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73
#1072.
움직이다 (2)
“무, 물론 그렇습니다만.”
강진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가를 생각해 본 위긴스가 얼굴을 굳혔다.
“회, 회주님, 제거는 불가능합니다. 어설프게 제거를 했다가는 끔찍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석동수를 제거하는 건 한 가지 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수는 절대 좋은 수가 아니었다.
사고로 위장하여 석동수를 제거해 버리면 그 자리에 새로운 장관이 앉게 될 것이니, 문제 자체는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해결법은 정부의 경계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 국가의 장관을 죽여 버리는 단체와 어떻게 협력할 수 있겠는가.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정부와 총회의 관계를 파탄 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이 없지는 않아.”
다행히 강진호도 그쪽을 생각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럼?”
“정리하지.”
“예.”
강진호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결국 지금 정계를 움직이고 있는 건 차이커창이겠지?”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중국의 정계를 움직일 수 있다고는 해도, 한국으로 직접 압박을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국이 아닌 관련자를 움직여서 발목을 잡는다. 맞나?”
“예.”
위긴스가 보기에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굉장히 낮게 평가하는 측면이 있었다.
워낙 강대국들 사이에 껴 있다 보니 그런 경향이 생기는 것 같은데, 외국인인 위긴스의 눈으로 보는 한국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강대국이다.
제아무리 중국이 날고 뛴다지만, 한국의 내정에 직접적으로 간섭을 시도할 수는 없다. 설사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그 간섭을 받을 이유가 없다.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마 지금 석동수 장관이 그 축이 되고 있을 겁니다.”
“흐음.”
“지금은 단순히 저희에게 반대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만들어놓은 패를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리는 없겠죠. 앞으로는 석동수가 친중파를 대변하게 될 겁니다.”
“그래?”
“예. 아마 중국이 석동수에게 제시한 것도 그런 지원이었겠지요. 말씀드렸다시피 선거는 돈과 이미지가 지배합니다. 중국의 자본과 영향력이라면 선거의 결과를 바꾸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임명직의 한계를 넘어 선출직으로 나가면, 차차기 대권 정도는 노려볼 수 있을 테니까요.”
방진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뭔 씨발! 짱깨 놈들 지원받는 새끼가 대권은 뭔 대권입니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뜻이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국민들이 그걸 알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어떻게 알 건가?”
“예?”
“말 그대로야. 어떻게, 중국이 뒤에서 지원을 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어떻게 알지?”
“……어?”
“증거만 없으면 없는 일이 되는 게 정계일세. 그리고 중국이 증거를 남길 정도로 호락호락한 곳도 아니지. 그러니 석동수의 입장에서는 해볼 만한 도박이지. 정권에 반항하는 대가로 대권을 노려볼 수 있어지니까. 중국이 지원해 준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은가.”
불만 가득한 방진훈의 입이 열리려는 찰나, 강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예, 로드.”
“국가와 정부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법인화를 하는 게 좋은 일인가?”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좋은 일입니다.”
“확실한가?”
“로드, 세상은 돈으로 움직입니다.”
“…….”
위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의지도, 비전도 아닙니다. 바로 돈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강대국과 선진국은 국가예산을 기준으로 정렬하면 얼추 맞아떨어집니다. 제아무리 좋은 비전이 있다고 해도 그 비전을 실행할 예산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음…….”
“음성적으로 돌아가던 사업을 양성화, 합법화하고 세금을 가져다 바치겠다는데, 정부가 싫어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권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 반드시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이현수가 위긴스를 거들었다.
“그리고 단순히 자금적인 측면에 그치지 않습니다. 총회를 법인화한다는 건 저희가 제도권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지금보다 정부에 협조해야 할 일이 늘어날 겁니다. 국가적 차원으로는 그동안 통제가 힘들던 무인계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위긴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사실 이건 국가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남는 장사입니다. 못해서 안달인 일을 이쪽에서 해주겠다고 나선 겁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말이 길어진다고 생각했는지 강진호가 이현수의 말을 끊었다.
“그럼…….”
강진호가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석 장관도 그걸 다 알고 있으면서 발목을 잡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강진호가 이현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생각하지?”
이현수가 살짝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처음 협상을 하러 들어왔을 때는 이쪽을 탐탁찮아 한다는 느낌은 있지만,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전화를 한 통 받더니 안색이 달라졌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때, 계산이 끝난 것 같습니다. 국가적인 이득을 포기하더라도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사실…… 장관이라는 자리가 대단해 보이지만, 그 이상이 없는 자리니까요. 대부분의 장관들은 장관에서 멈출 뿐, 선출직으로 나서지 못합니다. 그게 되는 이들은 거물이 되죠.”
