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22
#1021.
재회하다 (1)
까득, 까드득, 까드드득.
한은솔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가 아까부터 한은솔의 신경을 긁어 대고 있었다. 듣는 사람을 절로 불안하게 만드는, 손톱 물어뜯는 소리.
“누, 누나.”
참다못한 한은솔이 슬쩍 룸미러를 바라보았다.
최연하가 검지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왜, 왜 그래요! 그거 네일 비싸게 주고 한 건데.”
최연하의 눈이 손톱으로 향했다.
고개를 끄덕인 최연하가 가만히 손을 내렸다.
“후우.”
한은솔이 한숨을 내쉬고 전방을 주시했다.
운전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저 소리 때문에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 이제라도 집중을…….
까득, 까득, 까드드득, 까득.
“아, 좀!”
한은솔이 차를 구석으로 대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정신 사나워서 운전이 안 되잖아요! 운전이!”
“한은솔이.”
“……네?”
“많이 컸다.”
“…….”
“요즘 내가 좀 착해지긴 했지? 응? 그지?”
“그, 그럴 리가요, 누님.”
“뭐? 안 착해졌어?”
“아, 아니요. 착해지셨죠. 요즘 누나는 천사예요.”
한은솔이 열심히 입술에 침을 발랐다.
‘솔직히 착해지기는 했지.’
과거 최연하의 매니저 자리는 매니저계의 특전사, 매니저계의 헬 팟이라 불렸다. 한은솔 이전에는 육 개월을 버틴 사람이 없었으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의 난이도는 그때에 비하면 튜토리얼이나 다름없었다. 매니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무리 없이 수행 가능한 수준이다.
물론 최연하가 한은솔이 아닌 다른 사람이 와도 똑같이 굴어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 아니, 운전을 해야 하는데 정신이 사나워서.”
최연하가 다리를 꼬고 턱을 들었다.
“그럼 귀마개를 해. 이어폰을 끼거나.”
“……그러다 죽어요, 누나.”
운전을 하는데 귀마개를 하라니! 사람이 상식이 있어야지, 상식이!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건데……. 손톱! 손톱 물어뜯지 마시라니까요! 그거 네일 비싸게 주고 한 거잖아요!”
“나 돈 많아.”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최연하가 손톱을 입에서 빼내고는 눈을 찡그렸다.
한은솔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왜 갑자기 또 저기압이야?’
어제까지는 기분이 딱히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갑자기 왜 저기압이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기야 최연하의 기분이라는 건 열대지방의 날씨와도 같다. 해가 쨍쨍 내리쬐다가 갑자기 스콜이 몰아닥치고, 비가 미친 듯이 퍼붓는다 싶었더니 순식간에 쨍쨍…….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나름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또 기분이 나빠졌는가.
“누나, 간만에 하는 인터뷰잖아요.”
“그래서?”
“……그래도 오랜만에 한국에서 하는 인터뷴데, 밝은 얼굴 보여야죠.”
“내가?”
너 아니면 누구겠니?
내가 인터뷰할까?
할 말은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생각나는 말을 모조리 입 밖으로 내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다.
“갑자기 왜 기분이…….”
한은솔이 살짝 긴장한 눈으로 최연하를 돌아보았다.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공중파 인터뷰가 잡힌 날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최연하가 찍은 드라마가 방영을 시작했다.
‘지금이 정말 중요한데.’
한은솔이 보기에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잘되는 드라마는 시작부터 그 기미가 보이기 마련이다. 한국과 중국의 방송이라는 게 근본부터 다른 면이 있어서 한국의 경우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지만, 이번 드라마는 분명 대박의 조짐이 났다.
소속사뿐 아니라, 제작사도 흥분하고 있는 게 그대로 느껴질 정도다.
이 여세를 몰아서 중화권 한류 스타로 쐐기를 박는 게 중요하다. 당장 중국으로 가서 얼굴을 내비쳐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한국에서라도 ‘최연하’라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상품의 상태가 이래서야.
