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29
쩌어엉!
“큭!”
둔탁한 소음과 함께 막청주의 몸이 뒤로 밀렸다.
“큭, 발전 없는 놈 같으니. 네놈이 내 상대가 될 것 같으냐!”
육중한 체구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따라붙은 해공공이 막청주의 복부를 향해 일격을 뻗었다.
“일단 네놈부터 죽이고!”
살기 어린 눈을 빛내며 손을 뻗어 내는 순간.
슷!
“……!?”
공기를 예리하게 가르는 소음과 함께 투실한 뒷덜미가 곤두서는 느낌을 받은 해공공이 공격을 멈추고 황급히 상체를 뒤로 젖혔다.
몸을 물리는 그의 눈동자에 보이는 하얀 선 하나.
자신의 목이 있었던 곳이다.
만약 멈추지 않고 공격했다면?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이런, 아까워라.”
소름 끼치는 목소리와 함께 또다시 날아오는 선들.
해공공은 다급하게 손을 휘둘러 선들의 궤적을 끊어 버렸다.
파캉!
뒤로 한참이나 밀려나 버린 해공공의 눈에, 두 개의 비수를 쥐고 서 있는 향이가 보였다.
“아까워, 정말…… 그냥 창랑 어른 목숨을 빼앗지 그랬어? 그럼 그 두꺼운 모가지도 충분히 자를 수 있었는데.”
“네년이……”
살기 넘치는 표정으로 웃는 향이의 모습에 해공공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살수.
그녀는 살수다. 기척을 감추고 숨어있다가 막청주와 싸우는 틈을 노린 것이다.
“이 비열한 년이……”
“비열? 누가 그래?”
“뭐라?”
“싸움에 그딴 게 어디 있어? 뒈지고 나면 끝이야.”
향이의 말에 해공공이 이를 부득부득 갈아 대며 자세를 취했다.
“오냐, 어디 한번 해봐라.”
그리고 그의 공격이 시작되려 하자, 향이가 다시금 비수를 힘껏 움켜쥐고 막청주의 뒤로 슬며시 물러났다.
“창랑 어른.”
“……”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엔 좀 더 몰아붙여 주셔야 합니다.”
그 말과 함께 스르륵 사라져 버리는 향이의 모습에, 막청주의 얼굴에 온화한 웃음이 머금어졌다.
낚시를 즐기는 막청주는 언제나 낚싯대를 잡은 사람이었다.
한데 지금은 자신이 미끼가 될 줄이야.
와중에 향이가 저 돼지 새끼의 화를 더욱 돋워 놨다.
양손에 머금어진 강기에선 전극이 마구 튀어 오르는 것 같았고, 형형한 두 눈에선 시퍼런 불꽃이 토해지고 있다.
그런데…… 몰아붙여 주라고? 아까보다 더?
아무래도 향이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실은 조금 전 그 일장에 혼신의 힘을 담았었는데…….
“죽여 버리겠다!”
하지만 생각에 빠져 있을 틈은 없었다.
성난 멧돼지가 꽁지에 불까지 붙어서 달려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씨발! 그래, 해 주마! 미끼든 뭐든!”
쾅! 콰쾅!
거친 폭음과 함께 시작된 둘의 싸움이 소요 서원을 쩌렁쩌렁하게 울려 놓았다.
맞부딪칠 때마다 핏물을 삼켜야 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은 했다. 위기에 처한 순간마다 해공공의 빈틈을 엿보던 향이가 놈의 모가지를 알차게 노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왜 꼭 목이 빌 때만 노리냐!
딴 데도 노려!
저기 팔도, 다리도 비었잖아!
투실투실해서 벨 곳도 많구만!
쾅! 쩌저정!
기파가 소용돌이치며 싸움이 격해지던 그 순간.
“제길……”
전황을 지켜보던 제갈천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분명 해공공이 앞서 있다. 하지만 좀처럼 승기를 잡지는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 싸움의 결과는 자신의 승리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쯤 중군이 항산의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을 테니까.
다만 신경이 쓰였다.
“능운비 그놈……”
대체자를 보내고 사라져 버린 그놈이 또 무슨 짓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과거에 그가 누구였는지는 상관없다. 지금의 그는 제천의 제자가 아니라 제천을 뛰어넘은 교주고, 중원을 정벌한 놈이지 않은가?
