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44
화창한 아침.
능운비 일행은 화산을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검선과 독고성은 물론, 장문인과 장로들까지 잔뜩 나와 그들을 배웅했다.
내 참, 마교를 환송하는 화산이라니…….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하지만 능운비의 생각과는 달리 화산으로서는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덕분에 독고성이 마음을 돌리지 않았던가?
“능 공자, 큰 은혜를 입었소.”
“예? 아…… 뭐.”
청진의 말에 능운비가 쓴웃음을 지었다.
은혜는 무슨. 한 게 없는데 자꾸 저리들 감사하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부디 마교의 권좌에 오르길 바라겠소.”
“……”
능운비는 그저 웃기만 했다.
누가 교주 하겠대?
정작 본인은 생각도 없는데, 검선씩이나 되시는 분까지 나서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해 주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다음에 만나면 운학이 반드시 이길것이니 기대해도 좋을 거다, 암!”
“……”
독고성은 먼 미래의 승부를 위해 결의를 다졌다.
하, 그럴 일 없대도.
탈 마교를 꿈꾸며 기회를 노린 지가 언젠데, 왜 운학과 쓸데없이 싸운단 말인가? 한편이 되어 마교와 싸운다면 모를까.
“허허, 삼공자. 가시는 길이 평안하도록 내 그대를 위해 축언을……”
“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청진의 말에 장문인이며 장로들이 능운비를 둘러싸려 하자, 진산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자네들 미친 겐가?”
“응?”
“능 공자가 마공을 익혔음을 잊은게야?”
“아!”
“마인에게 축언이라니, 객사하라고 저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
진산의 말에 검선과 화산의 수뇌들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실수했구만. 왠지 남 같지 않아서…… 뭔가 정파 같은 느낌도 들고…….
“쯧쯧. 나이를 적게 먹은 것도 아닌데, 어찌나 그리 생각들이 없는 겐지.”
진산이 혀를 차며 도사들을 나무랐다.
“자, 가세. 굳이 화산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서둘러 길을 재촉해 정무맹으로 가세.”
“예.”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드디어 정무맹이다.
애초에 능운비의 마음은 오직 그곳만을 향해 있었다.
물론, 화산에서 무언가를 얻긴 했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다들 심득이라하니 잊지 않고 되새겨 둘 참이다. 괴팍한 노인은 둘째 치고, 설마하니 청진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화산의 매화라…….
“참, 아이야.”
“……예?”
막 떠나려던 그때, 독고성이 향이를 불렀다.
“화영에게 안부 전해 주거라. 살아있다면, 언젠가 꼭 봤으면 좋겠다고.”
온화한 미소와 함께 건넨 말에 향이가 이전에 보여 준 적 없던 공손함으로 고개를 숙여 답했다.
“예, 보중하십시오.”
“오냐. 그만 가 보거라.”
먼 길 떠나는 손녀를 보는 듯한 독고성의 따스한 눈빛을 뒤로하고, 능운비 일행은 그 길로 화산을 떠났다.
“향아.”
“왜요?”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대체 무슨 관계냐?”
“……”
“말이나 행동으로 봐서는 보통 관계가 아닌 것 같던데……. 이상하잖아? 마교인과 화산파의 전대 고수가 그런 관계라는 게.”
산길을 내려가며 묻는 말에, 향이가 능운비를 빤히 쳐다보다 피식 웃었다.
“제가 마교라고 한 적은 없는데요.”
“응?”
그건…… 그렇네.
생각해 보니, 향이가 스스로를 마교인이라고 했던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목표가 무엇이던가?
교주 목 따기가 아니던가.
“흠, 그럼 뭔데?”
“……차차 알게 될 겁니다. 교주가 되시고 나면.”
향이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더 물어도 답해줄 생각은 없을 듯했다.
젠장…… 대체 뭔지 더럽게 궁금하다.
하지만 뭐 어떠랴? 굳이 세상 모든일을 알 필요가 있을까?
괜히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다.
더욱이 자신은 애초에 교주가 될 생각도 없고, 잘하면 이번 정주행에서 삶이 바뀌게 될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정주만 생각하자.
능운비는 머리를 휘휘 저어 생각을 떨치고, 산길을 내려가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이, 이보게! 천천히 가게.”
“먼저 화음현에 가서 일행과 합류해 기다리겠습니다!”
