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70
“당장 천주문에 무인대를 파견해야 합니다!”
“……”
“벌써 닷새가 지났습니다. 일단 인근 문파에 동원령부터 내리셔야 합니다! 다른 놈도 아니고 교주의 제자입니다! 그 간악한 놈이 천주문을 무너뜨리려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 모른단 말입니다!”
“……”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중년인이 연거푸 청하는 말에도, 노인은 그저 차맛을 음미하며 창밖을 내다볼 뿐 말이 없었다.
“회주님!”
“……천아.”
“예!”
“천주문에서 네게 보낸 서신을 가져와 보거라.”
“예?”
“네가 길러 온 개였으니, 네게 도와달라 청을 보냈을 것 아니 더냐?”
“……”
노인의 담담한 말에 중년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허, 이놈. 식전 댓바람부터 나를 찾아와 회를 움직여 달라고 청한 게 그 때문이 아니었더냐?”
“그건……”
“가져오너라.”
“……예.”
중년인은 의아해하면서도 품에서 서신을 꺼내 공손히 내밀었다.
“흐흠.”
서신을 활짝 펼쳐 읽어 내리는 노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이거 참, 어찌 이리 내용이 다르단 말인가?”
“예?”
“한번 보겠느냐?”
“……”
노인이 서탁 위에 있던 족자를 중년인에게 툭 하니 던졌다.
“이게……”
“읽어 보거라.”
“……”
중년인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떨리는 손으로 족자를 펼쳤다.
“이, 이건?”
“보았듯, 마교에서 정식으로 보내온 문건이니라.”
“……”
중년인도 안다.
그 아래, 교주 담운천의 이름이 확연하게 적혀 있었으니까.
다른 이도 아닌 마교의 교주가 직접 정무맹에 보낸 서신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번 일에 관여하는 즉시 마도가 남하를 시작하겠다는구나.”
“예에? 그, 그게 무슨?”
“허허, 그리 적혀 있지 않으냐?”
“……”
“또한 보이지 않는 게냐? 지금 천주문이 문제가 아니라, 담운천이 직접 움직이겠다 공언한 것이 문제니라.”
노인은 담담했으나, 중년인은 침을 울컥 삼킬 수밖에 없었다.
“천주문이 그간에 행해 온 일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
“알지, 알아. 천주문이 너를 통해 우리 회에 얼마나 많은 충성심을 보여 왔는지.”
“……”
“한데 말이다. 내용을 보아 알겠지만, 교주가 직접 움직일 정도로 총애하는 제자와 연관이 되었구나.”
“그, 그건 그들도 몰랐던……”
“몰랐겠지. 한데 너는 알았어야지.”
“……”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일은 없어야하는 법이란다. 때론 그런 작은 틈새 하나가 튼튼히 세워 온 둑을 무너뜨릴수도 있는 법이거든.”
“회주님.”
“허허, 괜찮다. 사람이 실수도 하면서 성장하는 법이지.”
“……”
“하지만 그 실수 덕에 어찌 된 것 같으냐? 그 아래 요구 조건이 보이더냐?”
노인의 말에 중년인이 서둘러 족자를 읽어 내려갔다.
“마교 지부를 정식으로 창설……한다구요? 중원에?”
“그렇다는구나. 다시는 중원이 마교의 이름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감시하겠다는 명목이다.”
“이게 뭔……”
“개소리지. 하지만 그 개소리를 천주문이 현실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구나.”
“이걸 받아들이실 요량이십니까? 그들이 중원에서 암약해 온 것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습니까? 하지만 이건 너무 대놓고 드러내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랬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담운천이 직접 정무맹에 서신을 보내 요구한 조건은 마교 지부의 창설.
정파와 사파의 영역권을 강제적인 힘을 동원해서 침범하지 않겠다는 것과 이익 사업은 지부의 인근으로 제한하겠다는 단서 조항이 붙긴 했지만, 앞으로는 버젓이 현판을 걸고 활동하겠다는 소리였다.
“하면 어찌할까? 마교와 전쟁이라도 벌일까?”
“예?”
“내 서신을 받고 개방을 투입하였느니.”
“……”
“천주문의 죄가 명명백백하더구나. 심지어 단천문, 아니 기련산 마교 지부가 천주문과 부딪친 다음 날부터 그간에 팔아 치웠던 이들을 모조리 회수하고 있다.”
“그, 그게 무슨?”
“개방이 급히 나섰지만, 이미 회수된 자들이 일백을 넘는다는구나. 당연히 관아에도 알려졌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민가에 그만한 피해를 주고 범죄를 저질렀으니, 관무불침이 무슨 소용일까?”
