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72
#1071.
움직이다 (1)
[분위기가 일변했습니다.]이현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저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네요.]“의원님, 그럼…….”
이현수가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혹시 지금 반대를 하는 이들의 공통점이랄 게 있습니까?”
[공통점이라…….]잠시 시간이 지나고서야 대답이 돌아온다.
[이걸 공통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지금 반대하는 이들은 보통 친중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에요.]‘역시.’
이현수가 얼굴을 굳혔다.
그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이쪽도 지금 상황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압박을 주려는 제스처는 있는데, 상황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단 말이죠.]“예?”
[총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연락을 해오는 건 이해를 하겠는데, 뭣도 모르는 이들까지 의식 차 전화를 해 댄다는 말이에요. 또 웃긴 건…… 이게 무슨 법안이 아니잖습니까. 그 양반들이 전화를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거…… 세력 과시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이해하겠어요?]“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럼 의원님, 저희 쪽은?”
[모르겠어요. 이게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부담을 어떻게 할까의 싸움인데, 강행하려면 강행할 수도 있죠. 어차피 이건 실체를 잡기도 힘들고, 공격하는 쪽에서도 세상에 대놓고 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문제는 그런 게 아니라…… 여당에서 장관이 직접 코드 원의 의사를 거부하고 있다는 거죠. 그 양반만 어떻게 마음을 돌리면 해결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이게 뽑아놓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 경질하기에는 정권도 부담이 크단 말이죠.]“음…….”
[그러니 지금 이 상태라면 못 움직입니다. 우리 차라리 나중을 노려봅시다.]“일단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예. 그럼.]이현수가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었다.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이사들이 제각각 반응을 보였다.
“결렬이라…….”
위긴스는 이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이 몸을 앞으로 빼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쪽이겠지?”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방진훈이 불만을 토했다.
“거, 둘만 알아듣게 이야기하지 말고, 남들도 알아듣게 말합시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부르지를 마시든가.”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중국 쪽에서 손을 써온다면 누가 공작을 부렸을지는 너무 빤한 일 아니겠습니까?”
“홍왕계?”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홍왕계가 한국 정계에 무슨 수로 간섭을 해?”
방진훈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자, 이현수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홍왕계가 직접적으로 한국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 정계를 움직일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인들 중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꽤 존재하죠.”
“중국 정계를 움직인다고?”
방진훈이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중걸 시절부터 실질적인 총회의 2인자로 군림해 온 방진훈이다.
물론 총회의 절대자였던 이중걸과 대립각을 세웠기에 대외적인 영향력은 이인자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부족했지만, 그래도 나름 권력을 휘둘러 왔다.
그런 방진훈도 정계에 손을 뻗는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저 벌이고 있는 일에 딴지를 걸지 말아달라고 돈을 풀고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지, 그쪽을 움직여서 뭔가를 한다는 꿈은 꿔본 적도 없다.
그런데 중국 정계를 움직여서 한국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이거, 너무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 실감이 전혀 안 가네.’
이현수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테니 사실임은 맞겠지만,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전에도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총회는 정치적인 영향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일세. 홍왕계뿐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원탁 역시도 자국의 정치인 정도는 쉽게 움직일 수 있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당연한 일이야. 이건 생존과도 연관이 있는 일이니까. 무인계가 아무리 영향력이 있다고 해도 정권과 척을 져서는 존립을 위협받게 되네. 그러니 당연히 정권과 연을 만들려고 하는 법이지.”
“으음.”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정권이라는 건 연속적이지 않네. 처음에는 당대의 권력자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던 무인계도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을 바꾼 거지. 권력을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관계가 있는 자를 권력자로 만드는 게 훨씬 편하고 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거야.”
방진훈이 눈을 끔뻑였다.
“정치인을 밀어서 대통령을 만든다구요?”
“한국이라면 그렇겠지.”
“아니, 그거…… 그게 됩니까?”
“안 될 건 뭐가 있는가.”
“도덕적인 문제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현실적으로 그만한 영향력을 만든다는 게…….”
“결국 선거를 지배하는 건 돈과 미디어지. 무인계의 영향력이 강한 국가에서 돈과 미디어는 무인계의 입김을 벗어나지 못해. 능력이 없는 자를 밀어 올리기는 힘들어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자의 등 뒤에서 순풍을 불어주는 정도는 어렵지 않지.”
방진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쪽으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딱히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네. 중요한 건 어쨌든 간에 홍왕계가 중국 정계를 주무르고 있다는 사실이겠지. 그리고 지금 그 정계를 이용하여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거고.”
방진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잠깐만요. 그럼…….”
입술을 핥으며 생각을 정리한 방진훈이 노성을 질렀다.
