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34
조용해졌다.
반격 한 번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바닥에 처박혀 버린 해공공의 모습을 모두가 넋을 놓은 채 쳐다봤다.
“끄으으……”
겨우 몸을 일으킨 해공공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능운비를 노려봤다.
“네놈 따위가……”
해공공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쁨어졌다.
“한낱 천한 무뢰배 놈이 마치 하늘이라도 된 것처럼 떠들어 대는구나. 그래, 어디 계속해 보거라.”
해공공의 말에 능운비가 피식 웃었다.
아집으로 똘똘 뭉쳐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자였다. 자신이 훨씬 더 대단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객관성잃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모르는가? 그대는?”
“뭐라고?”
“그저 우물에 비친 하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옹졸한 시야에 갇혀, 진짜 하늘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구나.”
“뭐가 어째?”
“하면 너야말로 계속해 보아라. 너의 힘이 닿기를 기원하마.”
능운비가 두 손을 내려 무방비한 자세를 취했다.
“이런 개자식이!”
투아악!
튕기듯 솟구친 해공공의 주먹이 능운비의 턱을 강타했다.
뻐어억!
“죽여 버리겠다!”
그의 주먹이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능운비의 몸을 수도 없이 강타했다.
“교주님!”
그들의 싸움을 모두가 걱정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단 말인가? 왜 무방비로 맞기만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의 걱정과 달리, 정작 지치고 있는 것은 해공공이었다.
“이놈, 이놈…… 이놈……”
분명 몰아붙이고 있는데도, 어쩐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분명 제 주먹에 맞고 있는데도, 능운비는 밀려 뒷걸음질 치면서도 자신을 서늘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 새파란 눈동자가 거대하고 또 거대해져 자신을 찍어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닿고 있는데, 때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공허함만이 느껴졌다. 부술 수 없는 벽면을 때리는 것처럼 손이 점점 더 아파 왔다.
“헉, 헉……”
주먹은 느려지고, 몸에서는 힘이 빠졌다.
“고작 이거냐?”
턱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이던 해공공이 주먹을 멈추자, 능운비가 나른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작 이 정도의 힘으로 세상을 움켜쥘 수 있다고 여겼느냐?”
나지막한 목소리에 섬뜩함을 느낀 해공공이 훌쩍 물러났다.
뭐였을까?
자신도 모르게 물러나 버렸다.
능운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노려보기만 했을 뿐인데.
순간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해공공이 버럭 노성을 터트렸다.
“천하디 천한 무인 놈 따위가!”
쩌저저적!
마지막까지 화를 토해 낸 해공공이 맹렬한 기파를 뿜어내자, 그 힘을 견디지 못한 땅이 갈라지고 튀어 올랐다.
콰아아앙!
폭풍처럼 매섭게 변한 기세가 해공공을 중심으로 사방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크윽, 저놈의 돼지 새끼가.”
“우웁!”
근처에 있던 무인들이 기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얼굴을 찡그리며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능운비는 이전처럼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옷자락은 찢어질 듯이 펄럭이고 머리칼은 산발이 되어 휘날렸지만, 굳게 박힌 말뚝처럼 서서 해공공을 바라보았다.
“천하디천하다…… 그래, 많이 들었던 말이다. 너흰 언제나 나를 그리 불렀었다. 살수였을 때도, 마교의 제자가 되었을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가한 발을 떼어 내디뎠다.
쿠우우우!
기의 폭풍이 옷을 찢어발기며 훤히 드러난 피부에 생채기를 만들었지만, 능운비는 폭풍을 향해 또 한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분은 나를 천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힘없고, 모자라고,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스스로 천하다 여기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 하였다. 작은힘이 모이고 또 모이면 태산처럼 굳건해지는 법이라 하였다.”
“……이익!”
콰아아아아!
폭풍처럼 세차게 몰아붙이는 기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서는 능운비의 모습에, 해공공이 이를 악물며 힘을 더욱 끌어모았다.
“너희가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졌다해도, 많은 이들이 힘을 합쳐 만든 태산은 능히 물길을 뒤틀고 세파를 견뎌낸다.”
