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91
버럭 터져 나온 고함에 대전이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산채가 별건가?
나무다. 그것도 완벽하게 지어진 것이 아니라, 대충 넝쿨로 나무를 엮어만든 그런 건물이다.
혹시나 관의 토벌이라도 있으면 도망가야 할 팔자이기에.
산채 지키자고 관군과 싸울 순 없지 않은가?
어쨌든 그런 곳에서 종리강의 기세가 발산되면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다행히 명색이 총타인지라 신경 써서 지은 덕에, 바로 무너지진 않았다.
끽끽 소리를 내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말려야 했다. 여기서 더 가면 진짜로 무너지고 만다.
이미 터져 나온 분노와 함께 쁨어진 종리강의 기세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지 않은가?
“총타주님! 고정하십시오!”
“닥쳐! 이 새끼야! 지금 고정하게 생겼어!”
“형니임! 일단 들어 보자구요!”
그 살벌함에 소식을 전한 전령은 납작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형님!”
“……이런 쓰발.”
탁추가 소리 높여 다시 부르자, 종리강이 콧구멍까지 넓히며 겨우 호흡을 골랐다.
하나, 쉽사리 화가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산적들은 그들의 우두머리를 두령(頭領)이라 부른다.
하지만 사석에서 부르는 호칭은 형님이다. 산적들 대부분이 죄를 짓거나 삶이 어려워 속세를 떠난 놈들인지라, 갈 곳 없는 처지끼리 의지하고 살아 보자고 형제의 연을 맺어서 그렇다.
해서 종리강도 사석에서는 총타주나 정두령(正頭領)이란 호칭보다 큰형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총관인 탁추도 종리강의 다섯째 의제가 된다.
그렇게 천하의 명산을 제집처럼 다스리는 종리강의 형제들이 모두 열아홉이다.
종리강과 탁추가 있는 총타를 제외하면 열일곱이라, 사람들은 그들을 녹림십팔채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아홉 의형제는 일반적인 산적들과는 조금 다른 관계였다.
뭔가 끈끈하달까?
비록 의로 맺어진 사이였지만, 친형제보다 사이가 돈독했다.
녹림왕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무공을 가져 정사에 그 입김이 상당한 종리강이었으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지금의 녹림이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형제들이 있어서라고.
말뿐이 아니라 진심이다.
말하자면, 종리강은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그런 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못 참는 것이 딱 두 가지 있었다.
첫째가 돈이 걸렸을 때, 둘째가 의형제들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
그런 그가 막내인 전일석이 이끄는 청화산 패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접했으니, 저리 화를 낼 만도 했다.
“형님, 이제 좀 괜찮소?”
“후우, 후우…… 그만해라. 알았다. 내 일단은 참으마.”
“하아, 난 또 당장 무슨 일이라도 낼줄 알았소.”
“이놈이, 내가 애냐? 총타주다, 총타주!”
“그래 놓고 사달 낸 게 어디 한두 번이오?”
“……쳇”
종리강이 고개를 홱 하니 돌려 버리자, 탁추가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기세가 가라앉았으니 다행이다.
종리강을 겨우 진정시켜 놓은 탁추가 눈치를 살피며 전령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인지 소상히 보고하거라. 청화산 패를 누가 습격했단 말이냐? 어떤 애송이 놈이 겁도 없이 일반 산채도 아니고 십팔채중 하나를 건드려? 구파라더냐?”
“그, 그것이……”
“어허! 말해 보라지 않느냐!”
탁추가 채근하자 고개를 슬쩍 들고 올려다보던 전령이 조심스럽게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청화산채주께서 보내신 것인데……흉수가 마교라고……”
“으응?”
생각지도 못한 말에 탁추는 물론이거니와 화를 가라앉히던 종리강마저 눈을 끔벅였다.
마교? 내가 아는 그 마교?
“아니, 개들이 별안간 산채를 왜 습격해?”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청화산채주께서 직접 그리 적어 보내셨기에……”
전령의 말에 탁추가 냉큼 그 손에 들린 서찰을 뺏어 들어 펼쳤다.
“음……으음.”
“왜? 왜? 뭐라고 적혔길래 그리 죽을상이야?”
“……”
무공은 세지만 글은 알지 못하는 종리강이 잽싸게 다가와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물었다.
