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01
#1000.
격렬하다 (5)
“읏?”
전방에서 강진호의 공격을 기다리던 가웨인이 헛바람을 내질렀다.
강진호가 비호처럼 그들의 머리 위를 타 넘는다.
‘미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전장에서 상대방의 머리 위를 타 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였다. 일반적인 전장에서라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좋은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하지만 무인들끼리의 전투에서는 결코 저지르지 말아야 할 실수다. 뛰어넘는 동안 아래에서의 공격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
할 거라 생각지도 않은 일.
그렇기에 오히려 반응이 늦었다. 뛰어오르는 강진호를 공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는 이미 강진호가 그를 타 넘어 뒤로 날아든 후였다.
‘어디?’
가웨인이 발작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막아! 당자아아아앙!”
그의 눈에 베디비어를 향해 날아들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베디비어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강진호가 가공할 속도로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녀의 앞을 막는 바리게이트가 되어야 할 이들은 강진호의 돌발적인 행동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안 돼!’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그녀는 마법사.
열한 명의 엘더 나이트 중에서 둘밖에 없는 마법사다.
물론 그녀가 둘밖에 없는 마법사라는 말에는 어폐가 조금 있다. 다른 이들 역시 어느 정도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마법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엘더 나이트의 수준에 걸맞은 마법사, 검술을 전혀 익히지 않은 순수한 마법사는 오직 그녀와 케이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그녀는 특별하다. 빙계와 보조에 특화되어 있는 케이와 다르게 그녀는 폭발과 화염에 특화되어 있다.
엘더 나이트를 군으로 비유한다면 그녀는 포병. 후방에서 상대가 틈을 보일 때마다 최대의 화력으로 공격을 하는 역할이었다.
그녀가 가진 파괴력은 이곳의 누구보다 뛰어나고 범용적이다. 하지만 마법사인 이상 근접전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이 그녀의 앞을 막아줘야 한다.
‘이 병신 같은 놈들!’
그런데 그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평소의 엘더 나이트들이라면 결코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동료가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본 이들은 평소와 같은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녀조차도 강진호가 앞의 엘더 나이트들을 뛰어넘고 단숨에 그녀에게 날아들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누가 누굴 탓한단 말인가.
“실드! 실드! 실드!”
연속으로 캐스팅을 마쳤다.
근접전이 이어진다면 그녀는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살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아군이 도와주러 올 시간 동안 버티는 것만이라면 어찌어찌 가능할 수도 있다.
마나를 모조리 뽑아내 실드에 밀어 넣는다.
이 방어막은 단시간이라면 세상의 누구도 뚫어내지 못할 것이다. 설사 남은 열 명…… 아니, 아홉 명의 엘더 나이트가 합공을 한다고 해도 수초는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라면 자신!
확신이라면 확신!
하지만 그 확신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스스슷.
강진호의 적루가 유려하게 허공을 가른다.
지금까지 강진호가 보여준 패도적이고 날카로운 검격과는 그 결이 다른.
조심스레 아이를 쓰다듬는 것처럼 부드럽기 짝이 없는 검격이었다. 그리고 그 부드러움이 베디비어의 강함을 밀어낸다.
더없이 강하고, 더없이 완전하다 생각한 실드의 결을 강진호의 검이 파고든다.
강진호의 검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는 것처럼 실드 안으로 쑥 밀고 들어온 순간, 베디비어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만큼 놀라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한다.
그녀의 머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강진호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였다. 강진호의 검이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그녀의 실드를 완전히 갈라 버렸다.
“아…….”
절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놀란 아이처럼 입을 벌렸을 뿐이다. 그런 그녀의 눈으로 마치 죽음의 신처럼 내려앉는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아아아악!”
순간적으로 정신이 든 그녀가 양손을 강진호를 향해 뻗어냈다.
그녀의 손에 마나가 모여든다.
하지만 그 마나가 폭염으로 화하기도 전에 강진호의 검이 먼저 움직였다.
서걱.
앞으로 내민 두 손이 잘려 바닥으로 떨어진다.
베디비어는 자신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잘려?
손이?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운 광경이다.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 이 광경을 현실로 받아들이란 말인가.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푸욱!
강진호의 검이 그녀의 어깨를 파고든다. 육체를 가른 적루가 심장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
강진호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전장에…….”
“…….”
“안전한 곳 따위는 없어.”
어쩌면 이 말은 그녀에게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강진호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의 심장을 갈라 버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털썩.
베디비어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동료 둘을 잃은 엘더 나이트들이 광포한 기세로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죽여 버리겠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며 희게 웃었다.
죽여?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이들은 기사를 자부하는 주제에 전장을 전혀 모른다. 애초에 강진호를 상대로 전쟁을 치른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들이 수많은 시간 동안 치른 전투보다 강진호가 치른 전투가 배는 많다. 강진호는 전장에서 산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강진호가 보기에 이들의 방식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동료와 함께 싸운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동료에게 의지한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군인과 군인의 싸움이라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인을 상대할 때는 망상이나 다름없는 소리다. 무인의 움직임은 일반인과 다르다.
