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24
다음 날 아침.
진산과 함께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능운비는 본격적으로 청운목향에서 일어난 살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잘 잤소?”
“……”
능운비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인사를 해 오는 웅현.
불편함이 가득한 표정이지만…… 멀쩡하네?
내상을 입은 게 맞긴 맞냐?
“어젠 손속이 과했소.”
“덕분에 많이 배웠소. 몸이 어찌나 찌뿌둥하던지.”
웅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이죽거렸다.
그게 다다.
웬만한 무인이면 족히 달포는 정양을 해도 모자랄 텐데, 고작 찌뿌둥?
신력에 재능만 타고난 게 아니라, 막강한 회복력까지 있는 모양이다.
“현아, 부족함을 알았더냐?”
“예? 예…… 뭐……”
“그럼 되었느니. 앞으로 더욱 정진하거라.”
“예. 다음엔 반드시 능 공자를 꺾어 보이겠습니다.”
진산의 말에 웅현이 주먹까지 움켜쥐며 다짐했다.
어째…… 발전 가능성이 어마어마한 놈에게 열정이라는 기름을 부어 버린것 같았다.
재능에, 신체에…… 노력까지 더해지면?
마교가 제법 골치 좀 아프겠다.
하지만 뭐, 곧 떠날 처지에 마교 걱정이 웬 말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웅현에게 관심을 끊어 버린 능운비가 왕천을 쳐다봤다.
“왕천.”
“예, 주군.”
“청운목향과 사건 장소에 대한 조치는?”
“날 밝자마자 섬서 지부의 무인들을 모조리 투입해서 두 곳 모두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봉쇄했습니다.”
“잘했다.”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모든 사건 조사의 기본은 원형의 보존이다.
지난밤, 염성인과 청운목향의 무인들이 딴짓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게 했다.
연락을 보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어 날이 밝자마자 섬서 지부의 무인들을 전부 투입하였으니, 무슨 짓을 꾸미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른바 완전한 봉쇄.
지금부터는 파헤치는 일만 남았다.
염성인의 숨이 턱턱 막히도록…….
“자, 그럼 가 볼까? 살변의 현장으로?”
“예! 주군.”
능운비가 힘차게 걸음을 내딛던 그순간.
“주군!”
“……?”
섬서 지부장 곽희영이 별안간 능운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주군? 내가 왜 니 주군이냐?
“어찌 이러십니까?”
“섬서 지부장 곽희영! 지난밤 보여주신 무위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요?”
“약관도 되지 않은 나이에 위강의 경지에 이르시다니, 이는 실로 마교의 홍복이라 할 것이며, 마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
“하여 밤새 고민한 결과! 저를 비롯한 섬서 지부의 무인들은 앞으로 삼공자님을 주군으로 모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남들 다 들으라는 듯이 고래고래 외치는 곽희영의 모습을, 능운비가 떨떠름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 아저씨가 아침부터 뭘 잘못 처드셨나…… 그걸 왜 니 맘대로 결정해?
“앞으로 저 곽희영 이하 섬서 지부의 무인들은 주군께 충성을 바칠 것입니다.”
“……”
그러니까 그딴 걸 왜 니 맘대로 바치냐고? 설마 내가 니들 마음대로 결정한 걸 받아들일 줄 알아?
“하아, 지부장……”
능운비가 한숨을 내쉬며 거절하려는데, 옆에서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허허, 과연 지부장 정도 되니 사람을 볼 줄 아는구만. 능 공자께선 능히 주인이 될 만한 사람이지. 미래를 맡겨볼 만해. 암.”
“그렇습니다. 우연찮은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삼공자와 연을 맺은것이 어찌나 다행인지요.”
진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옆에 있던 신평장주도 냉큼 동조했다.
“뭣이? 자성이 이 사람…… 그게 내 앞에서 할 말인가? 종남에서 그리 구애를 해도 거절하더니.”
“아! 제말은 그런뜻이 아니라……”
“농일세, 이 사람아.”
“진산 어른……”
“그래도 내 가끔 술은 얻어먹으러와도 되는 게지?”
“암요! 이를 말입니까? 어르신이 찾아오시는 것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설마하니 삼공자가 그 같은 일을 책잡겠습니까?”
“암만, 그럴 리가 없지. 능 공자는 보기 드문 대인배가 아닌가?”
