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2
“대단하십니다!”
“……”
뭐가?
“아무리 내공이 실리지 않았다고는 하나, 가모님의 벽파장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키 시다니요!”
“……”
완벽하진 않았는데.
“이건 정말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크윽! 이 대단한 광경을 우리만 보고 있어야 한다니.”
“그러게나 말일세. 다른 놈들에게 소문을 내서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 하는데.”
다시 시작된 연회.
장내는 온통 능운비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했다. 설산장의 가신들이 능운비를 둘러싼 채 눈을 반짝이며 저마다 말들을 쏟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옆에서 그 대화를 듣는 왕천은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질 듯했다.
그리고 능운비는, 제 호위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지가 뭘 했다고 저리 우쭐거리고 있단 말인가?
물론 모두의 칭찬처럼 자신이 대단했던 것은 인정한다.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틴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일이었다.
땅 위를 빙판처럼 미끄러져 이동한다는 설지보에, 해일마저 때려 부순다는 벽파장.
하나같이 설산장이 자랑하는 절기다.
더욱이 펼친 이가 소설옥수 선화연이다.
그쯤 되면 내공을 담지 않았다고 해도 손바닥으로 바위를 부수고 철판을 우그러뜨릴 수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 삼 초에 보여 준 무수한 장영.
막았다. 아니, 거의 막을 뻔했다.
여덟 번째까지는…….
“자, 제 술 한잔 받으십시오, 삼공자님.”
쪼르륵.
능운비가 임생이 가득 채워 놓은 잔을 바라보았다.
넘치지 않고 볼록해진 술 위로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인다.
잘생긴 얼굴을 뒤덮은 시퍼런 멍, 발갛게 부어오른 볼, 양쪽 콧구멍을 막은 명주천 쪼가리.
정말 무자비하게 막았다.
온몸으로다가.
‘쿵! 뻑! 쩍!’ 하는 소리가 얼마나 경쾌하던지, 하마터면 처맞다가 춤이라도 출 뻔했다.
“삼공자, 내 손이 조금 과했소.”
“……조금이요?”
못내 미안한 표정을 한 선화연이 죄인처럼 사과했지만, 능운비는 단단히 삐친 듯 부어오른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게 조금입니까? 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아니, 그…… 조금 많이……”
“왜요? 차라리 패서 죽이고 어디 눈 덮인 산에 묻어 버리시지?”
“……”
“그리고 적당히 팼으면 멈출 줄도 아셔야지, 이게 뭡니까 이게? 예!?”
“아, 그게…… 삼공자께서 너무 잘 버티길래 흥이 나서 그만……”
“흥이요? 흥?! 흐응!?”
“……”
“버틴다고 더 때립니까?”
“그…… 미안하게 됐소.”
“아니, 그리고! 한 초식만이라고 했잖습니까! 치사하게 왜 갑자기 다른 초식을 써요?”
“그건안 쓰러지시길래……”
“뭐요?”
“……너무 흥이 나서.”
“이런 씨! 그렇다고 약속을 깨요? 끝났다고 생각하고 방심했다가 제대로 맞았잖습니까! 이거 봐요? 이거!”
능운비가 제 뒤통수에 생겨난 커다란 혹을 보여 주며 연신 짜증을 냈다.
수많은 장영을 만들었던 벽파장의 일초.
다 막아 내지 못해 영광스러운(?) 상처를 얻었지만, 결국은 버텨 냈다. 마지막엔 소심한 반격도 이루어 냈으니 정말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절대의 경지를 걸어가는 소설옥수가 아니던가?
버틴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반격까지 했으니 뿌듯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보여 줬다는 확신이 들었다. 폐관 수련장, 설산장의 비전 영단이 벌써 손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안심하던 그 순간, 불타는 개차반이 별안간 이 초를 날려 왔다.
맞았고, 붕 떠올랐다가 땅바닥에 뒤통수를 처박으며 떨어졌는데…… 그 뒤의 상황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실내였고, 설산장 소속의 의원이 뇌진탕이 왔었다고 설명해주었다.
뇌진탕이라니? 이런 썅! 그게 얼마나 위험한건데!
가볍게는 짧은 시간 의식이 소실되는 정도로 끝나지만, 재수 없는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으휴, 진짜. 스승님도 그렇고, 누가 마교 아니랄까 봐 어찌들 그리 적당히를 모르는지.”
“……”
난감함을 금치 못하는 선화연을 앞에 둔 능운비가 손에 들었던 술잔을 빠르게 비워 냈다.
“한 잔 더!”
“앱!”
