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85
“귀하가 어쩐 일이시오?”
능운비가 언짢음이 역력한 가운데 싫은 내색까지 팍팍 해 가며 물었지만, 운학은 해맑기만 했다.
“어쩐 일이라니요? 사해가 동도인것도 모자라, 우리가 어디 보통 인연입니까?”
“……”
그래, 사해(四海). 세상에 존재하는 네 바다. 즉, 천하에 사는 이들이 한 무리(동도: 同徒)인 것은 맞다 치자.
으레 그렇게 말하고들 다니니까.
그런데 마교랑 도가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만나면 서로 칼부터 뽑아 들 천적 같은 사이에 형제는 무슨 형젠가?
그리고 인연? 너랑 내가?
개소리도 그런 개소리가 어디 있단말이냐?
“헛헛, 이 넓은 중원에서 흠모를 품은 이요. 때마침 잠시 쉬러 온 연소에서 불현듯 마주쳤으니, 이는 전생에 수백 번의 스침이 있는 것이 분명하외다. 무량수불, 천존께옵서 나를 어여삐 여기신 게 아니고 무어겠소?”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결론까지내며 너스레를 떠는 모양새에 능운비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전생에 뭘 어째?
내 전생에 넌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 자식아.
능운비는 운학과 잠시라도 동석하고 싶지 않았다.
도사고, 와중에 화산이다.
내가 청진 그놈에게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데!
뒈질 뻔한 경험은 둘째 치고, 계도하겠답시고 잔소리가 아주…… 어휴, 말도 못한다.
하지만 남의 집이 아닌가?
왕천과 주승, 삭월대는 물론이거니와 향이에게까지 주의를 단단히 준 자신이 행패를 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아니겠는가?
더하여 화산이 지척인데, 화산놈과 드잡이질을 해 봐야 득 될 것이 없었다.
“이보시오, 도장.”
“헛헛, 연배도 비슷해 보이는데 친근히 운학이라 부르시오.”
“……”
제 말처럼 살갑게 웃는 운학의 모습에 능운비가 속으로 참을 인 자를 새겼다.
도사놈 주제에 뭘 이리 질척대?
“운학 도장, 나와 내 수하들은 그저 식사만 하고 갈 참이오. 특별히 용건이 없다면, 나중에 봅시다.”
에둘러 말했지만, 그 속뜻은 ‘꺼져.’였다.
“아! 용건! 맞소. 내 그대에게 용건이 있던 참이지 뭐요? 짚어 주어 고맙소이다. 능 공자가 아니었으면 내 또 잊어버릴 뻔했소. 이놈의 정신머리하곤, 핫핫핫!”
“……”
머리가 나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자신의 말뜻을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용건이 있다니? 화산의 도사놈이 제게 무슨 용건이 있단 건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중원 감찰을 하고 있다고 들었소이다.”
“……그런데요?”
자신의 얼굴을 아는 자다. 천주문에서 벌인 일을 아는 걸 보면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테니, 그 목적 또한 모를 리가 없다.
그게 관심인지 집착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오늘 보니, 도움이 필요해 보이더이다.”
“도움?”
“그렇소. 비록 정마가 한 형제처럼 협약을 맺었으나, 아직 중원에 그 뜻이 완전히 전해지지 않은 참이요.”
“……”
“소문을 듣지 못하고 그대의 행보에 참견하는 자들이 분명 적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요?”
“앞으로도 계속 시비에 휘말릴 것이 분명하오.”
“그러니까, 그게 왜요?”
“내 도와주리다.”
“……예?”
“그대에 비하면 내 명성은 조족지혈이요, 보름달 앞에 반딧불과도 같으나 중원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편이요.”
“……”
그건 알겠다. 연소에서 처음 만났을때도, 그 이름을 듣자마자 사람들의 표정이 대번에 달라졌으니까.
그런데……누가도와달래?
“내가 그대의 신분을 보증하면, 아마도 쓸데없이 싸우는 일은 없을거요.”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헛헛, 동행을 해 주겠다는 뜻이외다.”
“……동행이요?”
“저런, 놀랐구려? 하지만 나는 괜찮소. 어차피 표주를 나온 참이라 목적지를 따로 정하지 않았으니, 내 그대 가는 길이 평안토록 돕겠소이다.”
“……”
“혹, 내가 불편할까 하는 걱정은 마시오. 나는 괜찮소.”
내가 안 괜찮다.
그리고 마교인과 도사의 동행?
견원지간보다 원한이 깊은 사이에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능운비가 운학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살폈다.
표주를 나온 중에 마교인을 도와?
이젠 거의 질척거리기 시작한 그 행태가 심히 의심스럽다.
자신이 중원에서 살수행을 다닐 때, 항상 염두에 둔 것이 있었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고, 호의엔 목적이 스미는 법이란 사실.
