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65
#1064.
대응하다 (4)
“보고드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도록.”
“아, 그거 말고도 요청드릴 게 있습니다.”
“말해.”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시약과 재료가 부족합니다.”
“그런 것까지 보고할 필요는 없을 텐데?”
“조금 고가입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위긴스가 총회의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지위는 아니다. 원래도 이사들에게는 자금권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이현주가 전면에 나서서 자금줄을 틀어쥔 뒤로부터는 사소한 지출 하나마저 승인이 나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수련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는 데 강진호의 승인이 필요할 정도는 아닐 텐데…….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이현주가 양어깨를 으쓱했다.
“……얼만데?”
“그게…….”
위긴스가 주섬주섬 준비한 보고서를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위긴스가 내민 보고서를 본 강진호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거…….”
“알고 있습니다. 거액이죠.”
“…….”
위긴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시약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바깥세상에서 보기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을 쓰기도 하지만, 정말 귀한 것을 물 쓰듯 써야 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죠.”
위긴스가 멋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저도 돈이 이렇게까지 들 줄은 몰랐습니다. 기사와는 다르게 마법사가 귀족들만의 클래스였던 이유를 확실히 알겠더군요.”
“어, 음…….”
육체적 능력이 중요한 기사는 신분을 가리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수한 기사가 될 수 있는 평민은 귀족가에 입양이 되어서라도 지원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법사는 아니다. 마법사는 오직 귀족들만이 입문할 수 있는 클래스다. 당연히 태생부터 귀족이었던 위긴스는 그 이유가 귀족들의 특권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대량의 마법사를 양성하는 입장이 되자, 이유가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막대한 부를 축척한 이들이 아니면 애초에 엄두를 낼 수 없는 직업이었다.
당장 하위 클래스의 수련에도 이만한 돈이 들어가지 않는가.
‘마스터가 돈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이유를 알겠군.’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 정도의 돈이 들어가는 건가?”
“지속적으로는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지출이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라고는 좀…….”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저리 자신감 없이 어물거리는 위긴스의 모습은 또 처음 보는 것 같다. 그게 실수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라는 것이 무척 아이러니하다.
“일단은 지원하지.”
“예, 로드. 감사합니다.”
위긴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과거 원탁에서 마법사들을 육성할 때, 그 수를 너무 한정하는 감이 있었습니다. 그게 원탁의 약화와 이어졌다고 생각해서 일단 육성할 이들의 수를 늘렸는데…… 이런 사태는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소감은?”
“부모님의 사랑을 새삼 느꼈습니다. 살아 계실 때 더 잘해 드릴 것을. 제대로 마법사조차 되지 못한 자식 놈을 키우기 위해 돈을 얼마나 썼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이상한 쪽으로 흐르지 말자고.”
“네, 죄송합니다.”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겠어.’
이중걸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둔 덕분에 지금 총회의 자금 사정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 날 지경이지만, 그 돈을 모조리 마법사들의 육성에 들이부을 수는 없었다.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가성비의 문제다. 평범한 무인 하나를 육성하는 것에 수십 배가 되는 돈을 쏟아붓고도 그 이상의 효용을 내주지 못한다면, 누가 마법사를 육성하려 들겠는가.
“돈을 부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지. 지금은 돈이 중요하지 않으니까 한동안은 지원하지. 하지만 자체적으로 방법을 좀 마련해 봐야 할거야.”
“예, 로드.”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사소한 일이지만…….”
“또?”
“…….”
위긴스가 멍한 눈으로 바라보자,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쿨한 척하긴 했지만, 강진호도 마법사들이 퍼먹는 돈에 질린 모양이다. 그러니 저런 반응이 나오겠지.
“그게 아니라…… 슈발리에들이 총회로의 이적을 요청했습니다.”
“응?”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뱅상과 마티외를 포함한 대부분의 슈발리에들이 총회로 소속을 옮기고 싶다는군요.”
“왜?”
강진호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슈발리에들이 총회로 돌아오든 원탁에 머무르든 강진호에게는 딱히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총회에 돌아온다는 선택을 그들이 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타국에 억류된 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는 강진호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강진호는 그들이 협조하기로 한 이후부터는 최대한의 편의를 봐주었다.
그런데 풀어준 물고기가 제 발로 그물로 돌아오겠다니?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일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는 더 이상 원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배척을 받게 된다는 점이겠죠.”
강진호가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스터를 몰아내고 원탁의 장악을 시도한 나이트 르보가 프랑스 인이니, 프랑스 자체가 원탁에서 배제되지는 않더라도 한동안은 발언권을 잃고 지원이 끊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프랑스 내부의 사정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이트 르보가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는 프랑스의 나이트입니다. 나이트 르보의 지시를 따라야 할 슈발리에가 나이트 르보에게 대놓고 항명하다 못해 그와 맞서 싸우기까지 했으니, 프랑스 내에서 그들의 커리어는 끝났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으음.”
이제야 왜 저들이 총회로 오려는지 이해가 갔다.