일단 이곳은 해공공과 군부에 맡기고, 자신은 놈이 무엇을 하려는지부터 알아내야만 했다.
결심을 굳힌 제갈천우가 몰래 빠져나갈 생각으로 슬며시 몸을 물리던 그 순간.
“또 도망가려고?”
“……!”
뒤에서 들려온 종리강의 목소리에 제갈천우가 흠칫 놀랐다.
“이 새끼는 틈만 나면 도망치려고 대가리를 굴리네. 한때 정파의 수장이었다는 놈이 말이지.”
“네놈……”
“네놈이고 뭐고, 너 못 가.”
종리강은 어디서 구한 것인지 손에 쥐고 휘두르기 딱 좋은 굵기의 나뭇가지를 들고 있었다.
“비켜라, 녹림왕. 이미 패배가 확실함을 모른단 말이냐?”
“패배? 몰라 그딴 거.”
“뭐?”
“다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 니놈이 이곳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것 말이다.”
“네놈이…… 이후의 일이 두렵지 않은 게냐! 정녕 내가 천하의 모든 산적놈들을 도륙하게 만들 셈이냐!”
“도륙? 이게 난감한 상황에 빠지니 대가리가 둔해졌나?”
“뭐라?”
“야, 너 때문에 이미 산채가 전부 박살 났어.”
“……”
“안 그래도 내가 밤낮으로 이가 갈리던 참이거든? 이리 와, 남은 인생 벽에 똥칠하며 살게 해 줄 테니까. 캬악! 퉤!”
종리강이 양 손바닥에 침까지 뱉으며 나뭇가지를 움켜쥐었다.
“이, 이놈이……”
“이놈이고 자시고! 넌 오늘 뒈졌어!”
파앙!
두눈을 매섭게 치켜뜬 종리강이 제갈천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빌어먹을.”
해공공에게 도와달라 하고싶었지만, 그는 지금 상대하는 둘만으로도 벅차 보였다.
실력은 앞서나 몸을 빼지 못하고있지 않은가.
쐐애애액!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을 향해 곧게 쏘아져 들어오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갈천우는 이를 악물고 양손을 뻗었다.
콰르르릉! 콰쾅!
“큭, 이 새끼 제법인데?”
“……?”
종리강의 말에 제갈천우의 눈에 묘한 이채가 스쳤다.
뭐지?
저 종리강이 자신만큼이나 뒷걸음질 친다고?
그는 왕의 칭호를 받은 인물이었다.
다만, 사파라는 이유로 그를 펌하한 정파의 자존심 때문에 생긴 칭호였다.
어찌 산적 나부랭이를 하늘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해서 왕이다. 실력이 모자랐던 것은 아니란 뜻이다.
그런데 지금의 공격은…….
제갈천우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저릿함이 느껴졌다.
“통한다고? 나의 무공이?”
제갈천우가 다시 종리강을 바라보았다.
그간 자신이 무공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자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정파의 하늘로 군림했던 자들, 사파의 하늘로 군림하고 있는 녹림왕과 창왕, 그리고 해공공까지.
한구석에 그들을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고, 반드시 그들의 위에 서고자 했다.
하지만 무는 모자랐고, 지혜는 넘쳤다.
그래서 무를 포기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손을 찌르르하게 울리며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이 느낌은!
통한다. 지혜가 아닌 자신의 무공이.
그것도 살아온 삶이 끝나 가고 있는 말년에 저 사파의 하늘을 상대로…….
꽈악!
주먹이 자신감 있게 쥐어지고, 눈동자에는 시퍼런 살기가 떠올랐다.
“오냐, 녹림왕. 네놈을 죽이고 떠나주마! 사라진 애송이 놈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은 있겠지!”
부드득.
제갈천우가 겉옷의 소맷자락을 찢어냈다.
어차피 거치적거리기만 하니까.
“하압!”
모든 기운을 끌어 올린 제갈천우의 손에서, 제갈세가가 가진 모든 무공이 펼쳐져 나왔다.
발은 천기미리보를 밟았고, 날카롭게 세워진 손가락은 응혈신조였다.
슈아아악!
예리하게 허공을 스치고 지나가는 제갈천우의 공격에 종리강의 앞섶이 길게 찢겨 나갔다.
콰드득! 콰쾅!
