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17
#1116.
대응하다 (1)
“없습니다.”
“…….”
강진호의 눈이 살짝 좁아졌다.
“없어?”
“예. 원탁 내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화는?”
“꺼져 있습니다.”
강진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위긴스의 등골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이건 명백한 그의 실책이다.
이현수를 원탁으로 보낸 것도 그고, 이현수가 있는 동안 나이트들을 압박한 것 역시 그의 생각이다. 실행은 이현수와 마스터가 했지만, 계획을 입안한 건 그였다.
‘멍청했다.’
변명의 여지도 없는 일이다.
실수는 한 가지.
이현수라는 존재의 특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이현수는 총회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다.
총회의 이사급들은 모두가 강자다. 더없이 강하고, 더없이 위대하다.
그들에게 어떤 수작을 벌인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바토르가 함정에 빠질 수 있을까?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군대라도 끌고 와야 한다. 홍왕이 직접 나서서 그를 맡지 않는 이상, 바토르가 도주도 못하고 당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심지어 중국 땅 한가운데에 떨어뜨려 놔도 바토르라면 유유히 중국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장민 역시 마찬가지다.
방진훈은 다른 두 사람과 다르게 무력은 분명 떨어지지만, 다른 두 사람에 비해서 훨씬 더 신중하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래서 자신이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반면에 이현수는?
이현수는 아니다.
이현수도 무인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의 무력은 말 그대로 보잘것없다. 무인이라 부를 수는 있으되, 전력으로는 활용할 수 없을 정도.
지금처럼 총회가 상대하는 이들의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 전, 영남회와 총회가 한국 무인계의 주도권을 놓고 투닥거리던 시절에도 그는 일선 전력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상황에서 이현수는 적에게 노출될 경우,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좀 더 신경을 써야 했어.’
이건 위긴스의 잘못이다.
언제나 다른 이사들과 위긴스와 함께 대화를 하고 함께 생활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를 다른 이사들과 동격으로 놓고 말았다. 그의 개인적인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총회 내부나 한국에서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감히 총회의 심장부에 머물러 있는 이현수를 노릴 만큼 간 큰 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곳은 적지.
마스터가 장악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적지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구역이다. 그렇다면 이현수의 안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하든 변명이 될 뿐이다.
“후우.”
강진호가 가만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위긴스가 살짝 몸을 떨었다. 손은 이미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버렸고, 이마에서도 자꾸 식은땀이 흐른다.
그가 저지른 실책 때문에?
아니다.
물론 그 부분도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지금 위긴스가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탁.
재떨이에 재를 털어낸 강진호가 담배를 손에 들고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위긴스.”
“예, 로드.”
“누구지?”
“…….”
위긴스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현수가 연락을 끊고 잠적을 탈 리는 없다. 이현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현수를 납치했다고 봐야 한다.
아직 CCTV를 분석하는 중이기는 하지만, 마스터의 비서인 미첼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그녀가 범인일 확률이 높았다.
그럼 미첼이 범인이라고 대답해야 하나?
아니다.
미첼은 그저 하수인일 뿐이다. 직접 움직인 이가 무조건 범인은 아니다. 미첼을 사주한 이를 밝혀야 한다.
“범인은 나이트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만.”
한 번 말을 끊은 위긴스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트 중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상 가는 이가 몇몇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예상일 뿐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
나이트 벨링거.
이만한 일을 벌일 사람은 나이트 벨링거밖에 없다. 그의 성정을 감안한다면 누군가를 인질로 잡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위긴스는 알고 있다. 사람은 궁지에 몰렸을 때,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더는 평정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나이트 벨링거가 쓰고 있던 가면을 집어던졌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래?”
강진호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위긴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위긴스는 알고 있다, 강진호가 이현수를 얼마나 아끼는지.
인연으로 따지자면 방진훈이 먼저고, 충성도로 따지자면 장민을 따라갈 이가 없다.
강진호의 이해자 포지션으로는 같은 강함을 추구하는 바토르가 가장 앞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이현수보다 강진호와 가깝다고 할 수 없다. 가장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고, 처음에는 서로 적으로 만난 두 사람이지만, 강진호는 총회의 어느 누구보다 이현수를 아낀다.
그런 이현수가 지금 적의 손에 납치되었다.
강진호의 분노가 어디까지 갈지 감히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 순간, 상황을 지켜보던 마스터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흐음.”
마스터가 고개를 숙인다.
“제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탓입니다. 설마 제 비서가 그런 일을 벌일 줄은…….”
마스터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전체적으로 모두가 안일했다. 예상만 했다면 대비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설마 거기서 이현수를 찌르고 들어올 줄이야.
“마스터.”
“예, 회주님.”
“나이트들 모아.”
“……예?”
강진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한다.
“아직 영국에 있겠지. 다들 모이라고 해.”
“하, 하지만.”
괜찮을까?
