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37
#1036.
출근하다 (1)
“후우우우우.”
강진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색하네.’
거울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어색하다.
쫙 빠진 남색의 정장에 넥타이까지 맨 모습.
정장을 팔던 점원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어댈 만큼 더없이 깔끔한 핏이었다.
결국 옷이라는 건 옷걸이에 반쯤은 묻어나는 것. 총회의 무인치고 정장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정장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강진호처럼.
당장 남성 잡지의 표지 모델로 나서도 될 만큼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강진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영 어색했다.
그럴 만도 하다.
전역 이후 강진호의 복장은 청바지에 티셔츠, 그게 아니면 후드, 또는 트레이닝복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이런 격식을 갖춘 옷은 괜스레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갈 수는 없다. 복장이란 자리에 맞는 격식이 필요한 법이니까.
‘이걸 한 달이나 입어야 한다는 말이지?’
재경은 기본적으로 신입 사원 연수기간을 3개월로 잡고 있다. 일반적인 사원이라면 3개월 동안은 연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강진호를 비롯한 총회의 사무직들은 재경에 적응하기 위한 기업 문화를 배울 필요가 없다. 오로지 업무에 관련된 일만 배우면 된다.
그리고 아무리 재능이 없어서 사무직으로 전환한 이들이라고는 하나, 재경의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무인. 기초 체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신입 사원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황정후와 조규민은 교육을 꽉꽉 눌러 담아 평범한 직원들이라면 3개월 동안 소화해야 할 일정을 1개월로 단축시킨 스케줄을 만들어냈다.
당연히 투입되는 교관의 수도 3배는 된다. 황정후는 최고급의 교육 과정을 준비하겠다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하지만 그건 황정후의 입장이고.
막상 그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강진호의 입장에서 한 달은 아득할 정도로 긴 기간이었다.
“흠.”
두어 번 고개를 꺾은 강진호가 몸을 돌려 밖으로 걸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강진호가 문 앞에 서 있는 가족들을 보며 흠칫했다.
“……왜?”
백현정이 박수를 친다.
“우리 아들이 처음 출근하는 날인데 당연히 배웅해야지!”
“…….”
백현정과 강유환이 흐뭇해 죽겠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받으니 절로 땀이 배어나온다.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요.”
“대단하지. 대단한 일이지. 우리 아들이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에 첫 출근하는 날인데.”
“인턴인데요.”
“인턴이 어디야! 거기 인턴도 경쟁이 얼마나 빡센데.”
“…….”
강진호는 나오는 한숨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따져 보면 대한민국에서 강진호를 제일 가볍게 보는 사람들이 가족일지도 모른다. 천하의 총회의 회주가 신입 사원 연수를 받으러 가는데 그걸 감격하며 보다니.
“오빠, 잘 다녀와!”
심지어 능글맞은 강은영마저 지금 이 순간은 차분하게 축하를 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 해.
“……네. 그럼.”
강진호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관으로 갔다. 신발장에서 새로 산 구두를 꺼낸 강진호가 심호흡을 하고는 구두에 발을 밀어 넣었다.
‘어색하다.’
생각해 보면 정장은 그전에도 몇 번이나 입은 적이 있지만, 구두를 신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싶었다. 정장을 입더라도 언제나 신발은 운동화였으니까.
가죽이 발을 조이는 느낌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크으, 직장인 포스!”
“잘났다, 우리 아들!”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강진호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서 현관을 나섰다. 여기 조금만 더 있었다가는 무슨 말이 나올까 무섭다.
밖으로 나온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그보다 주변이 더 호들갑을 떠는 느낌이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대문을 나선 강진호가 붕붕이에 몸을 실었다.
우우우우웅.
시동을 걸자 익숙한 엔진음이 그를 반긴다. 매번 출근을 할 때마다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네비게이션에 회사 주소를 입력한 강진호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는 액셀을 밟았다.
* * *
“재경이네.”
배재민은 높이 솟은 건물을 보며 입을 살짝 벌렸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아 있는 건물의 꼭대기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재경 그룹의 마크가 당당하게 박혀 있다.
‘오늘부터 내가 여기서 교육을 받는다 이거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재경 그룹은 대한민국 굴지의 그룹이다. 재경에 입사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을 보증받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입사 희망 기업 1순위.
물론 재경 그룹이 대한민국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취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언제나 선호도 1위를 찍는 기업이다.
실적이 낮은 사원들을 무자비하게 찍어내는 다른 기업들과는 다르게 재경은 사원을 가족처럼 여기고, 함께 가려 애쓰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황정후가 이런 기조를 버리고, 다른 대기업들처럼 사원들을 칼날 위로 몰아붙였다면 훨씬 전에 재경이 대한민국 1위 기업이 되었을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재경이다.
그런 재경에서 교육을 받는다.
물론, 교육은 교육일 뿐이고, 재경에 입사하는 건 아니지만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네.’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사실.
