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24
뜬금없는 방문이었다.
와중에 닫아건 문까지 박차고 들어왔다.
아무리 대호법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와중에 휘하까지 줄줄이 달고…….
일단은 교주의 명으로 왔다기에 차를 내주었으나, 언짢은 티를 팍팍 내는 능운비였다.
그런데 양선이 꺼낸 얘기가 심상치 않았다.
“왕천이요?”
“예.”
“……”
양선의 말에 능운비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려 왕천을 째려보았다.
늦게 오긴 했지만 정말로 소피를 보고 온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지난밤 술자리에서도 아무 말 없지 않았던가?
“헤헤.”
능운비의 눈빛에 왕천이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뭔가 ‘나 잘했지요?”하고 으쓱거리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랄까?
아, 저게 진짜…….
마시던 찻잔을 얼굴에 던져 버리고싶다.
자신이 어째서 참았던가? 마음만 먹었으면 여진강은 물론이고, 그 호위들까지 묵사발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오직 관심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교주와의 대련, 설산장의 지지에 이어서 또 사람들의 주목을 사게 될까봐.
“며, 몇 명이라구요?”
이를 악물고 웃는 능운비의 질문에, 양선이 무덤덤하게 손을 들어 활짝 펼쳤다.
“여섯입니다.”
“아…… 여섯.”
의실에 실려 간 호위들의 숫자란다.
물론 여진강의 호위다. 호위장 추성균을 포함한.
작게는 손가락 골절에서, 크게는 팔다리가 부러지고 코티가 내려앉는 중상까지.
양선이 무덤덤하게 피해 상황을 옮어 주었지만, 굳이 상세하게 알고 싶진않았다.
“칠장로님의 말로는 상처에 동상이 생겨서 잘 낫지도 않는다고 하더군요.”
“동상까지……요?”
“예.”
누가 설산장의 큰아들 아니랄까 봐 알차게 빙공까지 사용해 주신 모양이다.
“신월각과 혜심정(慧心庭)에서 정식으로 항의는 하지 않았으나, 호위들 간의 마찰로 생긴 일이니만큼 제가 조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하지만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
“앞서 조사해 보니, 잘못은 그쪽에서 한 것이 확실하더군요.”
“그런가요?”
양선의 무덤덤한 위로에도 능운비는 심드렁하기만 했다.
빌어먹을, 누구 잘못인 게 뭐가 중요한가?
또 관심을 받아 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예. 추성균이 삼공자께 먼저 금나수로 공격을 가했다는 것을 시인했습니다.”
“……”
“이공자께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며 사과하라 명하신 것을 따르려던 길에 왕천과 맞닥뜨린 모양입니다.”
그 말에 아무 관심도 없이 양선의 말을 흘려듣던 능운비의 눈빛에 황당함이 어렸다.
“뭐가 어째요?”
“왜 그러시죠?”
“……”
“제가 조사한 바는 그러합니다. 이공자께서도 그리 증언하셨구요.”
“……”
“혹 달리 아는 내용이 있으십니까? 말씀하시면 조사에 참고하도록 하지요.”
“……아니요. 없습니다.”
능운비는 속으로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일이 그렇게 된 건가?
정말 어이가 없다. 부하들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제 놈은 쏙 빠져나갔다는 말이 아닌가.
기실, 여진강이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제자들 간의 다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닌지라, 지난밤의 마찰 정도는 사소하기 짝이 없다.
호위 여섯의 부상일 뿐이지 않은가.
그간 능운비가 겪은 암살과 독살 등등의 위협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조사? 범인?
그딴 건 애초에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조사도 대충이고, 결과는 흐지부지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기억할 터다.
후계에 도전했으나, 암습에 견디지못할 만큼 약했다고.
뭐, 이해는 한다. 괜히 마교겠는가?
그런데 놈은 부하들을 방패막이 삼아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사건의 내막을 아는 능운비로서는 무척이나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모르는 이들은 양선의 조사 결과를 믿을 것이다.
