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27
#1026.
달려가다 (1)
한국으로 돌아온 강진호 일행은 준비된 차량을 통해 총회로 이동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고, 정리라는 게 필요하다.
회의실에 간부들을 소집한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아들인 강진호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익숙한 소파가 등에 닿자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회주님.”
“음.”
이현주의 인사에 강진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없는 동안 문제는 없었나?”
“큰일은 없었습니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으니까요.”
“다행이군.”
“그리고 그사이에 법인 전환 준비가 거의 끝났습니다.”
“그래?”
강진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이현주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분야에 있어서 이해도가 높은 강진호는 아니지만, 이렇게 빨리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예. 법인화해야 할 부분과 숨겨야 할 부분에 대한 배정을 마쳤습니다. 보고서를 올려두었으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긴스.”
“예, 로드.”
“이현수와 함께 검토해.”
“로드, 로드께서 보셔야…….”
“내가 본다고 뭐 아나.”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서로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자고, 괜히 효율 떨어뜨리지 말고.”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일단 제가 이현수를 데리고 검토하겠습니다. 하지만 간략화한 보고서를 준비할 테니, 그 부분은 로드께서 최종 검토해 주셔야 합니다.”
“알았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현주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회주님.”
“응?”
“법인화 관련해서 장관을 한 번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굳이 회주님께서 가셔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회주님이 동석해 주시는 게 좋습니다.”
이현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초법적인 개입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리입니다.”
“아니. 그건 아니라고 보네.”
위긴스가 이현주의 말을 잘랐다.
“예?”
“정권과 조율을 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겠지. 하지만 로드께서 그 자리에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사람은 급에 맞는 이들끼리 놀아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저쪽에서는 회주님이 직접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럼 그쪽에서도 대통령이 나오라고 해야지.”
“……이사님?”
위긴스의 말에 이현주가 아연한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을 보며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물론 진짜 대통령이 나오라는 뜻은 아니네. 하지만 회주님과 장관이 대면한다는 건 그 급이 맞지 않는 일이지. 정치라는 건 그런 걸세. 어떤 이가 누구와 자리를 함께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급이 정해지지.”
“아…….”
“이번에 회주님이 그 자리에 나가게 된다면, 앞으로도 회주님은 장관급에서 상대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이상의 직위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럼 총리급의 대면을 요청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올 필요가 없네. 우리도 급에 맞는 사람을 내보내면 되니까. 적당한 녀석이 있지 않은가.”
“…….”
위긴스와 이현주의 시선이 이현수에게로 향했다.
“……저요?”
“적당하지, 적당해. 총회에서 한 명밖에 없는 실장 아닌가.”
“그러네요.”
이현수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이사님들이 계신데…….”
“오, 이사들을 보내겠다고?”
위긴스의 시선이 동석해 있는 이들을 쭉 훑었다.
“누구를?”
“…….”
이현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이사들을 돌아보았다.
위긴스와 바토르, 그리고 장민은 외국인이라 그 자리에 갈 수가 없다. 외국인이 총회의 요직에 앉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이왕이면 한국인이 나가는 게 좋았다.
‘그리고 갈 수 있어도 안 보내야지.’
바토르와 장민은 회담 자리에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가서 깽판이나 안 치면 다행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위긴스는 절대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럼 남은 건 방진훈 하나인데…….
‘못 보내지.’
외모는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외모가 사람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방진훈이 회담 자리에 나가는 순간, 장관의 인상에 총회는 이름만 바꾼 조폭 집단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현수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제가 가겠습니다. 예, 제가 가야죠. 제가 아니면 누가 가겠습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럼 고생 좀 하게나.”
“부탁드립니다, 실장님.”
“……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 같았으니까요. 잘 부려 먹고 제자리에만 돌려놔 주십시오.”
회담에 나가는 것은 어려울 게 없다. 중요한 것은 회담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오고 갈 내용이었다. 성공적으로 협상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협의할 것인가를 완벽하게 알아야 한다.
그 말인즉슨, 이현주의 업무를 이현수가 완벽하게 숙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업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쌓여 있는 일 위에 새로운 일이 얹어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서류로 피라미드를 쌓을 판이다.
“그럼 그쪽은 이현수가 처리하는 걸로 하고.”
위긴스가 강진호를 돌아본다.
“로드.”
“음.”
“우리는 시간을 손에 넣었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이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가가 중요합니다. 이사진에 대한 업무 지시가 필요합니다.”
강진호가 허리를 세웠다. 그러고는 가라앉은 눈으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다들 느끼고 있겠지만…….”
살짝 뜸을 들인 강진호가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직 다들 너무 약해.”
