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
#9.
학교 가다 (2)
어둠이 내려앉은 병원.
강진호는 천천히 소아과 병실로 향했다.
지금 시각은 새벽 세 시. 간호사가 두 시와 네 시에 환자를 살핀다는 것은 이미 파악한 뒤였다. 강진호와는 다르게 1인실에 입원해 있는 문지은이니만큼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강진호가 움직이는 것을 누군가 본다고 해도 딱히 거리낄 일은 없겠지만, 이 새벽에 여자아이의 병실로 남자가 들어간다는 것은 역시나 껄끄러운 일이기에 강진호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병실로 향했다.
문지은.
병실 밖에 쓰여 있는 명찰을 확인한 강진호는 조심스레 병실 문을 열었다.
소리가 안 나게 신경을 썼지만 약간의 소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누가 눈을 뜨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침대에서는 문지은이 자고 있고, 그 옆 보조 침대에 문지은의 어머니가 잠이 들어 있었다.
강진호는 조심스레 다가가 지은이 엄마의 수혈을 짚었다.
이제 한동안은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강진호는 가만히 누워 있는 문지은을 바라보았다. 자고 있는 얼굴은 편안해야 할 텐데 살짝 찡그려져 있는 것이, 잠이 들어도 고통은 별로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진호는 천천히 손을 들어 문지은의 아랫배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그녀의 몸 안을 살펴보았다.
흐르던 기운이 심장 어림에서 막혀 돌아 나오는 것이 보였다. 기혈이 막히다 보니 주변 기혈로 과도한 기가 흘러 육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이럴 때는 막혀 있는 혈도를 뚫어주면 된다.
쉬운 일이고, 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혈도를 뚫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 여파를 문지은이 감당할 수 있느냐가 첫 번째 문제였고, 지금의 강진호로서는 이 혈도를 뚫어낼 힘이 없다는 것이 두 번째 문제였다.
‘방법은?’
문제를 알았다면 방법을 찾으면 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한 가지로 해결할 수 있다.
더 많은 기운.
혈도 주위를 강진호의 기운으로 둘러싸 보호하고, 혈을 뚫어내기만 하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만한 기운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단전을 만들 것인가?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옳지 않은 방법이었다. 이미 결심한 일이고, 다른 방법이 정 없다면 모를까 이런 사소한 일로 깨뜨릴 만큼 얕은 고민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강진호는 선천지기(先天之氣)를 끌어 올렸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힘.
처음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지니고 태어나는 기운.
외부의 기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선천지기는 언제나 사람의 몸 안에서 그를 지켜주고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잘 쓰이지 않는 것은 선천지기를 한 번 사용하고 나면 그 보충이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한 번 크게 다친 사람이 그 뒤에도 전처럼 건강해지기 힘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선천지기는 일반적인 진기와는 다르게 활용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웠다. 인간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기운이기에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강했다. 그러므로 선천지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무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강진호는 선천지기를 활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는 무인이었다.
강진호는 서슴없이 선천지기를 끌어 올렸다.
받은 것이 있으면 갚는다. 그리고…….
강진호는 보고 싶었다.
문지은이 병이 나아 평범하게 사는 모습을.
문지은이 그럴 수 있다면 강진호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이유지만, 평범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 못한 것은 문지은이나 강진호나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강진호가 문지은의 병에 관심을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강진호의 우수로 뜨거운 기운이 몰려들더니, 문지은의 단전으로 밀고 들어갔다.
대맥을 타고 올라간 기운은 심장 어림에서 머무르기 시작했다. 기운을 밀어 넣자 문지은의 육체 안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군.’
미약하게 흘려 넣은 기운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돌아 나온다. 생사현관도 아닌 곳이 막혀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당연했다.
강진호는 우선 기운을 넓게 펼쳐 심장 주위를 감쌌다. 기혈이 뚫리는 순간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간다.’
강진호의 선천지기가 들끓어 오르며 문지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막힌 혈도와 기운이 부딪쳤다.
쿵!
커다란 소음이 들리는 것만 같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탓인지 혈도는 쉽사리 뚫리지 않고 강진호의 선천지기를 밀어냈다. 선천지기와 막힌 혈도가 연속적으로 충돌하며 문지은의 몸이 들썩거린다.
‘으음…….’
혈도를 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밀어 넣고 또 밀어 넣다 보면 결국은 뚫리는 것이 혈도다.
문제는 문지은의 몸은 너무도 약하고, 그 여파를 감당할 수가 있느냐였다.
생사현관 타통이 위험한 이유 역시 막혀 있던 혈도가 뚫릴 때, 그 반동을 육체가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 아니던가.
‘멈춰도 결과는 같다.’
강진호는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문지은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막힌 혈도 때문에 전신의 기가 뒤틀릴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결과는 빤했다.
아직 그가 감당할 수 있을 때 해결을 봐야 했다.
강진호는 결심을 하고는 선천지기를 더욱 끌어 올렸다.
문지은의 육체에 더 많은 선천지기를 밀어 넣고 전신을 보호한다. 그러고는 한 줄기의 선천지기에 힘을 실어 문지은의 막힌 혈도로 밀어 넣는다.
쿠웅!
