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06
#1005.
지배하다 (5)
활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알고 있다.
도망갈 곳은 어디도 없다. 이 좁은 홀에는 탈출할 곳이 없으니까.
설사 탈출할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자 앞에서는 달아날 수 없을 것이다. 두 눈으로 혈광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그를 향해 가공할 속도로 날아드는 악마.
저 악마에게서 달아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다리에 힘을 준다.
저도 모르게 자꾸 뒤로 흠칫흠칫 물러나려는 다리를 바닥에 박아 넣는다.
달아나지 않기 위해.
의지를 다지기 위해.
알고 있다!
‘나는 무력하다.’
그의 화살은 세상 무엇보다 날카로웠다.
전장의 앞에서 싸우는 이들이 더 많은 영광을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엘더 나이트들 중 가장 큰 전과를 올린 이는 그와 베디비어다.
전장에서는 눈앞에서 날뛰는 기사보다 원거리에서 쏟아지는 마법과 화살이 배는 무서운 법이다.
하지만 그건 전장에서의 이야기였다.
냉정하게 말했을 때, 이 전투에서 그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되레 그가 날린 화살 덕분에 두 명의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
갤러해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평생 자부심을 가지고 익혀온 무학이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경험을 넘어 그의 목숨마저 끝날 위기에 처해 있다.
‘나는 나약하다.’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을 볼 수 있으니까.
갤러해드의 손이 재빠르게 아공간으로 쑤셔 넣어졌다. 그러고는 그 안에서 하나의 거대한 화살을 뽑아냈다.
그의 화살은 거대하다.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화살이 아니라 창이라고 생각할 만큼 굵고 길었다.
하지만 지금 갤러해드가 뽑아낸 화살은 지금까지 그가 날린 화살보다 배는 더 두꺼웠다. 너무도 두꺼워 과연 이것이 화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잡을 수 없어.’
강진호는 지금 그에게 달려들고 있다.
앞을 막아주는 이들이 있어도 강진호를 상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지금처럼 앞이 확 트인 곳에서 강진호를 막는다?
불가능하다.
특히나 궁수인 그에게 상대와 정면으로 맞붙는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싸운다면 그는 원탁의 누구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갤러해드는 진형을 이탈하는 쪽을 택했다. 어차피 도움이 안 될 거라면…….
“갤려해드!”
갤러해드가 자신의 위치를 벗어났다는 걸 깨달은 엘더 나이트들이 비명을 지른다.
‘놀랄 것 없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쓰레기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법이니까.
그가 화살을 시위에 겨눴다.
드래곤 킬러(Dragon Killer).
이 화살의 이름이었다.
실용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 그대로 용을 죽이기 위해 파괴력만을 극한으로 올린 화살.
한쪽으로 치우친 병기가 다 그렇듯 이 화살은 압도적인 파괴력과 더불어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기에 달한 그의 궁술로도 이 화살을 정확하고 빠르게 날릴 수가 없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봉인해 두었던 화살이다.
하지만 지금, 갤러해드는 이 화살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아챘다.
‘내가 쓸모가 있어졌다고, 친구들.’
그의 눈이 광기로 물들었다.
자신이 날린 화살로 동료가 둘이나 죽었다. 태연하고 침착한 척하려고 했지만, 그의 속은 이미 썩어 문드러진 뒤였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죽어서는 먼저 죽은 동료를 볼 낯이 없다. 그러니…….
이걸 박아 넣는다.
그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말이다.
꾸우우우욱!
활의 시위가 뒤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활보다 화살이 배는 더 큰 기이한 형태이지만, 그 모습이 주는 위압감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갤러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오히려 갤러해드에게 돌진하는 강진호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콰아아아아!
가공할 속도로 날아든 강진호의 손이 갤러해드의 목을 움켜잡는다.
그 충격으로 목이 뒤로 젖혀지고 목뼈에 금이 간다. 전신을 오러로 둘러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일격으로 목이 부러지거나 잘려 나갔을 것이다.
“끄으으읍!”
전신이 불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갤러해드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끄…….”
“뭘 하려는 거지?”
강진호가 팔을 쭉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갤러해드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강진호의 눈을 마주한 갤러해드가 낄낄대며 웃음을 흘린다.
“……영광이군.”
“…….”
“그대가 나 같은…… 조무래기의 행동에 관심을 가져주다니 말이야.”
영광이다.
반쯤은 진심, 반쯤은 비꼬는 말.
“나는…….”
우둑.
강진호는 주저 않고 갤러해드의 목을 꺾어버렸다. 무슨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태평하게 들어주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목이 꺾인 갤러해드의 눈이 급속도로 흐려졌다. 아무리 무인이라고는 해도 목이 꺾인 이가 생명을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와 함께…….
“가, 같이…….”
갤러해드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같이 가……자.”
그 순간까지도 힘을 풀지 않던 갤러해드의 팔이 늘어지며 당기고 있던 시위를 놓았다.
하지만 이미 목이 꺾인 이가 화살을 날릴 수 있을 리 없었다. 활에 걸려 있던 드래곤 킬러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마지막 일격마저도 허무하게 빗나가 버린 것이다.
강진호가 미련 없이 갤러해드를 집어 던지려던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드래곤 킬러가 그대로 폭발하며 갤러해드와 강진호를 집어삼켰다.
예상치 못한 일격.
무시무시한 폭발에 지켜보던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회주님!”
“갤러해드!”
마병(魔兵).
그 이름이 딱 적당했다.
