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95
웃음기 가득한 향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가 보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청아 객점 후원의 담벼락, 어둠이 서려 있는 곳.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유심히 기척을 살폈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쉽사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쥐새끼라는 것은 은신자를 칭하는 말이었고, 그 말을 한 이가 다른 이도 아니고 향이었기 때문이다.
일행 중 그녀가 가장 강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능운비의 생각으로는, 특히나 그쪽 방면에선 중원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최상위급 고수인 그녀다.
하니 유심히 볼 수밖에.
당연히 운학도 그 무위를 겪은 바 있으니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쥐새끼라니…….
“다들 어딜 보는 거야?”
“응?”
“담이 아니고, 담 너머. 저기 저 나무위쪽.”
“……!”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은 향이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 곳은 담벼락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가로수였다.
그 가지가 담벼락 안쪽까지 드리워져 있는.
“왕천! 주승!”
능운비는 지체 없이 소리쳤고, 호명과 동시에 왕천과 주승이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파항!
단숨에 내달려 담벼락을 밟고 쏘아져 나가는 둘의 모습에 운학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 속도였다. 교주의 제자를 호위하는 자들이기에 가진 실력이 낮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직접 본 그들의 움직임은 가히 섬전 같았다.
정파의 후기지수 중에 최고라 자부하는 운학이었음에도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과연 마교인가? 저 정도 실력이라니…….
그럼 그들을 수하로 부리는 능운비의 진짜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산적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불미스럽게 정신을 잃은 터라 초반에만 잠깐 보았기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향이라는 시비는 대체…….
그녀가 말하기 전까지 누구도 쥐새끼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 시끄럽던 중에,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도 쥐새끼의 흔적을 발견하다니.
와중에 담벼락 밖의 나무면 후원 안쪽에 있는 자신들과의 거리가 족히 이십 장은 된다.
그 정도의 거리에서 기척을 느낀다면?
“음……”
운학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시비님(?)의 무공이 자신의 상상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
아니, 대단한 수준이 아니라…… 이, 이건 숫제 괴물이 아닌가?
심지어 능운비마저 하찮게 여기던 것을 보면, 그 지위도 낮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어쩐지 능운비가 녹림왕의 이름마저 우습게 여기더라니.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한데 어떤 쥐새끼일까?
자신이 알기로 능운비와 마찰이 생겼던 곳은 두 곳이다.
정파의 천주문과 녹림십팔채 중 하나인 청화산채.
감천은 정파의 영역이다.
정확히는, 화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종남파의 입김이 강한 곳이다.
그러니 녹림의 인물일 확률은 지극히 낮다. 즉, 정파라는 것인데…….
천주문은 힘이 없다. 그들과 연을 맺었던 이들조차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정파에서 그들의 그릇된 행태를 확인하고 선을 잘라 버리지 않았던가?
하면?
정무맹? 개방?
그도 아닐 것이다.
정무맹이 화산에 요청하길, 마교의 삼공자가 중원과 불미스러운 마찰을 일으키지 않도록 도와 달라지 않았던가?
그럼……종남이?
생각에 어렴풋이 결론에 다다르자, 운학의 마음이 급해졌다.
만약 종남에서 파견한 자가 능운비를 살피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능운비가 안다면?
와중에 교주의 제자와 맞먹을 정도의 지위를 가진 마교의 고수, 시비님께서 함께하고 있다면?
“무량…… 씨부랄!”
운학은 터져 나온 욕을 삼키지 못했고, 욕설과 동시에 왕천과 주승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산적 패는 몰라도 종남은 안 된다.
녹림왕의 의형제라도 일단 패고 산채까지 탈탈 털어 버린 능운비가 아니던가?
종남과 연이 있는 이들이 자신을 살핀 것을 알게 되면 난리가 나도 크게 날것이다.
사람을 패는 것은 물론이고, 그 배후에 있는 이들까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막아야 했다.
쥐새끼는…… 반드시 자신이 잡아야한다. 절대로 마교의 손에 맡겨서는 안된다.
어차피 중원 안내를 자처했으니, 자신이 먼저 나서서 처리해 버리면 그들도 별말 안 할 것이다.
“하아아압!”
