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42
#1041.
연수받다 (1)
‘아니,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전병수 팀장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저벅저벅.
그가 무대 위에서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발소리가 강당 전체를 울리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런 경우를 처음 겪는 것은 아니다. 이런 넓은 홀의 특성상 소리는 울리기 마련이고, 신입 사원들이 들어차기 전이나, 그들이 나간 후에 뒷정리를 할 때는 언제나 이런 경험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전병수가 죽을 맛인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다. 이 강당은 이미 사람으로 꽉꽉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삼백 명이 넘게 들어와 있는 강당에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교육을 진행하면서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뭐가 이렇게 괴기스럽냐.’
전병수가 고개를 슬쩍 들어 앞쪽을 바라보았다.
정장을 입은 이들이 자리에 착석해 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전병수가 아는 교육은 이런 게 아니다.
신입 사원 특유의 긴장감과 설렘이 뒤섞여 있는, 그 미묘하게 흥분된 열기가 훅훅 뿜어져 나와야 한다. 전병수가 젊음의 생기라고 부르는, 그런 기운이 이곳을 채워야 하는데…….
‘생기는 얼어 죽을.’
화초라도 가져다놓았다간 말라 죽게 생겼다.
신입 사원들이야 서로 잘 모르는 사이니 대화 나누는 것을 주저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은근슬쩍 눈치를 보면서 옆사람과 대화하게 되는 게 사람이다.
한 번 보고 말 사이라면 모를까, 연수 내내 얼굴을 봐야 할 사람들이니 그런 식으로라도 친분을 나누려 든다. 하지만 이 인간들은 그런 것도 없다.
다들 입에 지퍼라도 채웠는지 입을 꾹 다문 채 앞만을 노려보고 있다.
그럼 눈빛이라도 좀 선하든가.
덩치도 산만 한 것들이 삼백 명씩 줄지어 앉아서 앞을 노려보고 있으니, 다수 앞에 서는 것에 이골이 난 전병수 팀장마저 모골이 송연한 느낌이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팀장님.”
“응?”
“진짜 괜찮을까요, 이번 교육?”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무슨 앓는 소리야?”
“지금까지 해온 교육이랑은 너무 다른 느낌이라서…….”
“끄응.”
말이야 거칠게 했지만, 전병수 팀장도 같은 생각 중이었다.
‘정말 괜찮을까?’
지금까지는 신입 사원이 아닌, 외부인들을 교육하는 경험이 처음이라 어색해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쯤 되면 그런 문제가 아니다.
저놈들은 분명 뭔가 좀 이상하다.
“정상적인 일을 하는 애들은 맞대요?”
“인마, 뭔 말을 하고 있어?”
“사실이 그렇잖습니까.”
양진찬 대리가 미묘한 눈으로 앉아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아무리 봐도 사무직이 아닌데요.”
“…….”
이건 뼈를 때리는 지적이다.
전병수도 이리 살벌한 사무직은 회사 생활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사무직의 골격들이 아니다.
물론 사무직이라고 정해진 체형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건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개중에 특출 나게 골격이 좋은 이들이 눈에 띄는 게 아니라, 하나같이 어깨는 대해처럼 넓고, 팔뚝은 허벅지 같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아, 국가대표 출정식.’
인천공항에서 국가대표들이 출정할 때, 정장을 빼입고 단체로 사진을 찍는 느낌이다. 그것보다 미묘하게 더 굵은 느낌이긴 하지만, 그 상황이 제일 비슷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마이크나 한 번 더 점검해.”
“……예.”
양진찬이 뭔가를 중얼거리며 단상 쪽으로 향하자, 전병수가 한숨을 쉬며 강당 안을 돌아보았다.
‘하여튼 좀 이상하긴 해.’
외부 인력을 교육시킨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도무지 이 외부 인력이라는 놈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게 더 문제였다. 사무직을 300명이나 교육시킬 정도라면 규모가 꽤 큰 회사라는 말인데, 업계에 소문이 전혀 돌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상부에서 불법적인 일을 시키지야 않겠지만, 아무리 봐도 상황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근데 얘들은 진짜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입에 풀이라도 발랐나?
그때였다.
‘응?’
자리에 앉아 있던 녀석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간다. 마치 미어캣이 단체로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일사불란한 동작이었다.
‘뭐여?’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은 가장 뒤에 있는 입구였다. 그 입구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전병수가 눈을 끔뻑였다.
‘내가 더위를 먹었나?’
아니, 이거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 들어올 때 시선이 집중되는 건 그럴 수 있다. 저 많은 인원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가는 건 좀 의아하긴 하지만, 거기까진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치자.
하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저 남자가 들어오는 것보다 고개가 돌아가는 게 더 빨랐던 것 같은데? 무슨 CCTV라도 달아놨나?
전병수가 이해가 안 가는 얼굴로 들어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아까 전, 그에게 무례하게 굴던 이를 단숨에 제압한 사람이다. 그 조규민 실장이 존댓말을 하던 사내.
