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52
웅표가 다시 배 위로 올라온 것은 수면 위와 아래를 세 번쯤 오르락내리락했을 즈음이었다.
죽지 않으려 열정적으로 구난술을 발휘한 수적들의 노력 끝에 정신을 차린 웅표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했다.
“총채의 위치는 모릅니다! 하지만 연락을 보낼 수는 있습니다. 명하신다면 제가 당장에 총채주님께 연락을 보내겠습니다!”
친절하고 몹시 자세하게.
“진작 그럴 것이지. 서하채의 위치는?”
“이곳에서 뱃길로 한 시진쯤만 가면됩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웅표가 부리부리하게 뜬 눈으로 노려보며 대답하자 능운비가 만족스럽 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답이 빨라서 좋군. 그런데 눈빛이며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데?”
“예?”
“고분고분해지려면 아직 멀었지?”
“……!”
또르륵 굴러간 능운비의 눈동자에 황톳빛 수면이 담기자 웅표가 기겁하며 외쳤다.
“아니오! 고분고분하오! 내 무엇이든 말할 준비가 되었소!”
“알아, 당연히 그렇겠지. 그런데 왜 반존대야?”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묶은 밧줄을 잡자 웅표가 사력을 다해 소리쳤다.
“아닙니다! 제가 물을 너무 먹어서 어휘 선택에 실수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예?”
“우리 마교는 그런 실수도 용납지않는 법이라서.”
언제부터 그리 마교를 사랑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히죽 웃은 능운비가 웅표를 황톳빛 물속으로 냅다 던져 버렸다.
“자, 잠끄아아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웅표의 목소리가 강 위에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
풍덩!
“목적지는 서하채, 전속력으로 달린다.”
“예?”
손가락을 쭉 뻗어 전면을 가리키는 능운비의 모습에 수적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뭐 해, 부채주?
“……”
“배 안 몰아?”
능운비가 한쪽 눈을 찌푸리자 부채주, 배성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아니라 사람이 빠졌다.
그런데 가자고?
아무리 줄에 매달려 있다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신들이 수적질로 먹고사는 범법자라고는 해도 이는 너무 인간 이하로 대접하는 처사였다.
더욱이 물에 빠진 것은 자신들이 모시는 우두머리가 아니던가?
“너도……물 좀 먹을래?”
“……!”
빙긋이 웃는 그 모습에 배성렴이 힘차게 외쳤다.
“돛을 펴라!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라! 목적지는 서하채! 전속력으로 달린다!”
배성렴은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수적들을 진두지휘했다.
웅표가 뭐? 채주인데 어쩌라고?
수적에게 의리는 무슨? 일단은 내가 살고 봐야지.
화아아악!
배가 힘차게 물살을 헤치며 나아갔고, 배 끝에 매달린 웅표도 힘차게 딸려 왔다.
“오고로록, 캭칵, 크허협!”
서하채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물을 마시면서.
“흠, 주군께서 이전과 달리 뭔가 열의가 넘쳐 보이지 않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평소와 달리 너무 적극적이신데요?”
“바람직한 현상이긴 한데…… 그래서 왠지 더 불안해.”
“저두요.”
어쩐지 신이 잔뜩 난 듯한 능운비의 모습을, 왕천과 주승이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능운비로선 그럴 만도 했다.
이제껏 중원행을 ‘그분’에 대한 그리움의 해소만으로 생각했던 그다. 이전삶의 전부와도 같은 이 였으니까.
하여 복수보다는 마교를 떠나 정파로 돌아가는 것이 먼저라 생각했다.
뭐든 정파의 이름 아래에서 하고 싶었으니까.
혹자는 그런 그를 멍청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마교라는 막강한 뒷배를 두고 어찌 그리 돌아가느냐고.
물론 능운비도 그 길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리되면 중원이라고 무사할까?
전쟁의 참화(慘禍)에 수많은 이들이 고통받을 것이다.
죽을 놈만 죽고 망할 집안만 망해야지, 다른 이들이 피해를 보면 되겠는가?
다만, 머리는 그러해도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팽가와 제갈을 보는 순간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 혈육들이 하는 짓거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놈들은 여전했다.
……그분께선 결국 자신이 품었던 대의(大義)를 실현치 못한 것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자신이 죽은 뒤, 그들의 감시가 더욱 심해졌을 테니까.