그의 공격을 피해 훌쩍 물러났던 종리강이 얼굴을 찡그리며 제갈천우를 바라보았다.
눈빛에 어린 살기.
그리고 더는 도망치려 애쓰지 않는 듯한 표정.
종리강의 입에 조소가 어렸다.
“먹물 새끼가 날 이겨 볼 생각이란 말이지?”
“네놈 따윈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
쉬지 않고 공격을 이어 오는 제갈천우의 손길에는 그 말처럼 진심이 담겨있었다. 부딪칠 때마다 그 손에 실린 내기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별안간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종리강이 능운비를 고치기 위해 소모했던 내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놈!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꼴이 우습구나!”
자신의 공격에 계속해서 피해 다니기만 하는 종리강의 모습에 제갈천우가 득의양양하게 소리를 질러 댔다.
기실, 강한 건 내기뿐이었다. 아무리 지혜만으로 유명해졌다고는 하나, 그 역시 이 나이가 되도록 내력을 쌓아 왔을 테니까.
다만 그는 경험이 없었다.
하여 내력은 강해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초짜들의 눈엔 다를지 몰라도, 녹림왕이 보기에는 그랬다.
“무학은 내기만이 전부가 아닌 것을.”
쑥, 파앙!
피하기만 하던 종리강이 곧게 찔렀던 나뭇가지를 비틀자 제갈천우의 손이 튕겨 나갔다.
휘이익! 퍼어억!
이어 곧바로 휘둘러 친 공격에 제갈천우가 복부를 얻어맞고 쭉 미끄러졌다.
“큭. 큭큭큭.”
“……”
“고작 이 정도냐?”
“뭐?”
“사파의 하늘이라 불리는 놈이 고작이 정도난 말이다!”
“하아.”
제갈천우의 고함에 종리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예전이었으면 벌써 나동그라져서 피똥을 싸고 있을 텐데.
이게 다 내력이 약해져서다.
하지만 제갈천우의 반응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멍청한 놈인가? 아니면 무공으로 자신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이 그 뛰어난 지혜마저 집어삼켜 버린 것인가?
“그럼 어디 한번 계속 버텨 봐라.”
종리강이 나뭇가지를 고쳐 쥐며 자세를 취했다.
멍청해진 네놈이 눈치를 챌지는 모르겠다만…… 원래 가랑비에 옷젖는법이거든!
파악!
내력을 앞세운 제갈천우와 어쩔 수없이 기술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종리강의 팽팽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촘촘하게 엮어라!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예!”
무장들이 독려했고, 창검을 높이 세운 군병들이 빠른 속도로 산을 올랐다.
드넓은 항산 전체를 개미 떼처럼 뒤덮은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소요 서원이었다.
“장군! 싸움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음…….”
수하의 보고에 장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아까부터 듣고 있었고, 느끼고 있었다.
쾅!
멀리서 들려오는 거친 폭음과 쇳소리, 그리고 산 전체를 뒤흔들어 대는 진동.
“괜찮겠습니까? 무림인들과의 싸움이라면 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지도 모르는데……. 또한 발병부(發兵符)조차 없이 내려진 명이 아닙니까?”
발병부는 군을 움직이기 위한 신표이자 명령이었다. 특히나 중군의 경우에는 병권을 가진 관리가 황제의 칙령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예?”
“걱정 마라. 중군장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더냐? 이는 다른 분도 아니고 해공공의 부탁이다.”
“그야 그렇지만……”
“어허! 해공공이 어떤 분인지 잊었더냐!”
장수가 호통을 치며 수하를 물려 냈다.
해공공이 누구던가?
어린 황제를 지금껏 보듬어 키워 온 인물이었다.
관직이며 황궁의 일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치지 않았던가?
그의 부탁은 곧 황제의 엄명과도 같았고, 잘만 하면 훨씬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설 기회였다.
“아무 말 말고 흐트러짐 없이 진을 유지하라!”
“예!”
목표가 멀지 않았다. 해공공과 만나 소요 서원에 있는 무림인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면 끝나는 일이다. 이미 해공공의 명으로 다른 군도 무림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때.
“멈춰라!”
산 아래에서 천지를 진동시키는 고함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장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응? 저건?”
누군가 나뭇가지를 평지처럼 밟고 빠르게 산을 오르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