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66
#1065.
대응하다 (5)
“음, 혈기가 넘치는 건 좋다.”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혈기 때문에 회의에 방해가 되는 것 같군. 정 혈기가 넘친다면 내가 좀 빼줄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말이야 좋게 했지만, 말뜻을 해석하면 자꾸 싸워서 회의를 방해하면 끌고 나가서 뚝배기를 깨버리겠다는 뜻이었다. 방진훈은 물론이고, 천하의 바토르마저 움찔하여 입을 꾹 다물었다.
‘닥치고 있어야지.’
평소의 강진호는 그 무력에 어울리지 않게 세상에서 가장 놀려 먹기 좋은 만만돌이지만, 정도를 넘어서면 미친놈이 된다. 이 경계를 잘 타는 것이 총회 생활의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
“장민.”
“예, 마존이시여.”
“문제는 없나?”
“장로들에게 마공의 전수를 완료했습니다. 기초적인 마공은 전수가 되고 있고, 다들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성향과 재능에 따라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지만, 최저를 기준으로 잡더라도 과거보다 확연히 강해지고 있습니다.”
“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정의 문제는 없나?”
“있습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외부적으로 문제가 생긴다기보다는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숙소에서 서로 싸움을 벌이는 놈들이 늘어났고, 별것 아닌 일에 반항하는 놈들이 늘어났습니다.”
“문제로군. 해결책은?”
“개같이 패버렸더니 고분고분해졌습니다.”
“…….”
모두의 멍한 시선이 일시에 장민에게 집중된다.
하지만 장민은 왜 그런 눈으로 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위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얻어맞는다고 말을 듣습니까? 겉으로야 고분고분해지겠지만, 반감이 심해질 것 같은데?”
“괜찮다.”
장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발작하는 놈에게는 매가 약이라는 사실은 천년마교의 역사가 증명하는 일이다. 고래로 수많은 마인들이 발작을 일으키고 광증을 보였지만, 맞아서 고쳐지지 않은 놈은 없지.”
“…….”
위긴스의 눈이 살짝 떨렸다.
그의 시선이 장민을 떠나 강진호에게로 돌아갔다.
“크흠.”
강진호가 헛기침을 했다.
뭔가 나는 다르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어쩐지…….”
그동안 저지른 일이 있어서 항변을 할 수가 없다. 위긴스의 저 눈을 보라. 눈으로 ‘어쩐지 수틀리면 일단 패고 보더만, 이유가 있었구만’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다행히 방진훈이 화제를 돌려주었다.
“얻어맞기만 하면 고쳐진단 말입니까?”
“그렇지.”
“그럼 광증이라는 것도 별게 아니군요.”
“그렇지.”
“얼마나 패면 됩니까?”
“고쳐질 때까지.”
“…….”
살짝 불안함을 느낀 방진훈이 굳이 묻지 않아도 될 말까지 묻고 말았다.
“안 고쳐지면요?”
“죽을 때까지 맞는 거지.”
“……그래도 안 고쳐지면요?”
“죽는 거지.”
“…….”
방진훈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그 반응을 본 장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고쳐지는 거 아닌가. 광증이 고쳐져 평범하게 돌아가든가, 더 이상 광증을 부릴 수 없게 되든가.”
그렇겠지.
죽은 놈이 미쳐 날뛸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사람을 죽여 대는데도 교가 유지됩니까?”
“사람은 넘쳐 난다.”
순간, 방진훈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러고는 강진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양반이 이상한 건 줄 알았더니만, 이게 마교 전통이구만.’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예.”
강진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는 장민을 돌아보았다.
“죽이지는 말고.”
“유의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중국이 아니니까요. 안 그래도 어제 미쳐 날뛰는 놈이 하나 나왔는데, 중국 같았으면 정말 개처럼 패서 처마에 매달아 버렸을 텐데, 한국이란 걸 감안해서 개처럼 패기만 했습니다.”
“……잘했다.”
강진호는 기이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들 기겁한 얼굴로 장민을 보고 있지만, 강진호는 장민의 대처가 마교에서는 과도할 정도로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대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강진호가 있던 당시에 비하면 인도주의적이기까지 하다.
강진호가 있을 당시에는 마기에 이성을 잃고 동료를 공격한 놈들은 사지를 부러뜨리고 동굴에 한 달 정도 가둬두기까지 했으니까. 그럼 사람이 아주 착해져서 나오…….
‘뭔 생각을 하는 거냐!’
강진호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금 이곳은 21세기의 한국이다. 과거의 마교와는 결별해야 한다.
이성을 되찾은 위긴스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어왔다.
“그런데 로드.”
“음?”
“마염들과 총회의 무인들은 벌써 마공을 전수받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그들은 장민 장로가 말하는 것처럼 발작을 일으키는 일이 별로 없던 것 같은데, 왜 저들만 발작을 일으키는 겁니까? 익히는 마공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까?”
“아니다.”
강진호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저들이 광증에 빠지는 이유는 이미 마공을 익혔기 때문이다. 그것도 조잡하기 짝이 없는 마공을 익혔지. 그래서 같은 마공을 익히더라도 그 효과가 다른 것이다.”
“그렇군요.”
위긴스는 더 많은 것을 이해했다.
‘그 말은 마공을 익히는 속도나 위력은 더 올라갈 수도 있다는 뜻이로군.’