수족을 전부 잃어버린 그가 홀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바른 말이라 해도, 그 말을 실현해 줄 힘을 가지지 못하면 혼잣말보다 못한 것이 무림이다.
누구도 듣지 않을 테니까.
정치수가 말한 오 년 전, 그분께서 어찌 그 빌어먹을 놈들과 함께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홀로 고민해 본다 한들 답을 찾기는 어려울 터. 정주로 가서 만나 뵈면 알게 될 것이다.
그전까지 작은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래, 이건 사전 준비다.
마교 전체가 밀고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당장에 팽가와 제갈을 무너뜨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약만 조금 올려서 원수들의 이목을 마교로 집중시켜 놓는 것이다.
과거처럼, 자신들의 적이 내부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강렬하게.
그리고 그사이, 정파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두고 봐라, 더러운 위선자 놈들아.
내 그분을 만나 다시금 정파의 이름으로 서게 되는 날, 너희가 선의라는 포장 뒤에 숨어 저질러 온 모든 죄를 세상에 낱낱이 까발려 주마.
나의 죽음에 대한 묵은 빚도 받아 낼겸.
대놓고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정마협약에 따라 합법적으로 조지는 거다.
구룡쟁투까지는 아직 열흘이나 남아있지 않은가?
길다면 길고 짧다는 짧은 그 시간을 최선을 다해 활용하여 엿을 먹여 주마.
정무맹에서 똥 씹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볼 팽가와 제갈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크흐흐흐흐! 속히 가자! 더욱 빠르게 배를 움직여라!”
“예!”
뱃전에서 호령하며 수적들을 독려하는 능운비의 모습에 왕천과 주승은 더욱 불안해졌다.
“호, 호위장, 어째 주군의 웃음이 아까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데요?”
“젠장…… 또 무슨 사고를 치시려고. 수채를 만나겠다 하셨을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쏟아진, 아니 아예 고이지도 않고 스며들어 버린 물이라 다시 담기에는 글렀다.
결정된 이상 최선을 다해 돕는 수밖에.
* * *
서하채는 섬처럼 강 위에 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뗏목 위에 전각을 지어놓은 것 같았달까?
이미 과거에 다양한 형태의 수채들을 본 경험이있는 능운비를 제외하고 모두가 신기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저리 커다란것이 물 위를 떠다닐 줄이야.”
“정말 대단하군요.”
감탄이 이어지던 그때, 서하채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수적하나가 배를 유심히 살피다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이어 경박한 타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긴, 배는 제 놈들 것이 맞을 터이나 그 위에 탄 이들의 모양을 봤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채주인 웅표는 물론이고, 다른 수적들도 하나같이 검은 옷으로 칭칭 동여맨 놈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으니까.
규모가 큰 만큼 남아 있던 수적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몰려나온 수적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자랑하듯 들고 외곽을 거멓게 채웠다.
하지만 그래 봐야 일개 수채에 머무는 놈들이다. 그중 채주나 부채주만큼 강한 놈이 있을 리는 없었다.
즉, 양은 많아 보여도 질이 떨어진다.
“뭐, 오래 걸리진 않겠네.”
슥 하니 수채를 훑어본 능운비가 대수롭지 않게 명을 내렸다.
“왕천.”
“예, 주군.”
“곧 십 장 거리다.”
“알겠습니다. 모두에게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마라.”
“압니다.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왕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삭월대에게 명을 전하려던 그때.
쿵!
“……?”
별안간 누군가 발을 힘차게 굴렀다.
아직은 십 장보다 한참 전이었다.
자신은 몰라도, 왕천과 주승이 한걸음에 뛰어넘기에는 먼 거리였다. 삭월대의 무인에게는 더더욱 무리였다.
하지만 뛰어넘고도 충분한 능력을 갖춘 단 한 사람.
향이가 별안간 수채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멀고 먼 거리를, 물 위를 차서 재도약까지 해 가며 표표하게 날아갔다.
그런데 니가 왜 여기서 나서?
시켜도 잘 안 들어 처먹으면서 갑자기 왜 이렇게 적극적인 건데?
