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19
#1118.
대응하다 (3)
“너희는 모두 죽는다. 가장 처참하게.”
나이트들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었다.
빤한 협박이다.
그리 참신하지도 않다. 만화 속의 악당이 빤하게 내뱉을 것 같은 대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빤하게 들리지 않는다.
강진호가 하는 말이 일말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라는 게 확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두 죽인다고?
이곳에 있는 나이트들을?
지금 원탁 안에 있는 이들은 모두 세 부류.
하나는 이 원탁에 있는 이들.
그리고 원탁의 호위를 위해 애초부터 원탁을 점거하고 있는 가터 기사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이트들이 데리고 온 호위병들이다.
마스터는 호위병의 동반을 제한하지 않았다. 그건 아직 마스터가 빼앗지 못한 나이트의 권리다. 물론 나이트들이 그리 많은 수의 호위를 대동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이곳에는 모든 나이트들이 와 있다.
그들이 대동한 기사단을 다 합치면 가터 기사단의 전력을 확실하게 상회한다.
그 말인즉슨.
강진호와 마스터, 그리고 위긴스만으로 나이트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뜻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예전이었다면 코웃음을 쳤을, 웃기지도 않는 협박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이트 벨링거는 웃을 수 없었다.
그게 가능하다는 건 누구보다 나이트 벨링거가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모욕적이기 짝이 없는 협박을 들었음에도 조금도 불쾌함을 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뭘 하고 있지?”
나이트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시해라.”
“……무엇을?”
“이해를 못한 모양이군. 이현수를 찾아와라. 찾지 못하면 너희가 죽는다.”
“그…….”
다들 입을 뻐끔거렸다.
뭔가 말을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무슨 말을 하겠는가.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다. 지금의 강진호는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위긴스가 눈을 빛냈다.
‘알겠군.’
강진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극명하게 나이트들의 반응이 나뉘었다.
한 쪽은 강진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단 휴대폰을 움켜잡았다.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이현수를 찾아내는 것밖에 없다는 데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으니까.
휴대폰을 잡지 않은 이들 중에서도 뭔가 하려고 움찔하는 이들이 이쪽 부류다.
반면에…….
‘시선부터 돌아간다, 이거지?’
특정 몇몇은 나이트 벨링거와 나이트 크라머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주 짧은 순간.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선의 교환이다. 하지만 위긴스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위긴스가 알아차릴 정도라면 강진호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다.’
강진호가 원하는 건 이현수의 확보다. 저들을 쳐 죽이는 게 이현수의 확보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은 움직일 수 없다.
어찌할 것인가.
“죽어도 상관없는 모양이군.”
강진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이트들이 다급하게 휴대폰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전화를 걸어 소리치기 시작했다.
난장판이다.
서로 소리치는 목소리가 뒤섞여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아마 지금 저 전화를 받는 이들도 곤욕일 것이다.
강진호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의 시선이 나이트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강진호와 시선이 마주친 나이트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나이트는 단둘뿐이었다.
나이트 벨링거, 그리고 나이트 베슬리.
강진호가 자리에 가 팔짱을 끼고 앉았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소란스러워진 원탁이 점점 고요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영국으로 들어온 기사단과 수행원들에게 이현수를 찾으라는 명을 전달한 이들이 하나둘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강진호의 눈치를 살폈다.
‘끝났군.’
나이트 벨링거는 웃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 확실하게 알았다.
설사 그가 이번 일을 완벽하게 해내 강진호를 원탁에서 밀어낼 수 있다고 해도 원탁은 결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원탁이 지금까지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원탁이라는 체제가 모든 외부의 힘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중국을 제외한다면 그들과 맞설 이들은 없다. 그리고 중국은 내분에 휩싸야 외부로 힘을 뻗지 못한다. 그러니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강진호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원탁에 소속된 이들은 더 강한 자가 언제든 그들을 노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체제는 변할 수밖에 없다.
더 진화하든.
그게 아니면 원탁에서 이탈하든.
어느 쪽이든 방법을 찾으려 들 것이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나이트 벨링거가 기억하는 원탁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그럼 지금 패배를 인정할 것인가.
‘천만에.’
설사 이 전쟁으로 그가 얻어내는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전쟁에 들어간 이상 얻어맞은 채 끝낼 수는 없다.
평생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한 번쯤은 억지를 부려도 되지 않겠는가.
그 억지를 부릴 대상이 강진호라면 더할 나위 없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이만한 적은 다시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나이트 벨링거는 죽음을 각오했다.
설사 그가 이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강진호에게 원탁의 의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어쩌면 그의 세대가 원탁에서 마지막으로 배출한 진정한 나이트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나를 협박할 생각 같은 건 하지 마라.’
죽는다 해도 좋다.
이만한 일을 벌인다는 건 강진호에게 있어서 이현수가 그가 생각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뜻일 것이다.
굳이 연락을 할 필요도 없다.
그가 이곳에서 죽는다면, 이현수를 데리고 있는 이들이 이현수를 죽일 테니까. 죽음으로써 저 강진호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길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그때였다.
