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1
연회가 잠시 중단되었다.
주인공인 능운비가 선화연과의 비무를 위해 대전 앞뜰로 나왔고, 가신들이 떼지어 구경꾼을 자처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비무면 되는 거죠?”
“그렇소.”
“그럼 폐관 수련장 주시는 거죠?”
“두말치 않습니다. 만약 삼공자의 무위가 제 마음을 흡족게 한다면, 본가의 비전 영단도 내어 드리지요.”
“여, 영단을요?”
“그렇습니다.”
선화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능운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단이라니? 그것도 비전이라니?
마교 주제에 뭐 이리 인심이 좋아?
물론 그 저변에는 자신을 어찌 해 보려는 속셈이 깔려 있겠지만, 무슨 상관일까?
영단이고! 심지어 비전이란 말이다!
도망칠 때 크나큰 도움이 될 그런 물건이다!
“좋습니다! 약속하신 겁니다.”
“암요.”
능운비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본 선화연은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탄신연 선물보다 폐관 수련장과 비전 영단에 더욱 관심을 보이다니.
다른 이들은 어떻게든 좋은 것을 구해 교주의 환심을 사려 하는데…….
아니, 어쩌면 오히려 나은 판단일지도 모른다. 교주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물은 제자의 발전일 테니까.
특히나 제 속에 감춰 둔 꿍꿍이를 이루어 줄 대상이라 확신하는 제자라면 더욱 그렇다.
“뭐로 할까요? 주먹? 검? 아니면 논무(論武)? 아, 논무가 좋겠네요. 어차피 몸 쓰는 것으론 제가 상대도 되지 않을테니.”
“저와 논무를 하잔 말씀입니까?”
“예! 날도 추운데 밖에서 뛰어다닐 필요 있나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들도 생각해야죠. 차라리 다시 안으로 들어가시죠.”
“허!”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능운비의 모습에 선화연이 볼에 깊은 우물까지 만들며 웃었다.
“삼공자, 아시겠지만 논무란 무의 경지를 말로써 논해 싸우는 방식입니다.”
“당연히 알죠.”
“아는데, 저와 논무를 하시겠단 겁니까?”
“예!”
능운비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하자, 선화연의 입가에서 미소가 거두어지고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게 뭔…….
자신만만한 것도 정도가 있지.
제 능력을 초과하는 자신감은 만용이며 오만이다.
실전 박투라면 하수가 고수를 이기는 경우가 간혹 있다.
깨달음이 부족해도 무지막지한 내공으로 밀어붙인다든지, 때로 다 잡았다고 여긴 상수의 방심을 이용해 행운의 일격을 꽂아 넣는다든지.
해서 토끼와의 싸움에도 최선을 다하라는 격언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논무는 아니다.
하수는 절대로 고수를 이길 수 없다.
무에 대한 지식이 다르고, 깨달음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논무를 운운해?
고작 의기의 깨달음을 얻고 우쭐하고 있단 말인가?
“자신만만하시군요. 하나, 논무는 제게 너무 유리합니다. 다른 것으로 하시지요.”
“에이, 논무가 좋은데.”
입을 삐죽거리는 능운비의 모습에 선화연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대신 내공 없이 적수공권으로 수를 나누어 보시죠.”
“맨손요? 내공도 안 쓰고?”
“내공을 쓰는 것 역시 삼공자께 너무 불리하지 않겠습니까?”
“흠……”
선화연의 배려에 능운비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젠장, 그냥 논무로 하지.
능운비는 적어도 그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깨달음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림자로 살았던 때, 그가 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파훼(破毁)’였기 때문이다.
일단 싸우기 전에 상대의 무공과 성격, 자주 범하는 습관 등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파훼할 방법을 찾는 순간, 가장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 결행한다.
그것이 그림자로 살며, 자신보다 강한 무인들을 무너뜨려 온 방법이었다.
해서 논무다. 시간의 구애만 없다면 능히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테니까.
