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54
#1053.
대비하다 (3)
전병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사람에게 보고를 해보는 건 처음인데…….’
생각하니 더 긴장이 된다.
‘아니, 긴장할 게 없잖아.’
그가 이 사람에 비해 꿀릴 게 뭐가 있는가.
입사도 그가 빨랐다. 나이도 그가 더 많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역시 험난한 재경에서 팀장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따져 보자면 그가 이 사람에 비해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혼자 생각해 봐도 어이없는 소리일 뿐이다.
아무리 실장이라는 자리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직위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경에서는 팀장보다는 윗급으로 치는 자리다.
실권이 딱히 없는 실장이라고 해도 긴장해야 할 판인데, 어느 회사든 살아 있는 권력, 그 자체인 비서실의 실장을 상대하면서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인데…….’
아직 채 마흔이 되지 않은 나이로 재경 비서실의 실장 자리를 꿰찬 것은 물론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지금의 비서실장은 이전까지의 비서실장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의 비서실장들이 그저 황정후 회장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면, 지금의 비서실장은 그 역할을 넘어 수많은 부분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
실제로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은 이런 이들이다. 적당히 비위만 맞춰주고 자신의 권위에 대항하지 않으면 굳이 부장급들을 건드리려 하지 않는 이사진이나 사장단들과는 다르게 이런 이들은 실적과 능력을 직접적으로 평가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보고를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그의 회사 생활이 대격변을 맞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병수가 마른침을 삼키고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조규민.
보고서를 읽는 조규민의 눈이 살짝 찌푸려져 있다. 빠른 속도로 보고서를 훑은 조규민이 살짝 한숨을 내쉬며 보고서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전병수 팀장님.”
“예.”
전병수가 긴장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보고서는 봤습니다만, 실질적인 말을 듣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에…….”
전병수가 이마를 한 번 훔치고는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로 업무 능력을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조규민이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어느 정도이기에?”
“기본적인 워드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합니다. 다른 업무 프로그램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기이하게도 회계 관련 업무에 종사한 이들은 나름의 숙련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형수가 능력이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죠.”
“예?”
“아니, 아닙니다.”
조규민이 입가를 주무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회계팀은 나름 최고의 인재들을 모았을 테니까.’
하나는 총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금 관리이니만큼, 나름 능력이 있다는 이들은 모조리 회계팀으로 차출되었을 것이다. 굳이 새로운 전략을 짤 필요도, 완벽한 운영이 필요하지도 않은 총회이니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또 하나는 이현주의 존재.
이현주가 경리부를 맡으면서부터 총회가 대격변에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그런 그녀가 무능한 부하 직원들을 그대로 내버려 뒀을 리도 없다.
“많이 어렵습니까?”
“미리 전달받은 정보가 있어 기본적으로 진행하는 교육에서 수준을 대폭 하향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하향된 수준의 교육마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규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짐 덩어리를 내던져도 유분수지.’
이현수의 얼굴을 떠올리니 절로 이가 갈린다.
직원 연수를 시켜 달라더니, 세 살짜리 애들을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대책일 수가 있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총회의 무인들은 따지고 보자면 엘리트 스포츠의 과정을 밟는 선수들과 비슷했다. 프로를 노리는 운동부의 학생들이 일반적인 교과과정을 모두 포기한 채 운동에만 매달리듯이, 총회의 무인들도 교육은 모조리 집어던진 채 무학에만 매달렸을 것이다.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선수들이 프로가 되지 못했을 때 막막한 현실과 직면하는 것처럼, 평생을 무학에 바쳐 온 이들이 무인으로 살아갈 수 없어졌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조규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런 일련의 과정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후 재교육의 과정이 몽땅 무시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건 이현수를 탓할 일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부분은 없습니까?”
“에…….”
전병수가 어색하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들어보시면 이상하겠지만, 의외로 긍정적인 부분도 넘쳐 납니다.”
“예?”
조규민이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과 전병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종합하면 이보다 더 끔찍할 수 없는 상황인데, 긍정적인 부분이 넘쳐 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전병수가 그런 조규민의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 양반들 체력은 장난이 아닙니다.”
‘그렇겠지.’
일단은 무인이니까.
그들의 입장에서는 재능이 없어서 무인으로 더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조규민 같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람이 아닌 건 마찬가지다.
개중 가장 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이현수도 경호를 위해 호신술을 익힌 건장한 청년, 조규민을 손가락 하나로 가지고 노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체력이야 넘쳐 나겠지.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체력이 넘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왜냐면 결국 집중력이라는 것도 체력이 기반되어야 발휘되기 때문이죠. 아침 9시에 교육을 시작해서 밤 10시까지 교육을 하는데도 마지막 교육까지 쌩쌩하게 살아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음, 과연.”