“……”
“꽤 큰 돈을 들여 겨우 관이 끼어드는 것만은 막았지만, 소식을 들은 맹주가 어찌 나왔을 성싶더냐?”
“……”
“회의 내내 날뛰더구나. 만약 천주문이 벌인 일을 정무맹이 모두 알면서도 비호해 왔다는 사실을 마교가 공론화하면 세간의 소문이 어찌 될 것이며, 정파의 이름이 어찌 평가받겠느냐고.”
“그, 그런……”
“똥간에 처박히지 않겠느냐?”
“……”
“지부? 그까짓 것쯤은 언제든지 내줄 수 있다. 그들이 허튼짓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자산이 들어가겠지만.”
노인의 목소리에 노기가 스미기 시작했다.
“천아, 새로운 정무맹주와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예전부터 우리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왔다. 정무맹을 장악해온 우리를 어떻게든 내치고 싶어 했지.”
“……”
“하지만 감히 우리를 쳐 낼 수 없음을 안다. 그간에 쌓아 온 역사가 무너지면 정무맹이 부르짖어 온 의기천추의 근간이 흔들릴 것임을 알기에. 또한 모든 이들에게 정무맹의 민낯을 드러내야 하기에.”
“……”
“하나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너의 실수는 우리에게 치명타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거라.”
“……”
“처음이었느니라. 맹주 따위가 회의중에 나를 염두에 둔 듯 경고를 보낸것은.”
노기의 서슬이 퍼렇게 변했다.
어느 순간 노인의 눈에 어린 신광이 중년인을 향했다.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뇌가 관통당하는 듯한 고통에 중년인이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아니다, 아니야. 말하지 않았느냐. 실수는 누구나 한다고.”
“……”
“하나 한 번이어야겠지. 이번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거라.”
“……명심하겠습니다.”
“두 번은 없느니.”
노인이 물러가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면 천주문은……”
“……”
중년인이 자신도 모르게 뱉은 말에 노인의 손이 멈칫했다.
찰랑.
잔 안에 담긴 찻물의 표면에 싸늘한 파문이 퍼져 나갔다.
스아아아.
동시에 방 안의 공기가 일변했다.
서늘함이 목덜미에 닿은 중년인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방 안에 흐르는 공기 자체가 무형의 칼날로 변해 자신의 몸을 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지가 찢어질 것이다. 노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엄습해 오는 두려움에 심장이 꽉 조여지는 것 같았던 중년인이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쿵!
“회, 회주님! 부디 용서를……”
“……”
목놓아 외치며 부들부들 떨어대는 모습에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천아.”
“예, 회주님.”
“개는 개답게 키우다가 사냥이 끝나면 삶아 먹어야 뒤탈이 없는 법이니라.”
“……”
천주문의 운명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감숙 북방의 패자로 군림했던 그들은 한순간에 버려진 것이다.
“그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지우겠습니다.”
“옳지. 이제야 머리가 평소처럼 돌아가는 모양이구나. 부디 잡음이 일지않기를 바라마.”
“……예”
“물러가거라. 또한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해 자숙하거라.”
“예.”
중년인은 힘없이 물러났다.
자숙.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간 노인의 면전에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한데 그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 한순간에 내쫓긴 것이다.
개를 잘못 키운 대가로…….
중년인이 나간 뒤,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이 족자를 향해 다가갔다.
쉬잇! 화악!
가벼이 움직인 손길에, 바닥에 있던 족자가 휙 하니 손안으로 빨려 들어와 활짝 펼쳐졌다.
호록.
뜨거운 찻물을 조심스레 삼키는 노인의 시선이 담운천이 보낸 서신의 한곳에 머물렀다.
“정파가 저지른 불의에 피해를 본 죄 없는 백성들의 처지가 불쌍해 나선 제자라……”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푸근하면서도 잔인해 보이는, 왠지 모르게 야릇한 미소였다.
“마교에도 재미있는 놈이 있는 모양이구먼. 어울리지 않게 정파 행세라니……”
몹시 궁금했다.
겨울잠에 든 것처럼 웅크렸던 담운천이 직접 움직이게 만든 제자라니…….
“그만큼 총애하는 놈이란 말이지?”
노인의 손이 까딱거리고, 족자가 저절로 불타올랐다.
화륵.
한줌 재로 변해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족자를 바라보던 노인이 다시금 창밖을 내다봤다.
호록.
뜨거운 찻물이 목구멍을 넘어간다.
여느 때와는 달리 차 맛이 좋지 않았다,.
“……흠, 이것도 바꿀 때가 된 것인가?”
노인의 눈동자가 묘한 빛을 발했다.
“천주문을 내어 주마. 지부도 허락해 주마. 하나 나도 하나는 얻어야겠지. 담운천, 네놈이 총애하는 그 제자놈을 말이다.”