그런 상황이라면 강진호도 고민했을 테니까.
“그리고 저들 개인적으로는 총회가 꽤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제삼국으로 망명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총회로는 돌아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가능한 일인가? 저들을 받아들인다는 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마스터는 반드시 저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도운 이들을 최악의 상황에 방치했다는 비난을 받게 될 테니까요. 저들의 소속을 원탁에서 총회로 변경할 수는 없겠지만, 파견의 형태로 총회로 보내줄 수는 있습니다. 물론 마스터의 명 외에는 누구의 명도 듣지 않는다는 절차적인 보완이 먼저 되어야겠지만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견은?”
“받아야 합니다.”
위긴스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현실적인 이득은 그들이 있어야 수련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총회 내에 서양식 무학을 익히는 이들의 수는 생각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저 혼자서는 그들을 모두 수련시킬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전력으로도 그들은 막강합니다.”
슈발리에들은 이번 전투로 자신들이 다른 원탁의 기사단들과 다른 수준에 접어들었음을 증명했다.
영국의 가타 기사단과 비교하더라도 슈발리에들은 분명 한 차원 앞서 있었다. 총회의 정예와 비교했을 때는 한 수 처지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총회의 무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그만한 전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받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탁은 여전히 총회에 적대적입니다. 마스터가 협조를 한다고는 하나 저들의 근본적인 적개심마저 누그러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슈발리에의 이적은 커다란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안건은 위긴스가 알아서 처리하는 걸로 하지. 전권을 주지.”
“감사합니다.”
오늘따라 전권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는 생각에 이현수가 움찔했다.
“다음, 방 이사는?”
“저는 보고할 거 없습니다.”
“……순조롭나?”
방진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병아리들 가르치는 일이야 언제나 어려운 법이죠. 그 와중에 애들을 가르치다 보니, 저도 자꾸 배워야 할 게 늘어나서 정신이 없습니다.”
“흐음.”
강진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느껴진다.
방진훈의 몸 안에 흐르는 투기가.
‘이건 예상 못했는데…….’
강진호는 언제나 방진훈을 높게 평가했다. 단 한 번도 그를 무시한 적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무인으로서의 방진훈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방진훈에 대한 평가였을 뿐이다.
무인으로서의 방진훈은 강진호가 굳이 평가할 필요가 없을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방진훈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확실하게 강진호의 흥미를 끌고 있다.
‘하기야…….’
한국이라는 불모지에서도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중걸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방진훈이다. 제대로 된 무학과 제대로 된 환경, 그리고 무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더 강해질 수 있다. 무인으로서의 방진훈은 아직도 젊은 나이니까.
“그 외에는?”
“괜찮습니다.”
“이현수.”
“예, 회주님.”
“방 이사가 맡고 있는 일을 확인해서 분담할 수 있는 건 분담시켜 줘. 한동안 방 이사는 본인과 교육에 집중한다.”
“예, 알겠습니다.”
이현수가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진훈이 눈을 실룩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회주님.”
“대신 맡은 일은 확실하게 해주지. 교육도 교육이지만, 스스로도.”
“안 그래도 이 말씀을 드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음?”
“샌드백이 필요합니다.”
강진호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샌드백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새로운 무학을 정립하면서 무학을 실험해 볼 상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해 공격해도 다치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을 튼튼한 샌드백이.
“지금으로서는 세 개쯤 있는 것 같은데.”
“큰 샌드백이 제일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그 샌드백은 요즘 영 터질 듯 말 듯 불안합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았다. 미리 이야기하면 시간을 비워두지.”
“감사합니다.”
눈을 감고 말을 듣고 있던 바토르가 눈을 번쩍 떴다.
“뭐야? 사람 이야기야? 그럼 뭐? 그 제일 큰 샌드백이 나야?”
“…….”
눈치 참 없네.
“아니! 내가 뭐가 불안하다는 거야!”
“거, 마공 익히잖습니까. 괜히 죽빵이라도 한 대 때렸다가 죽자고 달려들면 어떻게 합니까!”
“주인은 마공 안 익혔나? 영감은 마공 안 익혔어?”
“두 분이야 숙련자고, 바토르 님은 초보 아닙니까. 목숨 걸린 일인데.”
“흐으, 그래?”
바토르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주인! 나도 마공을 실험해 볼 대상이 필요하다. 대신 나는 상대가 강하면 안 된다. 제어하는 연습이 필요하니까. 마침 딱 적당한 상대가 있는 것 같군. 어느 정도 실수해도 죽지 않을 상대가!”
“허? 그러다가 잘못 맞고 바닥 구르면 쪽팔려서 얼굴도 못 드실 텐데?”
“방 이사, 이거, 간댕이가 배 밖으로 나왔구만? 그거 내가 다시 집어넣어 주지.”
“못 넣으실 텐데?”
“나와. 지금 시작한다.”
“거, 그러다 망신당하시지 말고.”
강진호가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제발 싸우더라도 체통을 좀 지키며 싸우라고.’
제발 좀, 이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