총회에서 사무직은 낙오자에 가까웠다.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고, 아무도 대놓고 무시를 하지는 않지만, 배재민 스스로가 알고 있다. 그가 만약 무학에 재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 역시 사무직에는 지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회의 몸을 담은 무인들의 이상은 결국에는 강해지는 것이다.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이 없는 이들은 무인이 되지 않는다.
사실 무인이란 족속들은 바보에 가깝다. 개인의 강함이 의미를 잃어가는 이 시대에도 강해진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평범한 인생을 거부한 이들이다.
사무직은 더욱 그렇다.
가진바 재능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더 강해질 수 없는 이들. 그런 이들은 대부분 무인의 삶을 포기한다. 강해지지 못하는 순간 무인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점보다,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자신이 무인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일반적인 세상에 녹아들어 살아간다.
총회의 사무직들은 그 경계에 있는 이들이었다.
더 이상 강해질 수도 없고, 노력으로 극복할 수도 없는 벽을 만났기에 더는 무인으로 살아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무인계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
그런 이들이 총회의 사무직이다.
그러니 취급이 좋을 수가 없다.
제대로 배운 것도 없고, 업무에 관한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다. 그냥 무작정 투입이 돼서 시키는 일을 어떻게든 처리하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하루하루 그냥 사는 거지.’
배재민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사무직으로서 살아가는 게 힘들지 않다는 점이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총회의 사무직은 거저먹는 직업에 가까웠다. 군대식으로 표현하자면 땡 보직이다.
왜?
화를 내는 사람이 없으니까.
결국 업무에 대한 지적과 성토는 기대치에서 시작한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주겠지 라는 인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순간 질책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총회의 사무직들에게는 아무도 기대라는 걸 하지 않는다. 그들이 전문적인 사무직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그들이 뭔가 대단한 것을 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경하는 삶을 지척에서 지켜보면서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떼우는 일.
그게 배재민이 생각한 총회의 사무직이었다.
하지만…….
‘재경이라.’
그 인식이 지금 이 순간 달라지기 시작한다.
배재민이 높은 재경의 건물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재경은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이다. 그런 기업에서 그들을 가르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회주님은……. 그리고 이 실장님은 우리를 버린다고 생각하지 않아.’
가르친다. 교육한다.
그건 제대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배재민조차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접었지만, 총회를 이끌어가는 두 사람은 어떻게든 그들을 가르쳐 써먹으려 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묘한 감동이 느껴진다는 건, 그만큼이나 배재민이 지금 바닥에 몰려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없다.
재경에서 신입사원연수를 받는 이들은 대한민국에서도 알아 주는 인재들이다. 그 험난한 취업 경쟁을 이겨내고 입사한 우수한 인재들만이 재경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그런 이들이 받는 연수를 배재민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배재민은 연수 소식을 듣는 순간 누구보다 먼저 지원을 했다.
기대받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쓸모 있게 여겨진다는 것.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그 작은 만족감이 배재민에게는 너무도 간절했으니까.
“여기서 뭐하냐?”
“어?”
배재민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같은 부서인 곽진형 대리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오셨어요?”
“안 들어가고 뭐해?”
“막상 들어가려니까 긴장이 돼서.”
“……그렇지?”
곽진형 대리가 고개를 들고 재경의 건물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별거 아니라고 허세 떠는 모습이라도 보이고 싶은데, 나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허세를 못 떨겠다. 긴장돼 죽겠다.”
“저두요.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
“뭐, 냉정하게 보자면 실장님이 우리가 소화 못한 프로그램을 짜지는 않았겠지.”
“그렇죠?”
“……아니. 그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두 사람이 불안한 눈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여하튼 어쨌거나 들어가자.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잖아. 자존심이 있지.”
“그야 당연합니다. 그럼…….”
그 순간이었다.
부우우우우우우웅!
그들의 귓가에 익숙한 엔진 음이 들려왔다. 평범한 이들보다 몇 배나 민감한 청각이 그 소리를 잡아내고 뇌로 신호를 보낸다.
“뭐?”
“뭐야?”
고개가 획 돌아간다.
그들의 눈에 익숙한 스포츠카가 들어왔다.
“회주님?”
“어? 회주님?”
부우우우우웅.
도로로 달려온 스포츠카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맞지?”
“번호 보니 맞는 거 같은데요? 왜 오셨지?”
“……격려 방문인가?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린 두 사람이 한동안 지하주차장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그 순간 지하주차장을 통해 강진호가 어색한 걸음걸이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정장?’
‘구두?’
강진호의 복장을 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밖으로 나온 강진호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회주님!”
강진호가 손을 내저었다.
“여기서는 회주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강진호라고 부르세요.”
“……네?”
강진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연수받거든요.”
“…….”
“…….”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회주가 왜 연수를 받아?
“그보다 여기 근처에 가까운 카페 못 봤나요? 출근하면서 커피 마셔야 하는데 깜빡해서.”
“저, 저쪽에 있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기겁을 한 두 사람이 좀 전에 봤던 카페를 향해 앞장을 섰다. 카페로 걸어가면서도 두 사람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회주님이랑 연수를 같이 받는다고?’
‘이 실장님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대체!’
아무래도 이 연수가 평범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직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