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01
주먹을 쓰는 무공을 권법(拳法)이라고 한다. 다양한 초식을 연마하고, 상대와의 비무를 통해 응용법을 익히며 강해지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다만 그 수만도 수백 종에 달하기에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익힌다고는 할 수없다.
하지만 기초는 동일하다.
나무나 돌, 혹은 잔뜩 데운 모래를 때려 굳은살이 배이게 하고, 종내에는 쇠보다 더 강하게 단련해 파괴력을 키운다.
그러나 고수의 경지에 들면 따로 단련할 필요가 없다.
바로 기의 쓰임 때문이다.
기운을 머금은 주먹은 철판을 우그러뜨리고 바위를 부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지가 깊어져 강기를 깨닫고 나면, 그 주먹이 보검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지금의 종리강처럼.
후아아악!
“……!”
힘차게 휘둘러진 주먹을, 능운비가 가까스로 고개를 꺾어 피했다.
하지만 강기가 어디 주먹에만 머무를까?
스치고 지나간 강기에 볼 어림이 찢어질듯 당겨졌다.
미친! 뭐가 이리 빨라?
충분히 보고 피했음에도 그 여파에 얼굴이 찢어질 뻔했고, 피하는 것이 급급해 몸조차 바로 세우지 못했다.
콰아아앙!
“……?!”
그리고 이 파괴력은 대체 뭐란 말인가?
능운비가 피해 낸 주먹에 담겨 있던 권강이 그나마 남아 있던 객점의 반대편 벽면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놈, 제법 움직임이 좋구나.”
“……”
헛손질을 해 버린 종리강이 능운비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오해 마라.
“이건 순전히 운……”
다급히 오해를 풀어 보려 했지만, 이미 이 격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 빠르고, 더 화려한 변화를 만들면서.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달려드는 종리강의 모습에, 능운비가 얼굴을 일그러 뜨리며 바닥을 밟았다.
팡!
절체절명의 순간에 펼쳐진 삼무보.
내력의 일 할을 때려 박은 터라 가까스로 두 번째 공격을 피했지만, 날아오는 주먹이 너무 많았다.
젠장할!
급히 마기를 끌어 올린 능운비의 동공이 확 하고 커졌다.
통찰의 눈, 관시.
다 피할 수 없다면 골라야만 한다.
무거운 놈은 어떻게든 피하고, 가벼운 놈에게 몸을 내어 준다.
그리고…….
쩌어어엉!
둔탁한 충격이 몸에 와 닿는 순간, 능운비의 손이 허리춤에 닿았다 떨어졌다.
슈우욱!
충격에 떠밀리는 능운비와 종리강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새하얀 빛살.
“크으윽”
어마어마한 충격이 팔뚝을 부수고 가슴까지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한참이나 밀려 나간 끝에 겨우 몸을 바로잡은 능운비의 손에는 비연검이 들려 있었다.
스륵, 뚝뚝.
극점에 맺혔던 핏방울 하나가 검신을 타고 흘렀다.
세 번째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폐허 속에 우뚝 선 종리강이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찢어진 옷자락. 그 틈새로 피가 배어나오는 작은 생채기 하나가 보였다.
“초, 총타주님!”
“……”
탁추가 놀라서 그를 불렀지만, 종리강은 말없이 가슴의 상처를 손으로 닦아 낼 뿐이었다.
손끝에 묻은 피.
그 양도 미미해서, 상처에 흐르던 피는 금세 멎어 버렸다.
하지만 붉어진 손가락 끝을 응시하던 종리강은 충혈된 눈깔을 희번덕거렸다.
“제법이구나. 핏덩이 주제에 내 몸에 상처를 남기다니.”
“아, 이번엔 운, 아니 실수로……”
당황한 능운비가 재빨리 항변해 보지만, 종리강은 귀를 닫은 듯 무시로 일관하며 악귀처럼 웃기 시작했다.
“과연, 아직 여물지 않았다고 해도 마교의 제자라 이건가. 그럼 나도……이제부터 전력을 다해 주마.”
“……”
아깐 봐준 거냐?
전신에 강기를 둘둘 감고 그랬잖아!
그리 소리치고 싶은 능운비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방에 자욱이 깔려 있던 먼지가 회오리처럼 움직여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종리강을 향해서.
동시에, 온몸을 짓눌러 오던 압력이 단숨에 배가되었다.
“탁추.”
“예!”
종리강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손을 뻗자, 탁추가 무언가를 휙 하고 던졌다.
까드득, 과콱!
작은 봉인가 싶었는데, 종리강의 손에 잡힌 순간 쭉 하고 길어진다.
봉(棒)? 곤(棍)?
뭔 상관인가? 어차피 생긴 게 똑같은 무긴데.
