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05
#1004.
지배하다 (4)
‘더 벌어졌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총회에서 강진호의 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는 바토르다. 바토르일 수밖에 없다.
직접 강진호의 적으로 그를 상대해 본 사람이 바토르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강진호와 맞붙었을 때, 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물론 바토르 역시 그때의 강진호가 전력을 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의 강진호는 바토르를 제압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부상을 감수해야 했다. 격차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바토르의 착각에 불과했다.
벌어진다.
멀어진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진호와 바토르의 차이는 커져만 갔다.
이대로면 평생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마공까지 받아들였건만, 바토르와 강진호의 차이는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마공은 그 간격이 벌어지는 속도를 조금 줄여주었을 뿐이다.
바토르가 입술을 핥았다.
충격?
물론 충격은 크다.
하지만 지금 바토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결코 절망감이 아니었다.
‘이제야 대충 감이 잡히는군.’
바토르는 강진호의 강함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니,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가 얼마나 강한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와 싸울 때의 강진호는 전력을 다하지 않은데다, 지금의 강진호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홍왕과 싸우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았냐고?
지금 눈앞에서 용과 기린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재단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차마 범접할 수 없는 강자들의 전투는 눈을 개안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피부로 와닿지는 않는 법이다. 홍왕과 강진호의 전투가 그랬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알 수는 있지만, 그 강함을 계량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그 강진호의 강함이 처음으로 계산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엘더 나이트.
바토르가 보아도 저들의 힘과 그의 힘은 거의 호각이었다. 서로 익힌 무학의 상성이나, 서로 누가 더 컨디션이 좋은가 정도로 승부가 갈릴 만큼 비슷하다.
아니, 냉정하게 말하자면, 저들의 힘이 바토르보다는 조금 앞서 있었다. 직접 맞붙었을 때는 이길 자신이 있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저들의 무력은 확실히 바토르를 초월한다.
다시 말해…….
‘내가 열한 명이 있어도 주인을 이길 수는 없다는 뜻이군.’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바토르는 강진호에게 충성을 다하기로 맹세했다. 그 마음에는 털끝만큼의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강진호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 앞으로 강진호를 능가하기를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충성은 충성, 강함은 강함.
왕에게 충성하는 장군이 왕보다 약해야 할 이유는 없다. 강진호에게 충성은 하되, 그보다 강해지려 노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는 무인이니까.
하지만 바토르는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되레 흥분하고 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지금 강진호는 마공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의 바토르라면 절망했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도 강진호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바토르는 아니었다.
그는 이미 강진호가 전수한 마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강해지는 중이었다.
‘저 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마공에 대한 적응을 완전히 끝내고, 집중하여 마공을 수련할 수 있다면 그 역시 강진호처럼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가 있겠는가.
바토르가 입술을 핥았다.
‘나는 더 강해진다.’
더더욱!
지금보다 훨씬 더! 저 강진호만큼!
바토르가 흥분을 가득 담고 전방을 주시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흥분한 이는 결코 바토르가 아니었다.
“……마존.”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온다.
강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하다.
강진호가 보여주고 있는 신위는 같은 마공을 익히고 있는 이들에게 더할 수 없는 충격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보아라.”
장민이 주먹을 움켜쥐고 말했다.
“저분이 마존이시다. 너희의 주인이자 만마의 주인, 그리고 이 시대에 다시 마교의 영화를 부활시킬 분이시다.”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왜 모르겠는가.
강진호가 마존이며, 그들의 유일한 교주라는 걸.
중국에서 그의 신위를 보았을 때, 그리고 홍왕계가 밀려 들어왔을 때, 홍왕과의 격전을 치르는 모습에서 그들은 이미 강진호를 그들의 유일한 신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눈으로 다시 확인하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다르다.
다른 이들은 그저 강진호의 강함을 느낄 뿐이지만, 이들은 저 광경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마교의 전설.
마교의 신화.
천시적종(天始赤終).
마는 천마에서 시작해 적마에서 끝난다.
모든 마공이 천마에서 시작했다면, 모든 마공은 적마에서 완성되었다.
그 신화의 장본인이 마교의 신물인 적루와 청루를 휘두르며 서양의 괴물들을 어린아이 손목 뒤집듯 학살해 버리는 모습은, 지켜보는 마인들로 하여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만들었다.
“의심하지 마라.”
“…….”
“저분은 마교를 구원하기 위해서 과거로부터 오신 분이다. 온당히 너희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분이시며, 온당히 모든 마인들을 지배할 분이시다. 그 대가로 저분께서는 너희에게 강함을 주실 것이다. 의심하지 마라.”
“예!”
우렁찬 대답의 들려왔다.
장민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눈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다.
‘마존이시여.’