저들은 이현수의 신병을 확보했다. 아직 요구 사항이 들어온 건 아니지만, 이현수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뭔가를 요구할 거라는 건 빤한 일이 아닌가.
저들에게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현수를 죽이는 식의 미친 짓은 하지 않겠지만, 궁지에 몰린 이들은 때때로 미친 짓을 서슴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지금은 조심히 접근해야 할 때다.
그런데 당장 나이트들을 소환하라니.
“회주님, 일단은 진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실장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입니다.”
“진정?”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보고 있으니, 위긴스조차 심장이 덜컥거린다.
한없이 가라앉아 있는 강진호의 눈이 위긴스를 가만히 응시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분노하고 있는지, 아니면 걱정하고 있는지. 그게 아니면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강진호의 눈에서는 감정의 편린을 엿볼 수가 없었다. 무저갱처럼 그저 깊고 또 깊을 뿐이다.
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 위긴스를 응시하다가 마스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불러.”
“어, 언제?”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강진호가 새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마스터가 나이트들을 소환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위긴스는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로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
“이현수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위긴스.”
“예, 로드.”
“때로는 신중함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네 방식으로 문제가 생겼지.”
“그렇습니다.”
“그러니 내 방식대로 할 뿐이야.”
“……알겠습니다.”
위긴스가 뒤로 한 발 물러섰다.
하나는 확실하다.
‘이건 절대 좋게 끝나지 못할 일이다.’
차라리 강진호를 죽이겠다고 폭탄을 들고 테러를 하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그럼 달려든 이들만 죽고 끝났을 테니까. 이현수를 건드리는 건 강진호를 건드리는 것 이상의 도발이라는 걸 몰랐다는 게 저들의 실수다.
‘원탁이 명맥이라도 유지하길 빌어야겠군.’
이현수의 안전과 함께 말이다.
* * *
나이트 벨링거는 불편한 얼굴로 원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눈에 불안한 듯 고개를 가만두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등신 같은!’
차라리 내가 범인이라고 광고를 하는 쪽이 낫다.
저리 대가 약한 이들이 어떻게 나이트라는 고귀한 지위에 올랐단 말인가.
마스터를 압박하기 위해서 어중이떠중이를 다 받아들인 것이 이제는 나이트 벨링거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저들 중 하나만 잡아다 심문해도 나이트 벨링거와 나이트 크라머르가 이 일을 벌인 주동자라는 사실이 금방 밝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이트 벨링거가 굳이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분명 있었다.
‘저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유괴범은 잡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질범은 잡는다고 끝이 나지 않는다. 인질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자국민이 해적의 손에 잡히면, 국가라는 거대한 단체조차도 대처법을 찾지 못한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 모두를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지만, 인질을 되찾지 못한다면 그들을 죽인다 해도 실패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에 이현수가 있다.
그러니 마스터도, 강진호도 움직일 수가 없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군.’
나이트들을 불렀다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불러놓고 억지를 부리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저들에 대한 두려움이 희석될 테니까.
모든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게 흐르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건…….
“미친놈입니다.”
이현수에 대한 나이트 크라머르의 평가다.
나이트 크라머르가 그리 평가할 만한 인간을 밑에 두고 쓴다면, 강진호도 제정신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 의외성이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절대 움직일 수 없다.’
그들이 이현수를 잡아온 지 채 열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 말인즉, 저들에게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시간이 없었다는 뜻이다.
나이트 벨링거는 간만에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느긋하게 마스터를 기다렸다.
“마스터께서 들어오십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마스터가 안으로 들어왔다. 굳어 있는 그의 얼굴과 다급한 걸음걸이를 보고 있자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저벅.
조금 간격을 두고 강진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굳은 얼굴의 마스터와는 다르게 강진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반쯤 비웃는 듯한 얼굴에 비한다면, 그 텐션이 낮아졌다는 건 확실하다.
나이트 벨링거는 미묘한 승리감이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려 애썼다. 저들도 이미 자신을 의심하고 있겠지만, 확신을 심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때, 강진호가 자리에도 앉지 않고 원탁 앞에 서서 모두를 바라보았다.
무거운 눈빛.
이미 한 번 강진호에게 질린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강진호의 시선을 피한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올 거냐, 강진호.
네게 방법이 있을까?
그때, 강진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총회에서 온 이현수가 실종되었다.”
찾아오라 할 수는 없겠지. 그를 살려 증거를 남기는 것보다 죽여 입을 막는 게 낫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24시간이다.”
나이트 벨링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때, 나이트 벨링거는 보았다.
강진호의 눈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를.
세상을 태워 버릴 것 같은 분노를.
“24시간 내에 이현수의 시체라도 찾아온다면 반은 살려준다. 하지만 24시간 내에 이현수가 이곳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강진호가 씹어뱉듯 말했다.
“너희는 모두 죽는다. 가장 처참하게.”
심장이 얼어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