“맞습니다. 이번에 새로 온정목공장을 연 신공도 저와 똑같은 생각입니다. 삼공자 같은 분은 처음이라며…… 남들이 마교가 어쩌고 손가락질하면 손모가지부터 꺾어 놓겠다는군요.”
“핫핫! 좋은 인연이야. 암.”
“……”
여기저기서 능운비를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이런 식이면…… 거절하기가…….
“주군.”
“……”
능운비가 머뭇거리고 있자, 옆에 있던 주승이 웃으며 그를 불렀다.
“그만 받아 주시지요. 자고로 수하의 충성심을 내치는 것은 수좌의 도리가 아닙니다.”
이게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실력이 대폭 상향됐다. 곧 향이의 잡술도 배우게 될 것이다.
즉, 탈주의 날이 머지않았는데 떨거지가 자꾸 늘면 어쩌잔 말이냐?
“흐흠, 주군…… 어차피 세력을 모으셔야 할 상황이 아닙니까? 제가 알아보니 곽 지부장의 실력은 본성에서도 알아주는 모양입니다. 와중에 진법과 기관에도 조예가 있으니, 필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왕천마저 찬성을 하고 지랄이다.
그냥 평소대로 해라.
안 된다, 하지 마라. 극렬하게 반대를 하라고!
“주군.”
“주군.”
“능 공자.”
“이보게.”
“……”
능운비가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자, 다들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니 근데, 진산 당신까지 왜 이래?
종남이면 종남답게 그냥 모른 척하라고!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선 도저히 매몰찬 거절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 니가 결정한 거다.
내가 충성하라고 요구한 게 아니야.
알겠지?
“휴우, 섬서 지부장.”
“예! 주군!”
“앞으로…… 잘 부탁하오.”
“감사합니다, 주군! 이 곽희영! 영명하신 주군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목숨을 바쳐 충성할 것입니다!”
“……”
곽희영이 급기야 땅바닥에 머리까지 찧어 대며 감격스러움을 표출했다.
모두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망할 놈들…… 사람이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고 있는데 말릴 생각은 안 하고……
“자, 그만 일어나지. 속히 조사해야 할 테니까.”
“예, 주군! 섬서 지부장 곽희영이 모시겠습니다!”
“……”
한껏 고무된 곽희영이 보무도 당당하게 앞장선다.
떨거지가 또 늘어 버렸다.
……젠장, 될 대로 돼라.
* * *
신평장에서 조금 떨어진 객주 거리.
줄지어 늘어선 객점 중 하나에 공태석이 죽은 현장이 있었다.
이미 새벽부터 자리 잡은 섬서 지부의 무인들이 눈을 흉흉하게 뜨고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기에, 행인들은 멀찍하게 떨어져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뭔 일이야?”
“몰라, 마교인이 흉수라더니…… 마교가 조사를 한다는데?”
“뭐? 그럼 마교가 흉수가 아니야?”
“종남파가 함께인 것을 보면 그런 모양이야.”
“흐흠……”
능운비가 진산을 비롯해 종남파 무인들을 이끌고 나타나자 사람들의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섬서 지부의 이평산이 주군을 뵙습니다.”
능운비가 다가서자 살변의 현장을 지키던 무인이 급히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너도 주군이냐?
이 새끼들…… 허락도 받기전에 지들끼리 이미 결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현장은?”
“시신은 물론이고 현장이 훼손되지 않도록 물 샐 틈 없이 보존하였습니다, 주군.”
“좋아. 잘했어.”
“감사합니다, 주군!”
능운비가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자 이평산이 감격하며 고개를 숙였다.
“주군께서 계신 곳이다! 섬서 지부의 무인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 지부장님!
곽희영이 다시 한번 언질을 주자 무인들이 더욱 흉흉한 눈빛을 뿜어내며 주변을 경계했다.
“지부장.”
“예, 주군!”
“저 눈빛들 좀 어떻게 해라.”
“예?”
“민폐잖아.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응?”
“아! 알겠습니다!”
능운비가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리자 곽희영이 퍼뜩 알아듣고 다시 명했다.
“전부 눈 내리깔고 감시해라!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예, 지부장님!”
흉흉한 눈깔 그대로 시선만 내리깔았다.
그게 더 무섭다, 이 자식들아.
마기를 기세등등하게 내뿜지나 말든가.
다른 명을 내리면 또 무슨 꼴을 보게될지 모른다 여긴 능운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객점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하긴, 손님을 받지 못했을 테니.
