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3
#102.
휴가 가다 (2)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 어느새 백일휴가를 나가게 될 시간이 왔다.
“막내야, 준비 다 했냐?”
“예, 다 했습니다.”
“나가서 하면 안 될 일들 다 숙지했지?”
“예.”
“싸우지 말고, 운전하지 말고.”
“예.”
“어때? 막 설레고 그러지 않냐?”
전혁수가 강진호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두르고는 너스레를 떨었다.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
“진짜? 와, 나는 휴가 나가기 전날에 잠을 못 잤다. 설레서 잠이 안 오더라고.”
“나는 하루 종일 먹는 생각만 했어. 휴가 나가면 뭐 먹을 건지 계획표도 짰다.”
“저는 여자 친구 만난다는 생각에 들떴지 말입니다.”
곽현우 상병의 말에 조원구가 안타깝다는 투로 말했다.
“이제 없잖아, 그 여친.”
“……그만하시지 말입니다.”
“힘내라.”
“그만하시지 말입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생활관 밖으로 뛰쳐나가는 곽현우를 보며 조원구가 혀를 찼다.
“애가 저렇게 마음이 여려서야. 군대에서 차인 놈이 어디 한둘도 아니고.”
“곽 상병님이 많이 좋아하셨지 말입니다.”
“지만 좋아하면 뭐하냐.”
군대에서 여자 친구와 헤어지는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딱히 위로할 거리도 아니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유난도 오죽 유난이어야지. 백일휴가 때 헤어진 놈이 곧 병장 되도록 저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많이 좋아하셨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 혼자 좋아하면 뭐하냐고.”
조원구가 혀를 차더니 강진호에게 와서 말했다.
“강진호.”
“이병 강진호.”
“나가거든 잘 놀고 오고.”
“예, 알겠습니다.”
“세아 씨한테 내 안부 전해주고.”
“…….”
강진호가 대답이 없자 조원구가 인상을 썼다.
“마, 이제 그만 인정해.”
“청소하겠습니다.”
“뭔 놈의 청소를 만날 하냐고!”
조원구가 악을 썼지만 강진호는 조원구를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어, 진호야?”
복도에서 주영기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한 대 피우러 가자.”
“끊을 거라고 했잖아.”
“형이 심심해서 그래. 한 대 피우러 가자.”
“흠…….”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주영기가 앞장을 서 흡연 구역으로 갔다. 강진호는 벤치에 앉은 주영기의 옆에 앉았다.
“자.”
강진호는 주영기가 내민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주영기가 불을 붙여주자 강진호가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한 2주 만에 피우는 것 같은데도 처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처럼 어지럽지는 않았다.
“할 만하냐?”
“뭐가?”
“군 생활 말이야.”
“그냥 하는 거지.”
주영기가 피식 웃었다. 하기야 강진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기도 하다. 강진호는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뜨려 놔도 그냥 하면 되는 거라면서 람보처럼 무쌍을 찍을 것 같았으니까.
“……휴가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강진호는 조금 놀란 얼굴로 주영기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주영기의 얼굴이 조금 수척해진 것 같았다. 훈련소에서는 사람이 당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의기소침해진 것이 눈에 바로 보일 정도였다.
“무슨 일 있냐?”
“일은 무슨.”
깊게 뿜어낸 담배 연기가 흩어진다.
“휴가나 나가자, 휴가나.”
“……그래.”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듯싶지만, 본인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딱히 더 말을 할 게 없었다. 주영기가 말을 할 생각이 있다면 언젠가는 그에게 털어놓을 것이다.
강진호는 본인도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예전의 그였다면 먼저 무슨 일이 있냐고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여하는 것은 강진호의 스타일이 아니다. 예전이었다면 직접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도우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물든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인지 알 수 없었다.
“너, 서울로 가지?”
“그래.”
“나도 일단 서울로 가서 KTX 타고 내려가야 할 것 같으니까, 같이 나가자.”
“알았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강진호가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주영기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담배 한 대를 더 입에 문 주영기를 뒤로하고 강진호는 생활관으로 향했다.
“조심해서 다녀오고, 사고 치지 마라.”
“예.”
당직사관의 배웅을 받으며 강진호는 밖으로 나왔다.
“동서울까지는 어떻게 가려고? 보통은 택시 부른다던데.”
“버스 타면 되지.”
“버스 어디서 타는지는 아냐?”
“저쪽 앞에 정류장 있다고 하더라.”
“……너 진짜 무사태평이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기다리면 버스는 올 것이고, 버스를 타면 서울까지야 쉽게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진호는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위병소를 지나자마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세단을 봐야 했다.
“나오셨습니까?”
조규민인 운전석에서 내리면서 환히 웃었다.
“……무슨 일이예요?”
“모셔 가려고 왔습니다. 서울까지 제가 모시지요.”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사람을 그냥 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감사합니다.”
강진호는 군말 없이 뒷좌석으로 향했다.
“타라.”
“어? 응.”
주영기가 영문을 몰라 하다가 강진호를 따라 뒷좌석에 올랐다.
“야, 이거 차 엄청 좋아 보인다. 너 잘사는 집 아들내미였냐?”
“우리 집 차 아냐.”
물론 집에는 이 차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비싼 차가 먼지가 쌓여가고 있지만, 굳이 그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군 생활은 어떠셨습니까?”
“별다를 것 없었어요.”
조규민이 부드럽게 차를 몰았다.
“강진호 씨의 성격이면 군대에서 많은 트러블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잘 적응하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성격이 그리 모났나?’