꼭 이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동수를 이룰 방법 정도는 떠올릴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실전이 되면 달라진다.
오가는 주먹 속에 생각할 시간 따위가 어디 있겠는가?
아마 선화연의 공격을 피해 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몸놀림을 완벽히 구현해 낼 수 없으니, 운이 좋아 파훼점을 찾는다고 해도 부수기 전에 당할 것이다.
하지만 선화연의 싸늘한 표정을 보니,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도 없을 듯했다.
망설이는 듯하던 능운비의 눈에 이내 결심의 빛이 어렸다.
그래, 설마 비무에서 교주의 제자를 죽이기야 하겠는가? 몇 대 패고 말겠지.
내공도 안 써 주겠다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대신 최선을 다하자.
폐관 수련장에다 덤으로 설산장의 비전 영약까지 달렸다. 만약 성의 없이 상대한다면 그녀가 눈치 못 챌 리 없을테고, 그럼 마음을 바꿀지도 모를 일이다.
“좋습니다. 그럼 먼저 공격하십시오.”
“제가…… 먼저요……?”
“예.”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능운비의 모습에 선화연의 눈가가 못마땅한 듯 썰륙거렸다.
논무도 모자라 먼저 공격하라고?
“삼공자, 고수가 하수에게 삼 초를 양보하는 것이 강호의 도의입니다.”
“그딴 거 없어진 지가 언젠데요? 안할 거면 마세요. 대신 소설옥수께서 마다하셨으니 약속은 지키셔야 합니다. 예? 폐관 수련장이랑, 비전 영단. 아시겠죠?”
능운비가 눈까지 찡긋거리며 그리 말하자 호의가 사라진 선화연의 눈빛에 언짢음이 감돌았다.
변한 줄 알았더니…….
어찌 이리 무모하단 말인가?
결국 다시 결정을 유보해야만 하는가?
“좋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가지요. 단 삼 초만 버티신다면 수련장이며 영단까지 얻게 되실 겁니다.”
“사, 삼 초나요? 너무 과한데요?”
능운비가 볼멘소리를 하며 투덜거리자 선화연의 눈에 실망스러움이 스쳤다.
“대신 한초식만 쓰도록 하죠.”
“어이쿠야, 그럼 저야 너무 감사하죠! 자, 오십시오!”
한 손은 뒷짐을 지고, 나머지 한 손은 가볍게 들어 올린 선화연의 모습에 능운비가 씩 하고 웃는다.
배려도 모자라 사정까지 봐준다고하니 얼마나 좋은가?
한 초식이란다. 그녀 의 무위를 생각했을 때 절대 가볍지 않은 한 초식일 것이나, 전력을 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서 선공이 아닌 후공을 택했다. 어쩌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능운비가 천천히 자세를 취하자 싸늘하던 선화연의 눈빛에 묘한 이채가 어렸다.
몸 뒤쪽에 중심을 둔 방어세. 그리고 달라진 눈빛.
치기 어린 말에서 느껴지던 오만함이나 무모함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먹잇감을 덮치기 전 웅크린 범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거야 원, 종잡을 수 없지 않은가?
실망스럽기 짝이 없던 가벼움은 온데간데없이 진지함만을 담은 눈빛이라니.
표정은 싸늘하였으나 속으로 감탄을 자아낸 선화연이 가볍게 발을 떼었다.
“좋은 눈빛이군요. 부디 그 눈빛만큼이나 대단한 실력이길.”
슈악!
미끄러진 것처럼 작게 한 걸음.
하지만 그 한 걸음이 단숨에 삼 장의 거리를 좁히며 그녀의 신형이 능운비의 눈앞에 나타났다.
뭐, 뭐야?!
그 빠름에 대경실색한 능운비가 곧바로 땅을 차며 몸을 물렸다. 무게 중심을 뒤에 둔 자세였기에 반응이 빨랐다.
하지만 상대는 소설옥수. 이미 그녀의 손은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뻗어와 물러나던 능운비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노리는 곳은허리!