놈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뻔하다.
지금껏 사람들의 인식 속에 심어 둔 평판을 믿는 것이다.
기존의 능운비나 사람들이 여진강에 대해 가진 인식은 한결같았다.
교주위에 관심 없는 제자. 오히려 군사가 되고 싶어 하는 자.
웃기는 소리. 그건 놈이 오랜 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들여 각인시킨 모습일 뿐이다.
기존의 능운비에게도, 다른 제자들에게도.
여진강에 대한 기억과 객점에서 보인 모습만 봐도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는 일이었다.
놈은 영민한 짐승이 되어 싸움을 피해 왔다. 더러는 충동질하고, 더러는 싸움 붙이기를 반복하며 제자들이 서로를 물어뜯도록 유도한 것이다.
아마 약해지길 기다렸겠지.
뒤로 물러나 발롭을 감춘 채,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그리고 그 승자는 멀쩡할리 없다.
놈은 그저 긴 싸움에 지친 상처투성이 짐승의 마지막을노리면 된다.
얼마나 쉽겠는가?
다만, 놈은 자신에 대해 몰랐기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상대가 능운비의 기억을 가진 척월린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행동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쯤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제 거처를 때려 부수며 화풀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큭, 큭큭큭.”
“……왜 웃으십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큭큭.”
“……?”
양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다.
뭐 하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겠는가?
어차피 떠나 버리면 그만인데.
싸움은 니들끼리 해라. 나는 교주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니까.
“여하튼 알겠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대충 조사가 끝난 듯하고, 저쪽에서도 잘못을 시인했다 하니 더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하면 사건이 얼추 일단락된 듯하니 다행이군요.”
“자, 그럼 대충 이야긴 끝난 건가요? 제가 좀 피곤해서…… 배웅은 왕천에게 부탁해도 될까요?”
“아, 한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이번 일로 다들 걱정이 많습니다.”
“걱정요?”
“예. 교주님의 탄신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아닙니까? 하여 불미스러운 일을 대비하라는 명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요?”
“제가 직접 호법부의 무인들과 함께 삭월각을 지킬 것입니다.”
“……”
여진강의 꼬라지를 고소해하며 웃던 능운비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월 하신다구요?”
“호위 입니다.”
“……왜요?”
“이유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탄신연까지, 제가 직접 삼공자님의 곁을 지킬 것입니다.”
“……”
한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안 그래도 설산장에서 보낸 놈들이 득실거려서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데……호위를 증원하겠다고?
이러다가 밥은커녕 吾도 함부로 못싸겠다.
“하하, 대호법님. 호위는 지금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사형 쪽에서 굳이 항의하지 않겠다는데…… 호법부까지 나서는 것은 괜한 인력 낭비가 아닐까요?”
하여 최대한 유(柔)하게 말했다.
물론 속뜻은 ‘ 가! 꺼져! 필요없어!’였다.
대호법이라면 알아듣지 못할리가 없을 터인데,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이런 염병, 고갯짓이 어찌나 칼 같은지 살도 베이겠다.
“교주님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라고 제게 명하셨습니다.”
“이런 씨! 왜요! 대체 왜 그런 명을 함부로 내리시는 건데요? 저랑 일절 상의도 없이!”
“교주님께서 상의를 해야 하는 분인가요?”
“……그럴 필욘 없겠죠.”
순간 쫄았다.
뭔 놈이 눈빛이 그리도 무시무시한지.
움찔했던 능운비가 이내 허망한 눈빛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빌어먹을 마교…….
“하나, 그러한 결정을 내리신 이유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삼공자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
양선은 그 말을 끝으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망할 자식. 굳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래, 너는 강해서 좋겠다.
양선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고 있는데,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다행입니다, 주군.”
“……”
“실은 조금 걱정되었거든요. 혹시나 이공자 쪽에서 앙심을 품고 암습이라도하면 어쩌나, 하구요.”
옆을 보니 왕천이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웃고 있다.