강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시작하지.”
다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시작?
뭘 시작한단 말인가.
이미 그가 지시한 것은 다 이행했는데.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홀로 뻗어진 검지가 한 사람을 가리켰다.
강진호에게 지적당한 이가 움찔하며 강진호를 바라봤다.
까딱.
“이리 와.”
나이트 졸탄.
강진호에게 지적당한 나이트의 이름이다.
나이트 벨링거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이트 졸탄은 그와 크라머르를 지지하는 이다. 하필이면 강진호가 그를 지적한 게 우연일까?
그렇지 않으면?
“저, 저 말입니까?”
“이리 와.”
“저는…….”
나이트 졸탄이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주저하다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홀린 듯이 원탁을 돌아 강진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이트 졸탄의 힘없는 발자국 소리만이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해진 홀에 퍼져 나갔다.
발소리가 점점 느려진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서두를 수 없다. 도살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소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마침내 나이트 졸탄이 강진호의 앞까지 도달했다.
새파랗게 질린 나이트 졸탄의 얼굴은 차마 지켜보고 있기 괴로웠다.
“왜, 왜 저를…….”
“딱히 이유는 없어.”
강진호가 손을 뻗어 나이트 졸탄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끅!”
저항은 없다.
강진호의 손에 잡힌 순간, 나이트 졸탄은 깨달았다. 저항은 무의미하다. 귀로 들은 강진호와 눈으로 본 강진호는 다르다. 그리고 눈으로 본 강진호와 직접 겪는 강진호의 차이는 그 이상으로 극심했다.
저항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설사 의지가 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강진호의 손이 그의 얼굴을 움켜잡은 순간, 그의 얼굴을 통해 섬뜩한 기운이 밀려 들어온다.
“끄으으으으으아아!”
전신의 혈관이 모조리 불에 타는 듯한 고통.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고통이 순식간에 나이트 졸탄의 이성을 날려 버렸다.
“끄으윽, 끄으으으윽! 끅!”
나이트 졸탄의 전신이 경련을 일으킨다. 움켜잡힌 얼굴에서 눈물과 침이 줄줄 흘러내리고, 갈 곳을 모르고 뻗어진 팔이 반대로 꺾여 버릴 듯 힘이 들어간다.
“끄륵, 끄르르륵!”
입가에 피거품이 차오르고, 핏줄이 선명하게 돋아난다.
“뭐, 뭐 하는 거요!”
기겁을 한 나이트 중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말했을 텐데?”
강진호는 나이트 졸탄을 움켜잡은 채 태연하게 대답했다.
“죽는다고 말이야.”
“이, 이십사 시간 내에 찾아오면…….”
“반은 살려준다고 했지.”
“그…….”
“한 시간에 한 명씩 죽이면, 그때쯤에는 반 정도 남겠군.”
심장에 비수가 박히는 것 같다.
나이트들은 알아버렸다.
이자를 건드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세상에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이다.
“끄르르륵! 끄륵!”
나이트 졸탄의 목에서 사람이 낼 수 없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이 마치 전기 고문이라도 당하는 듯 뒤틀리고, 사타구니가 축축이 젖어든다.
한 손으로 나이트 졸탄을 움켜쥔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다른 나이트들을 바라보며 희게 웃었다.
“이 정도는 각오한 것 아닌가?”
“…….”
강진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걸 미소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건 차라리 짐승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것에 가까웠다.
“지금까지는 너희의 방식을 존중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강진호는 원탁의 살을 물어뜯는 승냥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본다면, 저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제는 내 식대로 해보지.”
나이트 졸탄의 몸이 뒤로 휘어진다.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저러다가 척추가 부러져 죽을 것 같다.
하지만 죽지 않는다.
정말 두려운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이트 졸탄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그의 반응만으로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한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나이트 졸탄은 죽지도 못하고, 의식을 잃지도 못했다.
그저 저항할 수 없는 고통에 신음하고, 또 신음할 뿐이다.
차라리 일격에 목이 날려 버리는 게 자비롭다.
“이현수가 멀쩡히 돌아오면 돌려보내 주지.”
“…….”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강진호가 다시 한 번 환하게 웃는다.
“다음 차례를 정해두는 게 좋을 거야.”
투두두둑.
칠공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마치 비처럼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지옥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도 나이트 졸탄은 죽지 못했다.
뼈가 으스러져 나가는 소리,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신음, 그리고 뒤틀리는 근육에서 터져 나오는 괴이한 소리.
인간의 육체에서 나올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소리들이 나이트들의 귀에 선명하게 파고든다.
수천 년간 유럽을 지켜온 신성한 원탁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화했다.
그리고 그 지옥의 한가운데에서 악마가 웃는다.
나이트 졸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뒤집어쓴 강진호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한 나이트들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지옥.
지옥이다.
‘주여.’
나이트 벨링거가 눈을 감으며 이미 오래전 잃어버린 신앙을 간절히 갈구했다.