평생 그런 의심을 하며 살아왔고, 한번 의심을 품기 시작하니 곧 여러 가지 추측이 머릿속을 스쳤다.
제법 이름깨나 난 도사 놈이 표주 중에 때맞춰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다들 고개를 저을 때 혼자서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을 옹호했다.
오지랖이 넓어서?
능운비가 천주문에서 행한 일이 존경심이 생기도록 옳아서?
그럴 리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때맞춰’다.
우연일 수도 있으나, 필연적으로 계획된 일일 수도 있다.
한때 그가 알던 빌어먹을 제갈씨 놈이 그런 말을 했었다.
뛰어난 지략가는 예측이라는 불분명한 것에 기대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적이 판 위의 말처럼 제 생각대로 움직이게끔 상황을 유도한다고.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그런 고로, 지금 운학이라는 도사 놈의 질척거림은 계획된 것일 확률이 매우 높다.
아마 감시하고자 하는 의도겠지.
그 배후에는 정무맹 혹은 화산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협약을 맺었다고 해도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마교인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있을까?
간악한 마교인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다만, 은밀하게 지켜보기에는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마교가 괜히 마교겠어?
몰래 뒤쫓다가 걸리면?
그놈은 아마 이승에 존재하지 못할것이다. 갈가리 찢긴 채 들판에 뿌려져 짐승들 배나 불릴 터.
또한 삼공자씩이나 되는 인물을 감시했다는 이유로 마교가 항의라도 하는 날에는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해서 이놈이 온 것이다. 대놓고 감시하게 하려고.
그저 그런 놈으로는 턱도 없을 터이고, 제법 이름난 놈 중에 실력도 되는놈.
그리고 살갑게 다가와 친해질 수 있을 법한 또래 중에서 찾은 것이겠지.
그런데 배우를 잘못 골랐다.
우연한 만남을 가장해 친분을 만들고 도움을 통해 빚까지 지워 놓는 계획은 좋았으나, 실행하는 놈이 너무 어설프다.
물론 순수한 의도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받아 줄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안 그래도 떨거지가 많은데 뭐 하러 한 놈을 더 끼워 준단 말인가?
와중에 도사를?
“헛헛, 그럼 앞으로 잘 부탁……”
“거절합니다.”
“드립…… 예?”
“거절한다구요.”
능운비가 생각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단칼에 거절해 버리자, 운학이 어정쩡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대가 도사이기 때문이오.”
“예?”
“이보시오, 도장.”
“……”
“도사와 마인의 동행이라니? 그 무슨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요?”
“……개가 웃어요?”
“그만큼 말이 안 된다는 소리요.”
“……”
“내 혹여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까 걱정하는 도장의 친절함만 기억하겠소. 그러니 이만물러가주시오.”
그 정중한 축객령에 운학이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거절이라니……?
사실 너무 당연하지만, 그래도 절대 안될 일이다.
정무맹주의 부탁에 화산 장문인이 은밀히 자신을 불러 명한 일이었다.
마교인이 함부로 사고 치지 못하도록 옆에서 감시하라고.
맹의 군사가 능운비에게 접근할 수 있는 계획까지 상세하게 적어 보낸 일이다. 절대 이대로 물러날 순 없었다.
“허허, 능 공자. 아직 중원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압니다. 반길 사람 하나 없다는거.”
“……그러니까요.”
“그래도 싫습니다.”
“도와준다니까요?”
“싫다니까요?”
“왜요?”
“뭐가 ?니까? 마인이 도사 도움을 받다니요? 그건 우리 마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과 같단 말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정체성……”
“그럼 아닙니까?”
“……”
“도장, 마교에는 마교만의 방식이 있는겁니다.”
운학을 떼 놓고 싶었던 능운비의 어조가 더욱 단호해졌다.
“그대가 무슨 명으로 나를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며, 명이라니요? 일절 그런 일 없습니다.”
“……”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이, 믿어 주고 싶어도 못 믿겠다.
아주 표정에 다 드러난다. 나 명받아서 왔다고.
하아, 이런 걸 감시 역으로 보내다니…….
하긴. 뛰어난 무공에, 비슷한 또래에, 마인에게 친근감을 표할 만큼 성격좋은 도사를 구하기가 어디 쉬웠을까?
운학은 도사나 무인으로서는 어떠할지 모르나, 속내를 감추고 음흉하게 행동하기에는 아직 완벽히 여물지 못했다.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회성 부족한 도사일 뿐이고, 세상 경험 일천한 젊은 무인일 뿐이다.
“이보시오, 도장.”
“예?”
“말했듯, 그대가 무슨 명을 받았든지 내 알바 아니오.”
“……”
“하지만 한 가진 명심해 두시오. 나는 교주님께 중원 마교 지부를 감찰하라는 명을 받았지, 중원과 싸우라는 명을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을.”