지금이야 마염들이 마교도들보다 훨씬 강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마염들은 평생 정공을 익혀왔고, 마교도들은 조잡하기는 해도 마공을 익혀왔으니까. 그 길이 다른 것이다.
다만…….
‘그만큼 위험성도 높다는 뜻이지.’
아직 기초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광증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는 건 확실히 큰 문제다.
“장민 장로님.”
“음?”
위긴스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마교도들에 대한 전수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까?”
“대충 끝났지.”
“……예?”
“구결에 대한 전수는 이미 끝났어. 이제는 심화로 넘어가 이해를 돕는 수준이지. 한동안은 난리가 날 거야. 마공이 깊어지면서 미쳐 날뛰는 놈들이 쏟아질 시기지.”
“장로들은?”
“장로 놈들이야 그래도 나이도 있고 이해도도 높으니 광증에 빠질 위험은 크게 없다고 봐야지. 그러니 장로들을 완성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네. 나 혼자 저 많은 놈들을 패기에는 체력이 달려.”
“…….”
위긴스의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뭐가 이상한 것 같으면서도 말이 된다.
“그럼 전수는…….”
강진호가 손을 살짝 들어 위긴스의 말을 끊었다.
“일반적인 무학의 과정으로 생각하지 마라. 마공은 전수와 숙련의 과정이 정공보다 몇 배는 빠르다. 지금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마교도들은 강하다.”
“아…….”
위긴스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해진 마교도들이 단체로 문제를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장로들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괜찮아.”
“……예?”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교도들이 강해지는 만큼 장로들도 강해지고 있으니까. 특히나 음…….”
강진호가 장민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진하고 있군.”
“모든 것이 마존의 은혜십니다. 마존께서 마공을 개량하고 전수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희들이 어찌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교의 모든 이들이 마존의 은혜를 칭송하고, 또한 감읍하고 있습니다. 마존이시여, 그 은혜…….”
“그만!”
“예!”
말을 하게 내버려 두면 끝이 없다. 적당한 곳에서 끊어주지 않으면 삼박 사일 동안 은혜로 노래를 부를 수도 있는 사람이다.
“다른 문제는?”
“한 가지 말씀을 드려도 될지…….”
“말해.”
“마공이 부족합니다.”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장민은 굳이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이미 강진호가 이해하고 있는 일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 역시 불경이다. 은혜를 칭송하는 것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불경이 아니지만, 마존이 아는 것을 잘난 듯이 설명하는 것은 분명 불경이었다.
“흐음, 안 그래도 손을 쓰고 있다. 적당히 두어 개 추가해 주지.”
“마존의 은혜가 하늘에 닿습니다!”
마공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마공이 아니다. 다 같은 마공이었다면 수많은 마공을 유지하고 전수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마공 역시 정공처럼 무학에 따라 그 경향이 다르다. 자신의 성향과 맞는 마공을 익힌다면, 성취가 빨라지고 그 위력이 늘어나는 법이다.
‘기초공이 끝났으면 심화를 익히는 게 맞지.’
문제는 그 심화 역시 강진호가 어느 정도 손을 봐야 한다는 점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다.’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해 주는 게 좋다. 자신이 할 일을 이해한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지.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오면 굳이 개량하지 않은 상급 마공들도 익힐 수 있을 테니까.”
“신력을 다하겠습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현수를 돌아보았다.
“보고.”
“예.”
이현수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보고할 게 없습니다.”
“…….”
“일만 죽어라고 하다 보니 딱히 뭘 벌이지도 못해서.”
“돌려 까는 건가?”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이현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이번 연수가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서 보고할 사항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데…… 보고가 아니라 질문이 있습니다.”
“질문?”
“연수는 잘되고 있습니까?”
강진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잘되고 있지.”
“그럼 다행이군요.”
“다만, 그 연수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말인데…….”
“예?”
“연수 가볼 생각은 없나?”
강진호의 말에 이현수가 눈을 크게 떴다.
“제가요?”
“그래.”
“아, 아니, 제가 빠지면 지금 총회가 제대로 안 돌아갈 텐데…….”
“내가 맡지.”
“회주님이…….”
이현수가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회주님은 무립니다’라고 말하면 회주를 무시했다고 쌍욕이 날아올 것이다. 다른 이사들은 몰라도 장민은 칼을 물고 쫓아올 게 빤했다.
그렇다고 알겠다고 대답하려니 또 불안하다.
‘진짜 어떻게 되는 거지?’
이현수는 알고 있었다. 총회 내에서 그가 하는 일을 맡아줄 수 있는 사람은 둘뿐이다. 하나는 위긴스고, 다른 한 사람은 강진호다.
위긴스는 총회에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그동안 해온 가락이 있어서 웬만큼은 이현수를 대체할 수 있다. 그리고 강진호는…….
‘모르겠네.’
어렴풋이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강진호는 마음만 먹으면 다방면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도 이현수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러니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또 모르겠단 말이야.’
사무직으로서 강진호가 얼마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의 영역이다. 워낙 뛰어난 사람이니 적응할 수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걸릴지…….
“대답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이현수가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왜 고민하지?’
일이 박살 나는 게 두려운 이유는 사방에서 구박을 받기 때문이 아닌가. 강진호가 그의 역할을 맡아서 개판을 친다고 해도 이현수는 손해 볼 게 없었다.
빠르게 계산을 마친 이현수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낚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