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93
#1092.
파견하다 (2)
“방 이사님께서 추가 서버를 요청하셨는데?”
“가서 사 오라고 했어.”
“누구더러요?”
“방 이사한테.”
“…….”
이현수가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그, 그…… 사무실에서 쓰는 집기를 보관할 곳이 부족해서 창고 증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증설해 준다고 했어.”
“어, 어떻게요?”
“컨테이너 실어 올 거야. 옆에 두면 되지.”
“……그렇죠.”
그렇지, 그렇겠지. 애초에 창고라는 건 비가 안 새고 바람이 들어차지만 않으면 되니까 컨테이너도 괜찮지.
물론 이현수가 했으면 총회 건물 옆에다가 흉물스러운 걸 가져다 놓는다고 쌍욕이 날아올 일이겠지만, 강진호가 가져다 놓겠다는데 누가 말이나 하겠는가.
한 삼 일쯤 지나면 회주님께서 내리신 하사품에 녹이 쓰는 꼴을 볼 수 없다며 지나가는 이들은 다들 컨테이너를 한 번씩 닦게 될지도 모른다.
‘와, 이게 이렇게 되네?’
이쯤 되면 억울함을 넘어 경이롭다.
이만한 이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곳이라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총회의 발전뿐 아니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이현수의 일이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볼 때, 완벽하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일처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공을 들이고 양측의 입장을 고려한다고 해도 피해를 보는 쪽은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그 피해를 납득이 갈 수 있는 수준으로 조율하는 게 이현수의 일이었다. 지난하고 힘든 일이지만,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도장 하나 바뀌는 걸로 이게 이렇게 되나?’
결국 불만이라는 것은 역치를 가지기 마련이다. 불만이 있더라도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같은 말을 해도 이현수가 하는 것과 강진호가 하는 게 다르다는 점이다.
이현수가 하면 헛소리가 되는 말도 강진호가 하게 되면 다들 납득하게 된다.
납득해야지. 아니면 처 맞든가.
“회, 회주님, 이렇게 처리를 해버리면…….”
“지속되면 문제가 있겠지.”
“그렇습니다!”
사람의 불만이라는 건 쌓이고 쌓인다. 한 번의 불만은 참을 수 있지만, 천 번의 불만은 참을 수 없다. 제아무리 강진호의 지시로 시행되는 일이라도 언젠가는 그 역치에 부딪힐 것이다.
“그전에 네가 돌아오겠지.”
“…….”
“그러니까 괜찮은 거 아닌가?”
“그, 그럴까요?”
위긴스가 박수를 쳤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거기다 이왕이면 한동안 이 실장 대신 로드께서 일을 처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좋겠군요. 다들 더 열성적으로 따라줄 겁니다.”
‘거짓말쟁이!’
이현수만 돌아오면 이런 일은 끝난다고 모두에게 희망을 줄 생각이겠지. 그럼 다들 이현수가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참을 수 있게 될 테니까!
위긴스가 짓는 회심의 미소를 본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빠져나갈 길이 없다.
“그럼 가야죠. 네, 갑니다.”
이현수가 자포자기한 얼굴로 말했다.
‘뭐, 억지이긴 하지만.’
딱히 크게 속이 뒤집어지지 않은 이유는 위긴스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이현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경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원탁에서 배우는 것이 몇 배는 더 나을 것이다.
“다만, 회주님. 한 가지만.”
“말해.”
“사람은 합리성을 원합니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다 보면 나중에 봉합하더라도 회주님이 회를 이끌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는 인식이 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아아, 괜찮다.”
대답은 위긴스가 대신했다.
“네가 하면 되니까.”
“예?”
“원탁에 간다고 해서 영국으로 아주 넘어갈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 그럼요?”
위긴스가 씨익 웃었다.
“아침저녁으로 게이트를 열어줄 거다. 여기로 출근해서 게이트를 타고 영국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퇴근할 때 게이트를 타고 넘어온다.”
“…….”
“잘됐지?”
그럼 바뀐 게 없잖아, 이 양반아! 두 직장에서 동시에 일하라는 것과 뭐가 달라!
“로드께서 분담해 주실 테니, 부담은 크지 않을 거다. 물론 나도 분담할 테니까.”
“예, 뭐…….”
이현수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더 말을 해봐야 별로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원탁에 넘어가서 그가 해야 할 일들을 직접 보는 것이다.
‘에라, 겪어보면 알겠지.’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언제부터?”
“내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말을 아십니까?”
“자네가 준 속담집에서 본 것 같군.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법이지.”
“끄응.”
강진호가 가만히 위긴스를 보며 말했다.
“방법은 찾았나?”
“발버둥 쳐볼 생각입니다.”
“그래.”
위긴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억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됐다.”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속한 이가 강해지면 총회도 강해진다.”
“명심하겠습니다.”
위긴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와 동시에 이현수가 딴지를 걸어왔다.
“수련장을 사용하실 때, 조금은 신경을 써주셨으면 합니다만. 이번 주만 해도 날아간 수련장이 벌써 네 개쨉니다.”
“…….”
이현수가 뚱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물론 회주님 정도 되시는 분이 수련장을 사용하면 피해가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매번 수련장을 보수해야 하는 이들도 생각해 주시기를.”
“음.”
강진호가 곤란하다는 얼굴을 했다.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수련을 하는 방법 따위야 간단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강진호는 자신의 육체를 다시 되돌아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육체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방식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위긴스가 손뼉을 쳤다.
