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2
#101.
휴가 가다 (1)
“목소리요?”
강진호가 얼굴을 굳히자 강은영이 혀를 찼다.
“진짜 사귀어?”
강진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자 강은영이 뜨끔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
‘나 왜 쫄지?’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커오면서 항상 강진호는 그녀의 밥이나 다름없었는데, 요즘은 아빠보다 더 무섭다.
‘왜 이렇게 됐지?’
강은영은 묘한 반발심을 느꼈지만, 고개를 살짝 들어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강진호의 눈빛을 보자마자 다시 들린 머리를 원위치시켰다.
예전 그녀의 오빠는 덜렁대기도 하고 영 믿음이 가지 않는 오빠 놈이었는데, 사고가 난 이후로는 오라버님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부모님도 강진호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반항을 하고 싶어도 이도 들어가지 않았다.
“음, 목소리가 영 기운이 없더구나.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닌지 내가 다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더 물어보는 것은 실례인 것 같고.”
“잘하셨습니다.”
강진호는 조금 갑갑해진 마음에 천장을 바라보았다.
‘잘 지내고 있어야 할 텐데.’
이제는 박유민도 홀로서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좀 일렀을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생각을 해보면 다른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이라면 아직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을 나이였다. 그런 주제에 책임감은 강해서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모두 자기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박유민이다 보니, 다른 이들의 몇 배나 되는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한 번 가봐야겠군.’
휴가가 언제더라?
강진호는 의식하지 않고 있던 휴가에 대한 생각을 했다. 휴가증을 따 온 게 있으니 백일휴가를 나간다고 해도 남들보다는 길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먹자, 진호야.”
“예, 어머니.”
군대 밥이 딱히 입에 안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해주신 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천천히 먹어라. 물도 먹고.”
“……안 드십니까?”
“우린 먹고 왔어.”
강진호는 조금 아연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다면 테이블 위에 가득한 이 음식을 강진호 혼자 먹으라고 가져왔다는 말인가.
소로 종족을 변환하지 않는 이상은 무리한 일이었다.
“음?”
그 순간, 강진호의 고개가 문 쪽으로 돌아갔다.
문밖으로 많은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로 다가간 강진호가 문을 벌컥 열었다.
“으앗!”
그러자 안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분대 선임들이 놀라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필승.”
강진호가 경례를 하자 어색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받는다.
“그래, 진호야. 면회 잘하고 있니?”
“예. 잘하고 있습니다.”
“첫 면회라서 괜찮나 싶어서 한 번 들러봤다.”
강진호는 가볍게 웃고 말았다.
“괜찮으시면 들어오셔서 음식 좀 드십시오.”
“그래도 될까?”
전혁수가 강진호에게 물으면서 힐끔힐끔 안을 바라보았다. 보통 군인들에게 사제 음식이라는 것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그 마약이 2순위로 밀려 있었다. 선임들은 온통 강은영을 훔쳐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예. 들어오십시오.”
전혁수가 간절한 얼굴로 바라보자 조원구가 고민에 빠졌다.
강세아가 왔다고 해서 와보기는 했지만, 신병의 면회 장소에 난입하여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 위로 알려지면 그냥 끝날 일이 아니었다.
부대 이미지를 추락시켰다고 포대장님이 길길이 날뛸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냥 인사드리러 온 거다. 음식은 너 많이 먹고, 우리는 그만 올라가 봐야겠다.”
“분대장님.”
“조용히 안 해?”
조원구는 굳이 일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강진호 이병의 분대장을 맡고 있는 조원구입니다.”
“아, 분대장님이시군요.”
강유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원구에게 악수를 청했다.
조원구는 두 손으로 강유환의 손을 잡았다.
“부족한 자식 놈이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진호가 부족하면 저희는 다 나가 죽어야 될 겁니다. 혼자서도 잘할 애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 농담을 잘하시네요.”
농담이면 참 좋겠습니다, 아버님.
조원구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강진호의 부모님이라고 해서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궁금했는데, 평범한 인상이라 더 무섭다.
강진호가 워낙에 특이하다 보니 그 부모님도 특이한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어쩌다 저런 좋은 부모님들 밑에서 이런 괴물 같은 놈이 태어났는지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음식들 좀 들고 가세요.”
“아닙니다. 군대 오고 나서 처음 부모님 뵙는 자리인데, 눈치 없이 끼어들면 욕먹습니다.”
“음식 많이 남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넉넉하게 싸 왔어요.”
“정말 괜찮습니다.”
조원구는 등 뒤로 쏟아지는 원망의 눈빛을 외면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대신에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가시는 길에 따님분 사인이라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분대원들이 워낙에 좋아하거든요.”
“아, 그런가요?”
강유환이 시선을 돌리자 강은영이 활동복에서 머리를 쏙 빼더니 V자를 그렸다.
“얼마든지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남은 분대원들이 환호를 지르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들 생활관으로 올라갔다.
“……내 음식이 딸내미에게 지다니.”
“엄마, 현실을 인정해야지. 나는 떠오르는 태양이라고.”
“내가 젊었으면 너 같은 건 옆에 오지도 못했어!”
“사진 다 봤는데?”
“…….”
백현정이 말없이 빤히 바라보자 강유환이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래, 네가 아무리 내 딸이지만, 엄마 젊었을 때만은 못하지.”
“아빠!”
강유환이 백현정의 눈에 보이지 않게 몇 번이고 윙크를 했다. 쏟아지는 SOS 신호에 강은영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빠는 너무 잡혀 살아.”