꾸우욱!
다가갈수록 거세지는 폭풍을 견디지못한 피부가 뜯겨 나가기 시작했지만, 능운비는 멈추지 않았다.
되레 당당했던 해공공의 눈가에 이제껏 없던 두려움이 생겨났다.
“나는 그 태산의 앞에 서서 세상을 바꿀 것이다. 너희가 스스로를 주인이라 여기며 천대했던 내가! 너희가 천히 여긴 그 모든 힘을 등에 업고 나아갈 것이다!”
쿵!
땅을 힘껏 짓밟은 능운비의 신형이 해공공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화살처럼 쏘아져 다가오는 그 모습에 해공공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대단하구나. 정말로 대단해! 하나 네놈은 절대로 나를 죽이지 못한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기파가 해공공의 손안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하나인 것처럼 모여, 그의 손을 통해 다시 뻗어 나왔다.
콰우우우우!
가공할 힘이 땅을 파헤치고 일대의 모든 것을 소용돌이처럼 집어삼키며 다가왔다.
그 파멸적인 힘이 능운비마저 덮치려던 순간.
스윽.
뻗어 낸 손길에 용작이 날아와 잡혔다.
용작의 손잡이를 힘껏 움켜쥔 능비가 스산하게 웃었다.
“네놈이 그랬지. 그 모진 세월을 견뎌 왔다고. 하나 나 또한 마찬가지다. 매번 목숨을 걸어야 했고, 살아남고 또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쿠우우우.
검신에 새까만 벼락이 꽂힌 듯했다.
파지직 소리를 내며 번뜩이는 뇌기가 검은 마기와 함께 위협적으로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새파란 불꽃 두개가 빛을 발했다.
“오래도 해 처먹었다. 팔십 년이면.”
“……!”
콰드득!
잘려 나간다.
해공공이 혼신의 힘을 다해 뻗어 낸 기운이.
그리고 흩어졌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콰아앙!
그의 눈앞에 가득했던 화려한 세상이 완전한 무(無)의 세계로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힘을 끌어 올렸던 터라 희끗희끗했던 머리가 폭설 맞은 나무처럼 하얗게 세어 버렸고, 거대했던 몸은 그대로 정지한 채 고목처럼 말라 갔다.
“천한 놈이……”
그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초점마저 사라진 눈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내 손을 뻗어 보지만, 주름진 손은 그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움켜쥘 뿐이었다.
왜…….
분명 닿을 거리라고 여겼는데, 아무리 손을 뻗어 봐도 닿지 않았다.
털썩.
어느새 폭삭 늙어 버린 몸뚱이가 힘없이 허물어졌다.
허공을 움켜쥐던 손도 더 이상 하늘을 향하지 못하고 바닥에 떨구어졌다.
마지막으로, 꼿꼿하던 고개가 툭 떨어 졌다.
볼품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하늘을 손에 쥐었다고 여긴 것은 그의 착각에 불과했다.
툭, 데구르르르.
노인의 목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머리를 잃은 몸이 힘없이 기울어져 차디찬 땅바닥에 쓰러졌다.
용작을 늘어뜨린 채 가만히 그 죽음을 바라보던 능운비가 말했다.
“주승.”
“……예, 예! 주군.”
“수급을.”
“예!”
반쯤 넋을 놓고 있던 주승이 능운비의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해공공의 머리를 챙겨 들었다.
“황궁으로 보내라. 끝까지 해공공을 따르려 했던 자들도 더는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다.”
“예.”
주승이 운황대의 무인들과 함께 해공공의 시신을 수습하는 사이, 능운비는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제갈천우를 바라보았다.
모든 일의 시작이었고, 자신의 끝이 된 사내.
세상을 자신의 장기판 삼아 입맛대로 휘둘러 왔던 그가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닿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있었던 그가 날개도 없이 추락해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새처럼 한없이 약해 보였다.
“왜 그러지?”
“……”
그의 앞으로 다가간 능운비의 물음에, 제갈천우가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다음수는 없었던 건가?”
