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44
#1043.
연수받다 (3)
“형, 요즘 날이 섰는데요?”
“그래?”
“네. 움직임이 살아 있다고 해야 하나, 각을 기막히게 보는 것 같아요.”
박유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예전 게이머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칭찬은 수도 없이 들었다. 게임 종목을 바꾸기 전까지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쌓은 박유민이 아닌가.
언론이든 업계 관계자든 그를 만나면 일단 칭찬을 하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박유민은 영 칭찬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이건 천성에 가까운 일이다.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뭐.”
“에이, 운으로 그게 돼요? 그럼 나는 운이 없어서 이러고 있나.”
최정우가 너스레를 떨자 박유민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형, 너무 그렇게 진지하게 리액션하지 마세요. 그냥 장난친 건데, 제가 민망하잖아요.”
“아, 그래?”
“…….”
최정우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이 성격으로 어떻게 프로게이머를 하지?’
프로게이머.
아니, 굳이 프로게이머에 한정할 필요가 없다. 프로라는 족속들은 보통 승부욕의 화신이다.
성격적으로 물렁한 이들은 절대 프로게이머가 될 수 없었다. 겉으로는 무척이나 착하고 여려 보이는 프로게이머라도 실제로는 고집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박유민은 정말 성격이 여렸다.
‘진짜 신기하다니까.’
물론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박유민은 그 여린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승부욕이 강했으니까. 최정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 여린 성격과 그 강한 승부욕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느냐였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응?”
“아니, 아니에요.”
최정우가 손을 내저었다.
‘뭐, 성격이야 아무려면 어때, 게임만 잘하면 그만이지.’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박유민은 프로게이머로서 훌륭한 사람이다. 아니, 훌륭하다 못해 대단한 사람이다.
처음 박유민이 테스트를 보기 위해서 연습실에 들렀을 때만 해도 이 사람이 과연 이 게임에서 프로가 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박유민은 연습실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전 자리를 꿰차더니, 반 시즌도 지나지 않아 팀의 에이스 자리를 완벽하게 차지해 버렸다.
덕분에 요즘 그의 팀은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는 중이다.
‘드라마지, 드라마야.’
과거 갤럭시에서 가장 팬이 많던 프로를 꼽으라면 누구나 박유민을 얘기할 것이다.
유한 얼굴과 수줍은 성격, 그리고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완벽한 경기 운용.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갤럭시의 시대가 저물면서 박유민도 역사 속의 인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런 박유민인 새로운 게임으로 완벽하게 부활한 것이다.
박유민이라는 게이머를 새롭게 알게 된 팬도 늘어났다.
하지만 더 격하게 반응하고 환호한 것은 이제는 아재라고 불러야 할 올드 팬층이었다.
사라졌던 스타의 부활은 이제는 열정을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지나간 VOD로 속을 달래던 아재 팬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불러 모아버렸다. 덕분에 다른 팀들의 응원 함성이 조금 낭창한 여성 팬들의 하이 톤을 낼 때, 박유민의 응원 함성은 남성미 가득한 고함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여성 팬이 적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남자의 비중이 굉장히 높았다.
“형, 이거 좀 드세요. 형한테 조공 들어온 건데, 저희만 먹으려니 좀 그러네요.”
“괜찮아. 너희 먹어.”
“형, 팬들이 그래도 형 먹으라고 준 건데…….”
“으음, 그럼 조금만.”
팬이라는 말에 박유민이 슬며시 테이블에 앉았다. 최정우가 앞에 놓인 최고급 육포를 박유민 앞으로 살짝 밀었다.
‘스케일이 좀 다르다니까.’
프로 게임단의 팬 문화는 아이돌 팬 문화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일명 ‘조공’ 혹은 ‘드롭’이라 불리는 선물이 시시때때로 날아온다. 보통은 팬 카페 같은 커뮤니티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의견을 수렴한 뒤 선물을 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유민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박유민은 커뮤니티 조공이 아니라 개인 팬 조공이 날아온다. 이미 나이가 들어 경제력을 갖춘 박유민의 팬들은 굳이 서로 돈을 모으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구매해서 보내 버린다.
덕분에 날아오는 선물도 일반적인 선수들이 받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팬 카페의 조공으로 들어오는 선물들은 선수를 프린트한 티셔츠라든지, 수건이라든지, 액자 같은 아기자기한 물품들과 한우나 선수 캐릭터를 새겨 넣은 케이크 같은 먹거리인 반면, 박유민이 받는 것은 뭔가 남성미가 넘쳐 났다.
‘홍삼은 더 쌓아놓을 데도 없어.’
스태미나가 중요하다고 여기는지, 선물로 홍삼이나 흑마늘 같은 건강식품류가 들어온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비타민 같은 영양제를 받기도 하지만, 박유민의 영양제들은 누가 봐도 남성미가 흘러넘친다. 심지어 팬 중 하나는 뱀술을 보낸 경우도 있었다.
하나같이 뭔가 야성미가 넘치고 스케일이 크다.
다른 선수들이 게임 열심히 하라고 마우스를 선물 받을 때, 박유민에게는 최신형 컴퓨터가 본체째로 날아온다. 이거 너무 과하다고 반려하려고 하지만, 절대 돌려받지 않는다.
최정우가 피식 웃었다.
‘하기야 다들 기쁘겠지.’
