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60
#1059.
추궁받다 (4)
“교관님!”
“예!”
“이거 잘 안 되는데, 여기 좀 봐주십쇼.”
“네네, 지금 갑니다!”
양진찬이 격하게 손을 든 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뭐가 잘 안 되시는데요?”
“여기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안 됩니다.”
“아, 여기 명령어가 잘못됐네요. 여기 보이시죠? 저쪽 화면이랑 비교하면…….”
“아…….”
배재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 진짜 이상하네. 교관님이 말하면 바로 보이는데, 혼자서는 아무리 찾아도 이게 안 보여요.”
양진찬이 빙그레 웃었다.
“다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머리가 나빠서…….”
“아뇨. 위로하려는 말이 아니라 정말 다 그래요. 배우는 입장에서는 그게 잘 안 보이죠. 그래서 반복 숙달이 중요한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양진찬이 흐뭇하게 웃었다.
‘진짜 신기하네.’
처음에는 이 연수가 잘 돌아갈 수 있을까를 의심했다. 아니, 그저 의심이 아니었다. 첫날과 둘째 날을 지켜본 결과로는 이미 이 연수는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초반에 만들어놓은 교육 계획이 뒤집어지는 연수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망한다. 그들이 상정한 것에 뭔가가 어긋나도 한참은 어긋났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교육과정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최악의 사태를 겪었음에도 빠르게 안정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저 안정에서 멈춘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어정쩡하던 연수생들도 날이 갈수록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관들이 연수생들을 오해한 측면이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교관님, 여기요.”
“예!”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러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보라.
저 따지듯이 묻는 태도.
다른 이들이 저런 태도로 물어온다면 건방지다는 말과 함께 벌점을 먹였겠지만, 여기에서 그런 방식을 취하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이들에게는 벌점이 딱히 의미가 없다는 것.
연수 점수가 곧 인사 평가에 반영되는 재경의 신입 사원들과는 다르게 이들에 대한 평가는 재경이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평가는 그들이 할지언정 그 평가를 받아들이는 이가 어떻게 활용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벌점으로 통제하는 건 무리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교관님?”
“아,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가 문제라고 하셨죠?”
저 살벌한 인상이다.
그냥 물어보는 것에 불과한데도 눈빛이 새파랗게 찔러온다. 처음에는 연수생들이 전부 합작해서 교관들의 기를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사람을 교육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담이 세고 성격이 강하기 마련이다.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을 강제로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건 생각 이상의 정신노동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강한 성격이 이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당장 맞아 죽을 것 같은데…….’
센 척하는 연수생이야 수도 없이 봐왔다. 기본적으로 20대 후반의 남자 중에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허세가 덜 빠진 이가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이건 센 척이 아니었다.
그 이유?
그건 아주 간단하다.
“감사합니다. 한 번에 좀 알아들어야 하는데…….”
“아닙니다.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말투야 어떨지 몰라도 예의는 아주 바르니까.
그리고 하나를 가르칠 때마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중한 인사를 받게 된다.
‘그냥 인간관계가 좀 서투른 편인 건데…….’
설마 이 많은 인원이 단체로 인간관계에 서투를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니 다들 이들이 교관들에게 위협적으로 군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몇 번 대화를 나눠보고 그들의 태도가 천성적인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는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열정적이라니까.’
일단 이들에게는 부끄러움이라는 게 없었다.
기본적으로 연수가 배우러 오는 곳이기는 하지만, 신입 사원들은 자신이 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티를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해를 못해도 그냥 이해한 척한다.
이건 사실 연수생의 특성이라기보다는 한국인의 특성에 가깝지만, 연수생들은 특히나 그런 경향이 심했다. 같은 교육을 받고 다른 이들은 이해했는데, 자신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건 무능력하다는 뜻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이건 정말 끔찍한 태도였다.
그들의 목적은 이들 중 우수한 인재를 가려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는 연수생 전원을 즉전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지, 연수생의 고하를 가리는 게 아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불과 삼 개월도 안 되는 교육 기간 동안 인재를 무슨 수로 평가하라는 말인가.
평가할 방법도 없고, 그들에게는 앞으로 십 년 이상의 평가 기간이 남아 있으니 평가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연수생들은 절대 자신이 모른다는 티를 내려 하지 않는다. 빤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수생이 패닉에 빠지지 않게 모른 척 넘어가야 하는 것이 교관들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연수생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교관니이이임!”
“네! 지금 갑니다!”
이들에게는 부끄러움이라는 게 없다.
‘내가 모르는 게 왜 부끄러운 거냐?’라는 얼굴로 당당하게 물어온다. 양진찬이 처음 겪는 유형이었다.
그리고 질문하는 이에 대한 태도도 남달랐다.
용기를 내 질문을 하는 연수생에게는 살짝 비웃는 듯한 시선이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그 미묘한 시선은 감춰지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한 번 용기를 내서 질문한 이도 다음에는 모르는 게 있어도 차마 질문을 하지 못한다. 개중 적극적인 이가 나중에 슬그머니 교관에게 와 넌지시 묻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이들은 남이 무슨 질문을 하든 관심이 전혀 없었다.
