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11
능운비의 싸늘한 축객령에 염성인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황자성은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았다.
자신으로 인해 능운비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삼공자님……”
“황 대인.”
“……어쩌자고 도발을 하신 겁니까?”
“도발처럼 느껴졌나요?”
“예?”
“그런 눈으로 보실 필요 없습니다.”
“예?”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전부 제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시죠? 제게 부탁을 해 오셨을 때, 거절을 한 것은 저였습니다.”
“……그랬었죠.”
“태백주를 거론하며 주조장을 복구해 주겠다 한 것도 저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둘 다 제 선택입니다. 그러니 책임도 제가 집니다.”
“……”
“그리고 마교와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신평장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는 일은 없을것입니다.”
“저는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압니다. 오래 본 사이는 아니지만…… 타인에게 책임을 미루시지 않을 분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습니다.”
“……”
“만약 저들이 그저 상리에 따라 경쟁하고자 했다면, 청운목향이 어떤 잘못을 하고 있었건 관여치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들이 정파를 등에 업은 순간부터…… 이는 무림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신평장과 청운목향이 아닌, 마교와 정무맹의 문제가 된 것이죠.”
“삼공자님.”
“자, 그럼 이만 들어가실까요? 어째 홍이 깨진 터라 오늘의 술자리는 이만해야 할 듯싶지만요.”
능운비가 웃으며 황자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웃고는 있으나, 그 안에 무거움이 가득히 느껴졌다.
당장에 뭔가 큰일을 치를 사람처럼…….
다시 돌아온 술자리는 여전히 흥겨웠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으로 돌아온 능운비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이는 주승이었다.
“주군, 이 주승이 주군을 위해한 한 동이를……”
취기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혀도 약간 꼬부라진 듯 말하던 주승이 멈칫했다.
능운비의 표정과 눈빛을 보고 무언가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모두 주목!”
곧바로 내뱉은 주승의 일갈에 사방으로 뛰어다니던 삭월대가 멈추었고, 시끌시끌하던 술자리에 한순간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능운비를 바라봤다. 어느새 분위기도 언제 취한 채 흥겨웠는지 모를 만큼 진지해졌다.
다만, 향이만은 여전히 술동이를 입에 대고 있었다.
이전과 다를 바가 없이 술을 즐기는 모습이나, 어쩐지 이상하리만치 섬?했다.
삽시간에 고요하게 변해 버린 분위기에, 술자리에 함께 어울렸던 신평장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침을 꿀꺽삼켰다.
그 모습에 황자성의 눈빛이 묘해졌다.
신기한 일이다.
객점과 주류를 거래하고, 직위가 높은 이들을 수도 없이 만나 본 그다.
그의 고객 중에 무림인은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리도 순식간에 분위기를 달리하는 이들을 본 적은 결단코 없었다.
함께 술자리를 즐길 때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청년들이었으나, 지금은 한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절로 움츠러드는 위압감이 사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별안간 장소도, 사람도 완전히 다르게 변한 듯했다. 바람도 없는데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서늘함이 느껴지고, 절로 능운비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하아, 또 무슨 일인데요?”
“……”
왕천이 예의 그 모습대로 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했지만, 신평장 사람들이 받는 느낌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알아봐야 할 게 생겼다.”
“예? 갑자기요?”
“그래. 반드시 확인해야겠다.”
“……”
능운비가 강조까지 더하자 삭월대의 눈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들은 호위다. 능운비의 손과 발이다.
자신의 주군이 반드시 알아야겠다고하면, 어떻게든 알아다 주어야만 하는것이다.
이는 평소 격 없이 지내 온 왕천도 다르지 않았다.
“……뭔데요?”
“청운목향.”
“청운목향이라면?”
왕천도 그 이름을 들었다. 공사하는 내내 신평장 사람들이 마교와 비교하며 씹어 댔었으니까.
“무림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왕천의 되물음에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기라곤 하나도 없는 그 표정에 누구도 반발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명을 기다렸다.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주군의 명이니까.