박유민도 곤란스러워하긴 하지만, 이게 다들 박유민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최정우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포지션이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최정우는 박유민의 동료라기보다는 팬에 가까웠다. 한때 그의 우상이었던 선수가 전혀 새로운 게임에서 다시 정상을 되찾는 모습은 지켜보고만 있어도 절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최정우가 프로게이머로서 박유민과 같은 팀이 아니었다면, 그가 가장 먼저 관중석에서 환호를 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유민이 형.”
육포를 먹던 박유민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응?”
“감독님이 감독실로 오시래요.”
“응, 알았어.”
박유민이 입에 육포를 넣은 채로 벌떡 일어났다.
“어. 유민아, 앉아.”
오진형 감독이 빙그레 웃으며 앞자리를 가리켰다.
“부르셨어요?”
“어, 그래.”
오진형이 더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복덩이 같은 놈.’
박유민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박유민을 예뻐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박유민이 속한 팀의 감독이라면, 그 예뻐함의 정도가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팀을 운영한다는 것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많은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
당장 성적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원들이 지속적인 향상심을 가지고 노력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팀은 한 시즌만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
오진형이 박유민에게 바란 건 그런 부분이었다.
오진형은 박유민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과거 갤럭시 크래프트의 게이머였을 때도 박유민은 무시무시한 연습량으로 유명했다.
일반적인 게이머들이 혹독한 연습량을 소화하다가 성적이 나오고 유명해지면 연습량을 줄이는 데 반해, 박유민은 성적이 나오면 연습량을 더 올리는 미친놈이었다.
과거 박유민 팀 코치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새벽까지 연습실에 남아서 박유민을 컴퓨터에서 끌어내 재우는 거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우수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재능도 중요하지만, 성실함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제일 나이가 많고, 과거에 이미 스타였던 선수가 가장 열심히 연습한다면, 다른 아이들도 그 태도를 보고 배울 수밖에 없다.
물론 오진형 감독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연습하는 박유민을 보며 다른 선수들도 연습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연습을 하면 하는 대로 실력이 느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 무슨 수로 여유를 부리겠는가.
게다가…….
“요즘 분위기 좋지?”
“네.”
“다 네 덕분이다.”
“에이, 애들이 열심히 해준 덕이죠.”
“마, 내가 너 아니면 이런 말 안 해. 잘했다고 하면 풀어지는 게 사람 아니냐. 그런데 너는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거다. 정말 잘해주고 있다. 유민아, 내가 요즘 네 덕분에 산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할게요.”
오진형이 흐뭇하게 웃었다.
박유민이 출전한 이후로 팀의 성적은 급상승했다. 전반기만 하더라도 강등권을 들락거리던 팀이 연승을 거듭하더니, 이제 당연하다는 듯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상황이다.
이 폼을 유지한다면 우승도 꿈이 아니다.
박유민 덕분에 팀이 최초로 우승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최고의 영입이었어.’
바라던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고, 바라지 않던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해 주고 있다. 성적이 좋아지고, 팬이 늘어난다. 감독으로서는 더 이상 기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힘든 건 알겠지만, 남은 일정도 잘해보자. 유민이 너야 원래 관리 잘하니까 걱정 없지만, 솔직히 연습량이 너무 과한 것 같아서 걱정이다. 니가 예전처럼 쇠도 소화시킬 나이는 아니잖아?”
“……아직 어린데요?”
“어리지, 물론 어리지. 그런데 프로게이머로서는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잖아.”
박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맞다. 워낙 평균 연령대가 어린 세계니까.
“너무 과하게 연습해서 컨디션 망치지 말고, 적당히 조절하자. 알았지?”
“예, 감독님. 걱정 마세요.”
오진형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널 부른 건 다름이 아니고…….”
“예.”
“본사에서 CF 하나 찍자고 하는데.”
“……예?”
박유민의 눈이 흔들렸다.
CF?
“광고요?”
“그래. 무려 TV 광고다. 케이블용이 아니라 공중파용.”
박유민이 손을 떨었다.
“제, 제가요?”
“뭘 놀라고 그래? 너 예전에도 CF 찍은 적 있잖아?”
있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지.
아직도 갤러리 등지에서 그가 활약할 때마다 나오는 그 지옥 같은 광고 영상. 박유민의 팬이 되기 위해서는 이 광고를 끝까지 보고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평가를 받는, 인생 다시없을 흑역사.
“있죠. 찍은 적 있죠, 찍은…….”
“진정해라, 유민아. 그때랑 다르다. 감독님도 좋은 분이시고, 네가 해야 할 대사도 거의 없을 거다.”
“아, 아니, 그래도…….”
“이번에는 진짜 본사 쪽에서 밀어준다니까. 잘 나올 거다. 상대 배우도 최고로 준비했대.”
“그…….”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박유민이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찌, 찍을게요.”
“괜찮겠냐?”
“감독님이 찍으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물어보세요.”
“아니, 나는…….”
오진형이 어색하게 웃었다.
오진형이라고 해서 박유민의 흑역사를 모를 리 없다. 박유민을 누구보다 아끼는 오진형이지만, 그 영상만은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몸이 배배 고이고, 자신도 모르게 책상을 내려치게 된다.
“네가 CF를 어색해할까 봐.”
“솔직히 정말 찍기 싫은데…….”
박유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이런 걸 거부하면 후배들이 CF 찍을 기회도 더 멀어지는 거잖아요. 해야죠. 그럼 다른 애들도 기회가 생길 것 아니에요.”
“아…….”
오진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유민은 이런 녀석이었다.
“그래. 그럼 찍는 걸로 해둘게.”
“예.”
“이번에는 그림이 좀 괜찮았으면 좋겠는데…….”
“제 말이요.”
두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