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14
“푸흡! 신평장에 누가 왔어?”
댓바람부터 전해진 소식에 청운목향의 주인, 염성인의 마시던 차를 뱉고 말았다.
“신공, 분명 신공이었다고 합니다.”
“……신공 그 노인네를 데려왔다고? 이것들이!”
염성인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신공은 한때 자신과 경쟁을 했던 대목수였다.
사업은 모르고 짓는 것에만 몰두하던 멍청한놈.
실력이 있으면 뭐 하고, 목수들의 존경을 받으면 뭘 하겠는가? 세상을 모르니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염성인은 그 주위부터 쳐 냈다.
몇몇은 고향을 등지고 흩어졌지만, 신공을 따르던 목수들 대부분은 지금 청운목향 소속이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돌아왔다면,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일임이 틀림없다.
신평장과 마교 삼공자.
자신을 대하던 것을 봤을 때, 그놈들이 꾸민 일이 분명하다.
신평장주 놈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싸가지 없는 마교 제자 놈이 자꾸만 속을 긁었다.
“아버님, 어찌할까요? 신공이 돌아왔다면…… 목수들이 동요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
소향주이자 아들인 염병태의 걱정에 염성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금지옥엽처럼 아껴 왔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 보지 못한 덜떨어진 녀석.
탐탁지 않은 눈빛을 억지로 감춘 염성인이 숨을 고르며 고개를 저었다.
“동요는 무슨 동요? 신공이 신평장에 돌아온들 무슨 상관이냐?”
“예? 하지만 그들이 불러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랬겠지.”
“……”
“하지만 종남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마교인 놈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너는 걱정말고 평소처럼 청운목향의 운영을 배우는 데에만 집중하거라. 나머지는 이 아비가 다 알아서 할것이다.”
“……예, 아버님.”
염성인의 호언장담에 염병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만 나가 보거라. 괜한 말들로 분위기를 어지럽히지않게 입단속들 잘하고.”
“예, 향주님.”
염성인의 말에 염병태와 청운목향의 수뇌들이 물러갔다.
그래, 모두에게 말했듯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다.
의도야 분명하다. 일전에 자신을 대하던 능운비의 태도를 보았을 때, 신공을 이용해서 경쟁 업체라도 꾸려 볼 생각이리라.
하지만 무슨 수로?
신공이 하늘이 놀랄 만한 건축술을 가졌다고 해도,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말했듯, 정파와 맺은 협약이 있는데 마교 따위가 사업을 시작해? 말도 안되는 소리다.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다.
아니, 자신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한 상대가 아니던가? 약관에 불과한 애새끼라도 마교니까.
해서 종남에 연락했다. 수만금을 들여 종남파의 기관 진식을 축조하고 쌓은 인연이었다. 그들에게 마교가 종남의 영역에 있는 신평장과 연을 맺고 이득을 취하려 한다고 서신을 보냈다.
가득 채운 전낭과 함께…….
꼭 돈이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척마(斥魔)의 기치를 세워 온 종남이 모르는 체할 리는 없었다.
설마하니 제 영 역에 마교가 자리 잡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겠는가?
필시 사달이 날 터다.
더하여, 아무리 마교라고 해도 구파의 하나인 종남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협약을 무시한 건 그 버르장머리 없는 애새끼가 아니던가?
그러니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싸움이 나든 살변이 나든, 그건 무림인들끼리의 사달이다.
자신은 그저 그 뒤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 두면 되는 것이다.
종남이 마교를 쫓아낸 뒤. 그때가 자신이 움직일 때였다.
마교와 연을 맺은 것을 과장하여, 신공이고 신평장이고 모조리 쫓아내는 것이다.
이미 그에 대한 계획을 총관 한열비에게 세부적으로 세워 두라 하지 않았던가?
이른바 여론 선동이다.
겉으로는 선행을 베풀어 온 신평장이 뒤로는 마교와 손잡고 각종 불법적인 일을 자행했다고.
또한, 그들이 생산하는 술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물론 그전에 기름칠해 둘 곳이 여전히 넘쳐났다.
정의? 의리?
말만 번지르르하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다.
이제껏 살아오며 돈이 배신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돈이 곧 정의고, 의리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이 들 것이다. 관에도 뿌려야 하고, 인근 종남의 속가들에도 적잖이 성의 표시를 해서 자신에게 힘이 실리도록 만들어 놓아야 했다.
“빌어먹을 새끼들.”
그들의 손에 쥐여 줄 막대한 돈을 생각하며 이를 갈아 대던 염성인이 탁자 아래로 손을 넣었다.