하지만 운학은 달랐다.
청운목향이라니?
그들의 이름은 자신도 들은 바가 있었다.
그저 목공장만이라면 조사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문제는 그들과 연관된 자들이 화산과 함께 섬서성의 영역을 양분하고 있는 종남파라는 것이다.
자칫 그들과 마찰이 생기면 곤란해진다.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능 공자! 청운목향이라니요? 그들을 조사하는 것은 마교의 권한이 아닙니다!”
툭 하니 튀어나온 못처럼 반대하는 그로 인해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걱정 마라, 운학. 조용하게 처리할 테니까.”
“아니 될 말이오! 조사가 필요하면 나에게 맡기시오. 내 무엇이든 조사해 줄 것이오. 마교가 직접 나서는 것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납할 수 없소!”
“그래?”
운학이 길길이 날뛰며 버티자, 고개를 주억거린 능운비가 향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럼 되는지 안 되는지 흙 넣어 보면 되겠네.”
“뭐요?
“향아.”
“……?”
“재워.”
“……!”
능운비는 짧게 명했고, 놀란 운학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언제 접근했는지 이미 향이가 운학의 바로 뒤에서 웃고 있었다.
“자, 잠깐……!”
빠가악!
빈 술동이가 힘차게 운학의 뒤통수를 때리고는 산산이 부서졌다.
“이런…… 씨부……럴……”
오랫동안 도를 닦아 온 운학도 욕설을 참지 못할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욕설을 다 외치지도 못한 채 눈을 까뒤집고 쓰러지고 말았다.
망할 시비님 같으니라고…….
방해꾼이 잠드는 모습에 왕천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흠, 별일이시네요. 무림과 관계없는 이들과 엮이거나 피해를 주는 일이면 경기를 일으키시더니……. 어쨌든 좋습니다. 뭘 알아 오면 되겠습니까?”
“모든 거.”
“흠, 대충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알아내란 뜻이죠?”
“그래.”
일행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왕천이 투덜거리는 듯이 묻자, 능운비가 흡족한 듯 싱긋 웃었다.
“호위장, 왕천. 주군의 명을 확인했습니다.”
“기다리고 있겠다.”
능운비의 말이 끝났다.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왕천이 명을 받았다 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들 알아들었지?”
왕천이 삭월대를 쳐다보며 근엄하게 말했다.
“주군께서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저리 진지하게 말씀하시면 어찌 복명해야 하는지도 알지?”
“예!”
“좋아. 목표는 청운목향이다. 주인은 염성인, 우리가 아는 것은 딱 거기까지다. 하니 지금부터 전부 알아내라. 그들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사돈에 팔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간 그들이 해 온 모든 사업에 대해서. 기간은 내일 묘시 말(卯時 末: 오전 7시)까지다. 내가 주군을 잘 아는데, 저런 표정이시면 지금 몸이 잔뜩 단 거야. 알겠어?”
“예!”
“참, 그리고 여기가 정파의 영역임을 잊지 마라. 괜히 눈에 띄어서 좋을게 없으니, 거지새끼들 조심하고 웬만하면 사고는 치지 마라. 주군께서 괜한 문제가 생기는 걸 귀찮아하시는 거야 니들도 알 테니.”
“예!”
“그럼 시작!
“명을 받들겠습니다!”
힘껏 외친 삭월대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미리 의논이라도 한 것처럼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자. 그럼 우리도 가 볼까, 주승?”
“그러지요. 염성인이라는 놈이 어떤 부분에서 우리 주군의 심기를 언짢게했는지 확인도 할 겸.”
왕천과 주승이 맨 마지막으로 신평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호위? 그딴 건 필요하지 않았다.
왕천과 주승, 삭월대 전부를 합쳐도 따라가지 못할 괴물이 옆에 있으니까.
“흠, 나도 좀 도와줄까?”
“……”
일행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뒤, 향이가 담담하게 물었다.
대뜸 반말로 바뀌었지만, 능운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반말을 하건 존대를 하건, 누가 그녀를 막을까?