하지만 뒤늦게 출발한 터라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애가 타기 시작한 운학은 가진 내력을 모조리 경공에 때려 박았다.
화산의 경공 중에서도 최고라 평가받는 암향표(暗香飄)!
파아앙!
운학이 징검다리 딛듯 땅을 박차는 순간, 그 신형이 한 줄기 백색 선을 그리며 튀어 나갔다.
쐐애애액!
“비키시오오오오!”
“……!?”
코끝이 시큰거릴 정도로 진한 매화향기까지 뿜어내며 달려드는 모양에 왕천과 주승이 화들짝 놀라 좌우로 비켜났고, 운학이 그 사이로 섬전처럼 쏘아져 나갔다.
“저거…… 갑자기 왜 저래?”
능운비로서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가만히 잘 있다가 뜬금없이 왜 나선단 말인가?
물론 황당한 표정을 짓는 것은 마교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어? 어어? 어허헉!”
어려운 이들을 돕던 의인(?)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기에 청아 객점 후원근처 나무에 숨어 있던 선천방 순찰당주 정익수는 기겁을 금치 못했다.
그냥 확인만 하려 했을 뿐이다.
누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하지만 대놓고 방문할 수는 없었다.
몰래 돈을 놓고 간 걸 보면, 자신의 선행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게 분명하니까.
해서 몰래 보고 있었다.
그 정체를 파악하고 방주에게 고해서 인사라도 전하게 하려고.
후원에 있는 이들은 상인이었다. 그리고 의인(?)과 비슷한 복장을 한 이들이 쉴 새 없이 전낭을 챙겨서 담벼락을 넘고 있었다.
아마도 야음을 틈타 의행을 펼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런 상인들이 있다니…….
한데 자세히 보니 도사가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먼 거리 였지만 확실히 보였다.
그 소매에 수놓아진 매화 문양이.
즉, 화산이다.
역시…….
아니, 과연이라고 해야 맞다. 화산과 연을 맺은 상단이 감천을 지나다가 어려움을 외면치 않은 것이다.
또한, 막대한 돈을 뿌리면서도 자신들의 의행이 소문나지 않도록 은밀히 행하다니.
세상은 참으로 살 만했다.
괜스레 뜨거워진 마음에 인사라도 해야지 싶어서 나무를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상단의 수뇌로 보이는 자들이 술을 마시다가 별안간 자신 쪽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어린 소녀, 그리고 전부…….
뒤이어, 별안간 두 명의 무인이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달려왔다.
몰래 지켜보던 것을 눈치채고 자신을 적이라 여긴 게 분명했다.
그런데 별안간…….
“이 빌어먹을 쥐새끼 놈아!”
“……”
같이 있던 화산의 도사가 엄청난 속도로 담벼락을 밟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바람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대응은 금물이다. 혹시나 본능적으로 반격을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해명을 해서 오해를 풀어야 했다.
자신도 정파라고. 종남의 속가인 선천방의 무인이라고.
상대가 화산도사이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도장! 나는……”
빠아악!
입을 연 순간 발에 차였다.
터어엉!
그 충격에 나무에서 떨어졌고, 바닥에 처박혔다.
“크어억!”
등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숨이 턱 하니 막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확 하고 짜증이 치밀었지만, 정익수는 가까스로 참았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닌가?
일단은 오해를…….
하지만 등에 닿은 충격이 너무 커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은 도사를 멈춰야 했기에 손을드는 순간.
빠가각!
힘껏 휘둘러진 운학의 주먹이 정익수의 턱을 후려쳤다.
“크아악!”
하필이면 비명을 지를 때 말이 터질건 뭐란 말인가?
일어나던 그대로 다시 땅바닥에 처박혀 버린 정익수였다.
“이노음! 감히! 쥐새끼처럼 훔쳐봐? 내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콰직! 콰지직!
운학은 사력을 다해 정익수를 짓밟았다.
“끄억, 끄어억! 자, 잠까……”
“닥쳐라, 이놈!”
대화는 없었다.
운학은 손발을 멈추지 않았고, 항거조차 하지 못하고 때려 맞은 정익수는 어느새 넝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운학은 마음속으로 열심히 사죄를 하고 있었다.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그대의 정체는 모르나, 내 손속이 잔인하다 해도 참아 주시오.