간에 기별도 안 가는 느낌에 손을 내밀자, 왕천이 재빨리 잔을 채웠다.
“푸하, 이제 좀 살겠네. 내가 도사 공부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그나마 그거라도 했으니까 화가 다스려지지.”
“마, 맞습니다, 삼공자님.”
“거봐! 뭐든 도움이 된다고. 그러니까 앞으로 잔소리하면 죽을 줄 알아!”
“예, 암요.”
능운비의 거듭된 짜증에 고분고분 비위를 맞추는 왕천의 모습.
그에 선화연의 눈가가 씰룩거렸지만, 뭐 어쩌겠는가?
너무 홍분해서 과도하게 손을 쓴 자신의 잘못인 것을.
지금은 그가 갑(甲)이다.
“그러게 이 초는 왜 쓰셔서는……”
“하여간 저성격은 진짜.”
“말도 마세. 세 살 때부터 저러셨지 않은가? 아마 여든까지 똑같을 게야.”
“가주님께서 같이 사느라 고생이 많으셨지.”
옆에 있던 가신들까지 다 들리는 목소리로 험담을 나누며 능운비를 편든다.
이것들이…… 언제부터 삼공자와 한 통속이 되어서는.
니들이 나 세 살 때를 봤냐? 봤어?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것들이, 확 그냥 전부 머리통을 뜯어 버릴까 보다.
선화연이 손이 근질근질한 것을 겨우 참으며 호흡을 골랐다.
지금 중요한 것은 능운비다.
직접 본 그는 합격점을 주기 충분했고, 설산장의 미래를 맡겨 볼 만했다.
재능이며, 성취며.
또한 단점으로 생각했던 성격까지 어느 하나 자신의 기준에 모자람이 없었다.
벌써 가신들과 똘똘 뭉쳐서 자신을 험담하기 여념이 없지 않은가?
이젠 오랫동안 유보해 두었던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모자라다 생각됐다면 내쳤을 것이나, 스스로 자신에게 증명해 보였으니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물론, 다른 제자들에 비해 세를 이루는 것이 늦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부터 부지런히 달리면 된다. 설산장이 전력을 다해 그 차이를 메꾸도록 도울 것이다.
“삼공자.”
“왜요?”
선화연의 부름에 샐쭉 뜬 눈으로 그녀를 쳐다본 능운비가 멈칫했다.
아니, 왜 또 진지한 표정이야?
무슨 말을 하려고?
못내 의심을 거두지 못한 능운비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는데, 선화연이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그의 앞에 나섰다.
스륵, 차착.
선화연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자신과 함께 가모 험담을 쉼 없이 내뱉던 설산장의 가신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선화연의 뒤에 열을 지어 섰다.
그와 동시에 장내의 공기가 거짓말처럼 뒤바뀌었다.
시끌시끌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설산장 무인들의 존재감에서 비롯된 묵직한 고요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시비들도, 일꾼들도 어느새 벽 쪽으로 물러나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준비하라!”
선화연이 이전의 표정과는 달리 위엄 있게 외치자 가신 한 명이 뒤를 향해 손짓했다.
준비? 뭘 준비해?
니들 설마?
개인전도 모자라서 단체전까지 해보려는 거냐?
“아니, 갑자기 뭐야 다들?”
능운비가 놀란 목소리로 묻는 순간, 대전의 모든 문과 창이 활짝 열렸다.
부우-!
언제부터 대기하고 있었는지, 문밖에 서 있던 신호수가 제 팔뚝만 한 각적(角笛: 불피리)을 힘차게 불었다.
척, 척척척.
그 울림이 설산장 전체를 뒤흔들며 퍼져 나가고, 사방에서 나타난 무인들이 대전의 앞뜰을 가득히 채운다.
생각지도 못한 분위기에 당황한 능운비가 뒤에 시립해 있던 왕천을 쳐다보자,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알고 있는 눈치인데…….
대체 뭘 꾸미는 거지?
그 순간, 선화연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가, 가모님!? 이게 무슨?”
능운비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가신들이 선화연과 똑같이 꿇어앉았고, 연무장에 도열한 무인들도 마치 한호흡인 듯 일제히 무릎을 꿇고 능운비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삼공자!”
“……?!”
“가주로부터 가문의 결정권을 위임받은 가모로서, 그대를 미래의 주인으로 모실 것을 천명합니다.”
“……예?”
위엄이 서렸으나 공손함을 가득 머금은 그 외침에 능운비의 눈이 당황으로 커졌다.
뭘 어째? 주인? 천명?
