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06
#1105.
대치하다 (5)
우우웅.
검이 살짝 흔들린다.
위긴스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검의 끝을 바라보았다. 저 검이 지금 그의 목을 노리고 있다.
공명하듯 우는 검.
‘과연 마스터.’
검을 겨누고 있는 마스터의 모습에서 위엄이 절로 일었다.
최근 더 많은 강자들을 보면서 눈이 높아진 위긴스이지만, 마스터에게는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와인이 통 안에서 세월을 담으며 숙성되듯이, 마스터에게는 세월과 함께 쌓아 올린 품격이 있다.
‘장민이나 로드가 들으면 웃어버리겠지만.’
뭐, 애초에 나이도 그들이 많으니 당연한 건가?
어쩌면 동양과 서양의 무학 차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과 마스터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르다.
그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그곳이 아니라 이곳에 있었다.
“갑니……!”
그 순간, 위긴스의 발밑이 푹 꺼졌다.
“끅?”
힘을 주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가려던 위긴스가 순간 균형을 잃었다.
아주 잠깐, 시간으로 따진다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 순간의 당황이지만, 고수 간의 싸움에서는 그 찰나의 시간이 승부를 가르는 법이다.
“읏차!”
마스터가 어느새 다가와 그의 검을 튕겨내고는 검을 위긴스의 목에 겨눴다.
“체크메이트.”
“……이거 좀 비겁한 것 아닙니까?”
“변명치곤 구차하군.”
“끙…….”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패한 것은 패한 것이다.
“이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겠지.”
마스터가 빙그레 웃으면서 겨눈 검을 회수했다. 검집에 검을 밀어 넣은 마스터가 어깨를 으쓱했다.
“꾸준한 수련 외에는 답이 없는 문제니까 말일세.”
“흐음.”
위긴스는 지금 새로운 것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마검사.
수많은 무인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악마의 클래스. 하지만 제대로 완성만 할 수 있다면, 그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전설의 클래스.
하지만 위긴스는 알고 있다.
‘그런 건 없어.’
사실을 그대로 말하자면, 세상에 마검사란 클래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고?
마검사는 마법과 검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자.
말 그대로 해석하면 위긴스도 마검사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동시’라는 말을 엄격히 적용하면 현대에는 마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마스터도, 위긴스도 그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마법과 검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다. 마법을 쓸 수 있고, 검을 쓸 수 있지만, 그저 그것뿐이다. 검을 휘두르면서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건 마법과 검의 구조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마법과 검은 모두 마나를 이용한다. 하지만 마나를 굴리는 방식은 서로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검을 쓸 때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고, 마법을 쓸 때는 검을 사용할 수 없다.
검을 휘둘러 적을 떨쳐 내고 순간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검에 오러를 만들어내 휘두르는 동시에 마나를 배열하여 마법을 준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마검사라 불리는 이들은 그저 마법과 검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전환하여 사용하는 이들에 불과하다.
그리고 마스터는 그 정점에 오른 이였다.
영창 없이 마법을 사용하고, 마법에서 검으로의 전환이 눈 깜빡할 새에 이루어진다. 마검사가 아닌 이들이 마스터를 상대하면 검사와 마법사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꿈꾸는 경지.
다만…….
“알겠다는 표정이로군.”
“예. 이건…….”
“그렇다네.”
마스터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 역시 자네의 회주를 눈으로 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지. 이런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걸 말일세.”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틈이 있군요.”
“그렇지.”
전환이란 결국 전환일 뿐이다.
아무리 부드럽게 기어를 전환한다고 해도, 전환하는 그 순간 출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마검사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완벽하게 전환을 이루어낸다고 해도 반드시 마법과 검이 전환되는 순간에 틈이 발생한다. 낮은 단계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 틈을 찌를 수 있는 상대가 없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절정에 오른 이라면?
“자네의 회주 정도라면 순식간에 내 목을 갈라 버릴 수 있겠지. 마법과 검이 전환하는 틈을 노리면 되니까. 그렇다고 하나만 써서 싸우기에는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왔네.”
“……그렇습니다.”
검을 극한으로 닦았다면, 마법을 극한으로 익혔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다. 하지만 위긴스와 마스터는 평생 동안 마검사로서의 전투법을 갈고닦아 왔다. 이제 와 검만을 사용하거나 마법만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그건 변화가 아니라 붕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싸워야 한다는 말인데…….
‘이 틈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수학에서는 무한히 1로 다가가는 상황을 1로 정의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틈을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을 초월하여 반신의 경지에 든 무인들은 그 틈을 아무렇지도 않게 찔러올 수 있다. 결국 가진바 무학의 한계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없어지는 것이다.
“……이거였군요.”
“예전이었다면 몰랐겠지. 상식의 문제니까. 이 틈을 찌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가 없으니 문제를 느낄 수가 없지.”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잡은 것 같다.
그가 벽을 뛰어넘지 못한 이유. 이건 단순히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그도 모르는 사이 그가 가진 무학의 근본적인 한계를 마주한 것이다.
“어찌 해결하셨습니까?”
“해결했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는가?”
마스터가 씁쓸한 얼굴로 검의 손잡이를 툭, 쳤다.
“나는 무한에 다가가려고 했네. 시간을 줄이고 또 줄이면 언젠가는 시간이 없는 영역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쉽게 말하면 틈을 줄이고 또 줄였네. 그런데…… 그 틈이 사라지지 않더군.”
