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29
#1028.
달려가다 (3)
기세라는 건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오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기세라는 건 결국 자신감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자신감 있게 임하는 것과 자신감 없이 임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지 않은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히게 되면 사람은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좀 더 냉정하게 상황을 볼 수 있게 된다.
끓어오르는 열정과 차가운 이성이 조화되었을 때, 인간은 발전하고 더 강해진다.
지금의 총회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강진호가 등장하기 이전의 총회는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영남회에게 밀리고 있었고, 내부는 권력 다툼으로 서로 물어뜯어 댔다. 외우내환에 시달리고 있던 총회가 발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체계는 주먹구구식이었고,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중국이나 일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패배감이 은연 중에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가 등장한 이후로 이런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총회를 단숨에 집어삼키고, 영남회를 정리해 흡수했다. 그 와중에 홍왕계와 충돌해 무승부를 이끌어 냈고, 일본의 침략마저 압도적으로 짓밟았다.
그리고 이제는 원탁에 쳐들어가 반발하는 이들을 쓸어버리고 전향적인 동맹을 이끌어냈다.
이 모든 것이 벌어진 게 채 일 년을 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작대기를 들고 휘두를 만한 상황이다.
사기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설도, 고무도, 완벽한 체계를 통한 비전도 아니다.
바로 승리다.
연전연승.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질주하는 총회의 사기는 지금 극한으로 치솟아 있었다. 그렇기에 총회의 소속 무인들도 최선을 다해서 수련에 임하고 있었다.
미래가 보이고 가능성이 보인다.
그러니 누가 수련을 주저하겠는가. 믿고 따른다면 달라진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는데.
그렇기에 총회 소속의 무인들은 오늘도 단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야 했는데…….
“……끄으으으.”
이명환의 입에서 다 죽어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니!’
이명환은 눈이 파르르 떨린다. 그의 고개가 획 돌아가며 그의 시선이 천천히 걸어오는 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왜 저러냐고 갑자기!’
물론 사내는 강진호였다.
이명환은 도대체 사태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원탁의 일을 정리하고 총회에 복귀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명환의 가슴은 자신감으로 꽉 차 있었다.
물론 이번 원정에 마염들이 한 일은 거의 없었지만, 서양을 지배한다는 원탁의 정예들과 그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는가.
아니, 차이가 없는 정도가 아니다.
몇 가지 변수를 제외한다면 마염들이 모두 나섰을 경우, 몇 개 기사단정도는 깔끔하게 정리해 버릴 수 있다. 동수로 싸운다고 가정한다면 피해 없이 정리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마염들의 전력이면 원탁의 그 어떤 전력보다 우세하다. 그 엘더나이트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것들은 감히 상대할 수 없고, 나이트들 역시 그들보다는 훨씬 강하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무력대 대 무력대로 맞붙었을 경우에는 그 어떤 유럽의 기사단도 감히 마염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찌 고무되지 않겠는가.
불과 반 년 전만 하더라도 총회의 젊은 무인에 불과했던 그들이다. 총회에서조차 제대로 된 전력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는 세계가 알아주는 원탁의 최전력과 맞붙어도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우세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혹자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그들의 모든 성취는 강진호의 눈에 들었다는 그 한 가지로부터 비롯되었으니까. 하지만 이명환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이 강진호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강해지겠다는 의지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증명은 이어지고 있다.
다른 이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혹독한 수련을 버텨내고,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견뎌내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어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진호가 오늘 시간을 내어 그들의 수련을 봐준다고 했을 때, 이명환은 기뻐했다.
최근 들어 그들의 수련은 자체적으로 진행되거나 바토르의 지시하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강진호가 직접 수련을 시켜준다니.
이건 포상이다.
그렇기에 이명환과 마염들은 기쁜 마음으로 수련장으로 나섰다. 강진호의 수련은 분명 과격하겠지만, 그것만 버텨내면 더 강해질 수 있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어떤 고통이든 감수할 수 있다.
분명 그런 마음이었는데…….
“끄으으으으.”
“……으.”
사방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엄살이 아니다.
이제는 웬만한 고통은 웃으면서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명환조차도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제대로 입을 열 수 없을 정도였다.
“약해 빠졌어.”
강진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니…….’
상식적으로 강한 것도 정도가 있지.
마염 전체가 한 번에 달려들었는데, 어떻게 제대로 한 대 때려보지도 못할 수가 있냐고!
자존심이 무너진다.
쌓아온 자신감이 박살이 났다.
아무리 강진호가 강하다고 한들, 더 강해졌다고 한들 그 차이는 분명히 좁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진호가 빠른 속도로 강해진대도 마염의 성장속도 이상으로 강해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상식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지금 무표정한 얼굴로 그 상식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이명환.”
“예!”
목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건만, 강진호가 말을 한순간 목이 제멋대로 움직여 커다란 대답을 토해낸다.