자신이 아는 걸 모른다고 해서 무시하지도 않고, 자신이 남들이 모르는 걸 안다고 해서 으쓱하지도 않는다.
‘참 신기한 사람들이라니까.’
별것 아닌 특징 같지만, 양진찬은 이게 얼마나 특이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교육팀에 배정된 이후로 수많은 신입 사원 연수에 참여해 왔지만, 이런 기수는 물론이거니와, 이런 유형의 신입 사원 개인도 거의 본 적 없었다.
양진찬이 어찌 알겠는가.
이들이 무인이라는 사실을.
무인으로서 업무를 모른다는 게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애초에 서로가 무인이기에 서로가 업무를 잘 모른다는 걸 당연시 여기고,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원래 자신의 주 분야가 아닌 부분에는 너그럽기 마련이다.
만약 이들이 익히는 게 사무 업무가 아니라 무학이었다면, 이들의 태도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무시하지 않는 이유는 또 있었다.
애초에 이들은 무학을 익히며 경쟁을 해본 사이다. 길고 긴 시간을 마라톤하듯 경쟁하는 사이에서 찰나의 앞서감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어제 내가 무시하던 이가 한 달 뒤에는 한참 앞을 달릴 수도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이거, 진짜 이상한 말이지만…….’
설명을 해주고 허리를 편 양진찬이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습득이 엄청 빨라.’
지금도 이들은 신입 사원이 갖춰야 할 최하의 기준도 충족하지 못했다. 연수를 마치고 나가는 신입 사원이 아니라, 연수를 시작하는 신입 사원의 기준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그 사실에 실망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배워 나가는 속도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기 때문이다.
‘다들 철인인가?’
긴급회의를 끝내고 교육은 완전히 뒤집혔다.
교육 시간부터가 파격적으로 늘어났다. 출근 시간은 아홉 시로 당겨졌고, 교육이 끝나는 시간도 아홉 시로 바뀌었다. 여기에 개인적인 복습 시간까지 합치면 수험생과 비슷한 수준의 일과를 치른다고 봐야 한다.
그런 팍팍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얼굴에서는 피로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교육 시간이 끝났음에도 자체적으로 남아서 복습을 할 정도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양진찬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타다다닥!
맨 뒷자리에서 누군가 어마어마한 기세로 타자를 치고 있었다.
보통은 저렇게 요란하게 타자를 치는 쪽은 빈 수레라고 봐도 좋지만, 저 인간만은 아니었다.
‘뭐 어쩌다 저런 사람이 신입 사원 연수에 들어왔지?’
보통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양진찬도 재경의 사원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도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우수한 인재라는 뜻이다.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당연히 교육과정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이를 뽑을 수밖에 없다. 양진찬은 신입 사원 연수에서 우수한 성적을 냈고, 그 사실에 스스로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 인간은 뭐랄까…….
‘여기 있으면 안 될 사람 같은데?’
대한민국 어느 대학을 나오든, 얼마나 대단한 머리를 가지고 있든, 재경이라는 회사가 그만한 인재를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양진찬이지만, 저 강진호라는 양반은 차원이 달랐다.
‘아니, 뭐, 가르칠 게 있어야지.’
우수하기 때문에 가르칠 게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가르칠 게 없었다. 첫날에는 그나마 뭔가 물어보는 척이라도 하더니, 둘째 날부터는 교보재를 선행 학습하며 혼자 아득하게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는…….
“교관님.”
“네?”
“여기 모르는 게.”
“아, 저한테 묻지 마시라구요! 저도 모른다구요!”
“아직 질문도 안 했습니다만?”
“어차피 모르니까 저한테 묻지 마세요.”
“으음.”
양진찬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교관으로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절대 양진찬의 잘못이 아니었다.
사람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수학을 가르치는 이에게 미적분을 물었을 때,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그건 강사의 잘못이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놈이 미분기하학을 들고 와 묻는 순간, 책임 소재는 강사의 손을 떠난다. 양심이 있으면 그런 건 묻지 말아야지.
지금 강진호가 하는 짓이 딱 그랬다.
교재고 나발이고 적어놓지도 않은 걸 혼자 파고들어 가더니, 이해가 안 간다며 이상한 걸 묻는다. 처음 강진호가 그런 짓을 했을 때, 양진찬은 진지하게 대학 때의 교수님에게 전화를 할 뻔했다.
답을 알려 달라고?
아니다. 이 새끼가 대체 뭘 묻는 건지라도 알고 싶어서.
“강진호 씨.”
“예?”
“……퇴근 좀 하세요, 제발.”
“아직 교육 시간인데…….”
“괜찮으니까, 퇴근 좀 하세요. 제가 부담돼서 죽겠어요.”
“조용히 구석에 있겠습니다.”
“제발! 다른 분들 교육에도 방해되니까, 제발 퇴근 좀 해주세요, 좀!”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자자, 저쪽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어서 좀.”
“……네.”
강진호가 시무룩한 얼굴로 강의실을 빠져나가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폭탄처럼 쏟아져 나왔다.
“와, 이제 숨 좀 쉬겠네.”
“대체 누가 저 양반을 연수에 보낸 거야! 양심도 없나, 진짜!”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성토를 들으며 양진찬이 침을 튕기며 성토에 합류했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끈끈한 전우애가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