향이의 행동이 의아하기만 했던 능운비의 눈에, 수적들이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휘둥그레졌던 능운비가 잠시후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주먹과 발이다.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옮는다더니, 함부로 살생하지 않는 자신과 함께 다녀서인지 손에 사정을 둘 줄 알게 된 모양이다.
그리고 저 움직임.
언제 봐도 참 대단하다. 전과는 달리 폭풍같이 몰아붙이는 움직임이 흐릿하게나마 보였기에 더욱 감탄이 나왔다.
동시에 내심 뿌듯했다.
자신이 언제 이리 성장했단 말인가?
능운비가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있는사이, 수채를 한 차례 휘저어 놓고 배로 돌아온 향이가 웅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야! 왜 아무것도 없어?”
“예?”
“수채 안에 먹을 게 왜 아무것도 없냐고!”
“……”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려 살기등등하게 눈을 부라리는 그 모습에, 웅표가 숨까지 헐떡이며 말했다.
“그, 그럴 리가요? 식량 창고에 먹을것이 가득……”
“그래, 있었지. 고기! 쌀! 콩! 감자!”
“……”
“생선은!”
“예?”
“생선은 왜 없어! 생선!”
“……”
불같이 화를 내는 향이의 모습에 겁을 먹은 와중에도 웅표는 당황스러운 눈빛을 금치 못했다.
생선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이런 젠장할! 수적이면 당연히 생선이 있어야지! 괜히 산지야? 내가 수채에 온다고 해서 내심 얼마나 기대한 줄 알아? 아냐고!”
화가 난 것이 그 때문인 모양이다.
어쩐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뛰어 들어가더라니…….
“향아. 그만해라. 그러다 애 숨 막혀 죽겠다.”
“지금 그만하게 생겼어요? 내가 지금 얼마나 배가 고픈데! 내내 맛도 없는 술만 먹었잖아요!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태백주라도 넉넉히 싸 들고 올걸.”
이까지 바득바득 갈아 대는 모습을 본 능운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 식충이 녀석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게 무슨 맛집 탐방이냐? 엄연히 일하러 온 거라고!
하지만 저 씩씩거리는 걸 진정시키려면 뭐라도 하나 던져 줘야 할 것 같았다.
향이로부터 웅표를 겨우 떼어낸 능운비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채주.”
“옙!”
수적이었던 그를 물과 더욱 친숙하게 만들어 준 덕분일까?
부르자마자 대답이 곧바로 튀어나온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생선은 왜 없지?”
“예?”
말투는 차분했지만 결국 같은 질문이다.
능운비까지 생선의 행방(?)을 묻자, 웅표가 울상을 지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생선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삼공자님, 생선을 식량 창고에 두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
뭘 또 생선에 천부당 만부당 씩이나…….
“강에서 사는 저희에게 생선은 너무도 흔한 음식입니다.”
“그렇긴 하겠네. 그래서?”
“물리고 물린 생선이 뭐가 귀하다고 식량 창고에 보관씩이나 한단 말입니까?”
“흐흠.”
하긴 그렇다.
애초에 질문이 너무 멍청했던 것이다.
물 위에 떠다니는 배와 다를 바가 없는 서하채는 사방이 강이다. 생선을 먹고 싶으면 그때마다 잡으면 될 것인데, 뭐 하러 보관을 한단 말인가?
“원하신다면! 저희가 당장에 잡아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웅표의 말에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향이를 보면 그래야 할 듯싶었다.
“좋아, 그럼 일단 서하채를 가까운 강변에 정박시키도록 하지.”
“예? 육지에요?”
“그래.”
“……왜요?”
“육지 사람에겐 육지가 편한 법이니까.”
“아!”
능운비의 말에 웅표가 무슨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탄성을 터트렸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그리 감탄할 것까지야.
그리고 연락을 보냈으니 곧 총채주가 올 것 아닌가?
이곳은 물 위다. 늘 그곳에서 살아온 수적들에게는 제집처럼 익숙한 곳이나, 자신에게는 불리한 위치다.
서하채 정도야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총채주는 어렵다.
하면 외적인 도움을 받아야지.
일단은 지형적인 이점부터 고려해야한다.
싸움이 편한 위치.
자신들에게 익숙한 위치.
그러니 당연히 육지에서 기다려야만 한다. 혹여 일이 여의찮게 돌아가면 도망가기도 쉬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