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86
#1085.
관조하다 (5)
바토르는 최근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군.’
욕구불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아니, 그런 말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바토르 스스로도 자신의 내부를 채우고 있는 불만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그가 무언가 커다란 불만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바토르가 총회에 투신한 이유는 강함을 추구하기 위함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곳에 강진호가 있기 때문이다.
강진호.
바토르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강함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물론 이 세상에서 강진호가 가장 강한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상황이 조금 다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강진호보다 강한 이들은 수두룩했다. 바토르가 알고 있는 자들만 해도 열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토르는 강진호에게 매료됐다.
그에게는 다른 강자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었다.
‘미묘하지.’
바토르는 강진호에게 패했다.
하지만 지금 바토르에게 그 순간으로 돌아가 강진호와 다시 싸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냐고 묻는다면?
‘이긴다.’
백 번 싸우면 백 번 이긴다.
그 정도의 전력 차였다.
하지만 강진호는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절대 이겨낼 수 없는 전력 차를 간단하게 뚫어내고 바토르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강진호의 안에 잠재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강진호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를 따르기로 결심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세뇌당한 것뿐이지만, 지금은 바토르의 의지로 강진호를 따르고 있다.
다만, 뭐랄까…….
최근…….
바토르가 손을 들어 얼굴을 주물렀다.
‘딱히 문제는 없는데…….’
그는 원하던 대로 강해지고는 있다.
지금의 그라면 강진호와 싸울 당시의 자신 정도는 한 손으로도 짓눌러 죽여 버릴 수 있다. 마공을 받아들이고 마공에 대한 제어력이 높아지면서 그의 몸이 낼 수 있는 힘은 과거를 아득하게 초월했다.
물론 단순히 힘만 강해진 게 아니다.
외력에 집중하던 그의 무학은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밸런스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토르 역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마어마한 무학에 대한 재능을 외력에 집중한 만큼 그의 외공은 끝도 없이 강해졌고, 일정 기준을 넘어선 순간 외공과 보조를 맞출 내공을 익히는 건 불가능해졌다.
어설픈 내력은 단전에 정착하지 못하고 육체에 흡수될 뿐이니까.
하지만 마공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그가 익힌 무학은 정공. 하지만 지금 그가 익히고 있는 내력은 마공이다.
기본적으로 반발하는 성질을 가진 두 무학을 동시에 익히다 보니, 무학이 서로 섞여들지 못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이게 큰 단점이 될 수 있지만, 바토르에게는 오히려 호재였다.
덕분에 바토르는 정공으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단전을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전력은 확실하게 상승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이로써 바토르는 더 강해질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외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아무리 신이 육체에 강림한 자라 불리는 바토르라고는 하나, 그 육체만으로는 아무리 해도 도달할 수 없는 곳이 있다.
예를 들면 홍왕의 경지.
‘나와 싸울 때는 제 힘의 십분지 일도 내지 않았어.’
홍왕의 육체에 상처를 입혔다는 프라이드가 있었다. 그간 홍왕에게 도전한 자 중, 홍왕의 육체에 주먹을 격중시킨 사람은 바토르 외에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강진호와 홍왕이 전력으로 싸우는 광경을 보며 알게 되었다. 홍왕은 그를 상대로 할 때, 제 힘을 내지 않았다.
‘굴욕.’
전신이 절로 떨릴 정도의 굴욕이다.
하지만 홍왕을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가 느끼는 굴욕은 스스로의 나약함에 대한 분노에 가까웠다.
홍왕과 강진호가 싸우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가 노려야 할 것은 더 위.
지금의 무학을 모두 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정도의 노력이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위다.
그리고 지금 바토르는 차근차근 그 과정을 밟고 있었다.
정공을 익힌 자라는 프라이드를 버리고, 경원시되는 마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마공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강진호뿐 아니라 장민의 조언을 받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바토르는 지금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있다.
스스로도 강해진다.
그리고 가르치는 제자들이 빠르게 강해지는 것에도 굉장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즐거워야 할 터.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그의 안을 채우고 있는 허무함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럴 때는 한바탕 땀을 흘리는 게 최고지.’
생각이 많이진다는 건 잡념이 낀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이게 그는 겪어본 적이 없는 ‘심마’의 전조인지도 모른다.
‘심마고 뭐고, 이런 불쾌한 기분이 지속되는 건 영 달갑지 않군.’
명쾌하게 머리가 맑아지기 위해서는 육체를 한계까지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다.
바토르는 산 중턱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전용 수련장으로 향했다.
일반적인 수련장은 그저 평평한 공터를 만들어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바토르의 수련장은 다르다. 그의 육체가 내뿜는 힘을 버티는 건 평범한 흙바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이현수가 특별히 그를 위한 수련장을 따로 만들어주었다. 물론 그 수련장도 심심하면 깨먹어서 볼멘소리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
바토르가 고개를 우드득우드득 꺾으며 수련장으로 다가갔다.