“누나, 지금 중요한 시기잖아요. 드라마도 대박 조짐 보이고, 소속사도 바꿀 거고. 이때 활동을 잘해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 누나도 알잖아요.”
“야.”
“예?”
“내가 활동 제대로 안 하면 망해?”
“……아니죠.”
최연하가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혔다.
“드라마 그렇게 개고생해서 찍어놨는데, 당연히 잘돼야지. 내가 지금 신인도 아니고, 드라마 하나 찍어놨다고 온 동네에 헤헤거리면서 홍보해야 돼?”
“……아, 아니죠.”
한은솔이 쪼그라들었다.
최연하의 포스에 눌린 것도 있지만, 최연하의 말도 틀린 게 없기 때문이다. 최연하쯤 되는 배우라면 굳이 홍보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된다. 결국 홍보라는 건 인지도와 화제성을 상승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최연하는 이미 인지도와 화제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왕 하는 것, 기분 좋게 하면 좋죠.”
“쯧.”
확실히 최연하가 달라지기는 했다.
과거의 최연하였다면 이렇게 말대꾸를 하는 순간, 차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맞는 말을 하면 들어주는 척을 하는 정도까진 발전한 것이다.
최연하가 휴대폰을 들어 액정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꺼진 액정을 바라보던 최연하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뭔가 불안한데…….”
“네?”
“촉이 온다, 촉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최현하가 휴대폰을 움켜잡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무슨 촉이요?”
“아직 연락이 없어.”
그거구나.
한은솔이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이나 됐다구요. 원래 연락 잘 안 하는 사람이잖아요.”
“아냐. 이번에는 느낌이 좀 달라.”
“그놈의 느낌.”
“뭐, 인마?”
“……아뇨. 뭐.”
한은솔을 한 번 노려본 최연하가 휴대폰을 다시 바라보았다.
‘자꾸 찝찝한데.’
등을 타고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심각하게 거슬리지는 않는데, 뭔가 자꾸 찝찝하고 신경이 쓰인다.
냉정하게 봤을 때는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여자는 촉이 올 때가 있거든. 이 인간, 지금 분명 무슨 일이 있어.”
“그럼 전화를 해보시지그래요.”
“바깥양반 일하러 갔는데 일일이 전화해서 재촉하는 것도 좀…….”
“그럼 참으시든가요.”
“참으려니 안 참아지니까 그러잖아.”
……어쩌라고?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최연하의 곁에 있으면 한 시간에도 한 번씩 느끼는 감각이지만, 오늘은 그게 특히 심하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요…… 누나, 지금 인터뷰 시간 다 됐어요. 제발 부탁이니까 폭발하더라도 인터뷰 끝나고 폭발해 주세요.”
“야, 내가 무슨 시한폭탄이냐? 터지게?”
“시한폭탄은 터지는 시간이라도 정해져 있죠. 누나는 대전차지뢰예요.”
“나 인터뷰 안 해! 차 돌려!”
“아, 제발! 제발 좀!”
한참이나 실랑이를 한 끝에 겨우 최연하를 진정시킨 한은솔이 떨떠름한 얼굴로 차를 몰았다.
‘방송국에서 사고만 안 쳐주면 좋겠는데.’
이게 거의 이룰 수 없는 바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한은솔이었다.
“오늘 정말 좋았어요.”
“아니에요, 피디님. 인터뷰가 좋아서 그런 거죠.”
조슬기가 최대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는 한 피디의 얼굴에도 절로 아빠 미소가 피어났다.
‘상큼하니 좋네.’
완전하게 꽃을 피운 배우를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이렇듯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를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연예계라는 게 꽃봉오리에서 꽃이 되는 게 죽었다 깨어나는 것만큼 어려운 동네이기는 하지만, 이 조슬기라는 배우는 확실히 꽃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이번 영화 잘됐으면 좋겠어요.”
“저두요! 진짜 열심히 찍었거든요.”
“하하, 열심히 했으니 잘될 거예요.”
“네, 피디님! 피디님만 믿을게요. 편집 잘해주세요.”
“네. 걱정 말아요. 하하하하.”