“그래야 집이 평온한 거야.”
환히 웃는 강유환을 보며 강진호도 미소를 지었다.
부대의 생활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간만에 가족들을 보니 따뜻함이 느껴졌다.
‘잠시 떨어져 있으니 알겠군.’
가족이란 존재가 그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중원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많이 느낀 것들이지만, 몇 년 동안 당연한 듯이 함께 지내다 보니 그 소중함이 옅어졌었다.
‘그런 의미에서 군대도 나쁘지는 않군.’
평소 느끼지 못한 일상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군대에서도 분명 얻는 것이 있을 듯싶었다.
그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면회 시간이 종료되었다.
“여기요.”
“저, 저는 등에 써주십시오.”
“등에요?”
“여기 활동복에 써주시면 됩니다.”
조원구가 자신의 등판을 내밀었다.
강은영이 깔깔 웃다가 조원구의 등에 크게 사인을 했다.
사인을 받겠다고 달려드는 이들이 많았지만, 강진호나 강유환이 딱히 나설 것도 없이 분대 선에서 정리가 되었다.
“에헤이! 우리 세아 씨가 귀찮아하시잖아.”
“우리 분대 면회 오신 분들인데 니들이 왜 들이대! 비켜!”
“이리 오시면 안 되지 말입니다.”
분대원들에게 하나하나 사인을 해준 강은영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저희 오빠 잘 부탁드려요.”
“걱정 마십시오!”
“완벽하게 돌보겠습니다.”
강은영이 강진호에게 혀를 삐죽 내밀었다.
“간다. 또 올게.”
“……이리 와봐.”
강진호가 손짓으로 강은영을 불렀다.
“으응?”
“아까 이야기한 거 잊지 마라.”
“……진짜로 그래야 돼?”
“다시 말 안 한다.”
강은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돼.”
“응.”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강진호의 말을 따라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은영이다 보니 가타부타 말을 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반항한다고 마음을 바꿀 강진호도 아니었다.
‘꽉 막혔어, 진짜.’
요즘 남자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밉지 않으니 문제다.
“몸조심하거라.”
“휴가 나올 때 꼭 전화하고.”
“네. 걱정 말고 조심해서 가세요.”
“그럼 간다.”
좀체 발을 못 떼는 백현정을 억지로 잡아끌 듯이 차에 태운 강유환이 강진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진호야.”
“예, 아버지.”
“기억해라. 불합리해도 한 번은 더 참아.”
“예.”
“믿는다.”
강유환이 차를 몰고 위병소를 빠져나가자 강진호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조원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처남.”
움찔.
강진호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군 생활이 힘들지? 형이랑 PX 갈까?”
“괜찮습니다.”
“배 안 고파?”
“많이 먹었습니다.”
강진호가 조원구를 두고 앞장서서 생활관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허, 처남! 같이 가세, 같이!”
강진호의 걸음이 좀 더 빨라졌다.
군 생활은 강진호에게 딱히 별다를 것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강진호에게는 별다른 트러블이 생기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트러블이라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군대에서의 인간관계라는 것은 보통은 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후임 때문에 벌어진다.
군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후임이 모든 일을 척척 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문제는 그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고 몇 번이나 후임에게 일을 다시 고지해 줄 수 있을 만큼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 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도 군대에서 자신의 일에 쫓기는 동시에 후임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했다는 갈굼에 시달리다 보면 목소리 톤이 올라가기 마련이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짜증을 부리게 된다.
경직된 사회의 악순환과 닫힌 사회의 악순환이 동시에 벌어지는 곳이 군대인 것이다.
병장이 되면 권력을 가지는 동시에 온화해진다고 하는 이유는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탈출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진호는 그 악순환에 애초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제원 장입했냐?”
“예.”
“포 닦았어?”
“예.”
“포상 청소했냐?”
“예.”
“잡초 뽑았어?”
“예.”
“……안 한 건 있니?”
“지금 찾고 있습니다.”
자신이 할 일을 다 하다 못해 내무반을 다 청소해 놓고, 선임들의 관물대까지 정리해 버릴까 고민하고 있는 강진호를 보고 있자니, 지금까지 자신의 군 생활은 무엇이었나 고민이 되는 성태호였다.
“너, 정말 군대 처음 온 것 맞냐?”
“군대 두 번 오는 사람도 있습니까?”
“넌 TV도 안 보니?”
“안 봅니다.”
성태호는 눈앞의 괴물 같은 신병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강진호를 보고 있자니 그가 너무 작아졌다.
맞후임이라 이뻐해 주고 싶은 마음도 많았건만, 하고 있는 걸 보자면 그가 이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쁨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니 선임들도 좋아하는 거겠지.’
처음 강진호에게 날을 세우던 전혁수도 어느 순간 강진호만 보면 헤벌쭉이다. 조원구처럼 강은영에게 사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좋아서 안달이다.
하기야 강진호가 온 이후로 그들이 할 일이 반으로 줄어든 느낌이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휴가 준비는 다 끝나가?”
“딱히 준비할 게 있나 싶습니다.”
“갔다 오면 바로 유격이네. 너도 큰일이다.”
“유격 말입니까?”
“그래. 나도 처음이라 걱정된다.”
강진호가 뚱하게 성태호의 말을 받았다.
“그런 거 그냥 받으면 그만이지 말입니다.”
“……너야 그렇겠지.”
괜히 서글퍼지는 성태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