이런 날을 대비해 넉넉히 마련해 두지 않았던가?
가문의 미래를 위해 모아 둔 불법 은닉 자금. 먹어도 절대로 탈이 나지 않는 돈.
치부책에도 적을 수 없는 돈이지만 어쩌겠는가? 가문의 미래를 위한 일인것을.
염성인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비밀 금고를 여는 돌출부를 힘껏 눌렀다.
따르륵, 딸깍.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여기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불법적으로 모아 온 자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증표.
비단보에 싸서 보관해 둔 것인데…….
“이게……”
황당함에 눈만 끔벅이던 염성인이 이내 불을 밝혀 들고 금고 안을 비추어 보았다.
……없다. 아무것도.
텅 빈 금고를 멍하니 바라보던 염성인의 눈이 점점 커졌다.
도둑이 든 흔적은 없었다. 또한 비밀금고에 대한 것은 아들놈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허허, 내 정신도 참…… 다른 곳에 둔 건가?”
염성인의 손길이 조금씩 빨라졌고, 이내 그의 거처가 한바탕 뒤집혔다.
봤던 곳을 다시 살피기를 수차례.
마침내 그는 깨달았다.
징표가 사라졌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은밀하게 모아 두었던 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징표가…….
“이상하다. 대체 어디에 둔 거지?”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 훔쳐 갔으리란 생각은 못 한 염성인은 온통 뒤집어 엎어 놓은 방 안을 다시 한번 세심하게 뒤지기 시작했다.
* * *
“허헉! 이게 무슨?”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충분하겠지요?”
“……”
능운비의 말에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충분하냐고?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단 말인가?
노인의 앞에 놓인 것은 여러 개의 궤짝이었다.
열린 뚜껑 속에서 쏟아져 나온 빛에 방 안이 온통 누레졌다.
그 안에 가득한 것은 돈, 그리고 금덩이였다.
평소 금 보기를 돌같이 여겨 온 노인이라 할지라도, 그만한 양의 금을 눈앞에 두고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 대체…… 제게 왜 보여 주시는겁니까?”
노인이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묻자, 능운비가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제 뜻은 이미 전한 것으로 아는데요?”
“……”
노인이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스스로를 마교의 삼공자라고 밝힌 눈앞의 청년, 능운비.
마교 놈 중에 정상이 없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정말로 미쳤을 줄이야.
황금이 가득 든 궤짝과 능운비를 번갈아 쳐다보는 노인은 신공(神工)이라 불리고 있었다.
본명은 이세득이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저 신공이다. 건축술과 물건 만드는 솜씨가 가히 신기에 가깝다 하여 그리 불린다.
하지만 실력은 갖췄으되 영민하지 못했기에, 천운목향의 염성인의 비열한 수에 당해 모든 것을 잃었다.
고향을 등지고 일이 있는 곳을 찾아 떠돌길 한참.
신평장주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돌아온 참이었다.
사실 잡혀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승이라던가?
별안간 찾아온 사내가 신평장주의 이름을 말했고, 허락을 하자마자 보쌈을 당했다.
그렇게 신평장에 와보니, 이미 많은 이들이 도착해 있었다. 과거 자신과 함께 많은 건물을 지었던 목수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두와 함께 능운비라는 사내를 만났다.
대뜸 한 말이 돈은 얼마든지 댈 터이니 목공장을 운영해 달라는 것이었던가?
“허, 그게 진심이었단 말이오?”
“물론입니다.”
“대체 무슨 이유요? 마교시라 들었는데…… 어찌 목공장에 관심을 가지신단 말이오? 혹 마교에서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기라도 하는 게요?”
신공의 물음에 능운비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목공장 따윈 아무래도 좋습니다.”
“예?”
“그저 청운목향, 그들이 거들먹거리는 꼴이 보기 싫었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듣기론, 누구보다 청운목향에 원한이 깊다면서요?”
“그야 당연한 소리! 그놈이 벌인 일들만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사람이 나요!”
“그러니까 적임자죠.”
“……?”
“마음에 안 들지만, 무력을 쓸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그야……”
“해서, 경쟁 업체를 세워 청운목향을 무너뜨릴까 합니다.”
“……”
담담히 말하는 능운비를 바라보던 신공은 의아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는 마교 말고 다른 마교가 있었나?
수틀리면 무림이든 민가든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물론 그 때문에 중원의 무림인들과 사달이 나도 크게 나겠지만.
