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56
#1055.
대비하다 (5)
“퇴근시켜 주시죠.”
“…….”
“퇴근은 인권입니다!”
강진호가 뚱한 눈으로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 두 번째로 퇴근을 안 하시는 분 같은데.”
물론 첫 번째는 이현수였다.
“제가 그러니까 그 고통을 더 잘 아는 거죠. 다른 건 몰라도 퇴근은 보장해 주셔야 합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으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조규민이 통사정을 해 함께 담배를 피우러 나온 참이었다.
“퇴근시킬 겁니다.”
“교육 다 끝나구요? 새벽에요?”
“아뇨, 지금.”
“예?”
강진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그렇게 상식이 없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없어 보이는데…….
조규민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뭐든 단계가 있어야 한다는 정도는 압니다. 오늘은 일단 경고만 하고 다 퇴근시킬 생각이었습니다. 정도는 지켜야죠.”
“…….”
조규민이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하지만 웃는 내내 그의 눈가가 바들바들 떨린다.
‘지금 열한 시야, 이 양반아!’
이미 상식이 없다고, 이미!
“그런데 뭔가 잘못된 겁니까?”
“……강진호 씨.”
조규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직원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게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일단은 저들이 열정을 가질 수 있게…….”
“이해가 잘 안 가는데…….”
“예?”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늦은 시간까지 교육하고 가르쳐서 실력을 끌어 올리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예, 그렇죠.”
“그럼 고등학생들은요?”
조규민이 입을 다물었다.
조규민이 대답하지 않자 강진호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안 그런 편이었지만, 고등학생들은 새벽까지 공부하고 또 공부하잖아요.”
“……그렇죠.”
“부모들은 그걸 말리기는커녕 학원비도 내주고, 공부를 돕기도 하면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편 아닌가요?”
조규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죠.”
“그럼 그게 잘못된 겁니까?”
“어…….”
말문이 막힌다.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부모만큼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사람은 없죠. 그런 사람들이 자식이 눈을 떠 있는 시간은 모조리 공부에 투자하길 바란다는 건 그런 과도한 학습의 과정이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조규민이 말을 더듬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설명하자면 설명할 수 있었다.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한 번의 시험으로 너무 많은 것이 갈리는 시스템의 문제니까. 하지만…….
‘궁색한 변명이지.’
강진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회장님이 어떤 의미로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라고 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의 의도와 제가 받아들인 게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가족이라는 건 결국 이득을 따지지 않고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게 참 애매해요.”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재력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 중 더 중요한 건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재력을 유지하는 것도 능력이니까.”
“음…….”
“거기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죠. 능력을 갖추는 건 힘든 일입니다. 반드시 노력해야 하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행복할 수 없죠. 그렇다고 지금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게을리하면 나중에는 불행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밸런스의 문제겠죠.”
“예. 그런데 저는 그 밸런스를 잘 몰라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을 보고 배울 수밖에 없죠. 다른 부모들이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어떻게 하느냐를 참고할 수밖에 없는데, 제가 아는 부모들은 기본적으로 훗날의 더 많은 행복을 위해서 지금 잠깐의 행복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느끼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을 학원으로 밀어 넣고 자는 시간마저 줄이며 공부를 시키는 것 아닌가요?”
조규민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 양반, 아무 생각이 없는 게 아니었구나.’
꽤나 진지한 고민이었다.
“강진호 씨 말이 맞습니다.”
“음?”
“하지만 하나가 빠졌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조규민이 빙그레 웃었다.
“믿어주는 과정이죠.”
“…….”
“생각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가족 관계가 파탄 나는 이유도 서로를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일 뿐입니다. 그러니 일단은 더 믿어주세요. 다들 잘할 겁니다. 충분히 믿어주고 나서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다면, 그때 다그쳐도 늦지 않습니다. 결국은 조급함이 관계를 망치는 법이니까요.”
신뢰라…….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다.
인간관계라는 건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다.
“다들 조 실장님 같기만 하면 좋을 텐데요.”
“저 같은 사람 어디서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요.”
강진호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다들 준비…….”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강진호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강진호가 손을 뻗어 주머니에 든 전화를 잡았다.
‘집인가?’
이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갔으니 전화가 올 만도 하다. 오늘 늦을 것 같다는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액정에 뜬 이름은 가족이 아니었다.
“응?”
박유민.
그의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강진호가 조규민을 살짝 돌아보았다.
“저 전화 좀…….”
“네. 받으세요.”
강진호가 살짝 조규민과의 거리를 벌리고는 전화를 받았다.
“웬일로 이 시간에?”
[진호야, 너 시간 좀 있냐?]“응? 시간? 지금?”
[응. 지금 좀 봐야 할 것 같은데.]“……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어?”
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박유민은 이리 갑자기 약속을 잡는 타입이 아니다. 보통 며칠은 먼저 연락을 하는 타입이었다. 그런 이가 이리 급하게 군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건 아니고, 내가 할 말이 있어서……. 정확하게는 석고대죄할 일이 있다.]“……어디로 가면 되냐?”