이게 다 중원의 평화를 위해서라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콰직! 콰지직! 퍽퍽!
말하려야 말할 수가 없는 정익수였다.
운학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산의 절기에 흠씬 두들겨 맞다 보니 정신마저 아득해지고 있었다.
“다, 당주님! 이노오옴!”
때마침 정익수가 남긴 흔적을 뒤쫓아 온 선천방의 순찰조가 싸움에 끼어들었다.
흉수가 도포를 입고 있었고 그 소매에 매화 문양이 선명했지만, 묻고 따지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정익수가 그 손에 죽어 가고 있었으니까.
“악독한 호랑말코! 감히! 선천방 순찰당주를 해하다니! 용서치 않겠다!”
쐐애애액!
안평이 뽑은 검이 정익수의 멱살을 잡은 손목을 그어 오자, 운학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동행이 있었던가?
그리고 선천방? 종남의 속가가 아닌가?
하지만 그들의 정체를 알았다 한들 멈출수는 없었다.
그들이 마교의 노여움을 받기 전에 자신이 해결해야만 했다.
종남에 고개를 숙이는 한이 있어도 혈사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중원의 평화를 위해…… 모조리 쓰러뜨린다!
쿠우웅!
마보를 취하며 힘껏 진각을 밟은 운학이 양손으로 커다란 원을 그렸다.
휘이이이!
원을 따라 기운이 흐르고, 이내 짙은 매화향이 사방을 가득 채운다.
기운을 내뿜는 것만으로 향기를 동반하는 검향의 경지, 운학의 내공이 얼마나 심후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선천방 무인들의 숫자는 대략 열다섯.
검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마교인들이 끼어들기 전에 해결해야 하니, 단숨에 쓰러뜨릴 수 있는 무공을 쓴다.
팡!
일 보를 내디딘 운학의 신형이 순식간에 선천방 순찰조 사이로 파고들었다.
“놈!”
목을 노려 오는 검을 향해 운학의 손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휘저어졌다.
따아앙!
검이 튕겨 나가고, 다시 나타난 운학의 손이 수십 개의 분영을 만들어 냈다.
떨어지는 매화 꽃잎 아래 생기는 그림자까지 잡아낼 만큼 현란하다는 화산의 낙화추영(洛花追影).
파파파팍!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는 장법과 함께 운학의 신형이 선천방 순찰조의 틈새를 헤집었다.
화산의 기대주이자 중원 후기지수중 최고라 평가받는 운학.
최선까지 다한 그 움직임을 종남의 속가인 선천방의 순찰 무인들이 어찌 감당할까?
뻑! 빠박! 쫘아악!
천 근의 힘을 담은 듯한 일격이 충격을 만들어 낼 때마다 무인들이 정신을 잃고 나가떨어졌다.
물론.
미안하고, 또 미안하오…….
이 모두가 그대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함이며, 중원의 평화를 위함이외다.
부디 이럴 수밖에 없는 빈도를 용서하시오.
내 사죄는 반드시 하리다.
운학은 쉼 없이 용서를 구했다.
마음속으로…….
빡! 빠바바바박!
“……”
난데없는 운학의 등장으로 인해 나설 기회를 빼앗겨 버린 왕천과 주승이 담벼락 위에 서서 멍한표정을 지었다.
현란하다.
과연 화산의 도사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 손속이 도사라고 하기에는 잔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끼어든 거지?
그냥 쥐새끼만 잡아다가 정체만 물으면 되는데?
아마 능운비도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중원에서 일부러 사고를 칠 생각도 아니고, 나쁜 놈이 아닌 이상 무턱대고 손을 쓰라 할 주군이 아니지 않던가?
어리둥절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왕천이 손가락으로 담벼락 밖을 가리키며 능운비에게 물었다.
전음을 마친 능운비가 손을 까딱거려 돌아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긴, 평소에 원한이 없다고 보기엔 너무 잔인하게 두들겨 패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선천방이 어디지?
뭐, 어디든 화산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게 분명하다.
능운비의 말대로 괜히 시끄러운 일을 만들 이유는 없다.
화산의 원한은 화산이 해결하게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