“알았다.”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확연하다.
“그쪽은 내가 해결하지.”
이현수가 살짝 불안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상황은 절대 쉽지 않다.
저들은 총회의 장기인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다. 아무리 총회가 폭력의 정점이라고는 하지만, 정치인들은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저쪽 놈들도 보통이 아냐.’
혈을 찔린 느낌이다.
차라리 전방위적인 압박이 들어온다면 해결책을 찾는 게 좀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석동수 장관은 총회가 하려는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핵심과도 같은 자였다.
그런 이를 포섭해 버리면 이쪽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기대하는 것 역시 무리다.
미국과 중국의 양쪽에서 균형 외교를 펼쳐야 하는 정부의 입장상, 대놓고 친중파를 표방한 장관을 즉시 경질한다는 건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이라니…….
‘아니, 아니지.’
이현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헛웃음이 나온다.
상황에 집중하다 보니 강진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었다. 강진호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가 가능하다고 한 일은 모두 말 그대로 이루어졌다.
강진호가 벌이는 일을 황당하게 받아들인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하지만 강진호는 언제나 이현수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지금 그에게는 방법이 보이지 않지만, 강진호가 가능하다면 가능한 것이다.
“회주님, 하나 여쭤도 되겠습니까?”
“말해봐.”
“석동수 장관을 포섭하는 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다.”
“음.”
강진호의 대답에 이현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문제없을 겁니다. 저쪽에서도 제대로 일격을 먹인 만큼 다른 함정은 파지 않았을 테니까요.”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크게 한 방을 먹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지.”
“인정합니다.”
이현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개 같은 놈.’
일본에서 공작질을 벌이고 있으니 다른 곳에는 신경을 쓰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차이커창의 능력은 이현수의 예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직접적인 공격을 준비하는 동시에 발목을 잡고 늘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럼…….”
“아아.”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바토르가 손을 내저어 이현수의 말을 끊었다.
“너희는 너무 말이 많다.”
“…….”
“주인이 해결한다고 하면 주인이 알아서 하는 거다. 어차피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너희가 듣는다고 뭘 알겠어. 빤히 알아서 한다고 장담한 일도 똑바로 못하는 것들이!”
이현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심지어 위긴스조차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실 이번 일만큼은 그들의 패착을 부정할 수가 없다.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 탓하지 마라. 중국이 이 일에 끼어들 거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주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보좌하라고 저놈들이 있는 거다. 주인은 이럴 때는 너무 무르다!”
“…….”
“주인이 생각하고 주인이 대비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다면, 대체 저 밥버러지 놈들이 왜 필요한가!”
‘건수 잡았네.’
‘신났네, 신났어.’
위긴스와 이현수가 시무룩해졌다.
지은 죄가 있어서 반발을 할 수가 없다. 바토르도 그걸 아는지 신나서 공격을 해 대고 있었다.
“애초에 주인은 저놈들에게 너무 관대하다. 저놈들이 저지른 실수가 어디 한둘인가.”
“네가 저지른 실수도 그리 적지는 않은 것 같은데?”
“오해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강진호가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바로 움직이나?”
“시간 끌어서 좋을 게 없지.”
강진호가 이현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현수.”
“예, 회주님.”
“내일 아침에 석동수의 입장이 바뀔 거라는 말을 미리 해둬라. 그쪽도 당황하지 않도록.”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알겠다. 일을 마치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지.”
강진호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남아 있는 이들이 우르르 일어나 깊이 허리를 숙였다. 강진호가 문을 닫고 나가자, 자리에 다시 앉은 이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뭔 일 하나 편하게 풀리는 게 없네.”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회주님이 해결해 주신다니.”
“그런데 뭘 어떻게 해결하시려는지.”
바토르가 코웃음을 쳤다.
“빤한 걸 묻는군. 붙잡아서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시겠지.”
“……잘못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거.”
“큰일이 안 나게 하는 게 실력이다, 이 실력 없는 놈들아.”
위긴스와 이현수가 막 발작을 할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렸다.
“……회주님?”
“아니, 왜 다시…….”
문을 열고 선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예.”
“석동수가 어디 살지?”
“…….”
멍하니 강진호를 바라보던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이 실장.”
“예.”
“석동수 사진하고 관련 자료 빨리 정리해서 회주님께 드려.”
“예. 지금 바로 드리겠습니다.”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정리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그동안 커피 한 잔 어떠십니까, 회주님?”
“……그럴까?”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바토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믿어도 될지…….”
“…….”
변명할 말을 딱히 찾지 못한 강진호가 애꿎은 담배만 피워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