[우리 숙소 알지? 그쪽으로 올 수 있을까?]“바로 갈게.”
강진호가 전화를 끊고는 조규민을 돌아보았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퇴근하라고 해주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일단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어서 가보십시오. 전달은 제가 하겠습니다.”
“예, 그럼.”
강진호가 빠른 걸음으로 지하 주차장 쪽으로 향하자 조규민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들 퇴근하세요!”
“회, 회주님께서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셨습니다.”
“만세! 만쉐이!”
“가자! 집에 가자!”
“어흐흑, 밤새는 줄 알았네!”
터져 나오는 열렬한 반응을 보며 조규민은 조금 서글픈 마음이 되었다.
‘부모 자식 같군.’
부모는 이제나 저제나 자식이 잘되기를 바랄 뿐이지만, 자식은 그저 지금 당장 놀 수 있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강진호의 방식이 조금 잘못되었을 수는 있지만, 다 자기들 잘되라고 하는 일인데, 이리 격렬히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조규민이 괜히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한테 전화드린 지도 한참 됐는데…….’
자식 나이가 마흔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아직 차 조심하라는 말과, 밥 좀 제대로 챙겨 먹으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 엄마를 생각하자 더 열이 받는다.
어디선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라는 BGM이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이 철없는 새끼들!
고개를 좌우로 꺾어 우둑우둑 소리를 낸 조규민이 살짝 이를 갈며 말했다.
“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부탁드립니다.”
나 너희 편 아냐, 이 새끼들아!
너희, 내가 누군지 알아?
모르면 알게 해줘야지.
안면을 몰수한 조규민이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물론 회주님은 퇴근하셨지만,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오늘은 일단 퇴근하시면 됩니다.”
“오!”
“하지만…….”
조규민이 눈을 부라렸다.
“내일부터 그날 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분들은 퇴근 없습니다.”
“…….”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습을 하든 복습을 하든 과외를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날의 교육과정을 완전히 습득하시길 바랍니다.”
“…….”
“아까 누가 말씀하신 것 같던데, 확실히 강진호 씨가 남아서 여러분을 가르치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죠. 그러니 빠른 시일 내에 보충수업반 교관들을 충원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강진호 씨가 원하시는 대로 여러분을 확실하게 단련해 드리죠.”
“…….”
연수생들이 차라리 강진호를 상대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하루쯤이 지났을 때의 이야기였다.
강진호가 숙소 앞에 서 있는 박유민을 발견하고는 그 앞에 차를 가져다 댔다.
“지, 진호야.”
박유민이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무슨 일인데?”
“여, 여기서 말하기는 좀 그렇고, 카페나 그런 데 없을까? 시즌 중이라 술은 좀…….”
“저 앞쪽에 불 켜진 카페 있더라. 그리로 가자. 타.”
“응.”
박유민이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 문을 열어주자 박유민이 고개를 숙이며 차에 탄다.
“항상 탈 때마다 느끼지만, 이 차는 문이 이상해.”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몇 년이나 보조석에 타면서도 매번 같은 이야기다. 그 말을 한다는 게 박유민이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는 증명 같아서 괜히 마음이 편해지는 강진호였다.
“좁고.”
“…….”
“시트 딱딱하고.”
아니, 그냥 불만이 많은 거였나?
“이런 비싼 차 몰 수 있으면 더 좋은 차도 살 수 있잖아. 좌석 넓고 편안한 거.”
이게 더 좋은 차예요, 이 사람아.
이거 비싼 거야!
박유민은 강진호와는 다른 의미로 경제관념이 없었다.
강진호가 돈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딱히 그 돈을 사용할 생각이 없는 타입이라면, 박유민은 자신이 생각하는 한도 이상에는 금전적 감각이 전무했다.
애초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것이다.
차 문을 닫은 강진호가 액셀을 밟았다.
“무슨 일인데?”
“아, 그게…….”
박유민이 불안한 눈으로 좌우를 둘러봤다.
“그, 최연하 씨 있잖아.”
“응? 최연하 씨?”
“응. 그 사람.”
“갑자기 최연하 씨는 왜?”
박유민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나 그거…… 그…… 광고 촬영 나갔는데, 상대 여배우가 최연하 씬 거야.”
“신기하네.”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우연이 겹치는 게 세상이라지만, 참 신기한 우연도 다 있다. 박유민과 최연하가 함께 광고 촬영이라니.
“그런데 그게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 그게…… 내가 그……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는데, 그…….”
“응?”
“세, 세연이 전화가 걸려와서…….”
차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마침내 차가 멈춰 서고, 강진호가 살짝 굳은 얼굴로 박유민을 돌아보았다.
그 표정을 본 박유민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추, 추궁당해서 내가 다 불어버렸어. 미안하다, 진호야!”
“…….”
“진호야?”
“하하…….”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또 별거라고. 그게 왜?”
“진호야.”
“응?”
“손 떨지 말고 말해.”
“…….”
너 같으면 안 떨겠냐, 인마?
너 같으면?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