“그게요, 형님……”
“이런 젠장맞을! 말해 보라니까!”
“그게……”
종리강이 재촉했지만, 탁추는 어찌말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분명 화낼 텐데…….
이거 난리가 나도 단단히 날 만한 내용인데…….
하필이면 종리강이 가장 참지 못하는 두 가지 내용이 전부 담겨 있단 말인가?
“탁추, 이놈아! 어서 말하지 못해?”
“……”
참다못한 종리강이 서신을 빼앗아 들었다.
그러나 글을 모르니 보아도 소용이없다.
그리고…… 거꾸로 들었다.
“탁추!”
“형님, 알겠소. 내 말씀드리리다.”
“……”
탁추가 호흡을 고르고는 전령에게 눈빛을 보냈다.
꺼지라고.
괜히 여기 있다가 휘말리면 몸이 성치 못할 거라고.
눈치를 챈 것인지 전령이 냉큼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나갔다.
“후우……일단 마교가 습격한 것은 맞소.”
“마교?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지들이 뭔데 산채를 습격해! 대체 어떤 새끼야!”
“형님도 들어 보셨을 거요.”
“내가?”
“일전에 정무맹에서 협조 서신을 보내오지 않았소. 기억 안 나시오?”
“정무맹…… 아! 그 삼공자 능운비라는 애새끼?”
“맞소.”
“뭐야? 그럼 그 씨부랄 놈이 제 공적 쌓겠다고 우리 산채를 습격했다는거야?”
“그, 그럴지도 모르겠소. 아무래도 마교의 삼공자 씩이나 되니, 녹림십팔채는 되어야 제 명성에 걸맞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고……”
“이런 썅!”
가라앉았던 화가 단숨에 머리끝까지 치솟는 듯했다.
폭풍 같은 기세가 흑 뿜어져 나오자, 탁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형님!”
“……ㅈ
하지만 종리강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거나 하지 않았다.
참는다. 화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가는 자신의 형이.
“괜찮다, 이놈아. 나라고 생각이 없겠냐? 화가 나긴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지 않으냐?”
“후우…… 난 또 당장 달려가서 마교 제자 놈 목이라도 따려는 줄 알았소.”
“마음은 굴뚝같다. 내 당장에 뛰어가고 싶어.”
“……”
이까지 바득바득 가는 것을 보니 진심이 확실했다.
그러나 상대는 마교다.
단일 세력으로 중원 최강이라 불리는 곳.
심지어 그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담운천의 제자라고 하지 않는가.
상대가 상대이니 무턱대고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어찌 된 영문인지 소상히 알아보고 나서 잘잘못을 따져야 했다.
그게 순리다. 현명한 일 처리고.
그리고 마교의 삼공자라면 들은 얘기가 많았다.
근래에 놈이 중원으로 나와서 정파와 마찰이 있었다고, 그로 인해 증원 곳곳에 마교의 지부가 창설되었다고했던가?
정무맹에서 혹여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 당부하는 서신까지 받은 참이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마교와 녹림. 노는 물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팔자 좋게 거들먹거리며 사는 놈이 뭐 하러 산중까지 찾아와 산적들을 핍박하겠는가?
해서 예하 산채에 주의만 주었다.
잘 차려입고 귀티가 흐르는 놈들이 지나가더라도 한동안 영업하지 말라고.
그런데 어째서?
왜 마교 삼공자 놈이 난데없이 청화산 패를 찾아가서 행패를 부렸단 말인가?
하지만 무턱대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기에 종리강은 애써 화를 가라앉혔다.
“후우, 다음은 뭐라고 적혀 있냐?”
“듣고 참을 수 있겠소?”
“일단은……”
“꼭이오.”
“알았다, 이놈아. 약속한다, 약속해!”
“좋소. 서신에 적힌 바에 의하면, 막내가 제법 큰 상처를 입은 모양이요.”
“……”
상처라는 말에 종리강이 앉아 있던 의자의 팔걸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빠각, 빠가각.
그 손힘을 어찌 이길까?
팔걸이가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하지만 종리강은 끝내 화를 참았다.
비록 얼굴이 시털게지고, 눈 아래가 떨리고 있었지만.
“마, 많이 다쳤대?”
“사지를 못 쓰게 되어 지금 산 아래에 있는 의원에 머물고 있다고 하오.”
“……!”