마존에게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신실하지 못한 일이다. 저분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 그들이 저분께 드릴 것은 올곧은 믿음과 목숨을 건 충성밖에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간악한 존재.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며, 믿고 나서도 의심에 의심을 거듭한다.
그런 이들을 믿게 하는 방법은 결국 하나밖에 없다.
증명하는 것.
그리고 지금 마존은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증명의 과정에서 자신을 믿는 이들에게 희망을 부여해 주고 있었다.
그저 믿고 따르는 것만으로 자신들도 강해질 것이라는 희망.
‘이루어질 것이다.’
마도천하(魔道天下).
꿈에서도 바라고 또 바라던 것.
그 그림자라도 밟을 수 있다면, 마도천하가 이뤄지는 모습을 이 늙어버린 두 눈으로 지켜볼 수라도 있다면 장민은 자신의 몸뚱아리가 지옥불에 던져진다 해도 웃을 수 있었다.
“지켜보아라! 마존께서 너희에게 보여주실 것이다! 너희가 가야 할 길을!”
파아아아아앙! 파아아아아아앙!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평생 동안 휘두르고 또 휘두른 창이지만, 지금만큼 일격을 쏟아내는 데 전력을 다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웨인은 강진호가 말한 ‘충분했다’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간절하지 않았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일격, 일격을 날려본 적이 대체 언제던가.
있는 힘을 모두 끌어내서 일격을 날리면 지금처럼 손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도 생전 처음 알았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지금까지의 긴 삶 동안 단 한 번도 지금처럼 전력을 다해 볼텍스를 날려본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가웨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니야.’
알았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강해질 필요가 없었으니까. 모든 것을 손에 넣고 그 영광을 누리기만 했던 그가 필요하지도 않은 조금 더 높은 경지를 얻기 위해 자신을 학대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인간은 그럴 수 없다. 인간은 모든 것을 손에 넣으면 결국은 나태해지는 존재다. 강함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학대할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게 저자가 가진 강함의 비결인가?’
강진호는 그래왔다.
강함의 비결?
강진호는 간절했던 것이다.
그는 더 강해지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하고, 고뇌하고, 또 움직인다.
가웨인이 만족한 경지를 아득하게 초월해 버린 지금도 더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그리 강할 수밖에.
결국 강함에는 정도가 없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 빤하디빤한 소리를 우직하게 지켜낸 자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경이롭다.
존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온 피를 감아 올리며 거대한 볼텍스가 강진호를 향해 날아든다.
인생 최고의 일격.
‘죽는 건 너다!’
자신보다 강한 자라고 해서 죽이지 못할 이유 따위는 없다. 가웨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이 일격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날아드는 볼텍스와 쏟아지는 화살, 그리고 전신을 얼려오는 차가운 한기, 불쑥 솟아오르는 반월의 검광과 불광(佛光)을 연상케 하는 눈부신 빛의 검격.
그 모든 것이 일시에 강진호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털끝이 곤두선다.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가슴속에서 야성이 포효하고 있었다.
다르다.
지금까지의 공격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 위력이야 대동소이하다고 쳐도 지금 그에게 날아드는 공격은 분명 지금까지 그가 받아내던 공격과는 차이가 있었다.
살기.
상대를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
내 목을 주고 상대의 뼈를 갈라 버리겠다는 지독한 살기가 그를 노린다.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등골이 오싹하게 긴장한다.
적루와 청루를 잡은 손아귀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그래, 이거다.
바로 이거다!
이게 전투다!
광소라도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섯이라는 동료를 잃은 끝에 마침내 저들은 전투가 무엇인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대응을 해주어야지.
화아아아아악!
가슴을 중심으로 검은 마기의 화염이 터져 나가듯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화염은 그의 팔을 타고 적루와 청루로 밀려 들어갔다.
검신까지 새까맣게 물든 적루와 청루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인다. 피어오르는 화염을 두른 적루와 청루가 허공에 마구잡이로 휘둘러졌다.
거대한 화염의 벽이 만들어진다.
강진호가 만들어낸 시커먼 화염의 벽과 엘더 나이트들의 영혼을 실은 공격이 그대로 맞부딪친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불꽃과 참격의 폭풍이 홀을 휩쓸었다.
그저 충격파로 끝나지 않았다. 튕겨 나온 오러와 터져 나간 마기의 화염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벽을 때리고, 기둥을 무너뜨리고, 바닥을 뒤엎었다.
콰르르르르르르릉!
홀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린다. 이만한 충격과 흔들림이 있음에도 홀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막아!”
사방으로 비산하는 오러와 마기의 파편이 지켜보는 이들을 덮쳤다.
제때 대응한 이들도 있지만, 대응하지 못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이들도 생겨났다.
“크으!”
바닥에 엎드린 이현수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결과는?’
그때, 그의 눈에 가공할 속도로 돌진하는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