“뭘 했지?”
“…….”
“시간이 그만큼이나 있었다.”
이명환의 눈이 떨렸다.
“그런데 너희는 아직 이 수준이군.”
강진호는 무심한 눈으로 이명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무심한 눈빛이 그 어떤 준엄한 질책보다 더 강하게 이명환을 짓누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명환이 고개를 숙였다.
“강해지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예.”
“그래서 강해졌나?”
이명환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강진호의 권위는 여전히 확고했다. 하지만…….
“감히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강진호가 가만히 이명환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이명환이 마른침을 삼켰다.
강진호에게 반발한다는 것만으로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말을 해야 한다.
“회주님께서 보시기에는 당연히 저희가 부족해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총회 내에서 누구도 저희보다 빠르게 강해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정말 최선을 다해…….”
“최선?”
강진호가 웃는다.
그의 입가에 드러난 새하얀 이를 보는 순간, 이명환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저 표정은 강진호가 정말 화가 났을 때나, 살심을 느낄 때 나오는 표정이라는 걸 이제 그도 알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강진호가 이명환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이명환은 자신이 어떤 꼴을 당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덥썩.
강진호가 이명환의 목을 움켜잡고 들어올린다. 이명환이 본능적으로 강진호의 손목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잘도 지껄이는군.”
“끄으으으윽.”
숨통이 조여 온다.
목을 부러뜨릴 듯한 힘이 압박해온다.
‘죽는다.’
농담이 아니다. 이건 단순한 체벌이 아니었다. 강진호는 지금 정말 그의 목을 부러뜨려 버릴 기세로 조이고 있었다.
“끄으으으으!”
이명환이 핏발 선 눈으로 강진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죽음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그의 목을 조이는 이가 누군지를 지워버렸다.
발로 걷어차고 손목을 부러뜨릴 기세로 뒤흔든다.
한참이나 발악하던 그의 움직임이 서서히 줄어들고 몸이 축 늘어질 때쯤.
강진호가 이명환의 몸을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쿵!
“커허헉! 커헉! 허어어어어억!”
이명환이 거칠기 짝이 없는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쉰다. 부들부들 떨며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해 산소를 받아들인 이명환이 핏발 선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최선이라는 건 이런 거지.”
강진호가 소매를 걷고 팔목을 내보였다.
손자국.
죽음에 몰린 이명환이 발악하면서 만들어낸 손자국이 강진호의 손목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진호의 무심한 눈이 이명환을 짓누른다.
“처음에는 그랬지. 그때 너희는 절박했으니까. 강해질 수 있다면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었지.”
“…….”
“하지만 지금은? 지금도 너희는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나?”
이명환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사람이 언제 멈추는지 알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만족했을 때다.”
이명환이 입을 닫았다.
“네 말 그대로다. 너희는 강해졌지. 누구보다 빠르게. 하지만 그 덕분에 너희는 더 이상 강해질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군.”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그런가?”
이명환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수련을 감내하고 있고, 침식을 잊고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간절하지 않다.
똑같은 수련을 똑같은 시간동안 하고 있지만, 그들은 더 이상 과거의 그들처럼 간절하지 않았다. 강해질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었던 그때의 그들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강해지는 건 생각보다 쉽다. 노력하면 되는 일이지. 하지만 더 강해지는 건 어렵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과거처럼 노력할 수 없으니까.”
강진호가 냉정한 어조로 말한다.
“자신과 싸운다는 말은 스스로를 다스리라는 말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만족하고 순응하려는 자신을 다그치라는 소리지. 너희는 스스로와 싸우고 있나?”
이명환이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터지며 진득한 피가 흘러나온다.
원탁과 싸우고 총회에 돌아오면서 그는 자신들이 강해졌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알려주고, 원탁에서의 무용담을 뽐내고 싶어 했다.
과거였다면?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수련장으로 달려가 학대하다시피 자신을 몰아붙였을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생각할수록 당연하지 않아졌다.
“다시 묻는다.”
강진호가 모두를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 했나?”
대답은 뻔했다.
“……아닙니다.”
“이해했군.”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아간다는 게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에는 이유가 있지. 그리고 동력도 있다. 하지만 이유와 동력은 지속되지 않는다. 만족하는 이는 결국 정체되기 마련이지. 강해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질도, 능력도 아니다. 얼마나 멈추지 않고 강함을 지향할 수 있는가다. 다른 말로는 절박함이라고 하지.”
강진호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지금 너희는 절박한가?”
“예!”
이명환이 목이 터져라 대답했다.
조금 전이었다면 모를까 이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절박하다고.
“그럼 증명해라.”
우드득.
강진호가 주먹을 움켜잡았다.
“덤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핏발선 눈으로 마염들이 강진호에게 달려들었다.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조금 전의 미소와 다른 만족의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