걱정된다는 놈이 잘도 사고를 쳤구나.
그런데 웃지 마라. 그 재수 없는 이빨을 몽땅 뽑아서 합죽이를 만들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드니까.
“이제 걱정 없습니다. 대호법께서 직접 지켜 주신다고 하니, 편히 발 뻗고 주무십시오.”
“……”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주군을 곁에서 지킬 것입니다.”
주먹까지 움켜쥐며 다짐하는 왕천의 모습이 참으로 듬직하다.
어찌나 듬직한지, 초롱초롱한 눈깔을 찔러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저걸 호위라고…….
“나가.”
“예?”
“꺼지라고.”
“……저는 근접 호위인데요? 하루 이틀 함께 있으신 것도 아닌데.”
“……”
속없이 웃는 왕천의 해맑은 얼굴을 바라보던 능운비가 찻잔을 힘껏 움켜쥐었다.
“나가! 나가라고! 너 때문에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능운비는 결국 폭발해 버렸고, 목침을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왕천이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나갔다.
탁.
“어휴, 사춘기가 급작스럽게 오셨나? 웃다가 갑자기 역정을 내실 건 또 뭐람?”
문을 닫은 왕천이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왕천.”
“아, 예. 대호법님.”
목침에 맞은 머리를 문지르던 왕천이 양선의 부름에 급히 답했다.
“며칠에 불과하나 잘 부탁한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대호법님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교주님의 지시다. 내게 감사할 필요 없다.”
“……예, 뭐 어쨌든요. 하하. 가시죠, 일단 현재 삭월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양선이 앞서 걷는 왕천의 뒤를 따르려는데, 능운비의 거처에서 집기를 때려 부수는 듯한 와장창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난밤, 능운비가 중원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은 교주가 내린 명.
능운비의 신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라.
즉, 삭월각의 통제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을뿐더러 삭월각 내의 누구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후우, 교주님께서 또 대체 무슨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건지.”
양선은 쓴웃음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 * *
“주군, 준비가 끝났습니다.”
“……”
“주군!”
왕천이 밖에서 벌써 몇 차례나 부르고 있다.
하지만 능운비는 방바닥에 엉덩이를 딱 붙인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토끼처럼 빨개진 눈. 피로에 찌든 듯한 얼굴.
“하아, 빌어먹을 양선.”
능운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양선과 호법부 무인들은 탄신연 날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갔다.
그들은 호위를 철옹성처럼 해 주었다. 빌어먹을 철옹성처럼.
말이 호위지, 사실상 감시가 따로 없었다.
처음엔 까맣게 몰랐다. 한데 양선을 제외한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길래, 이상해서 세밀하게 주위를 살폈더랬다.
그 결과, 그늘진 곳에 은신해 있는 몇 놈을 발견했다.
은신술의 조예가 어찌나 깊은지, 두놈을 발견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신경을 안 쓰면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결국 능운비는 일부러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낮처럼 밝은데 잠이 들 리가 만무했다.
그 와중에 기어코 방 안의 그늘을 찾아서 숨어 있는 놈들이 느껴졌다.
뒷머리가 섬뜩할 만큼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미친놈들이 따로 없다.
교주는 대체 어떻게 이런 놈들을 옆에 두고 잠을 잘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나니, 몹시도 피곤해서 낮에는 꾸벅꾸벅 조느라 아무것도 못 했다.
밤에는 신경이 쓰여서 못 자고, 낮에는 조느라 아무것도 못 하고…….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놈의 마교 빨리 떠 버려야지. 이러다간 신경 쇠약에 걸려서 제명에 못 죽겠다.
“주군! 이제 정말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
왕천이 자꾸만 부른다.
피곤해 죽겠는데…….
“주군!”
“알았어! 알았다고!”
계속된 재촉에 능운비가 겨우 무거운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어냈다.
하아, 가자 가.
탄신연이고 나발이고, 선물이나 바친 다음 대충 졸다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