“……”
경공까지 펼쳐 가며 내리막을 질주하는 능운비와 그 뒤를 따르는 향이의 모습에 진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하고는, 모처럼의 나들이에 밤잠을 못 이루는 어린아이 같구만.”
꽤 신나 보였다.
어쩌면 정말 나들이일지도 모르겠다.
담운천이 그랬듯, 교주가 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경쟁자를 넘어야만 하는 마교의 제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독하겠는가?
어리디어린 잠룡이다. 아직은 무엇이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나, 그저 잠시 드러낸 모습에 천하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문득 청진과 나누었던 말이 떠올랐다.
능운비의 미래. 마교의 교주가 된 그의 모습은 대체 어떠할까?
그리고 그때의 중원은…….
“현아.”
“예, 스승님.”
“화산이 움직이는구나.”
“……”
“현천께서 마음을 독하게 먹었고 검선이 뒤를 받치려 하니, 앞으로 화산은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예.”
“운학은 재능이 많은 아이다.”
“압니다. 내내 패했었으니까요.”
“화산과 종남은 다르다. 그들의 수련을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
“다만 많이 보고, 많이 느끼거라, 그를 통해 강해져야 한다. 나는 내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찌 강해짐에 왕도가 있겠느냐?”
“보고, 익히고, 배우겠습니다.”
“장하다. 네가 내게서 사일을 익혔듯, 또한 신속의 보법을 익혔듯…… 방법은 달랐으되 결론을 같았음이다.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터, 더욱 정진하거라.”
“이미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능 공자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옳다.”
웅현의 답에 진산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이 그러하듯, 종남도 나아가는것이다.
독고성과 청진이 마음을 먹었듯, 자신도 웅현의 거름이 되어 줄 참이다.
그러다 문득, 그 모든 것이 능운비의 또 다른 재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화(感化).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향이 그 주변을 변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헛헛, 벌써부터 너희가 만들어 갈 중원의 모습이 기대되는구나. 속히 가자, 객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느냐?”
“예! 스승님!”
가볍게 경공을 펼치는 진산을 따라, 웅현의 육중한 일보가 화산을 잘게 떨어 놓았다.
* * *
화음현에서 삭월대와 합류한 능운비 일행은 곧장 삼문협(三門峽)으로 향했다.
섬서와 산서, 하남.
세 곳 성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물길은 일찍이 수많은 이들의 터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터전이 미어터지는 중이었다.
삼문협에서 배를 타고 정주로 향하려는 북방의 무인들과 구룡쟁투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구경꾼들에 이르기까지.
아직 시일이 제법 남았으나, 이미 갈길을 재촉한 이들이 삼문협 인근의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물론, 화산을 떠난 능운비 일행도 그 대열에 편승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이들과의 차이라면, 능운비 일행은 그 수많은 인파의 일부인 동시에 원인이었다.
괜히 소문이 발 없는 말이라 하겠는가?
또한 왕천의 부단한 노력 덕에 천하에 그 소문이 자자해진 참이었다.
그리고 그 소문의 주인공, 마교 삼공자 능운비.
일월기를 늠름하게 앞세워 삼문협의 입구에 도착한 그들의 모습에,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마교다!”
“저자가 삼공자인 모양일세.”
“그놈 참 잘 생겼구만.”
“뒤에 따르는 무인들도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네.”
벌써부터 이곳저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괴롭혀 대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놈들, 마교 따위가 어찌 감히 삼문협을 버젓이 활보한단 말인가?”
“그러게나 말일세.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저 흉악한 놈들을……”
“저 멀쑥한 얼굴 좀 보게. 사람 홀리려고 저리 생긴 게지.”
소곤거리지만 다 들린다.
누군가는 멸시가 가득한 말을 쏟아냈고, 누군가는 세상 한탄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조용히 가고 싶었던 능운비로서는 정말이지 짜증나는 상황이었다.
“깃발 좀 내리라니까!”
“안 됩니다. 정식으로 초대받아 가는 자린데, 이 정돈 해야죠.”
“사람들이 본다고!”
“보라고 그런 겁니다.”
벌써부터 시선을 의식한 능운비와 왕천의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참, 이것도 빨리 걸치세요.”
“……”
왕천이 내민 것은 피풍의였다.
