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1
#110.
고민하다 (5)
“재단?”
재단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예.”
뜬금없는 말에 당황한 강유환이지만, 강진호는 여전히 담담했다.
“재단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복지 재단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으음…….”
강유환은 강진호의 눈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진심이냐?”
“예.”
“진호야, 재단을 만든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건 일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야.”
강유환은 이 대책 없는 아들놈을 만류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부터 들려줘야 아빠가 판단이 서겠구나.”
“사실은…….”
강진호는 성심 보육원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의 상황을 모두 설명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강유환이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드리는 말은 아닙니다.”
“가벼운 마음은 아닐지라도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맞구나. 법률적인 문제도 있고, 재단이라는 것이 그렇게 마음만 먹는다고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선은 재경의 도움을 받을 생각입니다.”
“네 재단을 재경에게 대리 관리를 시키는 것이 옳다고 보니?”
“…….”
“네가 준비가 덜된 것을 다른 이들에게 미뤄서는 안 된다. 무릇 일이라는 것은 착실한 준비가 끝난 뒤에야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니겠니?”
“예.”
“충동적으로 시작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지원을 받는 아이들이야.”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강유환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강진호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인정은 빨라서 좋구나.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겠다. 하지만 지금 너는 군인의 신분이다. 사회에 있을 수도 없는 녀석이 일을 키우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역을 하고도 네 마음이 변화가 없다면, 그때는 진지하게 논의를 해보자꾸나.”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습니다. 당장 이 년 동안 보육원의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재단을 만들지 않고도 지원할 방법은 있다. 등록만 되어 있다면 공적으로 기부를 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사적으로 지원할 방법은 많아.”
“…….”
“급히 마음먹지 말거라. 아버지도 있고, 엄마도 있잖니. 자식 놈이 그리 기특한 생각을 하는데 외면할 부모는 없단다. 네가 이곳에 계속 있을 수 없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 놓고 가려는 네 심정은 안다. 그 부분은 우리가 신경을 쓸 테니, 너는 네 할 일부터 하거라.”
“알겠습니다.”
강진호는 자신이 너무 급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성심보육원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재단을 만들어 후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그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냐? 유민이 때문이냐?”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박유민으로 인해 이어진 인연이기는 하지만, 박유민은 편히 만들어주기 위해서 보육원을 지원할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아버지.”
“그래.”
“저는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어려운 일이지.”
“예.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보육원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과 그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저와는 다른 의미로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요.”
“으음.”
“그들의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오만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도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는 주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진호의 말에 강유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겠지?”
“예.”
“네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돈이 많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보육원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평등한 세상을 보여준다는 건…… 어찌 보면 그저 꿈일 뿐이지. 그래도 해볼 생각이냐?”
“예.”
강유환이 미소를 짓고는 강진호의 등을 두드렸다.
“그래, 그래야 내 자식이지.”
흐뭇해하는 강유환과는 다르게 백현정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엄마는 네가 왜 그런 걸 하는지 모르겠다.”
“여보.”
“사실 그렇잖아요. 세상에 잘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 사람들은 자기 돈을 꽉 쥐고 자기만 잘살려고 애쓰는데, 왜 우리 진호만 돈을 써가며 그런 애들을 돌봐야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진호가 옳고, 그 사람들이 틀린 거지.”
“그렇기는 하지만…….”
백현정은 한숨을 쉬었다.
자식에게 옳은 길만 걸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백현정은 자신이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거기에 쓸 돈으로 내 자식이 좀 더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었으면 싶은 것이 그녀의 바람이었다.
“나도, 나도 도울래!”
강은영이 손을 들고 말했다.
“나는 가서 공연해 줄래! 애들이 좋아할 거야.”
“정서 발달에 안 좋다. 정신 사나워.”
“……강무룩.”
강은영이 우울한 얼굴로 달팽이 코스프레를 시작했지만, 강진호는 그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급한 일은 아니니, 좀 더 천천히 생각해 보거라.”
“예.”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다들 머릿속에는 강진호가 꺼낸 말이 가득했는지 대화가 겉돌았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벌써?”
“머리가 복잡해서 일찍 쉬려구요.”
백현정이 뭔가 말을 하려고 하자 강유환이 선수를 쳤다.
“그래, 얼른 들어가 보거라.”
“예. 그럼.”
강진호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백현정이 강은영을 보고는 눈치를 줬다.
“너도 들어가서 쉬어야지.”