“그게 무슨……?”
“그대나 그대에게 명을 내린 이가 걱정할 만한 일은 없을 거란 말이오.”
“……그렇다 한들 분명 시비를 거는 이들이 있을 텐데요? 만에 하나 싸움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참을 거요.”
“예? 참아요?”
“그렇소.”
단정적인 어조에 운학이 능운비를 지나쳐서 왕천과 주승, 그리고 삭월대를 바라봤다.
“그걸 어찌 장담하오? 당신이 일행의 수좌라 하나, 모두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오.”
“……”
운학의 말에 능운비가 수하들을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장담하지.”
“예?”
“우리 중 누구도 상대가 먼저 걸어온 시비에 대응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게 가능하다고 여기는 거요?”
“적어도 내 수하들은 가능해. 설사 그런 중에 목숨을 잃는 일이 있어도.”
“……”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댄 능운비가 떨떠름한 표정의 운학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리 명했으니까.”
운학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끄덕일뻔했다.
능운비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또한, 그 휘하에 있는 이들도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명이라…….
아무리 강자존의 율법을 따르는 마교라지만, 너무 확고한 믿음이 아닌가?
그리고 별안간 말투가 하대로 바뀌었지만, 어쩐지 능운비에겐 그쪽이 더 잘 어울리는 듯했다.
“어찌 그리 확신한단 말이오?”
“확신? 당연하지. 내가 그들에게 명하지 않았다면, 그대는 지금 내 앞에 앉아 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뭐요?”
“그 자리, 내가 허락한 자만이 앉을 수 있거든.”
“……”
순간 운학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그에게 접근할 때, 휘하의 무인들이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았었다.
능운비가 피식 웃으며 벌레를 쫓듯 손을 휘휘 저었다.
“알아들었으면 그만 가 봐. 아까부터 점원들이 음식을 들고 이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니까.”
“……으음.”
능운비의 말에 고개를 돌려 쳐다본 곳에는 연소의 점원들이 저마다 양손에 음식 접시를 들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나, 그에게도 물러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좋소! 그대의 말대로 지금은 물러나리다. 하지만 만약 이곳을 떠나기 전에 작은 시비라도 생기면, 내 동행 제안을 절대로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오. 이는 정무맹의 입장이외다.”
“……”
얼굴이 살짝 붉어진 운학이 일어나며 외친 말에 능운비가 재차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바른말을 하네. 정무맹의 명으로 왔다고.
하지만 동행?
절대로 그럴 일은 없다.
왕천과 주승은 자신의 말을 들을 것이고, 향이는 딴짓 못 하게 옆에 바짝 붙여 놓고 다닐 터다.
그사이 객점 아래가 시끄러워졌다.
새로운 손님이 온 모양이었다.
하긴, 연소라는 곳이 뜨내기장사를 하는 곳이라 순환이 빠르니까.
어쨌든 귀찮은 도사 놈은 떼어 놨고, 이제 편안하게 밥이나 먹으면 된다.
“자, 그럼 다들 먹자.”
“예! 주군.”
속이 시원해진 능운비가 휘하에 음식이며 술을 권하던 그때.
쿵! 쿵쿵쿵쿵!
힘차게 계단을 밟고 오르는 소리와 함께 한 떼의 무인들이 이 층으로 올라왔다.
“이건 또 뭐야? 밖에 일월기가 걸려있길래 혹시나 했더니, 이곳이 어디라고 빈대보다 못한 마교 놈들이 밥을 처먹어!”
“……”
빈대…….
아마도 아직 소문이 덜 퍼진 모양이다. 별 시답지 않은 놈들이 시비를 걸어오는걸 보면.
하지만 그래 봤자다.
참으라 명했으니 참을 것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모지리 같은 너희 애비 애미는 너희 같은 것을 낳고 좋아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르다! 이곳에서 썩 꺼져라!”
어? 자, 잠깐만…… 너 지금 그거…… 부모 욕?
“이런 씨발 새끼들이 귓구멍이 처막혔어? 니들 애미 애비가 그렇게 가르치든? 빨리 안 꺼져!?”
이 층을 쩌렁쩌렁 울리는 장한의 목소리에 능운비가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던 그 순간.
휘이익! 빠아아악!
“……”
왕천이 섬전처럼 움직였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어디서 부모님을 욕해! 모가지를 따 버리겠다!”
왕천이 신호가 되었고, 뒤이어 삭월대의 무인들이 흉흉한 살기를 내쁨으며 일어났다.
“무량수불……”
어느새 따라 일어난 운학이 능운비를 보며 입꼬리를 쭉 하고 찢어 올렸다.
자, 잠깐만, 인마!
이건 부모님 욕한 거잖아!
그건 빼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