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
#10.
학교 가다 (3)
집으로 돌아온 강진호는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생겼었나?’
안타깝게도 방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음에도 편안함보다는 어색함이 느껴졌다.
“오늘은 푹 쉬어야지.”
“예.”
“내일은 학교 가야 하니까.”
“에?”
어머니는 뭘 그리 놀라냐는 듯 말했다.
“그럼 안 가려고 했니? 자꾸 빠지면 안 돼. 퇴원했으면 이제 학교 가야지.”
“예.”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갑자기 막 아픈 척할걸?”
“네 오빠가 너랑 같은 줄 알아? 오빠가 얼마나 모범생인데 그러니!”
“엄마는 오빠만 이뻐해!”
“니가 이쁨 받을 짓을 좀 해봐!”
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자 강은영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학교라…….’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다. 강진호는 아직 학생이니까. 딱히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강진호지만, 학교를 가는 것에 불만은 없었다.
강진호는 교복을 입었다.
둔중한 어깨선이 몸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늦었다! 서두르지 않고 뭐해!”
어머니의 말에 강진호는 살짝 고민에 빠졌다.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더 큰 사태로 발전하기 전에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강진호가 단호히 입을 열었다.
“저…… 어머니.”
“엄마야!”
“네, 엄마.”
“왜 그러니?”
“학교는…….”
강진호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어디에 있나요?”
“…….”
멍하게 강진호를 바라보던 어머니가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아…… 잘 모르는구나. 엄마가 데려다 줄게.”
“…….”
“괜찮아, 괜찮아. 곧 다 기억날 테니까. 우리 아들, 괜찮아.”
강진호에게 괜찮다고 하는 건지, 자기 자신에게 괜찮다고 하는 건지 애매하다.
어머니는 차에 시동을 걸고는 강진호를 태웠다.
“음…….”
두 번째 타보는 차지만 여전히 답답했다. 걷는 것보다 빠를지는 모르겠지만, 걸어서도 차보다 빠르게 움직이던 강진호에게는 더없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부분에서마저 아직은 적응이 덜되었다는 실감이 난다.
그렇다고 어머니도 같이 걷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강진호는 두말없이 차를 탔다.
한참을 달려서 강진호는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명 고등학교.
정문에 쓰여진 이름을 읽자면 그러했다.
“교실은 찾아갈 수 있어?”
“제가 몇 학년 몇 반인지만 알면요.”
“2학년 3반이야.”
“네.”
강진호는 차에서 내려 가방을 들었다.
가방 안에는 들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학생은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었다. 새삼 이상하게 여겨지긴 하지만, 그가 적응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진호야!”
“네?”
“학교 끝나고 집으로 찾아올 수 있겠어?”
“예.”
“아니면 엄마가 데리러 올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 혹시라도 안 되겠다 싶으면 집으로 전화하렴.”
“네.”
강진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2학년 3반, 2학년 3반…….’
강진호는 잊지 않도록 되뇌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교실은 물어서 찾아도 되고, 직접 돌아보며 찾아도 된다.
“야, 진호야!”
그때,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기억에 남아 있는 얼굴이다.
그리고 아직 이름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정인규?”
“너 퇴원했냐? 내가 문병 가려고 했는데, 병원이 어딘지 몰라서 못 갔어.”
“그래.”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오려고만 했다면 어떻게든 알아서 올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 정인규는 이런 사람이다. 언제나 살가운 말로 친구임을 자처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돌아서는 자.
그가 진정 친구였다면 강진호가 불구가 된 이후에도 친구여야 했다. 하지만 하반신 마비로 산 지가 삼 년이 넘어가자 그의 주변에는 친구가 남아 있지 않았다.
‘친구란 그런 거지.’
강호에서도 친구라 믿었던 자는 마지막 순간에 그를 함정에 빠뜨렸다.
피로 이어지지 않은 얄팍한 정에 믿음을 줄 생각이 더는 없지만, 지금 굳이 그런 티를 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퇴원했다.”
“미친놈, 왜 하필 오늘 학교 나왔냐?”
“음?”
“어차피 입원했으면 오늘까지만 버티지.”
“무슨 말이냐?”
“몰라?”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오늘 시험이잖아.”
“…….”
“중간고사.”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떨렸다.
“중간고사?”
“그렇다니까? 꼴 보니 몰랐네. 빨리 가자, 늦겠다.”
“음…….”
강진호는 정인규를 따라 교실로 향했다. 어쨌든 학교에 온 이상 다시 뒤돌아 나갈 수는 없었다.
“기억이 남아 있어.”
배움은 헛되지 않았다. 오래되긴 했지만 그의 기억에는 과거에 배운 지식들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런 강진호의 낙관은 불과 두 시간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눈알 굴리지 마라!”
강진호의 눈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음…….”
“야, 강진호. 너 고개 안 숙여?”
“…….”
강진호는 고개를 숙이고 시험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배움은 헛되지 않았다.
덕분에 강진호는 지금 그가 받아 든 시험지가 영어 시험지라는 것을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영어는 미국을 비롯한 가장 많은 국가가 사용하는 언어로서 그도 과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려 십이 년 동안 죽어라고 익힌 언어였다.
‘그렇긴 한데…….’
문제는…… 영어라는 것은 알겠는데, 시험지에 쓰여져 있는 글자가 대체 뭘 의미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영어라는 것을 보지 않고 산 지가 몇 십 년이 넘었다. 해외에 남겨진 이들이 몇 십 년 동안 모국과 왕래가 없다 보면 모국어도 까먹는데, 다른 나라의 언어를 무슨 수로 몇 십 년 동안 기억하고 있으라는 말인가. 강진호는 답을 내렸다.
‘모르겠다.’