파삭!
노인의 손안에 있던 찻잔이 산산이 부서졌다.
* * *
단천문의 수뇌까지 전부 불러 모은 자리.
마교에서 능운비 친전이라 적어 보내온 서신을 멍하니 보던 왕천이, 이내 그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맘대로 하라는데요?”
“응?”
“보세요.”
“……”
서신을 읽은 능운비가 왕천과 주승을 향해 눈을 끔벅였다.
내용은 알겠다. 왕천이 읽은 그대로 였으니까.
“그런데 우리끼리…… 하라구?”
“그러라는데요?”
“……”
혹시나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 거듭 읽어 봐도, 서신엔 분명 그리적혀 있었다.
“그게 무슨?”
“……”
“정무맹도 관여치 않기로 이미 담판을 지었으니…… 천주문을 잘 처리하길 바란다? 물론 앞서 관여하지 않겠다고 한바, 교주로서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수는 없으니 단천문과 함께 마교의 이름을 빛내라……는 게 맞는 거죠?”
주승이 서신을 빼앗듯이 받아 들고 읽었지만, 그 내용엔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공격해도 좋다.
단, 니들끼리.
“주군.”
“응?”
“혹시, 전에 교주님께 보낸 감찰 보고서에 뭔가 실수를 하신건 아닙니까?”
“시, 실수?”
“예. 그게 아니고서야 이럴 리는 없지 않습니까?”
“……”
“정파가 나서지 않기로 했다지만, 상대는 천주문입니다. 이쪽은 지부장과 수신 호위 열둘을 잃은 힘 없는 마교지부구요.”
왕천이 회의장 안의 수뇌들을 힐끗쳐다보며 말했다.
그 눈빛에 서린 뜻을 어찌 모를까?
별 볼 일 없다.
삭월대 서른 명의 방어조차 뚫지 못했을 만큼.
그런 단천문과 함께 감숙 북방의 패자로 군림하는 천주문과 싸우란다. 천주문이 거느린 무인들의 수가 물경 수백을 헤아리고도 남을 텐데.
아니, 그들이 거느린 표국 무인들과 크고 작은 무관들까지 합하면 천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끼리 하라고?
마교의 이름을 빛내?
이런 미친 교주가!
능운비가 족자를 냅다 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아빠한테 일렀더니 역경은 스스로헤쳐 나가야 한다며 나 몰라라 하는 꼴이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교주를 믿은 내가 병신이지.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하라잖아! 우리끼리!”
“왜 소린 지르고 그러십니까! 제가 그랬습니까? 보고서도 직접 써서 보내셨잖아요!”
“이런 썅!”
왕천이 발끈하자, 능운비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들었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다.
능운비는 절대로 천주문을 용서해줄 생각이 없었다. 주춧돌까지 빼 버릴요량이다.
“후우…… 어쩔 수 없지. 해 보는 수밖에.”
능운비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결의를 다지는 가운데, 탁발려가 조심스럽게 족자 하나를 더 내밀었다.
“뭐야, 이건?”
“지부 앞으로 별도로 온 족자입니다. 주군께서도 보셔야 할듯 해서……”
“이런 썅! 누가 니 주군이야!”
“죄, 죄송합니다. 다들 그리 부르길래……. 저도 그편이 나은 듯싶기도 하고.”
탁발려가 목을 움츠리며 변명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한 듯 쳐다보던 능운비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호칭은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조금 있으면 사라질 몸이니.
능운비가 짜증스럽게 족자를 펼쳤다.
“삼공자를 도와 마교 지부를 창설하고 현판을 내걸……어?”
“예! 그 또한 정무맹과 협의가 끝났다고 합니다. 이제 저희도 당당히 양지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주군!”
“……”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뭐가 어째? 이 마당에 지부까지 창설하라고?
아주 대놓고 현판을 걸어? 정무맹이 허락을 했어?
대체 이게 뭔 짓거리인 거냐, 이 망할 교주야!
이건 뭐 재주는 자신이 부리고, 돈은 교주가 챙기겠다는 것도 아니고!
눈앞에 있었으면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고서도 주먹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연신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천주문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팔려 간 이들에게 약속한 보상금이 어디 한두 푼이던가?
“하아……”
이럴 때,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며……언!
순간 떠올랐다. 도움을 줄 만한 엄청난 고수의 존재가.
희망의 끈을 발견한 능운비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공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도와줄 거지?”
“예!”
“……”
능운비의 외침에 양지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단천문의 무인들이 힘차게 답했다.
니들 말고!
“제발도와줘?”
“예!”
또다시 무인들이 답해 왔지만, 능운비는 무시로 일관하며 허공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만에 답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