그리고 그 결과, 막혀 있는 혈도는 너무도 맥없이 뚫려 버렸다.
뚫려 버린 기운들이 폭포처럼 밀려들어 남아 있는 혈도를 남김없이 뚫어냈다. 문지은의 몸이 학질에라도 걸린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강진호는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만큼 기운을 밀어 넣어 충돌의 여파가 다른 곳으로 미치지 않도록 보호했다.
기운들이 천천히 가라앉고, 심장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기운들을 회수했다.
“흠…….”
기운이 막혀 있다 보면 독이 생기기 마련이다. 강진호는 문지은의 심장 어림에 남아 있는 독기를 자신의 몸으로 빨아들였다.
번쩍.
그제야 강진호는 문지은의 단전에서 손을 떼고 눈을 떴다.
홍조가 어린 문지은의 얼굴이 보였다. 지금은 숨이 조금 가빠 보이지만, 이제 곧 편안해질 것이다.
“빚은 갚았어.”
남은 것은 그가 할 일이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문지은이 할 몫이다.
한동안 잠든 문지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해진 것을 보자 강진호의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았다.
강진호는 조심스레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옥상으로 올라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다.
시원하기도 하고, 뭔가 간질거리는 느낌.
하지만 싫지 않은 기분이다.
과거였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눈앞에서 죽어간다고 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변해 있었다.
그 변함의 이유가 현대로 돌아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얼마 전까지 이 육체를 사용하던 강진호의 기억이 그의 인격에 영향을 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적천마존은 사라져야 한다.
적천마존의 기억은 너무도 거칠고 괴로움이 가득하기에 평범한 삶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그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적천마존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
강진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살짝 미소를 지은 강진호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강호의 하늘이 아니었다.
이제 병원을 나서고 나면 그에게도 평범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오빠!”
병원을 나서려는 강진호를 향해 문지은이 쪼르르 달려왔다.
그 걸음이 예전과는 다르게 경쾌하다. 얼굴에도 예전에 어린 어둠이 조금 가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강진호의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음…….”
강진호는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렸다.
“퇴원해?”
“응.”
강진호는 문지은의 몸을 다시 한 번 살폈다.
확실히 막힌 듯한 느낌이 사라져 있었다.
“오늘 병원 옮긴다더니.”
“아침에 갑자기 안 옮기기로 했어. 뭐가 나아졌다고 하던데?”
“그래.”
“많이 좋아졌다고, 상황을 더 봐야 한다고 했어. 헤헤.”
“그렇구나.”
“안 놀라네?”
강진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문지은은 조금은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진짜?”
“응.”
헤에, 위아래로 훑은 문지은은 기분 좋은 얼굴로 웃으며 강진호의 옷을 잡고 쭉쭉 당겼다.
“진짜 이상해. 원래 아침부터 점심 먹을 때까지 네다섯 번은 아팠는데, 오늘은 한 번도 안 아팠어!”
“다행이네.”
“그러니까…….”
문지은은 주머니에서 콜라를 꺼내 내밀었다.
“선물.”
확실히 이 녀석의 머릿속에서 강진호는 콜라를 탐하는 북극곰인 것이 틀림없었다.
모든 것은 콜라로 통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외계인들은 콜라를 주식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든가 말이다.
“음…….”
대체 이 오해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가 강진호가 고민할 때, 문지은은 강진호의 내려진 손을 꼭 붙들더니 어색한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고마워.”
“뭐가?”
“여하튼 고맙다고.”
뭐가 고맙다는 거지?
지금까지 같이 놀아준 것?
강진호가 고개를 조금 갸웃했다.
오늘 자신이 퇴원하니 앞으로는 못 볼 것이다. 그러니 저리 말하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조금 아쉬운가?
“그래.”
강진호의 조금은 뚱한 말투에 문지은은 살짝 웃었다. 이전까지는 웃음에도 조금은 어두운 기색이 느껴졌는데, 지금의 웃음은 그 아이 대의 웃음 같아서 자연스레 느껴졌다.
장난기 어린 웃음을 머금은 문지은이 강진호의 손을 꼬집듯 잡았다.
아프라고 잡은 듯한데…… 강진호가 멀뚱멀뚱 있자 김이 샜다는 듯 쳇, 불만을 토해낸 문지은이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응?”
“숙녀의 몸에 함부로 손대면 안 돼!”
강진호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고소한다?”
“…….”
“그러다가 걸리면 바로 감옥 가는 거야. 요즘 법이 얼마나 무서운데!”
“…….”
“비명 지를 뻔했네.”
강진호가 대답할 말을 찾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문지은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네.”
문지은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진호의 손을 한 번 꼭 잡았다 놓더니 쪼르르 달려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병원 또 오지 말고 건강해야 돼. 다음에 또 봐. 꼭.”
강진호는 웃으며 멀어져 가는 문지은의 뒷모습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수혈을 안 짚었던가?”
강진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다.”
아무려면 어떤가,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
“무슨 일이니?”
어느새 다가온 어머니의 말에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죠.”
“그래.”
강진호는 병원을 나섰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저 멀리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문지은이 보였다.
작은 인연이었다.
“건강하길.”
강진호는 즐겁게 웃는 문지은의 얼굴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