문제는 그 봉인지 곤인지 모를 쇠몽등이를 든 순간, 종리강의 존재감이 엄청나게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거대한 산악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저 들고 있을 뿐인데, 그 손에 들려 있는 곤이 자신을 짓눌러 오는 것만 같았다.
아, 고작 검 하나 잘못 놀려서 이게 무슨 꼬라지란 말인가?
듣기로, 녹림왕은 소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곤법을 구사한다고 하지 않던가?
“전력을 다해…… 사지를 찢어 주마.”
“……”
괴물이 각성해 버렸다.
하지 마! 전력 그딴 거 하지 말라고! 하지만 마음속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쑤아아앙!
한 걸음을 내디디며 곧게 찔러 온 곤의 끝자락이, 쭉 하고 늘어나듯이 쏘아져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기까지 잔뜩 머금고.
콰지직! 꽈아앙!
삼무보를 통해 가까스로 피해 낸 능운비가 근처에 있던 향이를 쳐다봤다.
이제 믿을 건 너밖에 없다.
“향아……”
불끈.
“……”
도와 달라 말하려는 순간, 향이가 이를 악문 채 움켜쥔 주먹을 들어 보이며 그를 응원했다.
염병할…… 내가 뭐라고 나댔단 말인가?
그냥 도와 달라고 할걸. 녹림왕은 니가 상대하라고 할걸…….
그래, 까짓거 한다, 해!
이미 한 번 뒈져 봤는데, 두려울 게 뭐냐!
“하압!”
결국 도움받기를 포기한 능운비가 마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녹림왕 종리강.
니가 강기의 고수면 다야? 내가 쉽게 당해 줄 것 같아?
너 정도는 이미 척월린으로 살 때 숱하게 경험해 봤다.
화산의 청진!
무당의 현명!
소림의 정화!
황실의…… 그 새낀 빼자.
남자도 여자도 아닌 새끼.
어쨌든 내가 그 강기의 고수들과 전부 싸워 본 사람이다, 이거야.
이기진 못했지만, 모가지가 날아가지 않고 잘 살아남았다고!
그러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척월린의 삼무보와 삼전검, 그에 더해 능운비가 익힌 월식과 통찰의 눈, 아직 완벽하게 깨닫지 못했으니 듣는건 배고!
뒈질 때 뒈지더라도, 내가 아는 걸 전부 끌어내서 쏟아부어 주마!
“……!”
그 순간, 세찬 공격을 퍼부어 대던 종리강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한순간 능운비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쉬이익!
픽 하고 꺼져 버린 신형이 측면에서 나타났고, 회심의 일장이 옆구리를 노려 왔다.
월식, 침삭!
후우웅! 콰아앙!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놀란 종리강이 다급히 손을 휘둘러 공격을 막았다.
픽!
“……!?”
한데 옆구리를 노렸던 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 설마 유인을?
놀라 눈을 부릅떴으나 능운비의 종적을 잡아내지 못한 종리강이 다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화아아악!
그 순간 하늘에서 수백 개의 검격이 그물처럼 쏟아졌다.
월식, 월광살무!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종리강의 곤이 커다란 원을 그렸다.
“……후우.”
나지막이 뱉어 낸 숨.
양발이 지면을 힘껏 짓누름과 동시에 종리강의 곤이 힘차게 뻗어 나왔다.
팍, 파파파팍!
빛줄기가 월광살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부서진 검격이 아스라이 흩어져 빛의 조각처럼 뿌러졌다.
하지만 검격의 끝자락에, 능운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놈은?
능운비의 종적을 찾던 종리강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내렸다.
자신의 가슴팍 앞.
새하얀 웃음을 머금은 능운비가 쌍장을 올려 치고 있었다.
“이거나 먹어라!”
월식, 천파!
가공할 힘을 머금고 파고든 쌍장에, 종리강이 다급히 곤을 던져 버리곤 두손을 뻗었다.
콰아아앙!
하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방어였다.
완전히 뻗지 못한 두 손에는 힘이 실리지 못했고, 능운비가 뿜어 낸 천파의 충격에 몸이 휘청이며 떠밀렸다.
“크으윽!”
뒷걸음질하며 물러난 종리강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깡, 까라랑.
던졌던 곤이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겨우 몸을 바로 세운 종리강이 찡그린 얼굴로 전면을 쳐다봤다.
“우에엑!”
“……”
바닥에 엎드려 피를 게워 내는 능운비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공격이 빨랐다고는 하지만, 종리강은 강기의 고수였다. 내공의 순후함이 다른지라, 뒤늦게 막았다고 해도 그 충격을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작 약관도 안 된 어린놈에게 자신이 밀릴 줄이야.
입 안에 비릿한 쇠 맛을 느낀 종리강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까드득.