‘음?’
누군가가 있다.
바토르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의 수련장은 그를 위해 제작된 것이다. 딱히 다른 이들은 써서는 안 되는 법은 없다지만, 저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평소의 바토르는 이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제자 중 하나가 허락 없이 그의 차를 타고 나간다고 해도 바토르는 딱히 탓하지 않을 것이다. 물욕(物慾)이라는 것도 수련을 방해하는 것 중 하나니까.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수련은 그가 원하는 강함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 따지자면 그의 안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져야 할 일이다. 그런 수련을 방해받는다는 건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감히 누…….”
당장 노성을 터뜨리려던 바토르가 입을 닫는다.
바토르의 눈썹이 꿈틀대며 입가가 묘하게 비틀렸다.
소리칠 필요가 없다.
누구인지는 너무도 명백해졌으니까.
수련장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확연하게 느껴지는, 이 소름 끼치는 마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총회의 녹을 먹고 살아갈 자격이 없다.
바토르의 입꼬리가 점점 더 올라간다.
결국에는 그도 주체할 수 없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느껴진다.
이 오싹오싹한 살기가.
몸으로 받아내며 전진하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은 물론이고, 체력마저 급속도로 깎여 나가는 느낌이다.
“흐…….”
하지만 바토르는 물러나기는커녕 더욱 전진했다.
피부가 면도날로 베인 것처럼 아파오고,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시작한다. 밀려드는 마기가 그의 혈기를 자극해서 전신이 검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쿵!
쿵!
한 발, 한 발에 힘이 들어간다.
‘정말 무시무시하군.’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바토르는 강진호의 진심을 정면에서 받아본 적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저 방관자였을 뿐이다.
강진호가 적을 쓰러뜨리는 것을 그저 구경하고, 뒤치다꺼리나 할 뿐이었다.
‘알겠군.’
불만이 뭐였는지.
강해지고 또 강해져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이 불만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바토르가 마침내 수련장이 있는 언덕에 이르렀다.
그의 눈에 양손에 검을 잡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땀?’
강진호의 전신이 땀으로 젖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흘린 땀이 마치 팔팔 끓는 물주전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처럼 강진호의 육체를 뒤덮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다.
땀이라는 것은 육체의 온도를 조절하고, 노폐물을 빼는 현상이다. 일정한 경지에 오른 이들은 더 이상 땀을 흘리지 않는다. 굳이 땀을 흘리지 않아도 육체의 온도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무인이 땀을 흘린다는 것은 하나를 의미한다.
그 육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냈다는 것.
상대도 없는 단순한 수련이 그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별일이군.”
바토르가 입을 열기 무섭게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움찔.
강진호의 눈빛을 받은 바토르의 전신이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뭐지?’
아니, 느껴본 적 있다, 이 감각.
처음 강진호와 맞상대했을 때, 그에게서 느낀 감각.
바토르가 강진호를 따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그에게서 다른 강자에게서는 느낄 수 없던 치열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치열함.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목줄기를 물어뜯고, 그 피를 마실 것 같은 야성.
마주 서는 것만으로 거대한 짐승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역한 노린내를 풍기는 것 같은, 그 거친 느낌.
과거의 강진호에게서 풍기던 느낌이다.
‘그랬군.’
채워지지 않던 것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바토르는 바로 이것 때문에 강진호를 따랐다. 하지만 최근의 강진호는 그 송곳니를 잃어버렸다.
이빨을 뽑히고 발톱을 뽑힌 짐승이 어쩔 수 없이 사육되는 것처럼 강진호는 더 이상 과거의 그에게서 느껴지던 야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그게 있다.
바토르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이가 맞물리고, 절로 주먹이 쥐어진다.
“수련?”
바토르를 바라보던 강진호가 바닥에 검을 꽂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육체의 수련 같은 건 별 의미가 없지 않나?”
전신이 근질거리는 느낌이다.
알고 있다.
지금의 바토르는 절대 강진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가 강해지는 속도는 강진호가 강해지는 속도에 비하면 거북이의 걸음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자신보다 약한 자만을 상대로 승리를 즐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학은 약자가 강자를 꺾기 위한 무기다.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도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앞에 강자가 있다.
“의미를 찾는 건 그만뒀다.”
“……그럼?”
“할 수 있는 건 모두 한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그래야지. 꽤나…….”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오래 잊고 있었지만.”
전신이 오싹오싹한다.
‘그래, 이거야.’
채워지지 않던 욕구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총회는 지금 이 순간도 강해지고 있다.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지금 강진호에게서 보이는 치열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정해진 레일을 정해진 대로 달려가는 느낌.
그래서야 양산품밖에 나오지 않는다.
“정신을 차린 건가?”
“정신?”
강진호가 바토르를 슬쩍 보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꽤 건방진 말도 지껄일 수 있게 됐군.”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바토르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