본인도 그렇거니와, 주승이며 삭월대가 전부 같은 차림이었다.
시커먼 것이 누가 봐도 마교의 복장이다.
하아, 화음현에서 대기하랬더니 이딴 걸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왜 자꾸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단 말인가?
“왕천. 내가 전에 말했지? 이딴 짓좀 하지 말라고.”
“이딴 짓이라니요? 그럼 마교 체면에 무복 하나 달랑 입고 갑니까? 정무맹인데? 그리고 삼문협에 자리 잡은 우리 지부 사람들은 또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주군께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 주셔야 그들도 어깨를 쫙 펴죠.”
“……”
“제발 대표로서의 책임감 좀 가지세요.”
왕천의 말에 능운비가 연신 한숨을 쉬어 댔다.
“헛헛, 이보게. 입지 그러나? 반들반들한 것이 제법 비싸보이는데……”
“입기는 뭘 입습니까?”
“그러지 말고 입게. 수하들 성의도 있는데.”
“……”
그 성의가 문제다.
마교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인데, 이러면 누가 봐도 마교이지 않은가?
일월기에 피풍의까지…….
하아, 그래.
입자.
까짓거 입어 주자.
죽은 놈 소원도 들어주는 판에 산 놈 소원 하나 못 들어줄까?
어차피 이번 정무맹 행에서 그들과의 관계가 어찌 될지도 모를 일이 아니던가?
이 정돈 해 줘야지. 그래야 헤어질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지.
“줘!”
“흐흐.”
능운비가 손을 내밀자 왕천이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피풍의를 입혔다.
펄럭!
힘차게 펼쳐졌다가 능운비의 몸을 덮는 모습이 참으로 멋들어졌던 것인지, 주승과 삭월대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허, 옷이 날개로구만? 그거 하나 걸쳤다고 아주 위엄이 철철넘치네그려.”
“설마하니 옷이 날개겠습니까?”
“응?”
자고로 차림의 완성은 얼굴인 법이다. 옷이 날개가 아니라, 자신이 걸쳐서 멋져 보이는 거다.
그리고 막상 입고 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뭔가 소속감 같은 것이 생긴달까?
“……!”
하지만 능운비는 이내 고개를 휘휘저어 머릿속에 든 생각들을 지워 버렸다.
휴, 하마터면 스스로를 마교인으로서 자각할 뻔했다.
옷 하나 걸쳤다고 동질감이라니, 이건 아니지.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다. 정이라는 것이 무서운 법이라, 깊어지면 떼기만 힘들어지니까.
“자, 가시죠! 이미 삼문협에 자리 잡은 마교 지부에 연락을 보내 두었습니다. 주군께서 오시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진산 어른도 기대하십시오. 그동안 객으로 대접을 받았으니, 오늘은 저희가 진산 어른을 모시겠습니다.”
“오, 마교의 객이라? 그것 좋지. 내 기대함세.”
사뭇 늠름하기까지 한 능운비의 모습에 왕천이 보무도 당당하게 길 안내를 자처했다.
그래도 저리 좋아하는 것을 보니 썩 나쁜 기분은 아니다.
능운비는 피식 웃으며 지부가 있다는 곳을 향해 뒤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막 강과 인접한 객점 거리에 도착했을 때, 앞서 걷던 왕천이 무언가를 찾듯이 고개를 홱홱 돌렸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것인지,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이것들이…… 내 분명히 연락을 보냈는데……”
왕천이 열심히 찾고 있는 이들은 능운비를 마중 나왔을 삼문협 마교 지부의 무인들이었다.
이미 소문이 자자하고 그 위명이 하늘을 찌를듯하니, 지부장이 직접 나와서 맞이해야 함이 마땅하거늘…….
“왕천, 뭐해? 안 가냐?”
“아, 잠시만……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시죠.”
“……?”
능운비가 갈 길을 재촉했지만, 왕천은 웃으며 머뭇거렸다.
이건 체면문제다.
응당 마중 나온 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지부에 들어가야 한다.
와중에 진산에게 호언장담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상하다. 안 올 리가 없는데……”
조바심을 느낀 왕천이 목을 쭉 빼고 이곳저곳을 쳐다보던 그때.
“빌어먹을 마교 놈들이 예가 어디라고 허락도 없이 돌아다니는 게야!”
난데없는 고성이 능운비의 귀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