“덕분에 교육 시간을 더 늘릴 수 있었습니다. 되레 교관들의 체력이 버티지 못해서 인원을 충원하고 2교대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좋은 일이다. 교육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교육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물론 생각보다 더 기초적인 부분부터 가르쳐야 할 테니 전제적인 교육 기간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절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어, 이걸 참…….”
전병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응?’
반응이 좀 이상하다. 보고를 하긴 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말을 하면서도 이상하다 싶기는 하지만, 일단 있는 대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연수생들이 똑똑합니다.”
“……예?”
조규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고에 따르면…….
“보고서나 말씀을 들어보면 거의 바보 수준인 것 같은데요?”
“정확합니다. 그런데 똑똑합니다. 똑똑한 바보라고 해야겠네요.”
“……이해가 잘 안 갑니다만.”
전병수도 어색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설명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가지고 있는 지식수준이나 능력으로 따진다면 연수생들의 평균은 일반적인 인문계 고등학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예. 그런데?”
“그런데 학습 능력 자체는 굉장히 높은 편에 속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해력은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인데 기억력이 어마어마합니다. 한 번 습득한 것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예?”
“이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전형적인 ‘우리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에 속합니다. 그것도 연수생 거의 전부가 그런 경우입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이현수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강진호 씨도 그랬지.’
고등학교 시절, 강진호는 당당히 전교 꼴찌를 찍은 사람이었다. 그런 양반이 한 해 공부하더니 한국대를 수석으로 들어갈 정도의 성적을 찍어버렸다.
강진호가 천재여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저들이 익히는 무학에 사람의 기억력을 비상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결과적으로?”
“예.”
전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가르치는 과정은 지난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습득만 시키면 능력은 확실해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겠네요.”
조규민이 흥미롭다는 듯 관심을 보였다.
‘머리가 좋아지는 건가? 그럼 무공이라는 것의 범용성도 더 올라갈 텐데.’
“이해력 부분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적어서 그런 겁니까?”
“아니요. 그냥 머리가 나쁜 것 같습니다.”
“…….”
“그러니 말씀드리기가 곤란하다는 겁니다. 기억력은 확실한데, 이해력은 애매하고. 똑똑한 것 같으면 멍청하고, 멍청한 것 같으면 똑똑하고…….”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은데, 이거?
미니 강진호들인가?
“흠, 확실히…….”
전병수가 정리를 했다.
“본인들도 의욕이 있는 편이라 교육 기간을 조금 늘리고, 교관을 충원하여 일일 교육 시간을 늘릴 수 있으면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제가 개인적으로 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회장님의 인가가 필요합니다.”
“인가받아 드리죠.”
“아.”
조규민이 빙긋 웃었다.
“팀장님이 원하신다는데, 최대한 지원을 해드려야겠죠. 무리한 일에 밀어 넣은 건 사실이니까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결과를 내겠습니다.”
조규민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전병수를 보았다.
‘인재인 것 같은데…….’
교육팀에 남아 있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가진바 능력이야 아직 확실하게 검증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은 그 자세가 마음에 든다.
보통 이런 일을 맡으면 보고를 하러 와서도 어떤 부분이 힘든지 어떻게든 징징대기 마련인데, 깔끔하게 사실만 보고하고 어떤 식으로 보완할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당연한 일 같지만, 그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처리하는 사람을 찾는 게 제일 어려운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병수는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 교육은 잘 부탁드립니다. 결과가 좋다면 반드시 대가가 있을 겁니다.”
“아, 그게…….”
전병수가 머리를 긁었다.
“하나 더 보고드릴 게 있는데, 이게 교육이 잘된다고 하더라도 제 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예?”
이게 무슨 말이지?
의문을 표하려 하는 조규민을 보며 전병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그 강진호? 그 사람이…….”
“……예?”
여기서 그 이름이 왜 또 나와?
“뭘 하고 있는데…… 이게 뭐랄까, 그…….”
전병수의 반응과 강진호라는 이름이 조합되자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 그분이 또 뭘 하십니까?”
“아니, 그게 뭐, 방해를 하시는 건 아닌데…….”
“…….”
아니, 강진호 씨. 또 무슨 일을 벌이시는 겁니까!
“제발 평범하게 좀 살자, 평범하게 좀!”
조규민이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진호에 대한 건 말로 들어서는 알 수 없다.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지금 어디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