더욱이 새벽부터 찾아온 마교인들의 기세가 원체 흉흉하였던 것인지, 한데 뭉쳐 있는 객점 주인과 점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봉쇄도 좋지만…….
“이보시오, 객점주.”
“예? 엡!”
“미안하오.”
“아, 아닙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말만 그럴 것이다. 겁을 잔뜩 먹었으니 아니라 할 뿐, 속으로는 갖은 욕을 쏟아붓고 있을 게 틀림 없었다.
마교 놈들 때문에 장사도 못 하고, 소문은 소문대로 날 텐데 앞으로는 또 어쩐단 말인가?
“지부장.”
“예, 주군!”
“우리로 인해 객점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야.”
“예?”
“지부에서 충분히 보상토록 하고, 혹여 흉흉한 소문으로 인해 손님이 끊어진다면 지부의 무인이 조석으로 찾아와 식사를 하도록 해. 값은 반드시 지불토록 하고.”
“아! 알겠습니다. 명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능운비의 말에 그 뒤에 있던 이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심한 배려가 아닌가?
어떤 무인도 능운비와 같은 배려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안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설사 종남이라고 해도.
“이런, 내 능 공자를 보니 새삼 반성하는 마음이 드는구려.”
“예?”
“항시 민가부터 신경 써야 하는 것을…… 내오늘 하나 배웠소.”
“……”
당연한 걸 배웠다고 할 필요까지야.
“일산.”
“예, 대사부님.”
“똑똑히 보고, 본산에 빠짐없이 전하라.”
“……”
“마교와 정파라는 굴레 이전에 능공자의 행동이 옳다는 것을 종남의 제자들에게 항시 마음속으로 상기토록하고, 다음부터 배워 행하라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진산의 말에 장일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역시 조금 놀라고 있었다.
능운비라는 사내.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이 마교에 대해 가지고있던 편견을 바꿔 놓고 있었다.
“능 공자, 살변의 현장은 이층 내실입니다.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면 제가 살펴봤던 그대로일 것입니다. 독살당한 기녀의 시신도 공태석 옆에 두었습니다.”
“예.”
장일산의 말에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틀. 방치된 시신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긴 충분한 시간이었다.
“음…….”
천으로 코 아래를 가린 능운비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두 구의 시신이 보였다.
공태석과 기녀.
공태석은 술을 마시던 중에 칼을 맞은 것인지 앉은 자세 그대로 쓰러져 있었고, 기녀는 외부에서 독살당한 뒤, 옮겨진 터라 가지런히 누여 있었다.
한때 암살자로서 그 명성을 날려 온 능운비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상황이었다. 매도 맞아 본 놈이 잘 맞고, 살인도 해 본 놈이 잘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이런 것까지 잘하면, 되려 의심을 사게 될 게 뻔했다.
또한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암살자가 옆에 있는데 굳이 나설 이유가 있겠는가?
“향아.”
“……제가 해요?”
“어. 이 방면에선 니가 최고니까.”
“쳇!”
엄지손가락까지 내밀어 주는 능운비의 지시에, 향이가 코를 찡그리면서도 시신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곤 능수능란하게 시신을 살폈다.
“흠, 앞에서 맞았네요.”
“응? 그게 무슨 소리요?”
“살이 안으로 말렸어요. 뒤에서 맞으면 상처가 이렇게 안 남아요.”
“예?”
역시…….
향이의 확정적인 말에 능운비가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의 생각과 같다.
공태석은 정면에서 칼을 맞았다. 심장을 꿰뚫은 칼이 일격에 그 숨통을 끊었다.
하지만 고작 슬쩍 살핀 것만으로 확정 짓는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인지, 장일산과 그 주위에 있던 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향이는 그들의 반응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반항한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면식범이네요.”
“아는 자라구요?”
“예.”
향이가 단언하는 그 말에 능운비는 곧바로 함께 있던 염성인의 표정부터 살폈다.
……새끼, 아주 썩어 들어가네.
하지만 벌써 너를 범인으로 지목하긴 이르지.
“염 대인”
“예?”
“혹시 의심 가는 사람은 없습니까?”
“……예. 저는 도무지.”
염성인의 말에 능운비가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모른다 이거지?
그래, 끝까지 발뺌해 봐라.
사리사욕 때문에 사람을 죽여? 이참에 아주 먼지까지 탈탈 털어 주마.
너는 물론 너와 관련된 새끼들까지 전부 찾아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