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76
#1075.
움직이다 (5)
목을 조이는 손.
움켜잡은 손에서는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더없이 싸늘한 손이 감히 저항을 시도해 볼 의지조차 앗아가는 힘으로 천천히 그의 목을 조여왔다.
“끄윽!”
절로 새어 나오는 신음.
그 순간, 석동수는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깨달았다.
폭력.
육체를 압제하는 힘.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느끼는 힘은 재력도, 권력도 아니다. 재력의 유용함도, 권력의 강대함도 아직은 채 실감할 수 없을 때, 인간은 누구나 폭력을 유일한 힘으로 알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간은 폭력을 잊어버린다.
육체와 육체가 맞닿고, 육체로서 고통을 주고받는 일이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다른 힘.
나이가 들어가면서 석동수는 권력에 매료됐다.
비밀의 원천에 근접하는 힘.
눈짓 하나와 손짓 하나로 사람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힘.
그 힘의 눈부심에 매료되지 않는 건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석동수는 강제로 깨닫게 되었다.
그가 잊어버린 힘이 얼마나 무자비한 것이었는지.
더는 그와 엮일 일이 없다고 생각하여 뇌리에서 지워 버린 이 힘이 사람에게 얼마나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지 말이다.
알 수 있다.
그의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의 몸은 폭력을 완전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비정상적인 힘은 손가락을 조금 뒤트는 것만으로 그의 목을 분필처럼 분질러 버릴 수 있다.
“끄으윽…….”
불합리하다.
이 사회에서 폭력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폭력이라는 것은 자신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절차에 불과하니까.
대화.
아주 잠깐만 말을 섞을 수 있으면 된다. 그럼 이자가 하고 있는 생각이 틀렸다는 걸 완전하게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강진호의 얼굴을 본 석동수의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통하지 않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사람의 목을 조이면서 참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자를 눈앞에서 봐버리면 인정할 수밖에 없어진다.
이자는 다르다.
이자는 그가 알고 있는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한 번씩…….”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위협하지 않는 목소리.
그저 무감정하게 읊을 뿐인 목소리.
그래서 강진호가 하는 말이 더욱 확연하게 석동수의 귀를 파고들었다.
“착각하고는 하지.”
“…….”
“꽤나 좋은 놈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면 말이야.”
강진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웃는다.
이건 웃음이다.
하지만 석동수는 단 한 번도 이렇게 뒤틀려 있는 웃음을 본 적이 없다.
직업상 여러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그중 누구도 이런 얼굴을 하지는 못했다. 이 표정에 비한다면 교도소에서 본 연쇄살인마가 차라리 인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도 섬뜩하고, 너무도 잔인하다.
“그래서 잊어버린단 말이야.”
“끄윽…….”
목을 조여오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진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강진호가 천천히 석동수의 목을 잡고 그를 들어 올린다.
우득우득.
자신의 체중을 버티지 못한 석동수의 목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끅, 끄윽! 끅!”
인간은 누구나 죽음과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에서만 하루에도 천 명이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 죽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결코 죽음에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살아갈 수 없으니까.
죽음이 언제나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인간은 삶을 유지할 수 없다. 죽음이란 꿈도, 희망도, 의지마저도 모두 무로 돌려 버리는 절대의 압제자다.
아무런 이유나 개연성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사람은 죽음을 잊고 산다.
타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죽음이 자신에게 닥칠 거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럴 때.
악귀 같은 자의 손이 목을 조여오고, 목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비명을 지르고, 팔다리는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등 뒤에 죽음이 다가와 숨 쉬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럴 때 보이는 인간의 반응은 언제나 한결같은 법이다.
“사…….”
조여져 숨도 들이쉬어지지 않는 목으로 필사적으로 외친다.
“사, 살……려…….”
이성도, 지성도 존재하지 않고, 그저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만이 남아버린다.
폭력이란 그런 것이다.
“말을 하고 싶겠지.”
강진호가 가만히 석동수를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꽤나 많은 생각을 했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기도 했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라도, 네게는 뭔가 생각이 있었을 테니까.”
석동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처럼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없이 한스러울 뿐이다. 입가에 흐르는 것이 침인지, 그게 아니면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입에 고인 건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들어보고자 했지. 그런데…….”
강진호의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
“…….”
“왜 그래야 하지?”
강진호의 손이 점점 더 석동수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이유로 움직였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결국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하나의 결말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말이야.”
우두둑.
목에서 뼈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멎는 것 같다.
눈물이 너무 흘러나와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순간 나를 이해할 수 없더군. 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야. 그래서 고민했지.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석동수는 알 수 있었다.
이놈은 미친놈이다.