드래곤 킬러는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지만, 그 폭발의 여파는 주변으로 뻗어 나가지 않았다. 마치 커다란 유리관 속에서 일어난 폭발이 유리관을 뚫고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밖으로 뻗지 않은 채 일정 구역 안에서만 폭염이 소용돌이쳤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법은 그걸 가능하게 한다.
응축된 폭발은 뻗어 나갔을 때보다 몇 배의 위력으로 강진호와 갤러해드를 휩쓸었다.
그러고는…….
휘이이이잉!
차가운 바람 소리만을 남기며 폭발이 잦아든다. 폭염이 거친 곳에는 단 한 사람만이 두 다리로 서 있을 뿐이었다.
“퉤!”
강진호가 바닥에 피 섞인 침을 뱉었다.
“회주님!”
이현수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저 어마어마한 폭발 속에서도 강진호는 생존해 냈다. 하지만 무사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그을음과 흘러나온 피로 엉망이 된 몰골로 강진호가 손을 들어 얼굴을 훔친다.
그러고는 살짝 휘청였다.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타격은 받은 것이다.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강진호의 손이 자신의 가슴팍으로 다가갔다.
꽈아악!
그러고는 뭔가를 움켜잡고 뽑아낸다.
떨그렁.
강진호의 손에서 바닥으로 무언가 떨어졌다.
검은빛을 띠고 있는, 20㎝에 달하는 강침.
보기만 해도 섬뜩한 색으로 번들거리는 강침이 그의 가슴에서 뽑혀 나왔다.
떨그렁, 떨그렁.
하나하나의 강침이 뽑힐 때마다 핏줄기가 쭉 뿜어진다. 몸 안으로 한 뼘이나 틀어박힌 십여 개의 강침이 모조리 뽑혀 나온다.
순식간에 강진호의 전신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
이현수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미 죽고도 남았을 만한 상처였다. 아무리 강진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는 하나, 저만한 상처를 입고도 무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사부님!”
“경거망동하지 마라.”
“하지만!”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느냐!”
이현수가 입을 다물었다. 위긴스의 목소리에서 다급함과 불안함이 느껴진다.
그도 지금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저딴 무기 따위에!’
강진호가 차라리 다른 엘더 나이트들의 공격에 상처를 입었다면 이런 기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건…… 저건 빌어먹을!
그 순간, 강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손을 들어 얼굴에 흐른 피를 닦아낸 강진호가 갈기갈기 찢겨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변해 버린 갤러해드의 시체를 바라본다.
“재밌는 한 수였어.”
이를 드러내고 웃은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가웨인들을 노려보았다.
“……뭐 하고 있지?”
“…….”
“좋은 기회인 것 같은데? 나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어.”
“…….”
가웨인이 질린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저걸 쓸 줄이야.’
신화와 현실이 뒤섞인 시대.
세상에는 가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것들이 출현하고는 했다. 그 괴물들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무기가 필요했다.
강철 같은 비늘로 전신을 두른 신화의 괴물을 잡아내는 방법은 비늘이 없는 곳을 공격하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만들어진 성유물(聖遺物)들.
배 속에서 터져 거대한 괴물을 일격으로 쓰러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과거의 유산. 그들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마법이 지배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병기들.
가웨인이 사용한 것은 그중 하나였다.
보다시피 성유물은 반드시 사용자의 목숨을 필요로 한다. 애초에 괴물의 배 속에 무기를 처박는 것부터가 사용자가 무기와 함께 괴물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가.
그 끔찍한 마병(魔兵)의 위력을 전신으로 받았음에도 강진호는 여전히 전투의 의지를 잃지 않고 있었다.
“란슬롯.”
가웨인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약속은 지켜라!”
“반드시!”
란슬롯의 대답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가웨인이 창을 들고 강진호를 향해 돌진했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조차 저 괴물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하지만 피해는 확실하게 입혔다. 다섯이라는 목숨을 버려서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괴물을 상대로 처음으로 타격을 입힌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할 때다.
“트리스탄! 퍼시발!”
“오오오오오오!”
그의 좌우를 두 명의 검사가 채운다.
가웨인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내보지 못한 속도로 돌진해 들어갔다.
방어?
그런 건 없다.
원래대로라면 이 진형을 갖추었을 때, 그의 앞을 브루노어가 지켜주어야 한다. 상대의 반격을 브루노어가 받아내고 그는 상대의 가슴을 꿰뚫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브루노어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브루노어가 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저 괴물을 상대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 드는 것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죽어라아아아아아아!”
상대의 심장을 노리는 것은 창이 아니다.
그의 목숨, 그의 모든 것.
영혼을 불태워서라도 상대의 심장을 꿰뚫고 말겠다는 의지.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야 그는 전투에 임한 무인이 무엇으로 싸워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그의 창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힘을 보여주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스스로도 놀랄 위력으로 뿜어진 볼텍스가 강진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카캉!
하지만 그 볼텍스는 너무도 허무하게 강진호의 일격에 튕겨 나갔다.
실망하지 마라.
한 번으로 안 된다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된다면 세 번, 열 번! 백 번이라도! 날리고 또 날려라. 육체가 짓뭉개지고 영혼이 터져버릴 때까지.
과도한 압력을 이기지 못한 그의 눈이 반쯤 터지며 피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렀다.
“강진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천 년의 세월 동안 원탁을 수호해 온 엘더 나이트 가웨인.
그의 혼이 지금 여기서 너무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