조슬기가 구십 도로 폴더 인사를 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에 또 같이 촬영했으면 좋겠네요. 그때는 슬기 씨가 좀 더 인기가 있을 테니, 인터뷰하기 어려우려나?”
“그럴 리가요. 피디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달려와야죠!”
“하하하, 그래주면 좋겠는데.”
“저야 영광이죠. 그럼.”
“네에.”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 조슬기의 모습을 본 한 피디가 흐뭇하게 웃었다.
“배우가 다들 쟤 같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물론 그건 꿈같은 일이었다.
일이 사람을 그리 만드는 건지, 아니면 그런 사람들만 이 일에 몰리는 건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성격 더러운 업종을 고르라고 하면 서슴없이 ‘여배우’라고 단언할 수 있는 한 피디였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가 상대해야 할 여배우는 그 성격 더러운 여배우 중에서도 원탑을 찍는 배우다.
“……오고 있대?”
“예. 거의 다 왔다는데요?”
조연출의 말에 한 피디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인터뷰를 뭔 한 시간이나 늦게 오냐?”
“그래도 덕분에 대기 안 한 것 아닙니까? 괜히 제시간에 왔다가 지보다 어린 신인 배우 인터뷰 때문에 대기해야 한다 소리 들었으면 촬영장 뒤집어졌을걸요?”
“그건 그렇지.”
상상하기도 싫다.
촬영용 간의 의자에 등을 푹 기대며 한 피디가 얼굴을 비볐다.
“최연하, 걔는 망하지도 않냐?”
“최연하가 망하는 것보다 피디님이 망하는 게 빠를걸요?”
“야, 이 새끼야. 악담을 해라, 악담을.”
“악담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그렇죠. 그 얼굴에, 그 연기력에, 그 열정까지 있는데, 걔가 망하면 세상이 잘못된 거죠.”
“성격은?”
“…….”
“성격은 인마! 성격은?”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지랄한다.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준비해. 최연하 도착했을 때 어수선하면 난리 난다. 이번 인터뷰 날리면 부장님이 내 목을 물어뜯으려고 할 거야.”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한 피디가 한숨을 쉬며 문을 바라보았다.
“……세대 교체가 좀 되어야 나도 살지.”
폭군의 압제가 너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조슬기는 인터뷰장을 벗어나자마자 안색을 바꿨다.
‘좋다고 헤벌레하기는.’
그녀의 예쁜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내가 뜨면 너하고 인터뷰하겠냐?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매니저가 그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다음 스케줄 가야 돼.”
“화장실.”
“야, 차에 가서.”
“아, 화장실 간다고!”
“어휴.”
조슬기가 직선으로 걸어 여배우용 화장실로 들어갔다. 일반인들이나 스텝들과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데 민감한 여배우들을 위해서 따로 마련돼 있는 화장실이었다.
“하, 씨.”
찰칵.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조슬기가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병신 같은 새끼들, 별걸 다 물어보네.”
아무리 인터뷰라고 하지만 대답하기 싫은 질문도 있기 마련이다. 그걸 웃으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연예인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짜증.”
조슬기가 화가 난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인터뷰 내내 인터뷰어나 스텝들이 다른 것에 신경 쓰고 있다는 티가 팍팍 났다. 다들 시계를 힐끔거리며 초조해한다. 그녀를 앞에 두고 다른 것에 신경을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누구인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떠오르고 있는 신인 여배우가 아닌가. 그런데 그녀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다니.
“……나중에 두고 보자, 망할 놈들.”
그때였다.
쏴아아아아아!
화장실 칸에서 물이 내려간다.
조슬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상관없다. 이 촬영장에는 그녀가 신경 써야 할 만한 여자가 없으니까. 여배우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꽤 흔한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상황은 그녀가 예상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느 미친년이 화장실에서 담배 처 피우고 있어?”
쾅!
문이 거칠게 열렸다.
“미친년?”
조슬기가 살짝 입술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대체 누가 감…….
“최, 최연하 선배님?”
그녀의 눈에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오는 최연하의 모습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