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23
#1022.
재회하다 (2)
조슬기의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최연하가 빡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최, 최연하.’
저승사자를 대면해도 이처럼 심장이 오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이 업계에 있어서만큼은 저승사자 따위를 최연하와 비교할 수 없었다.
탑배우.
그런 말로도 표현하기가 어려운 사람.
조슬기가 배우 지망생이 되기 전에도 최연하는 탑이었고, 배우가 되고 나서도 탑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최연하는 탑 중의 탑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배우로서의 업적과 평판도 탑이지만, 그 지랄 맞은 성격은 비교의 대상조차 없는 원탑이다. 최연하와 대립각을 세웠다가 박살이 난 여배우가 한둘이던가.
여배우계의 인성 폭격기 최연하와 하필이면 이런 식으로 마주하고 만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조슬기를 보며 최연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야.”
“예? 예! 선배님!”
“안 꺼?”
“지, 지금 바로 끄겠습니다.”
조슬기가 서둘러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이거, 개념 넘쳐 나네. 야.”
“예!”
“너 생각 없냐? 그걸 바닥에 비벼 끄면 누가 청소하냐? 니가 그거 다 치우고 갈 거야?”
“아, 아닙니다.”
조슬기가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너, 누구야?”
“……예?”
“여기 들어와 있는 거 보면 배우인 모양인데, 이름이 뭐야?”
“아, 저…….”
조슬기가 순간 당황했다.
‘나를 몰라?’
최연하의 눈치를 슬쩍 살폈지만, 정말 모른다는 투다.
‘어떻게 나를 몰라?’
조슬기가 황당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세간에서 조슬기는 포스트 최연하라 불리고 있다. 다른 신인 여배우야 어차피 최연하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최소한 조슬기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입 없어?”
“아……. 아, 선배님. 저 조슬기라고 합니다.”
“조슬기?”
“예.”
“이름 한 번 조…… 아니, 아니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야.”
“예? 아……. 예, 선배님!”
“니가 담배를 피우든 대마를 피우든 그건 내가 알 바 아닌데, 니 뇌에 든 게 우동 사리가 아니면 담배는 너희 집에서 피워야 할 거 아냐. 그게 아니면 니 차에서 피우든가.”
“죄송합니다.”
“어디서 담배 냄새 풍기고 있어, 생각나게. 아니, 짜증 나게.”
“네?”
“한 번만 더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가 걸리면 머리채 다 뽑아버릴 테니까, 걸리지 마라. 알았어?”
“……예.”
“어디서 개구리같이 생긴 게.”
최연하가 힘이 팍팍 실린 걸음으로 화장실에서 나갔다.
조슬기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개, 개구리?”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본다.
대체 이 얼굴이 어떻게 개구리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라는 거야, 저 미친년이!”
짜증이 물 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화장실에서 최연하를 마주친다.
그러고 보면 인터뷰 하는 스텝들이 자꾸 시계를 보고 뭔가 초조해했던 이유도 다음 인터뷰가 최연하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다 늙어 빠진 게!”
조슬기가 짜증 어린 손으로 가방에 손을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새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담배 연기가 폐 속으로 훅, 말려 들어가자 속이 좀 편해지는 느낌이다.
“아, 짜증 나! 중국에나 처박혀 있지, 한국에는 왜 돌아와서!”
“그러게.”
“그러니까…… 에?”
조슬기가 살짝 파들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장실 입구에 최연하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
“다 늙어 빠져서 미안하다.”
“아, 아니…….”
“그런 건 상관없는데…….”
최연하의 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걸리면 내가 머리채 다 뽑아버린다고 했지?”
“서, 선배님?”
“기분 아주 더럽고 좋은데, 너 잘 걸렸다. 이리 와, 이년아!”
“히익?”
조슬기의 비명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 그들이 본 것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배와 주저앉아 울고 있는 조슬기의 모습이었다.
그 앞에서 턱을 치켜들고 있는 최연하를 본 이들은 모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송가에는 최연하가 치고 올라오는 후배를 화장실에 끌고 가 담배를 피우며 박살을 내놨다는 뜬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 * *
“진호 맞지?”
강진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세연이다.
조금 달라졌지만, 그가 알고 있던 한세연의 모습이 아직 확실하게 남아 있었다.
“한세연?”
“와! 진짜 신기하다. 여기서 너를 보네. 웃긴다.”
한세연이 입을 가리며 강진호에게 다가왔다.
천하의 강진호조차 이 순간만큼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갑자기 한세연이 왜 나오는가.
“이게 몇 년 만이야? 한 이 년 만에 보는 것 같은데?”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 보고는 다시 본 적이 없으니, 시간이 그쯤 되었을 것이다.
“영국은 왜 왔어? 관광 온 거야?”
“아니.”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일이 조금 있어서.”
“아, 그렇구나. 일이 있는데 여긴 왜?”
“이제 돌아가야 해서 선물 사려고.”
“선물?”
한세연이 가볍게 웃었다.
“강진호, 여전하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지만, 굳이 그 오해를 풀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너는 여기 왜?”
“아, 박유민이 이야기 안 했나? 나 영국 유학 왔어.”