눈을 부릅뜬 채 궤적을 세심하게 살피 던 능운비가 몸을 비틀었다.
피했다!
팔이 쭉 펼쳐졌으니 극점이다. 공격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취릿!
펼쳐진 끝자락에서, 선화연의 손이 흐릿한 잔영을 만들어 내며 일순 수 개로 늘어났다.
헉! 뭐야, 이 변화는?
완전히 뻗어진 순간에 변화한다고? 내공도 없이 잔영까지 만들고? 이런 썅!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능운비의 동공은 그순간에도 빠르게 움직였다.
잔영은 모두 여섯. 하지만 급박한 상황이라 어떤 것이 실체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한 대 맞는 수밖에!
쩌억!
“크윽!”
거친 타격음과 함께 능운비가 얼굴을 찡그린 채 물러났다.
“과연! 역시 가모님이시군. 내공도 없이 한 걸음의 설지보(雪地步)로 삼장여의 거리를좁히다니.”
“하지만 삼공자님도 대단하군요. 물러나며 충격을 줄이다니요. 누가 저분이 주화입마에서 깨어난 지 일 년밖에 안 됐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러게 말이야. 가모님의 벽파장(劈破掌)을 정타로 맞고도 저리 멀쩡히 서 계실 수 있다니.”
“봤지요? 제 말이 맞지요? 실력이 확 느셨다니까요?”
가신들이 저마다 감탄하며 한마디씩 뱉자 왕천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보탰고.
“이거 쥐새끼들의 눈에 보여 좋을 광경이 아니구만. 다들 보고 있게. 내 외곽의 경비를 더욱 튼튼히 하라 이르고 옴세.”
먼 곳을 내다보던 순찰당주 감극이 분주히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정작 공격을 끝낸 선화연은 밀려 나간 능운비가 아니라 자신의 손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에 닿은 느낌이 예상했던 것보다…… 약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에 여섯 개의 변화가 고작이었으나, 그 오만함을 짓눌러 놓을 생각이었는데…….
설마? 그 상황에서 여섯 개의 변화를 살피고 그중 가장 약한 것을 골라 맞았다고?
“크으…… 과연 소설옥수시네요. 하마터면 갈비뼈가 몽땅 부러질 턴했습니다.”
몸을 툭툭 털며 자세를 바로 한 능운비가 얼굴을 찡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어느새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 선화연의 눈에는 기이한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이거 원…… 제가 이 상황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걸 보시다니요?”
“에이, 봤다고 할 순 없죠? 내공을 싣지 않으셨는데……. 또 완전히 피하지도 못한걸요.”
“허!”
순수한 감탄이었다.
완전히 피해 내려 했었다고?
갑자기 비무의 시작 전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과 논무를 하자던 게 그저 치기로 한 말이 아니 었단 말인가?
“아이구, 삭신이야. 그래도 일 초를 버텼으니 이제 두 번 남은 건가요?”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자세를 잡는 운비의 모습을 선화연이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몸의 중심을 뒤로 둔, 처음과 같은 방어세.
그리고 이전과 같은 눈빛.
선화연의 입가에 진심 어린 미소가 맺혔다.
본 것이 확실하다. 또한, 자신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어찌 이전과 같은 자세를 취하겠는가?
아직 여물지도 않은 교주의 제자에게 별안간 묘한 홍분이 느껴졌다.
자신과 대적할 만큼 강하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순간 자신의 모든 힘을 드러내 으깨버리고 싶어졌을 정도로.
“삼공자께선 제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사람이 었군요?”
“칭찬이시죠?”
“칭찬입니다.”
“그럼 곡해하지 않고 기뻐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왕지사 봐주시는 김에 살살 좀 부탁드립니다. 한 번 더 맞으면 정말 어디 하나 부러질 것 같거든요.”
그리 말하며 씩 웃는 능운비의 모습에 선화연의 눈빛이 달라졌다.
살살?
모처럼 짜릿한흥분이 끓어올랐는데 살살은 무슨!