“……다음 수?”
“늘 그래 왔지 않았나? 모든 것이 네 발아래 있는 것처럼.”
“나는……”
제갈천우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 수는…… 없었다. 관을 이용한 것은 그의 마지막 계책이었다.
“가련한 놈.”
“내가 가련해?”
“한탄스럽구나.”
“……”
“이리도 가련하고 부족한 자의 세 치 혀로 인해 그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으니.”
“……”
“관을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새외의 힘을 끌어들였다면, 적어도 너의 마지막은 무인으로서 기억되었을 것이다.”
능운비의 말에 제갈천우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자신의 마지막 패였던 해공공이 쓰러진 상황예서, 황제의 권력마저 등에 업은 놈을 무슨 수로 이길 수있단 말인가?
“네겐 닥쳐오지 않을 일이라 생각했었나?”
“나는, 나는……”
“너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었다. 너희가 지은 죄를 뒤집어쓴 채 평생을 쫓겨 다녀야 했고, 항변하지도 못한 채 아스라이 사라져 갔다.”
능운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제갈천우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날만을 꿈꾸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너의 목을 베고 그 피를 담아 제를 을리고싶었다.”
“……”
“하지만 죽이지 않겠다.”
“……!?”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능운비의 말에 제갈천우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죽여라!!”
눈에 핏발이 돋은 채로 외치는 제갈천우의 모습에 능운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죽이지 않을 것이다.”
“뭐라? 내게 치욕을 줄 참이냐!”
“치욕? 네 입에서 그따위 말이 나올수 있는 건가?”
“이놈…….”
“말했듯, 너는 무림인으로 죽을 수 없다. 그러니 살아라.”
“……”
“너로 인해 야기된 수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 그 문제들이 해결되고 네놈의 모든 죄가 낱낱이 밝혀질 때까지, 나는 절대로 너를 죽이지 않을것이다. 다만……”
능운비가 용작을 들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크아악!”
손목과 발목의 힘줄이 잘려 나간 제갈천우가 바닥에 쓰러졌다.
“너는 앞으로 사람으로 살지 못할 것이다.”
“끄으으…….”
“개처럼 네 발로 기고, 짐승처럼 먹으며 살아라.”
퍼어억!
단전이 터트려져 기가 흩어지자, 한순간 수년의 세월이 흘러 버린 듯 제갈천우의 모습이 급속도로 노화되었다.
“네게 어떠한 힘도 남겨 두지 않겠다.”
푹!
능운비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제갈천우의 입이 마비되었다.
“자결? 꿈도 꾸지 마라. 편안한 죽음 조차도 네게는 사치에 불과하다.”
스걱!
제갈천우의 눈에서 피가 튀었다.
“아으으으.”
마비된 입으로 낼 수 있는 비명은 그리 크지 못했다. 하지만 몸부림 치는 그의 모습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앞으론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말하지도 못할 것이다.”
“……”
“그저 암흑 속에서 듣기만 해라. 네가 저질러 온 죄들을, 그리고 너를 향한 수많은 욕설들을.”
“……”
“항변하지도, 욕하는 자들을 보지도 못한 채 지옥 속에서 살아가라.”
“……”
“대신 복수를 꿈꿔라.”
“끄으으…….”
“하나 목표에 닿지 못할 것이다. 죽지도 못한 채로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을꾸며 절망하고 또 절망하라. 그것이 네가 세상에 해야 할 속죄다.”
“……”
“치욕스러움에,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다 네 수명이 다해 죽는 날까지, 나는 너를 끝끝내 살리고 말겠다.”
새파란 눈길로 제갈천우를 쏘아보던 능운비가 용작을 거두었다.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한 차례 쳐다본 능운비가 싸늘하게 말했다.
적이었던 자들.
하나 그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너희에게 죄를 묻진 않겠다. 선택은 너희가 해라. 어느쪽이 옳은 길인지.”
능운비의 말에 학사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돌아가자.”
“예.”
그렇게 소요 서원에서의 전투가 끝났고, 능운비는 제갈천우을 제압해 돌아갔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학사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