“유학?”
“응. 그때…… 그때 그러고 나서 바로 왔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기야 강진호가 한세연에 대한 것을 물어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알 수 없었겠지. 박유민이 묻지 않을 것을 알아서 떠벌릴 스타일도 아니니까.
“몰랐다.”
“응.”
살짝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무슨 말을 하지?’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예전에 그가 한세연을 만날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의 그들에게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고, 나눌 대화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에게는 공통된 것이 없다.
멀어져 있던 시간만큼의 간극이 느껴진다.
“그럼 언제 돌아가?”
한세연 쪽에서 물꼬를 틀어주었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쯤.”
“그렇구나.”
한세연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번 주에 한국으로 돌아가.”
“그래?”
“안 그래도 한국에 가면 연락 한 번 하려고 했는데, 사람 일이란 게 참 우습네. 이런 곳에서 너랑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그에게도 의외의 일이었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군.’
한세연이라는 이름은 그의 삶에 있어서 꽤나 비중이 높던 이름이다. 한때는 그녀와의 관계가 박유민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으니까.
아직 이 세계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을 때, 한세연은 그에게 있어서 이 세상과 그를 이어주는 다리 중 하나였다. 결국에는 그의 미숙함이 둘의 관계를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아마 그때의 강진호가 지금처럼 이 세계에 적응한 상태였다면, 그들의 관계도 조금 달라졌을지 모른다.
물론 아쉽다는 건 아니다.
“선물 고르는 거야?”
“응.”
“도와줄까?”
“응?”
“너 이런 거 잘 못 고르잖아.”
강진호가 움찔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시간은 시간대로 한참 잡아먹고, 이상한 거 골라 갈까 봐 그래.”
강진호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타인이 바라보는 그에 대한 평가가 일관되다는 것은 좋은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평가가 일관되게 부정적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확실히 이런 일에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만.
“아니. 괜찮아.”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응?”
“내가 고르면 돼.”
한세연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너 그런 거 잘 못할까 봐.”
살짝 움츠러든 듯한 그녀의 태도에 강진호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고르는 게 맞아서 그래.”
“아!”
한세연이 살짝 물러났다.
미묘하게 우물쭈물하던 한세연이 뭔가를 알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여자 친구 선물이야?”
“응.”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세연의 눈이 조금 커졌다.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여자 친구의 선물을 다른 여자가 골라준다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는 일이었다. 입장을 바꿔 한세연이 선물을 받는 입장이라도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더구나 과거 한세연과 강진호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었다.
“여자 친구가 있어?”
이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세연이 알고 있는 강진호는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세 살박이 어린아이만도 못하다.
물론 생긴 게 워낙 괜찮으니 여자들이 달라붙기는 하겠지만, 강진호가 그리 달라붙는 여자들을 여자 친구로 받아들일 타입이 아니잖은가.
그런데 여자 친구?
“응.”
“아…….”
한세연이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뭔가 말을 하려던 한세연의 귀에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연아, 뭐 해! 빨리 가야 돼.”
“아…….”
고개를 돌려 재촉하는 일행을 확인한 한세연이 어색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나, 지금 가봐야 하거든.”
“응.”
“한국 들어가면 연락할게.”
“응.”
“그럼 나중에 봐.”
“잘 가.”
한세연이 손을 흔들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가만히 가게 문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선물들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때였다.
다다다닥.
뭔가 다급한 발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한세연이 다시금 가게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강진호가 의아한 눈으로 한세연을 바라봤다.
“번호.”
“응?”
“번호 줘.”
“…….”
“너 번호 바뀌었더라. 전역하고 새로 팠지?”
“음.”
“자, 찍어줘.”
한세연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강진호가 말없이 그녀의 휴대폰에 자신의 번호를 찍어주었다.
“네 폰 줘.”
강진호가 패턴을 풀고 휴대폰을 내밀자 한세연이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저장 버튼까지 눌러 강진호에게 다시 내밀었다.
“저장해 둬.”
“음.”
뭔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한세연이 손을 흔들었다.
“한국 가면 전화할 테니까, 너도 시간 나면 연락해. 알았지?”
“음…….”
“나중에 봐!”
한세연이 손을 흔들며 가게를 빠져나간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여전히 정신없네.’
예전에도 저렇게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뭐랄까…….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의 뒤에서 으스스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후후후.”
움찔.
강진호가 조금 긴장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 봤습니다.”
“…….”
의미심장한 얼굴을 한 이현수가 거기에 서 있었다.
“여긴 어떻게?”
“후후, 회주님이 선물을 고르러 가셨다는 말을 듣고, 곤란해하실 것 같아서 바로 따라왔죠. 이 충성심을 알아주셔야 합니다.”
“…….”
“그리고 덕분에 좋은 걸 봤습니다. 크으, 이 머나먼 타국에서 여자 번호를 따다니! 회주님, 다시 봤습니다!”
감동했다는 듯 박수를 치는 이현수의 모습을 강진호가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현수가 손가락을 내저었다.
“이걸 사모님이 아시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요. 우흐흐흐흣.”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골치 아픈 놈에게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