1번 문제부터 25번 문제까지, 강진호가 아는 문제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아직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있었다.
‘모르면 찍어야지.’
객관식 시험이라는 제도의 출현과 함께 나타난 해결책!
백지로 내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한 방법이다.
강진호는 깔끔하게 답을 찍고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
이상하게도 그토록 중요한 지식들은 다 까먹은 강진호지만, 학생이 가져야 할 휴식의 덕목은 잊지 않고 있었다.
‘자자.’
오늘 시험은 모두 세 과목이었다.
영어, 과학, 한문.
영어 시험에서 외국어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를 깨달은 강진호는 과학 시험에서는 한국말로도 다른 나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한국말인데도 한국말이 아니었다. 문자를 보고 내용을 이해할 수 없으니, 다른 언어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한문 시험을 본 강진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건 시험도 아니군.’
중원에서 한평생을 한문을 쓰고 산 강진호였다.
비록 당대의 지식을 많이 얻지는 못했다지만, 이런 기본의 기본밖에 안 되는 수준의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과거와 다른 글자도 눈에 띄었지만, 감으로 때려 맞출 수준은 되었다.
덕분에 한문 시험도 찍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끝낼 수 있었다.
시험을 모두 끝낸 강진호는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야!”
“음?”
“뭐가 그리 급해? 오늘 시험도 다 끝났는데, 피시방 가자. 태호랑 민재도 간대.”
“피시방?”
기억을 더듬어보니 컴퓨터를 하고 노는 곳인 듯했다.
“다음에.”
“이게 진짜 미쳤네? 왜 안 가?”
“다음에 가자. 일이 있어.”
“헐?”
정인규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시험이 끝나면 넷이서 피시방에 가는 게 그들의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강진호가 그 불문율을 깬 것이다.
“이상하네?”
정인규는 고개를 갸웃했다.
강진호는 교실 밖으로 나와 밖으로 걸어갔다.
그때, 누군가 그를 불렀다.
“강진호.”
“…….”
고개를 돌려보니 낯선 얼굴을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너 따라와.”
“예?”
“마, 교무실로 와!”
“예.”
‘누구지?’
나이가 있고 교무실로 오라는 것을 봐서는 선생 같은데…….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담임선생님. 성함은 기억이 전혀 안 나지만, 2학년 때 자신의 담임이었다는 것만은 기억이 났다.
교무실로 따라간 강진호는 담임이 앉아 있는 책상 앞에 섰다.
“앉아.”
담임이 바퀴 달린 작은 의자를 내주었다.
강진호는 두말없이 의자에 앉았다.
“공부했어?”
“……아닙니다.”
“야, 인마. 공부를 아무리 안 해도 그렇지, 니가 영어가 삼십 점이 나오는 게 말이나 돼? 아는 것만 풀어도 팔십은 넘어야지. 너 내신 어떻게 할 거야?”
“…….”
내신이 뭐더라?
학교 성적을 말하는 거였나?
“짜식이 아프면 나오지를 말지. 그냥 안 나오면 저번 성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시험을 쳐서 사람 골치 아프게 만드냐? 영어 선생님이 와서 안 알려줬으면 어쩔 뻔했어?”
아마도 성적이 너무 갑작스레 떨어지자 채점하던 선생님이 담임에게 알려준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난 안 괜찮아, 인마.”
담임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움켜쥐더니 한숨을 쉬었다.
“야, 일단 너 오늘 학교 안 나온 걸로 해. 내가 병가로 해놓을 테니까. 알았어?”
“전 나왔는데요.”
“누가 그걸 몰라? 나는 지금 귀신이랑 대화하고 있냐?”
“…….”
“그래야 저번 성적으로 대체할 것 아냐! 너 지금 니 영어 성적이 전교 꼴찌인 건 아냐?”
“음…….”
전교 꼴찌라…….
공부에 뭔가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찍기라도 잘할 것이지, 어떻게 유도부 애들보다 성적이 더 나쁘게 나오냐? 멍청한 게 진짜…….”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댔다.
유도부라니!
공부라고는 애초에 해본 적도 없다는 운동부 애들보다 성적이 안 나왔단 말인가.
아니, 조건이야 그들이 더 낫겠지만, 애초에 그 애들도 찍어 댈 테고 자신도 찍은 것인데 찍기 싸움에서도 졌다는 것이 강진호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너 진짜 이러지 마라. 담임 이렇게 고생시켜야겠어?”
“죄송합니다.”
“어랍쇼? 한문은 또 백 점이네?”
“…….”
“야, 너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반항이냐?”
“아닙니다.”
“이러면 한문은 성적이 내려가겠네……. 아, 모르겠다. 그래도 그냥 병가로 처리해! 그게 나아.”
“예.”
“너, 혼란스러워서 그러는 것 같은데, 사고니까 내가 이해한다. 다음 시험에 이따위 성적 찍으면 가만 안 놔둔다. 알았어?”
“예.”
“가봐.”
“그럼.”
강진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공부라…….”
밖으로 나온 강진호는 살짝 인상을 썼다.
딱히 공부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과거의 그였다면 결코 이리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강호를 겪고 미래를 겪어본 그는 공부라는 것이 인생에 그리 큰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공부를 잘하면 좀 더 편히 살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것도 불시에 닥쳐오는 사고에는 무력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오늘 공부를 좀 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긴 했다.
“너무 못하는 것도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있지.”
그리고 담임의 머리가 더 벗겨지게 될지도 몰랐다. 담임선생님의 평범한 삶을 위해서도 최소한의 성적은 필요해 보였다.
결코 성적표를 받아 들고 집에 갔을 때 벌어질 사태 때문에 이런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강진호는 조금은 민망한 표정이 되어 교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