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48
#1047.
미묘하다 (2)
“사, 살려줘!”
등 뒤에서 목을 움켜잡는 손이 느껴진다.
그 손아귀에 담긴 힘이 이명환을 좌절하게 했다. 목에 손이 닿는 순간, 그 어떤 저항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생겨났다.
“이놈들!”
이명환이 절망 어린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짐승.
아니면 괴물.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눈에 불을 켠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약한 놈!”
아니!
내가 나약한 게 아니라 당신이 너무 센 거잖아!
하지만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말했다가는 앞으로 평생 틀니로만 고기를 씹어야 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바, 바토르 님! 그게 아니라!”
“말은 필요없다!”
바토르가 이명환을 번쩍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꽂았다.
“꺽!”
바닥에 처박히는 순간, 입에서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이 이명환을 뒤흔들었다.
“…….”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는 이명환의 모습을 슬쩍 내려다본 바토르가 으르렁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고 풀어진 모습을 보이다니!”
‘그게 아니라고요!’
‘지금까지 죽어라고 하다가 잠깐 쉰 건데!’
‘뭔 수련을 24시간 내내 하나!’
변명의 여지는 너무도 많지만, 어느 것 하나도 변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아무리 이유를 갖춘다고 해도 바토르의 귀에 변명으로 들린다면 그저 변명일 뿐이니까.
“주인께서 자리를 비우실 수 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너희를 믿기 때문이다.”
마염들이 미묘한 눈으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예전의 너희였다면 주인께서 너희를 내버려 두고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셨을 거다. 너희가 알아서 잘 수련할 것이라고 믿으시니까 자리를 비울 수 있던 거지. 그런데 주인의 믿음을 이런 식으로 배신…….”
“저…… 바……토르 님.”
이명환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냐?”
“저녁에…….”
“응?”
“회주님 저녁에 오신다고 했는데요.”
“…….”
바토르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진짜?”
“네.”
“왜?”
“수련한 거 점검하신다고.”
“…….”
바토르의 눈이 좌우로 움직인다. 생각이 많아진다는 게 빤히 보였다.
“크흐흠, 주인께서!”
“…….”
“주인께서 직접 점검을 하러 오신다는데! 이따위로 수련을 해!”
‘와, 논리 보소.’
‘이래도 내 잘못, 저래도 내 잘못!’
‘그럴 거면 이유는 왜 가져다 대나.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팬다고 하지!’
살짝 분위기가 미묘해졌다는 걸 파악한 바토르가 허리를 쭉 폈다.
자연스레 그의 근육들이 요동쳤다.
“뭐?”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나마 바토르가 어떻게든 논리를 만들어내며 사람을 팰 때가 훨씬 낫다는 것을 직감한 마염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애초에 바토르에게 논리가 왜 필요하겠는가.
근육이 논린데.
“들어라.”
바토르의 목소리가 살짝 잦아들었다.
진지해진 목소리에 마염들도 불만과 장난기를 빼고 귀를 기울였다.
“내가 너희를 몰아치는 것이 과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바토르가 눈을 부라렸다.
“……구라 치면 맞는다.”
“조금 그렇습니다.”
“약간, 아주 약간.”
바토르가 피식 웃었다.
“너희의 불만은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무학이라는 것은 결국 꾸준한 놈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지.”
“…….”
“너희는 짧은 시간에 너무 강해졌다.”
바토르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세상은 공평한 법이고, 모든 일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있다. 짧은 시간에 강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두 가지의 단점을 동반한다. 하나는 그만큼 기초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고, 또 하나는 인간인 이상 반드시 마음에 오만이 깃들기 마련이라는 거다.”
첫 번째는 납득할 수 있었다.
강해진 시간이 짧았다는 것은 그만큼 수련한 시간이 짧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한 수준의 강자라고 할지라도, 수련한 기간이 짧은 이들은 그만큼 기초를 닦아온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기초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번째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오만?’
이명환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오만은 얼어 죽을.’
물론 바토르가 무슨 의도로 이 말을 꺼냈는가는 이해한다. 벼락부자는 턱에 절로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짧은 시간에 강해진 자는 자신의 강함을 자랑스러워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마염들에게는 절대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출근만 하면 보는 사람이 강진호고, 바토르고, 위긴슨데, 무슨 수로 오만하란 말인가.
목이 뻣뻣해지는 순간, 수도로 목을 꺾어버릴 사람들이 수도 없이 굴러다니는 총회 아닌가.
심지어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던 장민이 강진호를 연상케 하는 무위를 보여준 게 최근이고, 제일 만만하다 싶던 방진훈조차 최근에는 새로운 경지를 열어 어마어마한 속도로 앞서가고 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오만하겠는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솔직히 그렇습니다. 회주님도 계시고, 바토르 님도 계신데, 저희가 어떻게 오만…….”
“기껏 병아리 놈들이 나와 비교를 하고 있는 것부터가 오만이라는 생각은 못하는 건가?”
“…….”
이명환이 입을 꾹 닫았다.
바토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인간이라는 건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능력이 있고 뛰어난 이가 오만하지 않기는 어렵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희도 이제는 능력이 있는 쪽에 속한다.”