그럴 것이다.
결국 시간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영역이니까.
세상 누구도 마스터의 무학이 가진 틈을 찌르지 못한다면, 그 틈은 없는 것과 같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그 틈을 찌를 수 있게 되는 순간, 틈이 작은가 큰가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저 존재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 방식은 권하지 않네.”
“그럼…….”
“그건 자네의 몫이겠지.”
마스터가 고소를 머금었다.
괴롭히려는 것도 아니고, 떠넘기는 것도 아니다. 마스터는 위긴스가 원하는 답을 줄 수 없었다. 평생을 고뇌하고 매달렸지만, 그 역시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네. 자네가 지금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자네는 언젠가 내가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될 걸세. 그런데 그건…….”
“오답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군. 내가 자네의 나이와 자네의 경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길을 찾았을 거네. 무학이란 그저 갈고닦는다고 끝나는 게 아닐세. 속력이 딸리는 차로 레이싱을 이기는 방법이 뭐겠는가?”
“…….”
“드라이빙 스킬을 갈고닦는다? 최상의 전략을 짠다? 정비사를 최고로 준비한다? 아니지. 최선의 방법은 차의 속력을 올리는 거야. 근본적인 한계를 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방법도 무의미하지.”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향은 잡았다.
다만, 그 방향으로 가는 길이 끊겨 있다. 넘어서기 위해서는 절벽을 넘을 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그 방법이 모호하다.
“너무 급하게 굴지 말게.”
“저는 급하지 않습니다.”
“아니, 급하네.”
“…….”
마스터가 가만히 위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앞서가는 이들이 생기고, 뒤따라오는 이들이 눈에 보이니 당연히 마음이 급하겠지. 웃기는 소리지만, 급할 때 급해서는 안 되네. 조급함은 마음을 갉아먹지.”
“…….”
“심호흡을 하게.”
“예?”
“영화를 보거나, 데이트를 가는 것도 좋겠지. 그리고 책을 본다거나 펍에서 맥주 한잔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마스터, 그게 무슨…….”
“자신을 내몰지 말라는 소리네.”
마스터의 한마디, 한마디가 위긴스를 찔러 대고 있었다.
“열심히 한다는 것, 중요하지. 노력한다는 것, 물론 중요하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지. 휴식 역시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네. 특히나 한계에 몰렸을 때는 리프레시가 필요한 법이지.”
“으음.”
“거 보게. 자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의 조급함을 안고 수련을 뺀다거나,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한다는 게 힘들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거 보게. 쉬운 쪽을 택하고 있지 않나.”
위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 말이 이렇게 가는가.
“힘든 것을 하는 게 노력일세. 쉽고 편한 것을 찾는 건 노력이 아니지. 자네에겐 지금 휴식이 가장 힘들 걸세. 그 조급함을 안고 휴식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 그러니 거꾸로 말하자면…….”
마스터가 씨익 웃었다.
“지금의 자네에게 최선의 노력은 휴식이라는 말이 되지.”
“……마스터가 무학을 안 익혔으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알 것 같습니다.”
“대기업의 CEO?”
“아니, 변호사입니다. 그게 아니면 사기꾼이거나. 뭐든 말로 사람을 등쳐 먹는 직업을 가졌겠군요.”
“…….”
위긴스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휴식하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손을 벌리게.”
“예?”
“자네의 회주가 한 말은 맞는 말이네. 하지만 그게 꼭 내게 오라는 말은 아니었겠지. 절대적인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저 손을 뻗어보게. 그게 실마리가 될 수도 있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자, 들어가세나.”
“다만, 마스터.”
“음?”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사별한 사람에게 데이트를 하라는 건 악담 아닙니까?”
“허허, 이 사람, 아직 그런 말을 하는군. 자네가 사별한 게 벌써 몇 해인가. 이제 슬슬 새 사람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욕을 먹지는 않을 걸세.”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 딸이 있는 이상…….”
“그 엘레나가 그러더군.”
“예?”
마스터가 고개를 내젓는다.
“아버지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다고, 빨리 새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
“정 안 되겠으면 한국에 집사라도 데리고 가게. 다 큰 딸에게 살림을 맡기고 자기는 바깥일이라니. 쯧쯧, 시대가 어떤 시댄데.”
“……충고 감사드립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대책을 강구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위긴스였다. 이 나이에 딸에게 쫓겨나는 건 절대로 사양이다.
“자, 가보세. 무학에 대한 일을 다 했으면, 이제 진짜 일을 해야지.”
“물론입니다, 마스터.”
진짜 일.
슬슬 요동치기 시작하는 원탁을 짓누르는 일.
위긴스가 표정을 바꾸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조금 재미있겠군.’
역시나 전공 분야가 편한 법이다.
“그런데 자네의 제자라는 그 사람 말일세.”
“아, 예. 이현수 말씀이시군요.”
“정말 이쪽으로 보내주면 안 되는가? 내 보상은 섭섭지 않게…….”
“안 됩니다.”
딱 잘라 말한 위긴스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녀석은 어떤 의미에서는 초절정의 무인 하나보다 더 중요한 놈입니다. 나이트와도 바꾸지 않을 겁니다.”
“끄응.”
마스터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