뿌드드득.
이를 부러질 듯 갈고 있지만, 여전히 참고는 있었다.
“왜? 막내가 마교 삼공자에게 무슨 실수라도 했대?”
“그건 적혀 있지 않소. 다만……”
“다만?”
“……”
탁추는 잠시 고민했다.
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의 종리강은 넘칠 듯 찰랑이는 술잔과 다를 바가 없다.
다음 말을 들으면 분명 참지 못할 것이 분명한데…….
사달이 나도 크게 날 텐데…….
하지만 숨길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전일석이 울분에 가득 차서 서신까지 보낸 마당에.
“말해 봐. 내 참아 보마. 어떻게든 참아 본다고.”
“약속……하시는 거죠?”
“그래.”
“진짜요?”
“그래! 이 자식아! 약속한다고!”
“음…… 그게, 막내 말로는 마교의 삼공자가 그간 청화산채가 모아 둔 재물을 전부 털어 갔다고……”
“……”
순간 종리강이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활활 타오르던 불에 찬물을 끼얹은 듯하다.
“탁추야.”
“……예?”
“다시 말해 볼래? 뭐가 어쨌어? 마교의 삼공자가 뭘 어쨌다고?”
“그게…… 재, 재물을…….”
“……”
“전부……”
“……”
한동안 멍한 표정이었다.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고, 휘몰아치던 기세도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탁추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종리강이 보여 주는 모습, 그 싸늘함이야말로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태풍이 찾아오기 전 잠깐의 고요함과도 같다.
이미 수차례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
종리강은 차분해진 게 아니라 진짜로 화가 난 것이다.
“이런 씨앙! 빌어먹을 애새끼가! 감히 내 돈을 털어가!?”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 그를 참지 못하게 하는 두가지 사건이 한번에 터져 버렸으니까.
“마교고 나발이고,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다!”
콰아앙!
나무로 된 바닥을 짓밟아 부수며 솟구친 종리강의 신형이 지붕을 뚫고 쏘아져 나갔다.
“초, 총타주!”
놀란 탁추가 불러 보지만, 이미 종리강의 신형은 서쪽 하늘로 사라지고 있었다.
“하아, 젠장.”
하필이면 돈까지 털어 갔단 말인가? 피는 흘려도 돈은 홀리지 않는 종리강의 돈을…….
“전령.”
“예!”
탁추의 나지막한 부름에 밖에서 대기 중이던 전령이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애들 모아라.”
“예?”
“지금 즉시 녹림 전역에 갑호의 비상령을 내리고, 산채가 털렸음을 알려라.”
“예!”
“그리고 정무맹에 연락 보내. 난리났다고. 녹림왕이 꼭지가 돌아 버렸다고. 혹시나 말리고 싶으면, 검선 정도는 보내야 할 거라고.”
“……”
검선을? 설마하니 오란다고 올 인물이겠는가?
말인즉, 녹림이 정무맹에 보내는 경고인 것이다.
끼어들면 각오해야 할 거라는.
“대답 안 하냐?”
“예? 예! 알겠습니다.”
“난 지금 즉시 타주님을 쫓아가겠다. 유청에게 호객들 모아서 곧장 따라오라고 해.”
녹림 호객(豪客). 산적 중 재능이 뛰어난 자들을 고르고 골라, 없는 살림에 무한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기른 무인들이다.
말하자면 총타주의 친위대이자 해결사였다. 녹림왕의 신변을 지키는 것과 더불어, 녹림에 일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달려 가는 존재가 바로 호객이다.
“한데 호객들에게는 어디로 가라고 할까요?”
“……”
전령의 말에 탁추가 힐끗 고개를 돌려 한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청화산.”
당연히 그곳이다.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형제를 목숨처럼 아끼는 종리강이니 그 상태부터 살피고자 할 것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사지가 박살 나긴 했어도 전일석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한번 꼭지가 돌면 물불 안가리고 나서는 저 종리강이 동생의 목숨값을 받겠다며 마교까지 쳐들어갔을지도 모르니까.
“하아…… 그래도 마교 제자를 죽이게 둘수는 없지.”
탁추는 한숨을 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그래도 자신의 대형 종리강이 그런 인물이라서 참 좋았다.
언젠가 자신이 누군가의 칼에 죽임을 당하면, 반드시 그 복수를 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