하기야 중원에서도 정사 합동으로 자신 하나를 제거하겠답시고 이름난 인간들이 다 몰려왔으니 무난한 성격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그 이전의 삶에서도 딱히 친구가 있는 것이 아니었고.
“은영이는요?”
“……강제 컨셉 변경 중입니다.”
강진호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조규민이 한숨을 쉬었다.
‘단번에 치고 올라갈 수 있었는데…….’
아이돌이 화제성을 띤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모르는 건가?
지금 이 타이밍에 죽어라고 푸시를 해야 겨우 제도권에 안착하는 게 아이돌이다. 한 해에 데뷔하는 아이돌이 몇 십 팀인데, 그중 살아남는 것은 겨우 한둘인 것이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었어야 하는데…….’
불만은 가득하지만, 강진호에게는 그런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강진호는 강은영이 하고 싶다고 하니까 아이돌을 시켜준 것이지, 아이돌 자체를 탐탁찮게 여기는 사람이니까.
“강진호 씨 집으로 가면 됩니까?”
“역으로 가주세요.”
“서울역이요?”
“예.”
조규민이 룸미러로 보이는 주영기를 힐끔 바라보았다.
“예. 서울역으로 가겠습니다.”
주영기는 검은 슈트를 빼입은 조규민의 포스에 눌렸는지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두 시간이 넘게 달려서 겨우 서울역에 도착하자 주영기가 차에서 내렸다.
“휴가 잘 보내라.”
“밥이라도 먹고 가지?”
“됐다. 빨리 가봐야지. 너랑 한 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집에 얼른 가고 싶다.”
“그래.”
“내가 먼저 들어가는 거니 나중에 만나지도 못하겠네. 혹시 좀 일찍 올라오면 전화할 테니까, 밥이나 먹자.”
“알겠다.”
주영기가 손을 흔들며 역사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호는 다시 차에 올랐다.
“친구분입니까?”
“동기예요.”
“생긴 건 엄청 우락부락한데, 예상외로 예의가 바르네요.”
“재밌는 부분이죠.”
강진호는 가볍게 웃었다.
조규민이 차를 몰아 강진호의 집으로 향했다.
“회장님이 언제 들르실 건지를 물으시더군요.”
“알아서 찾아간다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미 황정후는 강진호의 부대에 한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황정후는 부대 안으로 면회를 오려고 했지만, 부대가 뒤집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은 강진호의 만류로 강진호가 주말을 통해 잠시 외출을 해서 밖에서 만나는 번거로운 짓을 해야 했다.
‘확실히 대책이 필요한데…….’
사실 황정후를 한 달에 한 번이나 보고 치료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던져 놓은 말인데 황정후가 철석같이 믿어버리다 보니 차마 그거 그냥 한 말이다고 털어놓을 수 없게 되어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이미 뚫어놓은 혈관이 다시 막히지 않도록 한 번씩 청소를 해주는 것에 불과한데, 그걸 무슨 대단한 치료라 생각하고 집착하는 황정후에게 사실대로 말을 하는 게 힘들었다.
‘앞으로는 두 달 정도에 한 번씩 받으면 된다고 해야겠다.’
일단은 그렇게라도 해야 군에 있는 내내 황정후가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장님이 걱정이 많으십니다.”
“원래 걱정이 많은 분이니까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부대 내에서 강진호 씨에 대한 정보를 받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저를 입대시키려고 하셨습니다.”
“입대요? 군대 안 다녀오셨습니까?”
“부사관이죠…….”
강진호는 할 말을 잃었다.
멀쩡히 대기업을 잘 다니고 있는 사람을 부사관으로 입대시킬 생각을 하다니, 황정후도 확실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농담이었겠죠.”
“백 이사님이 막아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쯤 부사관 훈련소에 있었을 겁니다. 부대로 가는 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성적이나 잘 받으라고 하시더군요.”
강진호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어찌 보면 그의 부모님보다 황정후가 훨씬 더 유난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제가 고생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기억하겠습니다.”
강진호는 운전을 하는 조규민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황정후의 지시를 받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학생 때부터 그를 가장 챙겨주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조규민이었다.
집에 도착한 강진호는 차에서 내려 조규민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휴가 잘 보내십시오.”
“그럼.”
강진호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조규민은 전화를 들었다.
“회장님, 조규민입니다. 강진호 씨 지금 집에 모셔드렸습니다. 복귀하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간만에 아들이 집에 왔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어머니를 달래드 리고 나서야 강진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미리 충전되어 있던 폰을 켰다.
아들이 나오면 써야 한다고 전화를 해지하지 않고 있던 부모님께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다.
강진호는 바로 박유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나다.”
― 진호야, 휴가 나온 거야?
“어.”
―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미안하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몰랐다.
“됐고. 너 어디냐?”
― 나? 나 보육원이지.
강진호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아직 점심시간밖에 안 되었는데 평일에 박유민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 갈게.”
― 응? 아냐, 진호야. 휴가 나왔는데 일단 좀 쉬어야지. 나중에 저녁에나 보자.
“지금 간다.”
강진호는 전화를 끊고 옷을 갈아입었다.
“진호, 어디 가니?”
“유민이한테 갔다 올게요.”
“오늘은 같이 밥 먹어야지. 늦지 않게 들어오거라.”
“네.”
강진호는 차고로 가 자신의 차를 바라보았다.
‘애물단지.’
깔끔하게 차를 무시하고는 구석에 놓여 있는 금동이를 들어 차고 밖으로 나왔다.
간만에 금동이의 핸들을 잡자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가볼까?”
강진호가 주저없이 금동이 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