“그럼 그 새끼들이 지금 중국 지시받아서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겁니까? 이 매국노 새끼들이!”
“정치인이란 원래 그런 자들일세.”
위긴스가 흥분한 방진훈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총회나 중국이나 뭐 별다를 게 있겠는가. 차라리 중국이 더 나을 수도 있지. 불법적인 일은 저지르지 않을 테니까.”
“우리도 불법은 안 저지릅니다.”
“그거야 지금 이야기고, 지금까지 해온 게 있잖은가.”
“끄응.”
방진훈도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지 앓는 신음성을 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가도 심정적으로는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불만이 가시지를 않는다.
“우리가 뭐 나쁜 짓을 하자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법인화한다고 해서 불법적으로 운영되던 거 다 바꿨잖아요. 그거 한다고 날린 돈이 얼만데.”
방진훈은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총회는 태생적으로 암흑가와 관련이 되어 있다. 최근까지도 음성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장들에서 현금을 끌어모았다. 이현주가 법인화를 추진하면서 장부에 기재할 수 없는 사업장은 모조리 정리했다.
법인화를 하면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말에 납득한 일이다. 하지만 일이 이리 풀려 버리면 잘 벌고 있던 돈만 날리는 것 아닌가.
“그렇게만 생각할 건 아니네. 어쨌든 총회가 더 크기 위해서는 찝찝한 부분을 정리해야 하는 건 맞지 않은가.”
“도덕 선생님처럼 말씀하지 마시구요. 그거, 저희가 안 하면 없어진답니까? 다른 놈들이 하지.”
위긴스가 고소를 머금었다.
사실 방진훈의 말도 그리 틀린 게 없다.
“걱정하지 말게. 아직 결정난 건 아니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위긴스가 슬쩍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아마 지금 방진훈이 한 말이 다른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을 것이다.
“대책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현수의 말에 위긴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차이커창.’
귓가로 차이커창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한 방 확실하게 먹었군.”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쯤 우리가 뭘 하려는 건지 안다는 건가? 그게 아니면 우리가 하려는 게 무엇이든 일단 반대하라는 말이 나온 건가.’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저쪽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지금 총회는 확실히 발목이 잡혔다.
“그래서…….”
고민이 깊어지려는 순간, 강진호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대책은?”
“으음…….”
위긴스가 침음을 삼켰다.
이제까지 수많은 일을 겪었지만, 지금처럼 해결책이 난해한 일은 흔치 않았다. 지금까지의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책은 있지만 그 해결책의 부작용이 심해서 고민을 불러왔다면, 이번 일은 그 해결책이라는 것 자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켜본다?”
“예. 워낙 이게 민감한 문제라…….”
강진호가 말없이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위긴스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해결책이랄 게 딱히 없습니다. 해결을 하려면 일단은 장관의 협조를 구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은 한두 사람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관계 부처의 협력이 필요한데, 장관이라는 사람이 저리 반기를 들면 답이 없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예, 회주님.”
“정부의 의지는 어떻지?”
“위쪽은 총회의 법인화에 반색하는 중입니다. 일단 세수를 확보할 수 있고, 통제가 용이해지는데, 반발할 이유가 없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무인계들은 자신들의 수입을 사업적으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수입의 전부를 양성화하지는 않을지라도 나름 국가에 기여하고 있죠. 총회가 그 흐름에 동참한다는데, 국가가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문제는 지금까지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수입과 그 출처를 세탁하는 데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로군.”
“예. 그것만 아니면 굳이 저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돈을 찔러주고 정리를 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더 먹겠다고 침을 흘리고 달려드는 건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판을 엎어버릴 줄은…….”
이현수가 위긴스를 거들었다.
“석 장관이 생각 이상의 야심가라는 걸 미리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제 실수입니다.”
이현수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빌어먹을.’
알아서 잘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일이 최악으로 흘러버렸다. 차마 들 낯이 없다.
“정부는 의지가 있는데 일개 장관이 정부와 척을 지고 방향을 바꾼다는 게 가능한가?”
“……원래라면 불가능한 게 맞습니다. 하지만 아마 지금쯤 중국이 전력을 다해 석 장관을 비호하고 있을 겁니다. 석 장관을 경질하거나 문책하려면 중국과의 관계가 경색되는 걸 감수해야 합니다. 정부도 그 길을 택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쩌면 총회보다 몇 배는 더 골치 아픈 입장일지도 모릅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단하군.”
“예?”
간단?
지금 이 상황이 간단이라는 말이 나올 상황인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정도로 복잡한 상황 같은데?
강진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얼마나 손을 써놨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석 장관이라는 자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럼 그자만 마음을 돌리면 되겠군.”
위긴스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