아무리 앞을 틀어막고, 아무리 유기적으로 움직이려고 해도 그 이상의 속도로 움직이는 소수를 막아낼 수 없다면, 진형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대공망을 구축하고, 전차를 철벽처럼 배치한다고 해도 머리 위를 유린하는 한 대의 전투기를 막아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저래서야 아무리 강해져도 소용없다.
최고의 무기를 가졌다고 한들, 그것을 운용하는 이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빤한 방식으로 운용을 한다면, 결국 조금 더 강한 구식 무기일 뿐이다.
“이노오오오옴!”
지금도 그렇다.
‘머저리 같은.’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동료를 잃었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전장은 죽고 죽이는 곳이다. 내가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감히 전장에 서서는 안 된다. 전장에서는 나도, 내 동료도 당연하게 죽어 나간다.
동료 하나가 죽었다고 이성을 잃고 달려든다?
그것도 좋겠지.
먼저 죽은 이가 외롭지는 않을 테니까.
헥터가 철퇴를 치켜들고 광속으로 돌진한다. 그의 철퇴에 실린 뭉툭한 오러가 강진호의 머리를 그대로 내려쳤다.
스슷.
강진호의 적루가 다시 유려하게 움직인다.
노리는 것은 철퇴의 옆면.
강하게 후려치지 않는다. 베어내지도 않는다. 부드럽게 철퇴의 옆면으로 검을 가져다 댄 후, 지그시 밀어낸다.
웅웅우웅!
과도한 오러의 주입으로 울어 대던 철퇴의 방향이 뒤틀린다. 강진호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바닥을 내려친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바닥이 폭탄에라도 맞은 것처럼 뒤집히고 터져 나간다.
솟구치는 파편의 비 속에서 헥터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바닥을 향하던 그의 시선이 두려움과 함께 위를 바라본다.
흙먼지와 함께 튕겨 나가는 자갈들 사이로 강진호의 얼굴이 어설프게나마 보였다.
눈, 그리고 입매.
한없이 차가워 보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얼어붙는 것 같은 눈과 살짝 말려 올라가 있는 입매.
그걸 보는 순간, 핵터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강진호의 검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빠르지 않다. 하지만 느리지도 않다. 그저 적당한 속도였다.
하지만 헥터는 알 수 있었다.
저항할 수 없다는 걸.
왜냐면 지금 튕겨 나가는 자갈들이 마치 멈춘 것처럼 보이고 있으니까.
생명의 위기를 직감한 그의 뇌는 오버클럭하며 시간을 쪼개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멈췄다. 날아가는 돌과 자갈도, 그의 동료들도, 심지어 헥터의 육체조차 그가 보내는 신호를 따라오지 못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 느린 세상 속에서 오직 강진호만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평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 돼!’
그 말인즉슨, 정상적인 속도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지금 강진호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검을 휘두르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공간.
그 정적 속에서 강진호의 검이 헥터의 목을 파고들었다.
차갑고 섬뜩한 무언가가 천천히 다가와 피부에 닿는 느낌, 살갗이 갈라지는 느낌, 신경이 몰려 있는 피부 아래로 차가운 금속이 천천히 밀려 들어오는 느낌을 더없이 생생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입을 벌려 비명을 지르려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다.
그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또 지를 수밖에 없었다. 고통이 한 올, 한 올 더없이 자세하게 느껴진다.
수많은 후회.
그리고 절망.
그가 수련한 시간이, 그가 쌓아 올린 무위가 오히려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주인의 위기에 충실하게 대처한 뇌는 지금 이 순간 헥터에게 인간이라면 느끼지 못할 끔찍한 고통을 수천 배로 늘려 맛보게 하는 중이었다.
마침내 강진호의 검이 살을 가르고 뼈에 와닿았을 때쯤, 헥터는 오히려 안도했다.
끝나간다, 이 끔찍한 시간이.
저 검이 뼈를 잘라내고 그의 목을 완전히 가르고 나면, 이 지옥 같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헥터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무도.
왜 하늘로 치솟아 올라간 그의 머리가 미소를 짓고 있는지. 왜 더없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툭.
바닥으로 떨어진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 강진호의 발아래 멈췄다. 강진호는 헥터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걷어차 날렸다.
가웨인이 엉겁결에 자신에게 날아온 헥터의 머리를 받아 들었다.
“…….”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여유는 이미 사라졌다.
“그…….”
무언가 말을 하려는 찰나, 강진호가 적루와 청루를 펼쳐 들고는 그들을 향해 비조처럼 날아들었다.
마치 세상을 향해 지옥을 빠져나온 악마가 내려서는 듯한 형상으로.
대화는 이제 더 필요 없다.
그 사실을 강진호는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적에게…….”
적에게는 죽음을.
엘더 나이트의 상징과도 같은 그 구호가 차마 끝까지 나오지 못한다.
저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가 아니다.
죽음을 내리는 자였다.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는 게 엘더 나이트들의 실수였다.
적루와 청루가 검은 마기를 뿜어내며 검게 타올랐다. 강진호가 귀신같은 얼굴로 이를 드러내며 엘더 나이트들의 한중간으로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