“넌 안돼.”
“왜?”
“술 먹었잖아.”
“재들은 안 먹었냐?”
“넌 많이 먹었잖아.”
“……”
“그리고 넌 누가 시비 걸면 안 참을거잖아.”
“그야…… 그렇지.”
“그러니까 안돼.”
“쳇. 술기운이 올라서 기분이 좋았는데…… 누구 하나 팼으면 딱 좋을 그런 기분이었는데.”
향이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능운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이걸로 오늘 밤 안에 청운목향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을것이다.
무림의 거대 문파도 아니고, 고작 목수 패거리 집안이 마교의 최정예나 다름없는 무인들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아마 염성인이 오늘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까지 낱낱이 알아올 것이다.
이제 자신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지.
“향아.”
“왜요?”
“너, 약속안 잊어 먹었지?”
“……?”
“태백주 사 주는 날, 사청을 깨닫는데 도듬을 주겠다고 했잖아.”
“아! 그랬죠.”
“그 수련 지금 하자.”
“지금요?”
“그래. 왠지 오늘 밤엔 잠이 안 올것 같아서 말이야.”
“에이, 귀찮은데……. 뭐, 좋아요.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금 같은 기분에 딱 어울리기도 하고.”
향이가 볼에 보조개를 만들며 웃었다.
그런데 어째 그 눈빛이…… 왠지 음산한 것이…….
뭔가 불안하다.
손은 또 왜 갑자기 깍지를 껴서 우두둑 소리를 낸단 말인가?
발목은 또 왜 빙빙 돌려 가며 풀고?
자, 잠깐!
아까 뭐랬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향이는 분명 지금 기분이 술기운이 오른 게 누구하나 팼으면 딱 좋을…….
“저, 저기 향아?”
“또 왜요, 삼공자님?”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니가 준다는 도움 말이야.”
“……?”
“뭔가 깨달음을 위해서 어떤 말을 해 준다든가 하는…… 그런거 맞지……?”
“에이, 말 몇 마디로 어떻게 깨달음을 줘요?”
“그럼?”
“당연히 실전 훈련을 통한 습득이죠.”
“시, 실전?”
“예.”
한마디 대답과 함께 음산한 기운을 풍기기 시작한 향이의 모습에 능운비의 눈이 동그래졌다.
실전이라니? 실전이라니!
“삼공자님.”
“어? 어어?”
“녹림왕의 일 초를 피했던 순간 들었던 그 소리, 기억하시죠?”
“……”
기억난다.
그 섬뜩한소리.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온 것만 같았던 그 느낌.
그리고 심장이 꿰뚫리는 환각마저 경험했었다.
“지금부터 떠을리게 해 줄게.”
“……!”
“그리고 각인시켜 줄게, 그 소리가 머릿속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도록, 그때의 감각이 몸에 아로새겨질 수 있도록.”
향이의 양손에는 어느새 비수가 들려 있었다.
서늘한 살기를 뿜어내며.
순간 목이 베여 나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놈…… 진심이다.
진심으로 자신을 죽일 생각인 것이다.
“자, 잠깐만 향아!”
눈운비가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하지만 향이는 그 부탁을 들어줄 생각 따위는 없어 보였다.
붉디붉은 혀가 입술을 섬뜩하게 핥고 지나갔고,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잠깐이고 나발이고, 귀를 활짝 여는게 좋을 거야.”
“……”
“내 건 녹림왕과 달리 소리가 거의 안 나거든!”
파아앙!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는데 향이의 모습을 놓쳤다.
“이런 씨발!”
능운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삼무보를 펼쳐 훌쩍 물러났다.
스걱.
미세한 소리와 함께 능운비가 있던 자리에 얇은 섬광이 번뜩였다.
저곳은 분명…… 자신의 목이 있던 곳이다.
“늦어.”
“……”
어느새 향이가 능운비의 측면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이 격을 날려 왔다.
야, 인마! 이게 무슨 수련이야!
이건 그냥 죽이려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