이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민감한 문제가 강진호의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건 원탁에서의 전투를 겪은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었다.
아직 총회의 전력은 원탁에 미치지 못한다. 원탁에게 일방적인 항복에 가까운 동맹을 얻어낼 수 있던 요인은 오로지 강진호 한 개인에게 있었다.
“원탁 정도라면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 하지만 이제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적은 원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 지금 이대로라면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한다.”
강진호의 시선이 위긴스에게로 향했다.
“시간을 벌었다는 말은 그저 위안일 뿐이야. 중요한 건 얼마만큼의 시간을 벌었느냐가 아니라 그 벌어낸 시간 내에 우리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겠지. 그게 안 된다면 목이 떨어지는 시간을 조금 연장하는 것뿐이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수련에 박차를 가해라.”
강진호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너희가 나서줘야 한다. 좀 더 몰아붙여. 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예!”
“바토르.”
“말하라, 주인.”
“짧은 시간 내에 아이들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공영길을 비롯한 바토르의 제자들은 이번 전투에서 확실히 그 능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부족하다. 알고 있겠지?”
“물론이다, 주인. 나 역시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말인데…….”
“음.”
“아이들에게 마공을 전수하겠다. 저번에 요청한 마공을.”
“허가한다.”
바토르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겠지. 우선은 네가 더 강해져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너는 엘더 나이트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
바토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이긴다.”
“확실히?”
“…….”
천하의 바토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은 있다. 하지만 승부에 들어갔을 경우,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운과 컨디션에 따라 승부가 갈릴 수 있는 영역이다.
“가르치는 것에 만족하지 마라. 너부터 강해져야 한다. 우선은 네 무학을 네 것으로 완벽하게 만들어라.”
“……주인,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얼마든지 상대해 준다.”
바토르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겠지.”
강진호의 시선이 방진훈에게로 돌아갔다.
“방 이사도 마찬가지다.”
“예, 회주님.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토르에 비해 많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방 이사가 해줘야 하는 영역이야.”
“물론입니다.”
강진호는 방진훈에게는 더 이상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방진훈은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정확하게 해주었다. 강진호가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았음에도 총회의 무학을 만들어내고, 그걸 전수할 방법을 찾아낸 방진훈이다.
알아서 잘하는 이에게 채찍질은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장민.”
“마존이시여!”
“준비는?”
“완벽합니다. 생활에 대한 부분은 아직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 역시 무인입니다. 그 정도의 불편함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조여.”
“예!”
“마교가 마교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서는 교도가 강해져야 한다. 한두 사람의 이름으로 면피하는 마교 따위는 없는 것만 못해.”
“제 목숨과 제 모든 것을 바쳐 반드시 마교의 영화를 재현하겠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에 필요한 것은 정진정명 무학을 익혀낼 수 있는 환경과 시간이다. 마공이 주어지고 시간이 주어진 만큼 그들은 강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긴스.”
“예, 로드.”
“너는 약하다.”
“……인정합니다.”
위긴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그가 총회에 들어왔을 때, 그는 총회 최고의 전력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순위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바토르가 배는 더 강해지고, 장민이 그런 바토르와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방진훈조차 새로운 무학을 창안해 내며 빠른 속도로 위긴스를 따라잡고 있었다.
오로지 위긴스만이 정체되어 있다.
“회에 신경을 쓰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너의 본질은 뭐지?”
“저는 무인입니다.”
“알고 있군. 무인은 강해야 한다. 강함은 상대적이기 마련이지.”
위긴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그는 결국 총회의 최고 전력에서 이탈하게 될 것이다. 방진훈뿐만 아니라 이명환을 비롯한 젊은 녀석들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으니까.
“너를 강하게 만들 방법은 내가 마련해 주지.”
위긴스의 눈이 커졌다.
“……로드.”
“하지만 네 스스로 강구하는 것 역시 멈추지 마라.”
“물론입니다, 로드!”
위긴스가 떨리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한 말 때문이 아니다. 지금 강진호가 완벽한 목표를 가지고 그들을 이끌어간다는 게 확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조금은 흐리멍덩하던 강진호가 지금 이 순간만은 명확하게 속도를 내고 있었다.
‘원탁을 보고 겪은 것이 로드에게 자극이 되었구나.’
이 해석이 맞다면, 이번 원정에서 그들이 얻은 것은 생각보다 클지도 모른다. 원탁은 강진호에게 완벽한 반면교사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
“다들 노력하고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노력한다는 게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리고 총회는 더 강해진다. 그 어떤 이들도 감히 노릴 수 없을 정도로. 명심하고 달려라.”
“예! 회주님!”
총회가 다시 한 번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