전병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조규민은 꽤나 쿨한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쿨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미건조하다. 조규민이 주변 직원들과 친분을 나누며 지낸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나이대가 비슷한 전병수조차 조규민과는 업무와 관련된 몇 마디만을 나눠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친분 있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격의가 없기는 했지만, 태도와 말투에서 확실히 그런 점이 묻어났다.
그럼 저 사람은 대체 뭔가.
나이도 어려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조규민에게 윗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안으로 들어온 강진호가 주변을 쭉 훑었다.
얌전히 착석해 있는 이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호가 천천히 걸어 앞쪽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착!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 앉아 있던 이가 강진호에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밀었다.
“응?”
강진호가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 그에게 욕을 먹은 조혁민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지?”
“커피입니다.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뇌물이라기에는 귀여운 정도다. 아메리카노를 받아 든 강진호가 쪼오옥 하고 한 모금을 빨아먹었다.
“제대로 전했어?”
“예.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달했습니다.”
“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혁민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찍힌 건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반대쪽에 앉은 이들의 얼굴도 살짝 들뜨기 시작했다.
‘진짜 회주님하고 같이 교육을 받는구나.’
‘이상한 기분인데.’
모두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럴 만한 일이다.
사무직들은 강진호와 얽히는 일이 잦다. 그들 대부분은 본관 건물에서 업무를 보고, 강진호는 본관 회주실로 출근하기에 아침이 되면 얼굴 한 번쯤은 볼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그건 동선이 겹친다는 것뿐이지, 강진호와 그들이 가까운 사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강진호의 관심사는 대부분 무력대에 편중되어 있고, 알게 모르게 그들은 소외감을 느껴왔다.
그런데 이번 교육과정에 강진호가 직접 참여한다니.
이건 사무직들도 그가 직접 신경을 쓰겠다는 천명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실제로는 조금 거리가 먼 이야기이지만, 자세한 사정을 듣지 못한 그들은 그리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전병수가 고개를 슬쩍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정시로군.’
이마를 한 번 훔쳐 낸 전병수가 단상 위로 향했다. 상황이 애매하긴 하지만, 할 건 해야 한다.
“준비하자.”
“예!”
교관들이 앞쪽에 도열한다. 대충 준비가 끝나자 전병수가 단상 위로 올랐다.
“크흐흠.”
마이크를 두어 번 두드리고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은 전병수가 입을 열었다.
“재경 그룹의 신입…… 아니, 교육 연수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앞으로의 교육과정 동안 여러분의 교육과 평가를 담당하게 될 교육팀의 전병수 팀장입니다.”
전병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
고요하다.
고개를 숙인 전병수가 고개를 채 들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이게 이러면 안 되는…….
“박수, 박수!”
누군가가 입을 열자마자 갑자기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제야 전병수가 고개를 들고 이마를 훔쳤다.
‘아니, 반응이 뭐가 이래?’
전병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어찌 알겠는가.
그가 지금부터 교육해야 할 이들은 무인들이고, 무인이란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무척이나 결여되어 있는 족속이라는 것을.
아직 이 세상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강진호가 총회에서만큼은 나름의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있다. 어릴 적부터 남들과 교류하기 보다는 골방이나 산골에 틀어박혀 수련을 하기 바쁘던 이들이 어디에서 사회성을 익히겠는가.
물론 제 나름의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법을 익히는 무인들이지만, 그들만의 커뮤니티는 일반적인 사회의 커뮤니티에 비하면 너무도 딱딱했다.
그러니 기본적인 반응부터나 평범한 이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순간적으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순간 잊어버린 전병수가 말을 더듬을 찰나, 양진찬이 단상 위로 올라와 전병수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정말?”
“예. 지금.”
“……알았다.”
전병수가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는 앞으로의 교육과정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으나, 지금 여러분을 찾아오신 분이 있어 그 과정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재경 그룹의 회장이신 황정후 회장님께서 여러분을 격려하고자 이곳을 방문하셨습니다.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박수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말을 이해하고 박수를 치는 게 아니라, 반사적으로 나오는 박수다.
박수가 끝나가면서 사태 파악이 이뤄졌다.
“황정후?”
“재경 그룹 황정후 회장? 그 사람이 왔다고?”
침묵을 유지하던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들이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간다고는 하나 최소한의 기본적인 지식은 있다.
재경의 황정후를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바깥세상의 재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무인들에게도 황정후란 이름은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황정후가 방문을 했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나.
강당 뒤쪽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작은 체구.
하지만 확실한 존재감.
무력은 조금도 갖추지 못한 노인이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저 사람이 황정후 회장.’
‘포스 있네.’
무인들마저 그 꼿꼿함에 감탄을 터뜨렸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단상 위로 오른 황정후가 교육팀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하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황정후다.”
단순한 인사. 하지만 그 이상이 필요하지 않은 인사였다.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 교육받는다고 해서 들려봤다.”
그리고 이어지는 발언에 총회의 무인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