“마교, 와중에 교주의 제자시라 들었습니다만…… 청운목향이 마음에 안드시면 혈사를 일으키시는 편이 빠를텐데, 어찌 이리 돌아가시는 겁니까?”
“예? 혈사요? 무슨 그런 무시무시한 소리를.”
능운비가 화들짝 놀라는 척하며 손사래를 치자 옆에 있던 황자성이 피식웃었다.
“이보시오, 신공.”
“……?”
“이분께선 그런 분이 아니라오.”
“그런 분이 아니라고요?”
“어쩌면, 우리가 마교에 대해 너무 편견을 가졌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황 대인, 그게 무슨 말이오?”
“그게…… 뭐, 차차 알게 되지 않겠소?”
능운비를 편드는 듯한 황자성의 모습에 신공이 거듭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보시오, 신공. 그대도 청운목향의 염성인이 지금껏 어떤 짓을 해 왔는지 알 거요.”
“음…….”
“삼공자님께서 나서신 이유는 바로 그것이오. 그놈 때문에 고통받아 온 이들을 보셨기에.”
“……마교가 사람들을 돕고자 한다고?”
“그렇소. 해서 나도 이참에 삼공자님께서 창설하신다는 지부와 연을 맺기로 했소.”
“뭐, 뭣이? 신평장이 마교와 연을 맺어?”
“적어도…… 청운목향을 나 몰라라하는 것도 모자라 뒤를 봐주기까지 하는 관부나 종남파보단 훨씬 나은 듯싶소.”
“……”
그 말에 신공이 황자성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능운비라는 자를 만난 지 고작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무너진 주조장 공사를 맡겼다던가?
한데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저리 신뢰 가득한 눈빛을 하다니.
신평장주 황자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신공으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후우, 어찌 장담하실 겁니까?”
“장담? 뭘 말이죠?”
“청운목향도 그랬었지요.”
“……”
“처음엔 사람들을 그저 도와주더이다. 돈 한 푼 받지 않았지요. 그의 선업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적도 있었소. 하나 모두가 계략이더이다. 근방의 목수패들을 야금야금 먹어 치우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독점하다시피 했소.”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작정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지요?”
“맞소. 어쩔 수가 없었지. 남은 게 그놈들뿐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쓸 수밖에.”
“……”
“그때부터 욕심이 커진 놈은 목공장일뿐 아니라 이것저것에 손을 대기 시작했소. 똑같은 방법이었지. 결국 이 꼬라지가 되었소. 관에 고변도 해 봤고, 종남파의 속가에도 하소연을 했소. 하지만 이미 전부 한통속이더이다. 도리어 헛소리를 하는 미친놈으로 취급받았소.”
“그랬겠죠.”
“……그런데 무얼 보고 당신을 믿으라는 게요?”
신공이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능운비는 담담히 받아넘기며 웃었다.
“물론 마교를 믿을 리 없겠죠.”
“……”
“믿어 달라는 말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진 분명합니다.”
“그게 뭐요?”
“무림인이 아닌 자들에겐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다. 또한 신공께서 하시는 일에 조금도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과한 욕심을 부려 민가에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요.”
“……”
“그 부분은 제가 아닌 마교 교주님의 이름으로 약속하죠. 아실진 모르겠지만, 저희 마교로선 목숨과도 같은 약속입니다.”
“……”
별안간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만 같았다.
약속에 목숨을 거는 자라. 그리고 민가의 피해를 생각하는 무림인이라.
“허허, 이거 참…… 이걸 믿어야 할지.”
신공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신평장의 주조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무인들이 직접 자재들을 들어 나르니 공사 진척이 몹시 빨랐다.
하지만 세심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힘으로 대충 때려 박아놓는 듯 하달까?
“어허! 저래서야!”
“……?”
“공사를 어찌 저리 주먹구구식으로 한단 말인가! 내 두고 볼 수가 없구먼 그래.”
왠지 화가 난 듯한 신공이 갑자기 소매를 걷어붙였다.
“뭣들 하는가? 건축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인 자들에게 공사를 맡길 참이야! 속히들 나서게!”
신공이 그 뒤에 멀뚱히 서 있던 목수들에게 호통을 치며 주조장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에 능운비와 황자성이 마주보며 빙긋이 웃었다.
신공 회유 끝.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다.
정마 협약에 따라 청운목향을 비롯해 그들과 함께 불의한 짓을 저질러 온 놈들을 모조리 말려 죽일 것이다.
아주 합법적으로, 청운목향의 염성인이 평생 모아 온 돈으로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