“억지를 받아주신 대가로 제가 수련장을 만들겠습니다. 로드의 힘을 완전히 받아내기는 힘들겠지만, 지금의 수련장들처럼 쉽게 박살이 나지는 않을 겁니다.”
“가능한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스터의 지원을 받는다면 가능할 겁니다. 한 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부탁하지.”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남은 일은 맡긴다. 나는 수련을 하러 간다.”
“보중하십시오.”
“완벽하게 처리해 두겠습니다, 회주님.”
강진호가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앙!
창밖에서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온다.
“…….”
말없이 밖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위긴스.”
“예, 로드.”
“이왕이면 바토르 것도.”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이현수와 위긴스가 창 쪽으로 걸어가 밖을 바라봤다.
“말도 안 되는 터프함이네요.”
“확실히.”
최근 바토르는 하루에 한 번씩 강진호와 대련을 하고 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위긴스도 이미 경험해 봤다. 진심으로 상대하는 강진호에게 맞선다는 게 어떤 것인지 말이다.
격차?
손도 대지 못하는 굴욕?
아니,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진심으로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은 강진호의 살기를 정면에서 맞받는다는 점이다.
한 번의 대련만으로도 수십 번의 죽음을 경험하는 느낌.
육체적인 폭력이 전부가 아니다. 정신력이 깎여 나가다 못해 뇌가 하얗게 바래 버리는 감각이다.
그걸 버텨내고는 다시 수련을 한다.
단순히 터프함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음?”
이현수가 답지 않은 진지한 얼굴로 위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표정이군.’
“뭐가 궁금하지?”
“바토르 님은 어떻게 저리 열심히 할 수 있는 겁니까?”
“음?”
위긴스가 의문을 담은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렇습니다. 애초에 저는 무인이라는 길에는 한 발을 걸친 게 전부라 무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분 같은 건 전혀 모르겠거든요.”
‘보통은 모르겠지.’
무학에 모든 것을 걸었다. 강해지는 것에 전부를 걸었다.
그런 말을 지껄이는 이들이야 이 세계에 흔하지만, 정말 모든 것을 걸었다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이는 흔치 않다.
그래.
예를 들면 바토르처럼 말이다.
위긴스의 시선이 바토르를 쫓았다. 저 멀리 수련장에 점처럼 보이는 바토르의 모습을 말이다.
강진호와의 대련으로 육체가 박살이 났을 텐데도 휴식을 취하기는커녕 다시 수련에 박차를 가한다. 저건 수련이라기보다는 학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미련한 짓이라고는 할 수 없다.
‘보통은 그런 법이지.’
석가모니조차도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자신을 고행으로 몰아넣었다.
무언가를 얻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평범한 이들의 이치대로 평범하게 살아서는 평범을 벗어나지 못한다.
극단에 서서 극한을 달릴 수 있는 이들만이 규격을 벗어나 다른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흐음.”
“어떻게 사람이 자신을 저렇게 몰아넣을 수 있습니까? 사실 바토르 님은 이미 충분히 강하잖습니까. 무력으로 보아도 위에 그리 많은 이들이 남아 있지 않을 텐데, 어떻게…….”
‘너도 이미 사람 같지는 않아.’
자기 자신은 자기가 제일 모른다더니, 이런 말을 태연하게 물어오는 이현수가 더 무섭다.
“은메달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예?”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메달은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요즘은 자주 들리는 말이지. 그 말도 분명 맞는 말이야. 하지만…… 너는 금메달과 은메달 중 뭘 원하지?”
“그야 당연히 금메달이죠.”
“그래, 그런 거다. 최선을 다하니까, 오히려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의 위에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거지.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는데 재능이 거기까지였다는 말로 누가 납득하겠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보통은…….
위긴스가 가만히 바토르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회주님이 말한 대로다. 결국 무인이라는 족속은 나보다 강한 누군가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야. 납득하는 순서대로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끝까지 납득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강해지려고 발버둥을 치다 보면?”
“저렇게 되는 거군요.”
“그렇지.”
어린아이와 별로 다를 것도 없다.
성장한 인간이라는 것은 합리를 익히게 되니까. 이유를 알고 상화을 납득하고, 한계를 긋게 된다.
하지만 그 합리를 부정하는 이들,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계속 남아 억지를 부린다. 그런 이들이 강자가 된다.
‘나 역시.’
위긴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직은 억지를 부려봐야지.’
“그럼…….”
“음?”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온다.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더 이상 자신의 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
위긴스도 이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 그 해답을 아는 사람은 회주님 정도겠지.”
“음, 그렇겠네요.”
“무인의 길을 궁금해하는 건 좋다. 하지만 너는 네 길에 충실해야겠지.”
“그런 말로 사람 의욕 불어넣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멋대로 부려 먹는 것 아닙니까.”
“알고 있으면 됐어.”
위긴스가 빙그레 웃으며 이현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무도 남아 있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라…….’
위긴스는 모른다.
하지만 알 것도 같았다.
‘그래도 끝나지 않겠지.’
끝에 닿은 길은 새로운 길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지금의 강진호처럼, 걷고 또 걸어도 길은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걷는다.”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위긴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는 준비를…….”
“어디 가십니까? 이거 도와주셔야죠.”
“……정리.”
“앉으세요.”
“……응.”
무인이고 나발이고, 당장은 업무가 더 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