미쳐도 제대로 미친놈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사람의 목을 조이면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이렇게 중얼거릴 수는 없다.
“그랬더니 결론이 나오더군.”
강진호가 석동수를 좀 더 들어 올렸다. 목을 조이는 힘이 점차 더 강해진다. 정말 이러다가 단숨에 목이 부러져 나갈 것 같았다.
“착한 척을 하고 싶었던 거야.”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웃음소리.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절대 낼 수 없을 것 같은, 기괴하고 뒤틀린 웃음소리였다.
‘왜! 나한테 왜, 왜 이러는 거야! 왜!’
석동수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웃기는 일이지.”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어느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다.
버벅임을.
나아가지 못함을.
강진호는 그게 이 세상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더는 예전처럼 살 수 없으니까.
예전처럼 마음대로 살 수는 없으니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깨달았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세상에 적응한 게 아니다.
적천마존을 이겨내면서 강진호는 스스로가 더 이상은 적천이 아닌 강진호라 생각했다.
그 아무것도 아닌 인식의 변화.
그 변화가 강진호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었다.
기대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러면서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적나라하게?
착한 사람이 되려 애썼다.
예전의 강진호였다면 석동수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앞을 막는 이라면 목을 꺾고 목줄기를 물어뜯는다.
그게 강진호였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석동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했다.
웃기지 않은가.
‘내가 감히…….’
강진호는 알고 있다.
그가 적천마존을 이겨냈다고 해서 강진호가 적천마존으로 살아온 삶이 가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손에 죽어간 이들이 강진호와 적천마존을 다른 이로 인식하겠는가?
설사 그렇다 해도 자신을 속일 수 없다. 그는 수많은 이들을 죽인 살인마다.
다른 세상에 와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그가 최악의 살인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타인의 말을 듣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잘잘못을 가린다.
웃기지 않은가.
“도움이 됐다.”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그 별것 아닌 일 덕분에 강진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완전하게 자각해 냈다.
착한 아이 놀이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강진호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 그보다 악한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뭘 망설이는가.
무엇을 한다고 해도 손에 배인 피는 사라지지 않는데, 아무리 가식을 떤다고 해도 그의 본성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나직하게 웃은 강진호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꽤나 즐겁지 않은가.
이 본성은 숨길 수가 없다.
힘으로 상대를 압제하고 짓누를 때, 강진호는 비할 바 없는 즐거움을 얻는다.
피와 죽음이 오가는 전투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
그 즐거움을 부정할 수 없는 이상, 강진호는 조금도 달라질 수 없다.
피에 젖어 사는 살인마.
그게 강진호의 본성이다.
“그래서…….”
강진호가 천천히 팔을 구부려 석동수를 천천히 끌어당겼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석동수와 얽힌 덕분에 강진호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 작은 일이 앞으로의 강진호에게 얼마나 크게 작용할지 석동수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원한은 반드시 갚는다.
그리고 은혜도 갚을 수 있다면 갚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은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걱정할 것 없어.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테니까.”
“……끄윽.”
“다만…….”
강진호의 눈이 정확하게 석동수의 눈을 응시했다.
“귀찮게 만든 대가는 치러야겠지.”
강진호의 눈이 핏빛으로 물든다.
“나를 봐라.”
“…….”
“내 눈을 봐라.”
두려움과 공포로 반쯤 미쳐 가던 석동수의 눈이 백치처럼 풀리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힘이 빠지며 축 늘어진다.
자잘한 경련.
“끅! 끄으윽! 끄윽!”
목을 움켜잡은 손에서 힘을 풀었음에도 석동수는 움직이지 못했다.
“끄으으으윽!”
경련.
눈꺼풀이 제멋대로 들썩이고, 입에 새하얀 거품이 맺힌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이 푸들푸들 경련하고, 전신이 간질에라도 걸린 것처럼 발작을 일으킨다.
강진호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육체는 지금 이곳에 있지만, 그의 영혼은 지금쯤 지옥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빠져나오게 된다고 해도, 그는 이제 절대 강진호에게 대항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영혼에 강진호가 건 금제가 확연히 새겨졌으니까.
툭.
강진호가 손을 떼자 석동수의 몸이 짚단처럼 바닥으로 쓰러졌다.
부들부들 경련하는 그의 몸을 내려다보며 강진호가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이래서야…….’
홍왕이 피를 토하며 그를 마왕이라 칭하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린 밤.
창으로 쏟아지는 달빛이 시리다.
그러면서 강진호는 그 어둠 속에서 달빛보다 더 시린 웃음을 지었다.
그의 몸이 천천히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강진호가 사라진 곳에는 바닥에 쓰러진 석동수만이 홀로 남아 끊임없이 경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