거칠게 이를 갈아 댄 종리강이 능운비를 매섭게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놈…… 제법이구나. 설마하니 내게 내상을 입힐 줄이야.”
“……씨부랄, 겨우 내상이냐? 뒈져버릴 줄알았는데.”
“꿈이 크구나!”
파앙!
화가 잔뜩 치민 종리강이 높이 솟구치며 손을 쭉 뻗자, 땅에 떨어져 있던 곤이 빨려 들어가듯 그 손에 잡혔다.
“하아압!”
곤의 끝자락을 잡고 높이 쳐든 종리강이 이내 손을 힘차게 휘둘렀다.
콰콰콰콰!
부러질 듯 휘어진 곤이 능운비의 머리를 쪼개 놓을 듯이 떨어져 내렸다.
“염병할 산적 새끼…… 쉴 틈을 안주네!”
입가에 묻은 검은 피를 닦아 낸 능운비가 비연검을 허리춤으로 당겼다.
강기의 고수와 맞부딪혀 좋을 것은없다.
쿵!
능운비가 지면을 힘껏 밟으며 종리강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콰아아앙!
떨어진 곤이 지면을 때리자, 땅이 쭉하고 찢어져 나갔다.
물러났던 능운비가 곧바로 종리강을 향해 파고들며 비연검을 빠르게 뽑아냈다.
향이가 말했던 것처럼 검은 가볍게 잡고 흐름은 빠르게.
삼전검(三戰劍), 섬격(閃擊).
쉬아아악!
새하얀 빛줄기가 쏘아져 나와 종리강의 측면을 노렸다.
“흥!”
날아오는 검격은 눈으로 좇기 힘들만큼 빨랐으나, 종리강은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곤을 휘둘렀다.
깡!
섬격은 막혔다.
하지만 튕겨 나간 검이 만들어 낸 것은 무수히 많은 궤적이었다.
삼전검, 난격(亂擊).
쉬이이익!
섬의 빠름에 어지러움이 더해지자, 종리강의 시야가 검격으로 가득 채워졌다.
하지만 종리강의 입가에 떠오른 것은 조소였다.
“후웁!”
힘껏 들이마신 숨과 함께 그 손에 들린 곤이 풍차처럼 휘둘러졌다.
지금의 종리강을 곤법의 고수로 불리게 한 낭아곤법(狼牙棍法).
마구잡이식 몰아치기였으나, 그의 곤법은 능운비의 검식을 모조리 물어뜯고 부수었다.
“놈! 발악은 이게 전부냐!”
설마 전부겠냐?
푸학!
“……?”
검과 곤의 부딪힘이 끝날 시점, 어느새 능운비가 종리강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하압!”
그리고 내력을 모조리 쏟아부은 비연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는 종리강의 허리를 향해 휘둘렀다.
삼전검, 파격(破擊)!
“놈! 고작 이런 가벼운 검이 통할 줄 알았더냐!”
종리강이 능운비의 검격이 다가오는 방향 쪽 땅에 곤을 있는 힘껏 쑤셔 박았다.
떠어엉!
쇠붙이와 쇠붙이, 강기와 의기의 내력이 부딪혔다.
누가 봐도 능운비의 열세다. 안 그래도 무리하게 내력을 사용했기에 속이 뒤집히는 증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종리강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까득, 까드드득.
곤이 활대처럼 휘어졌고, 종리강의 발이 기다란 족적을 만들어 내며 미끄러졌다.
“이, 이놈이!”
“……”
힘 싸움에서 져 버린 종리강의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능운비가 메스꺼움을 참으며 씩 웃었다.
그래, 강기의 경지에 오른 놈들이 이걸 보면 다들 놀라더라.
파격은 한 점에 모든 힘을 집중해 때리는 검이다.
와중에 과거와는 달리 마령 신단으로 얻은 내력이 세맥 곳곳까지 퍼져 있다.
비록 의기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싸우다가 내력 달려서 뒈지진 않는단 뜻이지!
“하압!”
“……!”
능운비가 온 힘을 다해 검을 밀었고, 종리강이 땅에서 곤을 뽑아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부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휘었던 곤이 바로잡히는 과정에서 종리강의 몸이 휘청거렸다.
능운비는 애초부터 그걸 노리고 있었다.
설마하니 강기의 고수가 자신에게 당하기야 할까?
하지만 적어도 빈틈 정도는 만들 수 있다.
지금의 휘청임이 바로 그 빈틈이다.
월식…… 침삭! 천파! 누월! 운파! 월광천하! 월광살무! 연월참! 낙월참파!
“하아아아압!”
주변의 피해고 나발이고!
나 내공 많거든?
그러니까 뒤질 때까지 쏟아부어 주마, 이 산적 두목 쉐끼야!
능운비는 종리강이 보인 그 작고 비좁은 틈을 향해 자신이 아는 모든 무공을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