마염들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바토르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들을 인정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처음으로 바토르의 입에서 칭찬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오만에 빠져서 채찍질을 게을리하는 순간, 너희는 발밑까지 쫓아온 이들에게 잡아먹힐 거다.”
이명환의 얼굴이 굳었다.
발밑까지 쫓아온 이들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이명환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공영길.’
원탁과의 전투에서 바토르의 제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들과의 차이는 이미 엄청나게 벌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단기간에 마염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강진호에게 선택받았다는 이유로 특별한 듯 굴고 있지만, 마염들은 대단한 재능이 있어서 강진호에게 선택받은 게 아니다. 그저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인정받은 것뿐이다.
무학에 대한 재능만을 놓고 보자면, 다른 이들에 비해 나을 게 별로 없다.
아니, 냉정하게 보자면 평균보다 오히려 떨어지는 편일지도 모른다. 재능을 가지고 착실하게 강해지는 이들은 마염들처럼 간절하게 강함을 갈구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저들이 그 간절함을 갖춘다면, 차이는 순식간에 좁혀질지도 모른다.
“다 큰 놈들을 쫓아다니며 수련하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못할 짓이지.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는 건 본인이 해야 할 일이니까.”
바토르가 고개를 내젓고는 몸을 돌렸다.
“그럼 어디, 오만에 빠지지 않은 놈들을 지도하러 가보실까?”
그 말을 남기고 바토르가 미련 없이 수련장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이명환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하자.”
“……그래야지.”
이명환이 이를 빠득, 갈았다.
‘빤히 열 받으라고 하는 소리라는 걸 알고는 있는데…….’
상대의 의도를 안다는 것이 그 의도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가 화를 내기를 바라고 욕을 한다 해서, 욕을 들었을 때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공영길들을 언급해서 그들에게 자극을 주려는 건 빤히 보이는 수작이지만, 문제는 실제로 마염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원탁 출정 때, 마염들이 일선에서 밀려난 건 명백한 사실이고, 지금 강진호가 그들이 아닌 사무직들에게 관심을 주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거참.”
이명환은 아이러니를 느꼈다.
모두가 열심히 수련하고, 모두가 강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모든 노력이 총회를 강하게 만들 테니까. 하지만 지금 이명환은 그들이 아닌 다른 이들이 열심히 수련하고 강해진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쥐꼬리만 한 권력도 권력이라고, 독점하고 싶었다는 건가?’
먼저 치고 나가 강해지고, 강진호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우월감. 이명환은 자신이 그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야.”
“응?”
“우리가 좀 쪼잔한 거 같냐?”
“……부정은 못하지.”
“그렇지?”
다른 이들도 비슷한 기분이 모양이다.
총회의 다른 젊은 무인들이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기감을 느낀다. 그 사실이 그들을 더없이 작게 만들었다.
“근데 그게 뭐가 잘못됐냐?”
“…….”
이명환이 이를 빠득빠득 갈며 말했다.
“좀 쪼잔하면 어때. 나는 내려놓을 생각 없다. 저 새끼들이 우릴 앞서가는 꼬라지는 죽어도 못 본다.”
“그건 그렇지.”
“당연하지!”
“듣자하니 바토르 님이 걔들한테도 마공 전수한다던데.”
“……진짜?”
“이러다가 진짜 우리 닭 쫓던 개 꼴 난다. 죽어라고 해야 돼.”
모두의 눈에 위기감이 차올랐다.
마공의 위력은 그들이 가장 잘 안다. 바토르의 외공에 마공이 결합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위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방진훈이 가르치는 이들도 절대 만만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연속성이 있다. 평생 익혀오던 것을 그대로 익히면서 더 높은 경지의 무학을 익힌다는 건 자신들에게는 없는 강점이다.
“애새끼도 아니고, 언제까지 엉덩이 걷어차 줘야 움직일 거야. 이제는 우리가 알아서 할 때도 됐지. 회주님이 잔소리한 게 얼마나 됐다고 풀린 것도 사실이잖아.”
“……그렇긴 하지.”
“각 잡고 하자, 각 잡고. 치사하고 쪼잔하다는 소리 들을지언정 나는 저 새끼들한테는 절대 못 진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마염들이 눈에 불을 켜고 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수련 시작해!”
바토르가 멀리서 느껴지는 마기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단순한 것들.’
하기야 알아도 어쩔 수가 없었을 거다. 인간의 경쟁심을 이용하는 건 오래된 고전이자 정석이니까. 정석이 왜 정석인가.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으니 정석이다.
강진호는 이런 느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강진호는 누군가에게 밀린다는 것에 호승심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니까. 그에게 있어 강함이란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저 갈구해야 할 목적에 가까웠다.
다른 이들에게는 강함이 그저 수단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바토르가 나서야 한다.
‘좋은 구도가 만들어지는군.’
인간은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그동안 강자를 따라 뛰는 것밖에 모르던 마염들에게 경쟁 상대가 생기는 건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주인은 이제 외부적 활동에 집중할 때다.’
그럼 내부를 다스려 줄 이가 있어야 한다. 바토르의 생각에 그건 바토르 자신과 위긴스, 그리고 이현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자, 그럼 또 게으른 놈들을 굴려보러 가실까?”
강진호가 자리를 비웠음에도 총회는 착실하게 발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