팍!
동공이 훤히 보일 정도로 눈을 부릅 뜬 선화연이 다시금 발을 내디뎠다.
눈 위를 미끄러지듯 걷는다는 설지보.
다만, 그 속도가…….
“이런 씨! 살살하라니까요!”
그러나 백 내지른 외침과 달리 능운비의 눈빛은 집중으로 가득했다.
희부연 선으로 변해 쭉 늘어나는 듯한 선화연의 모습에 능운비의 발에 더 많은 힘이 실린다.
너무 가까워서는 안 된다. 좀 멀리 떨어져야 동작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
능운비의 시선이 선화연의 손에 집중되었다.
어차피 한 초식이니 다른 곳은 필요없다.
슈아아악!
첫 번째보다 발라진 터라 흐릿했지만, 보인다.
노리는 곳은…… 가슴!
능운비가 재빨리 상체를 비틀어 선화연의 손을 피했다.
그리고 여기서 변화!
취릿!
다시 여섯으로 나누어진 손바닥이 직각으로 방향을 바꾸며 능운비를 노려 왔다.
실체는 하나뿐, 나머진 버린다.
능운비가 돌아갔던 상체를 바로잡으며 팔을 접었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단단한 곳 중 하나가 바로 팔꿈치 아니던가?
빠가가각!
“큭!”
“……!”
능운비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상황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선화연이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손을 능운비가 팔꿈치로 막고 있었다.
“크으, 엄청 아프네요. 살살 좀 하시라니까. 괜찮으시죠?”
“……”
답하지 못했다.
족히 두 배나 빠른 움직임이었는데…… 대체 어찌?
선화연은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능운비를 바라볼 뿐이었다.
비단 그녀뿐 아니라, 비무를 지켜보던 모두가 그러했다.
왕천도, 가신들도 하나같이 입을 쩍벌린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뭔가 기적 같은 걸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내공을 쓰지 않은 데다 전력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진심을 담은 한 초식이었다.
그걸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열여덟 살 엣된 청년이 막아 낸 것이다.
“휴우……”
“……”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네요.”
크게 심호흡한 능운비가 환하게 웃으며 다시 자세를 취했다.
처음과 같은 자세.
그 모양에 선화연이 갑자기 뒷짐을 풀었다.
“어? 손은 갑자기 왜…… 그리고 눈은 또 왜 그렇게 살벌하게 뜨시는지요?”
“제가 삼공자님을 너무 무시한 듯싶어서요.”
“예?”
“사과드리죠. 제가 불필요한 배려로 공자님을 언짢게 해 드린 모양이니. 무시당했다 느끼셨다면 용서하십시오. 대신 마지막 한 수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심상치 않았다.
뭔가 한기가 풀풀 날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한 손과 두 손의 차이.
순간적으로 선화연의 존재감이 급격하게 커진다.
이내 선화연이 즐거워 미쳐 버리겠다는 듯이 웃으며 발을 들어 올린다.
“아, 자, 잠깐……”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신형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다가왔다.
흐릿하게라도 보였던 이전과 달리 아무것도 안 보였다.
이런 염병할!
그냥 주기 싫다고 하면 될걸!
수련장과 영단이 날아가게 생겼다여긴 능운비가 마신 숨을 뱉지도 못한채 뒤로 물러났다.
눈으로 못 본다면 느낌으로 피할 수밖에!
아마도…… 머리?!
능운비가 가까스로 고개를 비틀어 선화연의 손을 피해 냈다.
“크윽!”
스친 손길에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렸다.
“정말! 모처럼 신이 나는군요! 이걸 피하시다니? 삼공자님께서 다음엔 또 어떤 모습을 보여 주실지 너무도 기대가됩니다!”
“……!?”
헛손질을 해 버린 선화연이 탄성을 터트리며 곧바로 궤적을 변화시켰다.
취리릿!
일격에 이어진 변화.
여섯, 아니 다시 서른여……이런 씨발, 몇 개야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