“나는 말똥말똥한데? TV 좀 보다 잘 거니까 괜찮아.”
“피곤할 텐데, 가서 쉬지 그러니?”
“괜찮다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들어가, 이 기집애야!”
“넵!”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강은영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강은영이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백현정이 입을 열었다.
“안 말려도 괜찮겠어요?”
“자기가 벌써 정한 건데, 그걸 말린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래도요.”
백현정은 확실하게 강진호를 막아주지 않은 강유환이 원망스러운 얼굴이었다.
“쟤는 이제 겨우 스무 살 좀 넘었어요. 그런데 그런 큰일을 벌이면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당신, 그냥 아들놈이 돈을 허튼 데 쓴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지?”
“예.”
백현정은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돈이 있다고 해서 앞으로도 있을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좀 더 편히 살다가 그래도 될 건데. 아무리 공으로 번 돈이라지만, 영 탐탁치가 않네요.”
“여보.”
강유환이 백현정의 손을 잡았다.
“아직 결정된 일도 아니잖아. 그리고 앞으로 진호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응원해 줘야 할 일이지, 말릴 일이 아니야.”
“……그렇겠죠.”
“우리가 우리 애를 못 믿어주면 누가 믿어주겠어.”
“당신 말이 맞아요.”
백현정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가끔씩은 그의 아들이 저지르는 일들을 따라가기도 벅찬 느낌이었다.
“믿어줍시다.”
“네.”
백현정의 어투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성급했나?’
강진호는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답은 금방 나왔다.
아니다.
성급한 게 아니다. 지금 미리 말을 꺼내두지 않았다면 훗날 재단을 설립할 때 겪어야 할 진통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얻은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우선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에 대해 그의 뜻을 부모님에게 알리는 것에 성공했고, 무엇보다 그 스스로도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알 수 없던 일 들이다.
‘성급하지는 말되, 망설이지도 마라.’
강진호는 눈을 감았다.
다음 날이 되어서 원장님은 재경병원으로 병실을 옮겼다. 조규민의 말대로라면 교구 쪽과 조금의 마찰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박유민과 함께 원장님을 VIP실로 모신 강진호는 해가 지자 박유민을 보육원으로 보내고 조용히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어둠이 깊어지고 면회마저 금지된 시간도 지나 새벽이 와서야 강진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눈에 최상층에 위치한 병실이 들어왔다.
강진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비상계단으로 들어선 그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끼이익.
무거운 철제문을 열고 병동으로 들어선 강진호가 데스크의 간호사들을 피해 천천히 병실 안쪽으로 이동했다.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이상하다. 방금 저쪽에서 뭔 소리가 난 것 같았는데?”
“환자들 기침 소리겠지.”
“그런가?”
강진호는 간호사들의 시선을 피해서 천천히 원장님이 입원한 병실로 다가갔다.
비밀번호가 있어야 출입할 수 있는 VIP실이지만, 이미 낮에 비밀번호를 알아둔 강진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기막으로 주변을 차단한 강진호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츠으으으.
자동문이 열리고 강진호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 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잠에 빠진 원장 선생님의 낮은 숨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강진호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원장 선생님의 침대로 다가갔다.
수척한 얼굴로 잠에 빠져든 모습을 확인한 강진호가 조심스레 그녀의 수혈을 짚었다.
확실하게 잠이 든 것을 확인한 강진호가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육체에 기를 흘려 넣었다.
‘지독하군.’
이게 암이라는 질병인가.
마치 뱃속이 독기로 가득한 것 같았다. 이런 상태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이다.
‘현대 의학의 힘인가.’
중원에서 이런 상태였다면 이미 숨이 끊겼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의학의 힘은 이런 지경의 사람도 아직은 어려움 없이 살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야.’
과거 그가 치료했던 문지은의 경우는 상태가 좋지는 않았어도 치료에 그리 힘이 드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랜 시간을 들인다고 해도 과연 치료가 될 것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될지 안 될지 모른다고 해서 손을 놓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적어도 노력은 해봐야 한다.
강진호는 천천히 손을 뻗어 원장님의 배에 가져다 댔다.
‘흠…….’
독한 기운을 감지한 그의 손이 저릿저릿해 왔다.
‘급하면 몸이 버티지 못해.’
아주 조심스럽게, 신줏단지를 모시듯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강진호는 이를 질끈 깨물고 조심스럽게 기를 원장님의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순간, 원장님의 몸이 움찔하더니,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