을…… 구현할 수 있어?”
“해 볼게.”
헬리오스가 나를 보며 다정하게 웃었다.
“방금 막 떠오른 생각이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믿어 줘.”
“당연히 믿어.”
내 대답에 헬리오스가 더할 나위 없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눈이 부셔서 바로 보기도 힘들 정도로 기뻐 보인달까.
“넌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구나.”
그의 눈빛, 몸짓, 태도.
그 모든 것에 사랑이 묻어 있다.
억누르지 못하는 사랑이 마구 터져 나와서 내게 와르르 쏟아지는 기분이, 뭐랄까.
참 간지러웠다.
“당연하지, 빌리. 게다가 이렇게 너의 꿈을 같이 논의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어.”
그런가?
이게 그렇게까지 기쁠 일인가.
하긴, 지금 그는 내가 꿈에서 보았던 행복한 시절보다도 더 행복해 보였다.
‘뽀뽀하고 싶게.’
어?
뭐지.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덧 나는 헬리오스에게 홀린 듯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의 붉은 입술이 눈에 밟힌다.
몸을 바로 세우고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은데 왜 내 손은 그의 뒷머리를 당기고 있는 건지.
어째서 헬리오스의 팔이 내 허리를 감싸고…….
“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