“이제부터 설산장은 만마(萬魔)의 지존이신 교주님의 명에 위배되지 않는 한 그대의 검이자 방패로 존재할 것이며, 먼 훗날 교주가 되시는 그날까지 행하시는 모든 곳에 따르며 성심으로 도울 것입니다.”
“더하여! 왕천은 지금부터 설산장 소장주로서의 지위를 내려놓고, 삼공자님의 호위장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앞으로의 그는 교주님이 아닌 삼공자님을 주군으로 뫼실 것입니다.”
“예에?”
“이미 교주님의 인가를 받은 사안입니다.”
“……”
능운비는 머리가 멍해졌다.
벌써 인가까지 받았다고? 저 파견직놈이 이젠 종속이 되어 버린 건가?
“삼공자님께 선화연이 예를 올립니다!”
“……!”
말을 끝낸 선화연이 막을 새도 없이 능운비를 향해 절을 올렸다.
“예를 받으십시오!”
“……”
선화연뿐 아니라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모두가 일제히 절을 올렸다. 설산장이 능운비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그를 주군으로 모실 것을 결정한 것이다.
“……”
이런 미친 것들이!
니들 이게 무슨 짓이야!?
뭐가 어째? 미래의 마교 교주?
나보고 마귀 놈들 대장 짓을 하란 말이냐? 난 그냥 폐관 수련장이랑 비전 영약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이 분위기에…….
괜히 입을 잘못 놀렸다간 떼거리로 달려들 것 같은 그런 분위기에…….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선화연과 가신들, 그리고 바깥의 무인들을 짜증스럽게 쳐다보던 능운비의 눈에, 벽 근처에 엎드린 시비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 다들 그만 일어나라 하세요.”
“……”
“즐겁게 술 먹다가 이게 무슨 난리란 말입니까? 안으로 눈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가모님과 가신들은 내공으로 버틴다고 해도…… 시비들은 춥잖아요. 저기 찬 바닥에 엎드려 계신 분들도 그렇고……”
“……”
능운비의 말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선화연이 싱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가신들이 아니라 시비들과 밖의 무인에 대한 걱정인가?
이대로 성장한다면, 지금의 교주와는 또 다른 성격의 교주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삼공자, 어찌 주군으로 모실 분과 동석 중에 아랫것들에게 명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삼공자께서 상좌에 앉으시어 위엄 있게 명하시면 될 일입니다.”
“……”
선화연의 말에 능운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달리 방법도 없지 않은가? 저리 고집을 부리는데.
주군이든 뭐든 다 해 준다고 하자.
입으로는 무슨 말을 못 할까.
어차피 과거의 무공에만 익숙해지는 순간 도망칠 것인데.
능운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고는 말했다.
“그만 일어나라.”
“예!”
능운비의 부드러운 명령에 꼼짝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선화연과 가신들이 일어났다.
밖의 무인들도 능운비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나자, 연회장의 문이 굳게 닫혔다.
“시자(侍者: 모시는 이)들도 그만 돌아가라. 치우는 건 내일 해도 될 일, 가서 먹고 마시며 쉬도록 하라.”
능운비의 말이 너무 온유해서였을까?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시비들과 일꾼들이 눈만 끔벅이며 눈치를 살폈다.
“어허, 삼공자께서 명하셨거늘 어찌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게야? 다들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 먹고 마시며 쉬거라.”
“예? 예!”
선화연의 이어진 말이 있고서야 시자들이 어색한 몸짓으로 연회장에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선화연과 가신들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익숙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들의 휴식까지 신경을 써 주는 주군은 보지 못했을 터이니.
“흠, 그나저나 가모님.”
“그저 화연이라 하십시오.”
“아니, 그래도 나이차가 있는데……”
“주종의 연이 될 사이에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오히려 받잡기 어렵습니다. 그저 이름으로 불러 주십시오.”
선화연이 지극한 공대를 쓰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이 지긋한 어른에게 반말은좀…….
삼강오륜을 괜히 배운 것도 아니고.
“차차 그리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하면 더 권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 키셔야지요?”
“예?”
“폐관수련장이랑 비전 영약이요.”
“아! 걱정 마십시오. 내일 아침에 제가……”
“지금.”
“예?”
“지금 주시죠. 영약도, 폐관 수련장도 당장!”
“아니, 굳이 지금….. 이 야심한 밤에요?”
능운비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지금! 당장!
내가 그쪽을 못 믿어서 그래요.
아까도 초식 하나만 사용한다고 해놓고 안 지켰잖아.
당장 촌각 후도 모르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내일 아침에는 어찌 될지 알고?
그러니까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